소설리스트

27화.다이아몬드가 박힌 펜던트 (27/118)

<27> 다이아몬드가 박힌 펜던트2021.08.06.

셀비는 이브니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4층에서부터 1층 중앙홀까지 질질 끌고 내려왔다. 이브니아는 홀 한가운데에 내던져졌다.

16548826243493.png“아악!”

16548826243499.jpg“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어!”

셀비가 이브니아를 노려보며 눈을 부릅떴다. 그 소란에 고용인들이 몰려들었다.

16548826243499.jpg“무슨 일이에요, 하녀장님?”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 상급 하녀가 물었다. 셀비는 분노보다는 통쾌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16548826243499.jpg“이브니아가 주인님의 집무실을 뒤지다가 딱 걸렸지 뭐야! 조만간 문제를 일으킬 줄 알았다니까!”

예상이 적중했다는 듯, 자신의 통찰력에 뿌듯함을 느끼는 목소리였다. 셀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16548826243499.jpg“주인님의 집무실을요?”

어떻게 그렇게 대담한 짓을 할 수가! 그곳에는 아라드만 볼 수 있는 기밀문서 같은 것도 있고, 공작가의 직인과 같은 중요한 물건들이 있었다. 자칫하면 지하 감옥에 갇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셀비가 위풍당당하게 하녀들에게 명령했다.

16548826243499.jpg“이브니아의 소지품을 뒤져봐. 몇 명은 가서 독채까지 빠짐없이 수색하도록 해. 겁도 없이 거기까지 간 걸 보면 한두 번 해본 게 아닐 거야.”

이브니아는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둘러싸고 비난의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16548826243493.png[주인님,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사실이 아니잖아요! 사실이 아니라고 한 말씀만……! 주인님……!]

강렬한 트라우마가 이브니아의 숨통을 조였다.

16548826243493.png‘헉……!’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었던 7년 전의 그 날. 공기조차 날카롭고 햇볕조차 따가웠던 그때의 기억이 그녀를 움츠러들게 했다. 라넬리를 위해서라면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이 겔렌지크에서 또다시 무슨 일을 겪게 되더라도 참아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오래전 일이고 다 지나간 일이니까. 자신은 변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자 이브니아는 주체 없이 떨리는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16548826243493.png‘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잖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잖아. 변명거리를 생각해뒀었잖아……!’

하지만 어째선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이브니아는 몸을 움츠리며 덜덜 떠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16548826243499.jpg“주인님께서 네게 자비를 베푸셨는데, 감히 도둑질을 하려 들어?”

셀비가 기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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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다른 하인들과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던 햄프턴은 본관에서 난리가 났다는 말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셀비가 이브니아의 머리채를 잡았단 말에 깜짝 놀란 햄프턴은 저택 내에서 뛰지 않는다는 규칙을 잠시 뒤로하고 달려갔다. 그가 둥글게 모여 선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 셀비에게 물었다.

16548826273748.png“대체 무슨 일입니까, 셀비?”

16548826243499.jpg“이브니아가 주인님의 집무실에서 뭔가를 훔치고 있었네.”

16548826273748.png“집무실에서요? 뭔갈 훔쳤단 말입니까?”

햄프턴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엎드려 있는 이브니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16548826273748.png‘왜 그런 짓을……?’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 행동거지나 겉모습만 봐선 이브니아는 누구보다 얌전하고 차분하며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절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오만가지 사건을 몰고 다니지 않는가. 충격적인 추문을 안고 야반도주를 하질 않나, 갑자기 유산 상속 편지를 가지고 나타나질 않나, 행실이 그리 좋지 않은 히사르와 엮여 큰 소동을 일으키질 않나…….

16548826273748.png‘그러더니 이제는 이곳의 심장부나 마찬가지인 주인님의 집무실에서 대담하게 도둑질을 시도했다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아라드를 받아주기만 하면 아라드가 금방이라도 호화로운 선물들을 안겨줄 텐데.

16548826273748.png‘주인님의 호의는 부담스러워하며 내내 거절하더니.’

햄프턴에게 이브니아는 이제껏 겪지 못한 대단한 수수께끼였다. 어쨌든 그는 이 저택의 총괄 관리자로서 뭐라도 해야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정해진 매뉴얼대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상대는 아라드의 총애를 받는 이브니아였다. 햄프턴은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16548826273748.png‘주인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아라드는 이브니아가 제 집무실을 뒤졌다는 것에 분노할까, 아니면 셀비가 이브니아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것에 분노할까.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전자의 상황이 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16548826273748.png‘지금은 왠지 후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햄프턴은 히사르가 어떤 꼴을 하고 지하 감옥에 방치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곤죽이 된 히사르는 더 이상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그에게 좋을 일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아라드는 히사르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지금 죽여버리면 훗날 그가 한 짓이 또 생각났을 때 분풀이 할 곳이 없지 않겠냐는 잔혹한 이유였다.

16548826273748.png‘어렵군, 어려워.’

햄프턴이 보기에 아라드는 이브니아에게 단단히 빠져 있었다. 아마도 이브니아가 처음 왔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우선 셀비를 설득하기로 했다.

16548826273748.png“셀비, 소란 피우지 마시고 우리끼리 조용히 처리합시다. 주인님이 출타 중이시니 일단 주인님께서 돌아오시면…….”

하지만 셀비는 햄프턴이 그녀를 걱정해서 그런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뚝 잘랐다.

16548826243499.jpg“이런 일은 조용히 처리해선 안 되네, 햄프턴. 단단히 본보기를 보여야지.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16548826273748.png“그래야죠. 원래라면 그게 맞긴 합니다만.”

햄프턴은 신중히 말을 골랐다. 여기서 이브니아를 너무 티 나게 두둔했다가는 그 특별 대우에 고용인들 사이에 불만이 일어나게 될 터였다. 게다가 하녀들을 교육하고 벌주는 것은 셀비의 권한이었다. 아라드가 따로 명령한 게 없는 이상, 하녀들의 처우에 관한 일에 햄프턴이 지나치게 끼어드는 것은 셀비의 권한에 대한 월권행위였다. 햄프턴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반절 섞은 거짓말을 셀비의 귓가에 속삭였다.

16548826273748.png“주인님께서 떠나시기 전, 이브니아에게 따로 전하신 말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거 때문에 이브니아가 집무실에 갔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햄프턴은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라고 셀비를 설득했다. 그러자 굳건했던 셀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햄프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16548826243499.jpg“그럼 왜 이브니아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고 있겠나?”

16548826273748.png“당황한 게 아닐까요.”

셀비는 의심스럽게 햄프턴을 쏘아보았다.

16548826243499.jpg“하지만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는 왜 내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지? 그런 일은 보통 나와 재깍재깍 공유하잖아?”

16548826273748.png“제가 깜빡했지 뭡니까. 제 불찰이니 제발 조용히 처리하시죠.”

깜빡했다니. 셀비는 아무래도 햄프턴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햄프턴은 그런 일을 깜빡할 사람이 아니었다. 셀비의 시선이 사람들 틈에 선 사나에게 향했다. 사나는 셀비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크게 떨며 다른 사람의 뒤로 숨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셀비는 확신했다.

16548826243499.jpg‘사나가 집무실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단 말이지. 햄프턴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사나가 망을 섰겠어?’

요즘 햄프턴은 계속해서 이브니아를 두둔했었다. 셀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16548826243499.jpg‘저 여우 같은 게 햄프턴마저 구워삶았구나!’

차라리 잘됐다. 이번 기회에 이브니아를 단단히 교육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번 일로 그녀를 내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셀비는 이브니아의 소지품을 검사하러 갔던 하녀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반색하며 물었다.

16548826243499.jpg“뭐가 있었지?”

하녀들이 이브니아의 짐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셀비의 눈치를 살폈다.

16548826243499.jpg“아무것도…….”

셀비가 뭐라도 발견했기를 기대하는 눈치라, 그녀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마치 자신들의 탓인 양 주눅이 들어 있었다.

16548826243499.jpg“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순간, 햄프턴과 셀비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셀비는 안도하는 햄프턴을 못마땅하게 노려보고는, 손수 이브니아의 가방을 뒤엎었다.

16548826243499.jpg“제대로 잘 찾아본 거야? 그런 건 어딘가에 꽁꽁 숨겨 뒀을 거라고!”

16548826243499.jpg“가방뿐만 아니라 온 사방을 샅샅이 다 뒤져 봐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16548826243499.jpg“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대도!”

지나치게 반응하는 셀비의 태도에 놀란 하녀들이 애써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16548826243499.jpg“뭔가 훔치기 전에 들킨 게 틀림없어요. 어쨌든 주인님의 집무실에 함부로 들어갔으니 정황은 충분하니까…….”

하지만 셀비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햄프턴이 저렇게 이브니아를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면, 집무실에 들어간 일은 어떻게든 덮어버릴 터였다.

16548826243499.jpg‘하여튼 남자들이란! 여자가 조금만 예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니까!’

셀비는 자신이 지나치게 분노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그녀를 학대했던 아버지, 그로 인해 생겨났던 외모 강박과 열등감, 동네에서 가장 예뻤던 여자와 아버지의 불륜, 사창가에 팔려갔던 소녀들, 추문을 안고 도망쳤던 이브니아…….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였다.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불쾌감이 온몸에 들러붙었다. 셀비는 몸서리를 치다가, 그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다. 탁! 데구루루-. 셀비가 들고 있던 이브니아의 외투에서 값비싸 보이는 진주 팔찌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팔찌를 냉큼 집어 들고 사람들 앞에서 흔들었다.

16548826243499.jpg“이것 좀 봐! 내가 뭘 찾아냈는지!”

그건 사실 방금까지 차고 있던 셀비 본인의 팔찌였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엎드려 있던 이브니아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로선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 셀비의 손에 들려 있었다.

16548826243499.jpg“봐, 이브니아! 이게 네 물건이냐? 이렇게 낡은 외투나 입는 네가 이런 값비싼 물건을 샀다고? 분명 훔친 게지?”

이브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16548826243493.png“전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16548826243499.jpg“그럼 이게 네 물건이라는 말이야?”

보다 못한 햄프턴이 추궁하는 셀비를 진정시켰다.

16548826273748.png“하나 가지고는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주인님의 집무실에서 나온 물건도 아닌 것 같고. 제가 알기로 주인님은 그런 물건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셀비. 일단 진정하시고 더 조사를 해보는 게…….”

그런데 그때였다. 고용인들 틈에서 조용히 있던 한 어린 소녀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16548826243499.jpg“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사람들의 이목이 소녀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잔뜩 움츠러든 채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말했다.

16548826243499.jpg“며칠 전, 그로즈니 양이 계곡에서 구조됐던 날 그녀의 옷을 제가 세탁했었는데…… 거기에 분명 값비싸 보이는 펜던트가…….”

거짓으로 이브니아를 추궁하던 셀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흡사 전장에서 아군을 만난 병사의 표정이 그러할 것 같았다.

16548826243499.jpg“뭐라고? 그게 어디에 있지?”

16548826243499.jpg“앞치마 앞주머니……. 단추로 잠겨 있는 안쪽 주머니에 들어 있었어요.”

16548826243499.jpg“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이브니아는 소녀가 뭘 이야기하는지 눈치챘다. 아라드와 함께 동굴에 갇혔을 때, 거기서 발견한 펜던트를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것이다.

16548826243493.png‘맙소사.’

이브니아는 사색이 되었다. 과거에 그녀가 그것을 제 방에 보관하지 못하고 동굴에 보관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그 펜던트는 누가 봐도 그녀가 가질 수 없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래서 그때도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 그 동굴에 보관해뒀던 것이다.

16548826243493.png‘주머니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어.’

열을 앓다 깨어났을 때 이브니아는 침대 곁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제 옷이 잘 세탁된 걸 보고 사나가 했겠거니 생각했었다. 직후에 아라드가 들어와 정신을 빼놓는 바람에 펜던트에 관한 건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16548826243499.jpg“당장 이리 내!”

사색이 된 그녀의 표정을 본 셀비가 저항하는 이브니아를 붙잡고 기어코 펜던트를 찾아냈다. 셀비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햄프턴에게 펜던트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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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8826243499.jpg“이래도 더 조사해 볼 게 있겠는가?”

펜던트를 본 햄프턴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16548826273748.png“뜻대로 하십시오.”

셀비는 하녀들에게 날카롭게 지시했다.

16548826243499.jpg“가서 나무 궤를 가져와 이브니아를 가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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