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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기연 쇼핑 (3) (12/481)

<12화> 기연 쇼핑 (3)2020.12.01.

16549466349189.jpg[흑흑……. 그만, 그만해주세요…….]

16549466349194.jpg“이제 조용히 할 생각이 드냐?”

몇 번의 부딪힘이 있었을까. 혈마검이 구슬프게 떨리며 천화에게 사정했다. 이대로 계속 부딪히다가는 자신이 파괴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굴복한 것이다. 절세의 보검으로 꼽히는 혈마검이지만, 사실 검 자체의 예기와 강도만으로 보자면 그보다 뛰어난 검은 얼마든지 있었다. 혈마검이 최상위급의 검으로 꼽히는 이유는 검에 내장된 기능 때문이지, 순수한 검으로서의 위력 때문만은 아니니까.

16549466349189.jpg[부르실 때까지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제발, 그만…….]

  반면 천화의 애검인 무명검은 순수한 무기의 능력치에 모든 것이 집중된 자타공인 무신지로 최강의 검이었다. 혈마검과 여러 차례 전력으로 부딪혔음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 위력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을 주입하면 그 위력이 더욱 빛을 발하겠지만, 순수한 근력만으로 휘두르더라도 어지간한 명검은 가볍게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라고나 할까? 때문에 아직 지킬 힘이 부족한 지금은 소지품 창에 넣어 숨겨두고 있었는데, 혈마검과 단둘뿐인 상태라면 굳이 꺼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6549466349194.jpg“진작 그럴 것이지. 꼭 맞아야 말을 들어요.”

가볍게 녀석을 두들겨 참교육을 시켜주고, 다시 소지품 창에 넣어두었다. 이미 혈마검은 고분고분해진 상태였으니 필요하면 그때 다시 꺼내도 좋을 터였다.

16549466349194.jpg“근데 넌 어쩌다가 그렇게 삐뚤어졌냐? 원래 그런 용도도 아니었잖아? 혈마도 그렇고.”

이제 대화가 가능해지자 천화는 혀를 차며 녀석에게 물었다. 흔히 무림인들과 민초들은 혈마를 천마와 비견되는 사악한 인물로 묘사하지만, 고인물인 천화는 그에 얽힌 사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16549466349189.jpg[어? 혈마 아시는구나…….]

  대부분 혈마를 천하의 악인이자 살인귀로 알고 있지만, 사실 혈마는 도가 계열의 인물이었다. 사파도 아닌 정파 계열, 그중에서도 공명정대함으로 유명한 무당파처럼 도사이자 무인을 길러내는 문파의 인물인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혈마신공 역시 마찬가지. 원래는 선천진기를 바탕으로 타인 또는 동물의 생명력을 흡수하고 정화하는 심법을 사용했고, 그 때문에 남들보다 쉽고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남들보다 쉽고 편하게 내공을 쌓을 수 있다는 것.

16549466349194.jpg‘그게 문제였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무언가를 가졌다는 것.’

그것을 시샘한 누군가가 그가 사용하는 무공을 사술로 지목했고, 다른 누군가의 피를 통해 내공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는 것에서 사악한 마공으로 단정했다. 그 다음부터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을 뿐이다. 죽이지는 않겠다며 달려든 무림문파들은 온통 그의 무공을 빼앗을 생각뿐이었다.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한들 사지근맥을 자르고 단전을 폐하겠다고 했으니 그게 어디 살아도 산 것이겠나. 때문에 혈마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살기 위해 저항했을 뿐이다.

16549466349194.jpg‘그리고 강하다는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이 일어났고, 원하지 않더라도 내공의 증진이 일어났다. 인간의 피가 가장 많은 생명력을 담고 있었기에 그것을 흡수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고도 혈마는 동물의 피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흡수하며 무공을 키워왔다. 하지만 도주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겨룰 때마다 상대의 피를 볼 수밖에 없었고, 혈마는 부쩍부쩍 강해졌다. 결국, 의도치는 않았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어지간한 고수들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강해져버렸다. 결국 정파무림은 그를 사악한 마두로 지목했고, 그의 무공은 사악한 마공으로 둔갑했다. 정당방위였다고는 하나, 그것을 인정해줄 리가 없었다. 이후는 마두를 사냥해 이름값을 높이고 싶은 고수들이 그에게 도전했고, 줄줄이 패했다는 정도였다. 별 치사한 방법까지 동원해 그를 죽이려 들었지만 역으로 제 목숨만 달아났고, 혈마의 무공은 더욱 높아졌으며 혈마의 악명은 높아만 갔다는 것이다. 딱히 그가 무림을 일통하려 하거나, 특정 문파를 멸문시키기 위해 혈겁을 일으킨 것이 아님에도.

16549466349194.jpg‘그 뒤로 혈마의 무공을 이어받은 이들 역시 살육을 즐겼다고 알려졌지만, 그건 죽은 놈들의 문파에서 낸 소문이고.’

그 악명은 그가 죽은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혈마의 전인이 혈마의 명예 회복을 위해 나선 적도 있지만 한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결국 수많은 도전을 물리치던 와중에 후인이 내세웠던 불살(不殺)의 원칙이 깨어지면서 다시 후인 또한 악인으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정당한 대결에서 패배했다고 시인하기에는 명문정파들의 자존심과 이름값이 너무 높았으니까. 상대가 사술을 사용하는 마두로 만들어야 자신들이 정당하지 않은 대결에서 패배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기에, 누명을 씌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6549466349189.jpg[……어차피 혈마의 후인으로 낙인찍히면 척살을 당할 테니 힘이라도 키워야죠. 게다가 그런 긴박한 상황이 아니면 강호공적으로 낙인찍힐 무공을 익히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이미 모든 배경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천화는 가만히 혈마검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천하명검이긴 하지만 남을 상해할 목적이 아닌 제사용 검으로 만들어진 혈마검의 탄생설화부터, 어째서 놈이 마검처럼 굴었는지까지. 그렇게 털어놓자 혈마검도 꽤 후련한 눈치였지만 천화는 그 이상 녀석의 넋두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16549466349194.jpg“그래. 알겠으니까 이제 조용히 좀 하자?”

16549466349189.jpg[넵.]

  수다쟁이 녀석의 입을 다물게 만든 천화는 혈마검을 탈취한 본연의 목적에 집중했다. 츠츠츠츳- 가부좌를 틀고 혈마검을 가로로 눕혀 양 무릎에 닿게 얹어놓은 천화가 삼재심법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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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마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혈마심법이라 불리는 내공 운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천화는 굳이 다른 심법을 익히지 않았다. 삼재심법을 제외한 다른 심법들의 경우, 한번 익히고 나면 다른 심법을 익힐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심법을 새로 익히기 위해서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내공을 모두 버려야 하기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나 혈마심법은 완전히 단점을 보완하지 못해서 살기가 진하고 이따금씩 폭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익혔을 때 얻을 수 있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심법이었다. 익히는 순간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물론이었고.

16549466349189.jpg[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삼재심법보다는 혈마심법이 낫지 않습니까?]

16549466349189.jpg[이게 처음에는 티가 팍팍 나도 5성만 넘으면 혈마기를 감출 수가 있어요. 폐관 좀 하시다가 성취를 5성만 넘겨서 강호에 나가시면 티도 안 나고 일류 대접은 너끈히…….]

16549466349189.jpg[이거 사실 제가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3대 혈마가 정립한 부분이 있거든요? 이거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부작용을 없앨 수가…….]

  그렇게 천화가 삼재심법을 이용해 운기를 시작하자 혈마검이 슬그머니 지켜보다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혈마검의 주인이 삼재심법 따위나 익히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지는 것이다. 아무리 축기하는 내공의 정순함으로 보자면 초대 혈마조차 인정한 삼재심법이라지만 축기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16549466349194.jpg“후우. 너 계속 떠들 거냐?”

그 잔소리에 천화가 잠시 운기를 중단하고 경고를 주었다.

16549466349189.jpg[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제야 혈마검도 입을 다물었다. 츠츠츠츠츠츳- 그러나 혈마심법 같은 절대 무공에 비했을 때 답답한 것이지, 현재 천화의 축기 속도가 그렇게까지 느린 편은 아니었다. 이미 5년 내공을 얻어 축기 속도가 빨라진 것도 있었지만, 혈마검에 담긴 소위 ‘혈정’에서부터 내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혈마검이 머금은 피는 검에 새겨진 주술적 힘에 의해 정제가 되는데, 삼재심법이 그 힘의 일부를 빨아들이고 정제하여 순수한 기운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혈마기 특유의 살기는 사라지고 정순한 내공만이 남게 된다. 그래봤자 삼류 수준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축기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 힘을 모두 빨아들이고 정제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장 소지품 창에 식량도 넉넉히 챙겨왔기에 한동안 이곳에서 폐관수련을 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16549466349194.jpg‘천천히 가자, 천천히.’

그리고 이곳에는 그의 무공을 빠르게 성장시켜 줄 만한 기연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무신지로에서도 수많은 유저들이 나눠먹고도 계속해서 발견이 될 만큼 많은 숫자의 기연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으니까. [삼재심법(3성)의 숙련도가 0.3만큼 상승했습니다.] [삼재심법(3성)이 삼재심법(4성)으로 성장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천화는 삼재심법으로 내공을 쌓으며 천천히 힘을 회복해갔다. 전성기 때와 비교하자면 재채기만 해도 죽어나갈 법한 미약하기 없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느려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차피 무공이야 어떤 계기를 맞이하면 급성장을 하게 될 테니까. @

16549466349194.jpg“어디보자, 여기는 뭐가 있으려나…….”

천화가 폐관을 시작한 지 일주일. 아직도 밖에서는 혈마의 비급을 찾고 차지하려는 무림인들의 혈투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 천화는 소지품 창에 챙겨온 물건들로 배불리 먹고 편안히 휴식하며 수련을 거듭했다. 삼재심법을 이용해 혈정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 이외에도 잠시 풀어두었던 모래주머니를 다시 차고 수련하며 근력, 민첩, 체력도 강화했고, 틈틈이 인근의 동굴들을 돌아다니며 기연 쇼핑도 시작했다. 물론 건질 것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무공을 직접 익힐 것은 아니었기에 챙길 것이라고는 그들이 남긴 병장기나 영약 따위가 전부였는데, 병장기는 하나씩 가지고 있어도 영약을 남겨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인을 위한 안배로 영약을 남겨두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상처를 입고 이곳까지 도망쳐왔거나 복수를 위해 폐관수련을 하던 중 주화입마 따위를 당해 죽은 경우들이었기에 치료, 내공 증진, 혹은 배가 고파서 제가 먹어치운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천화도 특별히 기대를 하고 동굴들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영약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고, 제 복수를 맡기며 비급을 남긴 이들도 있었으며 특이한 독문병기를 남긴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16549466349194.jpg“오, 이건 좀 쓸 만하겠네.”

그것들은 모조리 천화의 소지품 창으로 들어갔다. 복수를 위한 극독 한 병, 특수 제작된 병기와 암기. 그리고 수많은 무공 비급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적은 쪽지들이 그를 맞이했다. [비급 전달][특수 임무] 섬전검 왕충의 유언에 따라 그의 독문무공 비급을 가문에 전달하라. - 성공 조건 : 왕호검문에 섬전검 왕충의 비급 전달 - 성공 보상 : 대량의 경험치, 금자 3냥, 왕호검문과의 우호도 대폭 증가 [복수혈전(귀영칠살)][특수 임무] 호랑검 말호를 대신하여 그의 무공으로 귀영칠살 우문현에게 복수하라. - 성공 조건 : 호랑검법으로 귀영칠살 우문현처치 - 성공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무공 전승(천왕권)][특수 임무] 천왕권 우경은 자신의 무공이 여기서 사장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비급을 남겼다. 그의 무공을 익혀 사장되지 않도록 전승토록 하자. - 성공 조건 : 천왕권 습득 - 성공 보상 : 보통의 경험치 - 특수 보상 : 해당 무공으로 일류 이상 달성 시 추가 경험치, 해당 무공으로 제자를 거둘 시 추가 경험치 덕분에 텅 비어있던 천화의 임무창이 가득 찼다. 무공을 잇거나, 대신 복수를 하거나, 해당 비급을 사문으로 가져다주는 것들. 이미 죽은 이들의 부탁들인지라 경험치 이외의 보상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들의 비급을 가져다주면 해당 사문에서 보상을 주기도 한다지만, 이미 약초꾼 노인을 통해 임무창에 적힌 보상조차 제대로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이다.

16549466349194.jpg“임무 삭제, 임무 삭제, 이건 남겨 두고, 이건 삭제…….”

천화는 그 임무들을 확인하고 대부분 삭제했다. 당장 완수해도 별다른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고작해야 일류 이하의 무공을 가지고 인연을 이으라느니 복수를 해달라느니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쓸 만한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구파일방까지는 아니지만 그대로 제법 지역에서는 이름을 알아주는 대문파의 고수들의 물건 등을 전달하는 임무와, 꼭 해당 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복수만 하면 완수할 수 있는 임무들은 그대로 두었다. 꼭 완수할 필요는 없지만 겸사겸사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도 나쁠 것 없지 않겠나? 특히 복수 대상 중에는 정파에 소속되어 있어 적으로 돌리기 애매한 이들도 있었지만 명백히 사파로 분류되는 이들도 있었기에,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진행해 보아도 나쁠 것 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천화는 임무도 쇼핑하듯 선별하여 챙겨두었다.

16549466349194.jpg“오, 이것도 있었군.”

반짝 반짝 그렇게 동굴을 돌며 기연을 수집하는 천화는 그들이 남긴 것들 이외에 또 다른 이득을 챙겼다. 바로 영초들. 풍부한 지맥의 힘이 흐르고 있는 덕분에 동굴 안과 밖에서는 제법 희귀한 영초들이 자라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약초 채집 기술을 획득한 덕분에 모르고 지나치지 않도록 잘 표시가 되었다.

16549466379026.jpg“캬학!!”

서걱

16549466349189.jpg[에이, 이놈은 피 맛이 영 별로네요.]

  영초를 지키는 영물들의 피와 시체도 수집 대상 중 하나였다. 개중에는 내단을 가진 놈들도 있었고, 내단이 없더라도 강한 기운을 품어 덩치가 커다란 놈들도 있었지만, 혈마검을 휘두르는 천화의 상대는 아니다. 아주 대단한 영물이나 영초가 있던 것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런 놈들을 베어낼 때마다 혈마검이 놈들의 피를 쪽쪽 빨아 흡수한 뒤,천화가 운기조식을 할 때마다 돌려주니 천화의 내공이 또 한 번 급성장할 수 있었다. 당장 그렇게 모은 영초와 내단들을 흡수할 수는 없었지만 천화는 차곡차곡 강해질 준비를 해나갔다.

16549466349194.jpg“응?”

바스락 그렇게 몇 개나 되는 동굴을 더 돌았을까. 이번에 얻은 것들을 제 것으로 취하기 위해 다시 거처로 돌아온 천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도 없어야 할 자신의 거처에서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들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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