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무법자 (81/118)

<81> 무법자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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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8839091948.jpg“……아무래도 마법 학회 쪽 사람들과 부딪힌 모양입니다.”

아라드는 이브니아에게 붙여두었던 기사가 보낸 전령의 보고를 들으며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16548839091951.png“그녀는 무사한가?”

16548839091948.jpg“예. 이브니아 양은 무사하시답니다. 압도적인 마력 차이로 어렵지 않게 그들을 쫓아버렸다고 합니다.”

16548839091951.png“압도적인……. 그렇군.”

걱정으로 일그러졌던 아라드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마법 학회의 표적이 된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당장은 이브니아가 다치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었다. 아라드는 지난날 이브니아가 리페르를 사용해 마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16548839091951.png‘그걸 이렇게 활용하다니.’

이브니아는 겉보기에 얌전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대범한 구석이 있었다. 간이 크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라넬리를 살리겠다고 겔렌지크에 돌아와 저택을 뒤지고 다녔던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런데 보고를 이어가던 전령의 입에서 더더욱 보통이 아닌 이야기가 나왔다.

16548839091948.jpg“같은 날, 세레나 에리트리아가 이브니아 양을 찾아왔었답니다.”

16548839091951.png“하, 감히.”

기가 막혔다. 아라드는 지금 세레나를 두고 헨리를 압박하는 중이었다. 최근 헨리가 세레나를 황궁으로 불러들였다는 말을 듣고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보는 중이었는데, 세레나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브니아를 찾아갔다니. 노여워하는 아라드의 눈치를 보며 전령이 말끝을 흐렸다.

16548839091948.jpg“그런데…….”

16548839091951.png“그런데?”

아라드의 싸늘한 재촉에 전령이 조심스레 보고했다.

16548839091948.jpg“무력으로 쫓아버리셨답니다.”

그 말에 아라드가 반응하기도 전에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보좌관 카셀이 입을 떡 벌렸다.

16548839091951.png“세레나 에리트리아를 무력으로 쫓아버렸단 말인가?”

16548839091948.jpg“예.”

뒷일을 생각하는 카셀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에리트리아 후작가는 권세 높은 가문이었다. 이 사실을 알면 에리트리아 후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카셀이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아라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걱정하는 카셀과 달리 아라드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아니, 심지어 피식 웃기까지 했다.

16548839091951.png“힘을 기르더니 무법자가 되었군.”

보고를 마친 전령을 밖으로 내보낸 카셀이 그렇게 여유로울 때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16548839091948.jpg“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마법 학회도, 에리트리아 후작도 가만있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이브니아 양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몸을 피신시키는 게…….”

16548839091951.png“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

아라드가 단호하게 카셀의 말을 끊어버렸다.

16548839091951.png“나도 가만있진 않을 거니까.”

세상이 이브니아에게 너무 가혹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라드가 세레나를 곧바로 재판에 세우지 않고 황제에게 찾아가 협박을 한 것은, 사실 이브니아의 신분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아르빌 남작 영애라는 신분을 사서 이브니아에게 주긴 했지만, 그게 거짓 신분이라는 건 금방 들통날 터였다. 평민을 조금 괴롭힌 것으로는 후작가의 적통인 세레나에게 유의미한 벌을 받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브니아의 신분을 상승시킨 후 재판을 여는 게 유리한데, 이브니아에겐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마법 학회를 통해 정식 마법사가 되는 것, 혹은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 하지만 전자는 아무리 그녀가 리페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로다이크인 딸이 있다는 사실이 수도에 퍼지는 바람에 마법 학회 쪽에서 기회조차 주려 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리고 후자는…….

16548839091951.png‘그녀를 다른 남자 옆에 세우는 건 내키지 않아.’

그렇다고 세레나와 공식적인 약혼 상태인 아라드가 이브니아와 가장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16548839091951.png‘설령 그게 가능했어도 이브니아가 싫어했겠지.’

아무리 이브니아가 제게 라넬리와의 만남을 허락해 주었다 한들, 그건 그저 그녀가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일 뿐 자신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닐 터였다. 지난 7년간 홀로 아팠을 그녀에게 용서를 바라기엔 너무 염치가 없었다. 아무리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어쨌든 그녀가 가장 괴로웠던 순간 그녀를 버린 것은 자신이었다. 그녀는 저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아라드는 확신했다. 저조차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녀가 자신을 용서하겠는가.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브니아를 신분 상승 시켜 세레나에게 큰 벌을 받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브니아의 목숨을 노린 세레나를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의 뒤를 봐주며 적반하장으로 이브니아의 안위를 가지고 저를 협박한 황제 역시 아라드는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또한, 이브니아를 표적 삼은 마법 학회에게 저희가 감히 누굴 건드리려 하는지 똑똑히 알게 해줄 생각이었다.

16548839091951.png[폐하께서 그녀의 가치를 알게 되신다면, 그녀를 고작 여자 하나라고 지칭하신 것을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그가 지난날 황제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래, 그녀에게 가혹했던 모든 이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제가 그러한 것처럼. 그게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이 될 수 있기를.

16548839091951.png“티아론 제국의 마법 협회장에게 연락해.”

아라드가 카셀에게 명령했다. 티아론 제국은 헨리 튜드가 다스리는 이곳, 라르비스 제국과 함께 대륙의 균형을 이루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였다. 카셀이 조금도 예상치 못한 아라드의 명령에 목을 뻣뻣하게 긴장시켰다.

16548839091948.jpg“무슨 생각이십니까.”

16548839091951.png“판을 키워야겠어.”

아라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16548839091951.png“이곳의 모두가 이해관계에 눈멀어 값진 보석을 선뜻 알아보지 못하니, 그 가치를 알아볼 만한 사람을 찾아야겠지.”

  *** 니오르의 연구실에선 근래 늘 그러했듯이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댄 채 심각한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16548839091948.jpg“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어. 뭐부터 들을래?”

니오르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이브니아에게 물었다.

16548839147823.png“좋은 소식부터요.”

이브니아는 거침없이 좋은 소식 쪽을 먼저 택했다.

16548839091948.jpg“리페르를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

16548839147823.png“……!”

니오르의 말에 이브니아의 안색이 밝아졌다. 로스모어 백작은 리페르를 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동생과 한 약속을 지키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아직 한 상단에서 리페르를 취급하고 있고, 최근 전국의 리페르 유통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니오르에게 말해준 것이다. 그 사실을 전달하자, 셰히르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물었다.

16548839091948.jpg“나쁜 소식은?”

16548839091948.jpg“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단에서 리페르를 시장에 풀려고 하지 않는대.”

일이 이렇게 쉽게 돌아갈 리 없지, 하고 중얼거린 셰히르가 조금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16548839091948.jpg“어째서지?”

16548839091948.jpg“모르겠어. 상단 측에서 답변을 거절했대. 가격을 몇 배로 쳐줘도 묵묵부답이라더라.”

셰히르가 허탈하다는 듯 소파에 몸을 푹 기댔다.

16548839091948.jpg“애초에 전혀 좋은 소식도 아니었잖아. 손에 넣을 수도 없는 거.”

니오르도 한숨을 내쉬며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16548839091948.jpg“그래도 우리 오빠가 애쓰고 있다니깐 또 모르잖아. 그나저나, 그때 늑대들에게 당한 사람들은 좀 어때?”

니오르의 물음에 이브니아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16548839147823.png“이상하게 광증이 가라앉질 않아요. 아직 병이 그리 깊지 않았다는 어린아이까지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이브니아가 말을 잇지 못하자, 셰히르가 나서서 이브니아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 주었다.

16548839091948.jpg“극심한 마나 폭주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돌연사하고 있어. 벌써 네 명째. 빨리 가라앉히지 못하면 나머지 사람들도 전부 죽겠지.”

늑대 가면을 쓴 이들이 인위적으로 마나를 휘저어놓은 사람들은 마나의 폭주 정도가 유난히 심했다. 심지어는 그 과격한 마나의 힘을 버티지 못한 리페르가 마나를 담자마자 분해되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 바람에 그나마도 물량이 부족한 리페르가 재활용되지도 못하고 사라져 더더욱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브니아는 늑대 가면을 쓴 이들에게 당한 사람들을 포기하고 그들에게 쓰이는 리페르를 더 많은 사람에게 써야 할지, 그래도 당장 죽어가는 이들부터 살려야 할지 취사선택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로다이크 마을은 지금 아수라장이었다. 심지어 다른 마을에까지 늑대 가면을 쓴 이들이 출몰하고 있었다. 이브니아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1654883917614.jpg“…….”

니오르와 셰히르가 묵묵히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에 빠진 이브니아의 눈치를 살폈다. 니오르는 이브니아의 분위기가 며칠 사이 엄청나게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16548839091948.jpg‘묘하게 변했어.’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이브니아에게는 초식동물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단단하고 야무진 것과 별개로, 빠르게 제 주제를 파악해 뒤로 물러나고 체념하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빠르게 사람들의 기분을 파악하고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행동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브니아는 그렇지 않았다.

16548839091948.jpg‘무서운걸.’

이브니아는 때때로 니오르와 셰히르가 겁을 먹을 정도로 무서운 눈빛을 띠게 되었다. 빨갛고 부피 큰 머리 모양새 때문에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니오르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이브니아가 니오르보다 더 존재감이 컸다. 게다가 이브니아는 이제 체념하지 않았다.

16548839147823.png“그 상단에서 리페르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 건가요?”

냉정한 얼굴을 하고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브니아가 물었다. 니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48839091948.jpg“그렇대. 창고에 많이 쌓여 있다는 것 같았어.”

이브니아가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는, 마치 함께 산책이라도 가지 않겠냐고 묻는 사람처럼 산뜻하게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16548839147823.png“저와 함께 리페르 훔치러 가주실 분?”

16548839091948.jpg“에엥?”

16548839091948.jpg“예……?”

니오르와 셰히르가 거북이처럼 고개를 쭉 뺐다.

16548839091948.jpg“뭘 하러 같이 가자고?”

16548839091948.jpg“진심입니까?”

16548839147823.png“진심이에요. 리페르를 훔치러 가지 않을래요?”

이브니아의 눈빛이 단호했다.

16548839147823.png“사람들을 살려야죠. 저대로 놔두면 다 죽을 텐데.”

니오르가 벌떡 일어나 소파 등받이로 기어 올라가며 이브니아와 거리를 벌렸다.

16548839091948.jpg“규모 있는 상단이야. 용병들과 사병들이 한둘이 아닐 거라고. 우리 셋으로 뭘 어쩌게? 장난해? 무리야, 무리.”

16548839147823.png“마법사들이 전장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하는지 들은 적이 있어요. 마법사 하나가 병사 몇 명을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다고. 실력 있는 마법사가 많을수록 전쟁에서 유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 마법사를 많이 양성하고 대우해 주는 거라고요.”

이브니아가 니오르를 가리켰다.

16548839147823.png“니오르 님은 마법 학회의 배지를 받으셨잖아요. 마법 학회에서 선호하는 주류 마법은 대부분 공격 마법이죠. 니오르 님은 그중에서도 인정받는 마법사시고요.”

니오르가 엄살을 부리는 걸 알고 있다는 투였다. 이브니아의 말처럼 니오르는 상당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16548839091948.jpg“하지만 나는 한 번도 누굴 공격하는 데 마법을 써본 적이 없어! 그냥 시험을 통과하느라 배웠을 뿐이야.”

급기야 소파 뒤로 넘어간 니오르가 등받이 위로 눈만 살짝 내밀고선 고개를 저었다. 이브니아는 그런 니오르를 내버려 둔 채 셰히르를 가리켰다.

16548839147823.png“셰히르의 환영 마법이 있으면 적절히 기습하고 아무도 모르게 도주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여러 번 해 봤잖아요.”

16548839091948.jpg“그야 그렇지만…….”

셰히르가 머뭇거리며 시선을 내렸다. 이브니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16548839147823.png“저는 실전에서 마법사 7명을 어렵지 않게 상대했어요. 귀족 가문의 기사들을 날려버린 적도 있고요.”

늑대 가면을 쓴 7명의 마법사를 처리한 것은 다른 두 사람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레나가 찾아왔다는 것은 몰랐던 일이라 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6548839091948.jpg“대체 언제?”

16548839091948.jpg“혼자 기사들을 상대했다고요? 심지어 날렸……?”

이브니아가 방긋 웃었다.

16548839147823.png“용병과 사병들 정도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니오르는 멍하게 이브니아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입으로 내뱉은 엄청난 말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청보랏빛 눈동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했다.

16548839091948.jpg“이브니아, 겁을 상실했네! 겁을 상실했어!”

이브니아는 제게 삿대질하는 니오르와 갈등하는 셰히르를 재촉했다.

16548839147823.png“어차피 우리는 위험한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는데, 적이 조금 더 늘어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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