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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고인물, 무림에 가다 (3) (3/481)

<3화> 고인물, 무림에 가다 (3)2020.11.10.

[으슥한 골목길에 입장하셨습니다.] [주의. 이곳에서는 불법적인 일이 이루어져도 다른 이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마을에서 제법 유명한 놈들답게, 길은 아주 제대로 찾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으슥한 골목길로 천화를 끌고 들어간 녀석들은 음흉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16549465240719.jpg“벗어.”

16549465240725.jpg“……뭐?”

그 말에 천화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그대로 베어버릴까 생각하던 찰나, 놈이 말을 덧붙였다.

16549465240719.jpg“목숨은 살려줄 테니 허리춤에 찬 그 검을 벗어놓으라고. 네 놈이 어떻게 그런 귀물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고로 물건은 주인을 제대로 만나야 빛을 발하는 법이지. 이 몸께서 제대로 사용해주실 테니, 순순히 풀어 놓으면 다리 하나 부러뜨리는 정도로 봐주마.”

16549465240725.jpg“아, 이거? 난 또…….”

얌전히 검을 넘겨도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겠다니? 이게 무슨 협상 방식일까 싶지만 법보다 주먹이, 칼이 더 가까운 무림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오는 대사였다. 아니, 그들의 말처럼 다리 하나를 잘라내는 것도 아니고 부러뜨리는 정도는 양호한 축에 속했다. 천화는 놈의 탐욕스러운 눈빛과 자신의 검을 번갈아보더니 그제야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임일 때야 누가 어떤 장비를 가지고 다니든 ‘부럽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거나 사냥터에 나갔을 때 뒤치기를 하고 빼앗을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기에 이런 시비도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그의 검이 어디 보통 검인가? 고금제일인 천화가 사용하던 천하의 명검이었다. 화려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였기에 그들 같은 건달들이 이 검의 가치를 약간이나마 알아보았다는 것이 살짝 놀라웠지만 곧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추가 옵션을 위해 검에 박아 넣은 몇 개의 보석 때문이겠지. 그것만 떼어다 팔아도 상당한 값어치가 나갈 테니, 놈들의 눈이 돌아간 것도 이해가 된다.

16549465240725.jpg‘이런 것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 건가?’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만약 이 검이 세상에 나간다면 큰 소란이 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몽땅 사라져버렸지만, 검이 아니라 그가 착용하고 있던 장비 중 어느 하나만 풀리더라도 거대한 혈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최상급의 물품들이니까. 실제 무신지로에서도 보물 지도인 장보도를 찾는 일이나 보검을 빼앗는 임무 따위가 있었지만, 수많은 피를 불러온 그 보물들조차 천화가 사용하던 것들에 비하면 크게 손색이 있을 정도였다.

16549465240725.jpg‘어쨌든 미리 알아서 다행이네.’

아직 제대로 무림인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들만 돌아다니는 시작 지점이기에 망정이지, 일류급의 무인만 되더라도 고작 레벨 2인 그에게서 무기를 탈취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었을 터였기에 천화는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하나뿐인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누군가 그 같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 말이다.

16549465240719.jpg“어서 내놔!”

천화가 잠시 생각에 잠겨 머뭇거리자 귀주삼랑, 아니 귀주삼견은 애가 닳았는지 다시 윽박을 질러댔다. 생각해 보면 그럴 것도 없이 덤비면 될 일이지만, 그들에게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 따위가 있는 듯싶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이지만 그런 보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혹시나 숨은 고수쯤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귀주삼견 처치][돌발 임무] 귀주삼견이 당신의 검을 빼앗으려 한다. 귀주삼견을 처치하고 당신의 귀중품을 사수하라. - 성공 조건 : 귀주삼견 처치 - 성공 보상 : 약간의 경험치, 귀주삼견의 전낭 - 실패 시 불이익 : 한쪽 다리 골절 때마침, 임무창이 나타났다. 실패 시 한쪽 다리가 골절된다는 정보에 천화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16549465240725.jpg‘얘들 생각보다 순진하네.’

그렇게 말하기는 했다지만 정말 한쪽 다리만 부러뜨리고 끝낸다니, 꽤나 양심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6549465240725.jpg“갖고 싶으면 네가 와야지?”

까딱 까딱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천화는 고작 숨은 고수 따위가 아니라 고금제일인의 칭호를 받은 적까지 있는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었다.

16549465240719.jpg“쳐라!! 사정 봐주지 마!!”

그 말에 분노한 귀주삼견이 일시에 들이닥쳤다. 진짜 고수가 이런 궁벽한 시골에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고, 셋이 덤비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 같은 일인지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16549465240725.jpg‘사용 무공은 역시…… 삼재검법인가?’

삼류도 되지 못하는, 무인이라는 이름조차 아까운 그들이 익힌 무공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장 저잣거리에 흔히 굴러다니는 삼재검법. 검술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검의 형을 잡아주는 정도로 쓰이는 그 기본공이 놈들에게서 펼쳐졌다.

16549465240725.jpg‘똑같다.’

그 순간, 천화의 눈빛이 반짝였다. 확인한 것이다. 무신지로에서의 삼재검법과 똑같다는 것을. 물론 삼재검법이 내공을 지니지 못한 시정잡배들도 펼칠 수 있는 기본공에 불과하다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어설프게 삼재검법을 익혔을 때 흔히 나타나는 약점과 실수들까지도.

16549465240719.jpg“흐아압!!!”

귀주삼견 중 첫째인 장일이 펼친 것은 태산압정. 태산을 찍누르는 웅장하고 장대한 기운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기술이다. 그가 만난 고수들 중에는 이 삼재검법을 독문무공처럼 사용하는 이도 있을 만큼, 제대로 사용하면 꽤 강력한 무공이지만 내공 한 줌 없는 이들이 사용할 때는 평범한 수직 베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16549465240725.jpg‘지금.’

천화는 그런 놈을 향해 마주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보폭을 넓혔다. 더 빠르게 발을 놀렸다. 놈의 검이 수직으로 떨어지기 직전, 미묘한 타이밍으로 쑥 달라붙은 것이다.

16549465240719.jpg“엇?!”

검을 떨칠 수도 없게 초근접거리에 들어와버린 천화의 행동에 놈이 당황했다. 휘두르고 있는 검을 급히 멈춰세워 보지만, 이미 천화는 어깨를 세워 놈의 명치를 들이받는 중이었다.

16549465240719.jpg“컥!”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몸의 중심이 무너졌다. 극심한 고통에 검마저 놓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16549465240719.jpg“형님!!”

16549465240719.jpg“이 자식이!!”

뒤늦게 둘째와 셋째인 장이와 장삼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러왔지만 맞아 줄 리 없었다. 이번에는 수평 베기인 횡소천군. 동작이 어설픈 탓에 검끝이 떨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더 위험해보였지만, 천화는 가뿐하게 몸을 숙여 그것들을 피해냈다. 앞으로 쑥 지나가는 둘을 향해 뛰어오르며, 둘의 머리통을 동시에 차버렸다.

16549465240719.jpg“으악!”

16549465240719.jpg“억!!”

쿠당탕- 자신있게 덤빈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검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셋을 모두 쓰러뜨린 천화는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16549465240719.jpg“어……?”

퍼억!! 그대로 발차기를 날려 간신히 정신을 차리던 중인 장일의 안면을 차버렸다. 다시 한 번 벌러덩 넘어가는 상체. 작고 하얀 파편 몇 개가 함께 튀어오르는 것이, 사정을 보지 않고 걷어찼음을 알 수 있었다. 무신지로가 손가락만 까딱거려 움직이는 PC게임이었다면 그 역시 잔뜩 얼어있었을지 모르지만,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게임이었던 덕에 이 정도 동작쯤이야 눈 감고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살인? 그 또한 제법 익숙했다. 오크, 코볼트 따위를 사냥하는 판타지 배경의 게임과 달리, 무림을 배경으로 하는 무신지로는 사람과 사람 간의 대결이 아주 흔한 것이었으니까.

16549465240719.jpg“사, 살려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16549465240719.jpg“집에 노모와 토끼 같은 자식이……!”

그렇게 장일이 완전히 무력화되자 남은 장이와 장삼은 전의를 상실했다. 싸울 의사가 없음을 보이겠다는 듯 무기도 던져 버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지문이 닳도록 싹싹 빌었다. 이미 천화가 그들의 상대가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돌발 임무 ‘귀주삼견 처치’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16549465240725.jpg‘오호?’

그때, 돌발 임무가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꼭 그들을 죽이지 않고도 임무가 완료된 것이다.

16549465240725.jpg‘마침 잘됐군.’

그들을 이용해 이 세계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려던 천화에게는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피를 뒤집어쓰면 또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16549465240725.jpg“벗어.”

때문에 천화는 자신의 검에 굳이 피를 묻히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16549465240719.jpg“옛? 아, 넵!!”

천화의 한마디에 놈들은 당황하면서도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꺼내놓았다. 임무 보상에 나왔던 전낭(돈 주머니)과 싸구려 검을 바닥에 놓는 것은 물론, 기절한 큰 형의 품까지 뒤져 한곳에 모아두었다. 그러나 천화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16549465240725.jpg“벗으라고. 입고 있는 것까지 전부.”

16549465240719.jpg“하지만…….”

16549465240725.jpg“아니면 내가 벗겨줄까?”

16549465240719.jpg“아, 아닙니다!!”

전낭과 검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가지까지 털어버린 것이다. 일단 한 벌을 구해 입고는 있지만, 활동을 하다보면 갈아입을 일이 종종 발생할 테니 여분을 챙겨두려는 것이다. 무림에서 옷자락이 잘려나가거나 피가 튀는 일은 흔하니까. 그렇게 알몸이 된 셋은 천화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혹시나 천화가 또 다른 것을 요구할까 두려운 눈치였다.

16549465240725.jpg‘이 정도면 당장은 괜찮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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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을 모두 소지품 창에 집어넣으려던 천화는 일단 행동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유저들에게야 익숙한 모습이겠지만 이들에게는 소지품 창을 이용하는 것이 괴이하게만 보일 테니 혼자 있을 때 챙기려는 것이다.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 그들에게 얻어낼 것이 더 남아 있기도 했고.

16549465240725.jpg“지금이 몇 년도, 아니 지금 연호가 어떻게 되지?”

16549465240719.jpg“연호라면…… 연무 13년입니다만…….”

연호는 쉽게 말해 서기 00년처럼 년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왕조에 따라 달라지는데, 연무 13년이라는 말을 들은 천화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16549465240725.jpg‘이거 설마…….’

게임 출시 때부터 무신지로를 플레이해 온 그에게 있어 연무 13년이라는 연호는 잊을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16549465240725.jpg“초기화라는 건가?”

16549465240719.jpg“옛?”

그것은 무신지로가 시작된 첫 해의 연호와 같았다. 때문에 떠올린 것은 초기화. 단순히 천화의 레벨이 1이 되었을 뿐이 아니라, 세계관의 시간 역시 초창기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연호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똑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정보가 가지는 의미는 무궁무진했다.

16549465240725.jpg“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너희에게 기회를 주지. 무림의 정세나 최근 일어난 사건, 그 외에 자질구레한 정보들까지.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말해봐.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다리 하나만 분지르는 것으로 끝내주마.”

16549465240719.jpg“가, 감사합니다.”

장삼은 거의 울먹이는 말투로 대답했지만 억울하다 이야기 할 수도 없었다. 그 말은 자신들이 천화에게 했던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고 이해를 했기에 둘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조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삼류도 되지 못하는 놈들인지라 뭔가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무신지로의 세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천화인 까닭에 대충 들어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이 게임이 출시되었던 그때와 완벽히 같은 시기라는 것을.

16549465240725.jpg‘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고, 행동 제약마저 풀려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16549465240725.jpg‘가능하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할 터였다.

16549465240725.jpg‘모든 기연을 독식하는 것도.’

무신지로에서 유명했던 유저들이 차지했던 기연들을 모조리 독식하는 것이. 이곳에 유저라고는 자신뿐이었으니, 그들이 공개했던 기연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독식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어디 그뿐인가? 기연은 유저만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NPC들이 획득한 기연 또한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기연을 통해 발생했던 임무들도 많았기 때문에 자칫 시나리오의 흐름이 뒤바뀌고, 몇몇 임무의 내용들이 바뀌거나 임무 자체가 삭제될 수도 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강해지면 그만이니까. 그 모든 변화와 변수를 뚫어낼 만큼 강대한 힘을 지녔다면 임무가 바뀌든, 세력구도가 바뀌든 아무 상관도 없을 터였다. 천화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16549465240725.jpg‘이거라면 가능하지. 10년이 아니라 5년, 아니 3년만 지나도…….’

그가 중요 분기 임무들을 수행하고 수련하며 고금제일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에는 총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접속 제한 시간도 없고 기연마저 독식할 수 있다면 그 기간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16549465240725.jpg‘그럼 뭐부터 해볼까?’

천화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주먹에 힘을 꽉 주었다.

16549465240719.jpg“사, 살살 부탁드립니다.”

16549465240725.jpg“……?!”

그 모습이 두려웠던 것일까?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던 장이와 장삼이 다소곳이 한 쪽 다리를 내밀었다. 더 이상 할 말이 떨어진 까닭에 이제 천화가 자신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놈들이 가녀린 여인처럼 한쪽 다리를 내민 그 모습에 천화가 흉흉하게 눈을 빛냈다. 내용이 마음에 들어 그냥 넘어가줄까도 생각했지만, 그 모습을 보니 두들겨 패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매를 부르는 모습이랄까.

16549465240725.jpg“오냐, 지금 당장 분질러주마.”

16549465240719.jpg“끄아악!!!!”

우두둑!! 그들에게 냅다 달려든 천화가 능숙한 솜씨로 다리를 부러뜨려 놓았다. 뼈에 타격을 주는 것쯤이야 그에게는 숨 쉬듯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16549465240719.jpg“커헉?!!”

아직까지 기절해있던 장일이 고통과 함께 억울한 눈으로 일어난 것도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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