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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살려는 드릴게 (3) (34/481)

<34화> 살려는 드릴게 (3)2021.01.21.

16549469786847.jpg“으하아암~.”

다음 날 아침, 천화는 숙면을 취하고 가뿐한 몸으로 일어났다. 설영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다행히 무림인은 운기조식을 통해 어느 정도 피로를 날릴 수 있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앞으로가 문제일 뿐이다. 위곡현까지는 걸어서 약 이틀 거리. 그동안 흑월문에서 두 사람을 습격해올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어제의 살수들이 그 시작이었고.

16549469786847.jpg‘세 놈 정도인가?’

당장 그들이 아침을 먹기 위해 자리잡은 객잔 1층만 하더라도 그런 놈들이 셋이나 있었다. 후르릅. [산공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보유한 내공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일각 동안 내공이 추가로 모이지 않습니다.]

16549469786847.jpg“산공독이라…….”

16549469786861.jpg“뭐?!”

심지어 이번에는 작정을 했는지 음식에도 약을 탔다. 섭취한 대상이 일정 시간 동안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기운을 흩어버리는 산공독이 죽에 섞여 나온 것이다. 그 말에 아직 죽을 먹지 않은 설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며 주변을 살피었다.

16549469786847.jpg“이게 또 먹다 보면 별미이긴 한데.”

촵 촵 촵. 그러나 정작 천화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마저 죽을 떠먹었다. 그 순간에도 천화의 단전에서는 내공이 흩어지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고작해야 삼류 수준의 내공인 데다 그에게는 혈마검도 있는데. 게다가 몸에 축적되는 것도 아니니 이왕 먹은 것, 마저 배를 채운 것이다. 산공독은 그 특이한 효능을 내기 위해 티가 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또 고인물들에게는 별미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니 굳이 알림창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천화가 모를 수 없는 맛이었다. 채앵-! 그 평온한 모습과 달리 주변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설영까지 마저 한술 뜨기를 기다리던 흑월문의 인원들이 각자 무기를 빼어든 것이다. 검을 든 자도 있지만, 산공독을 탄 놈인지 독을 발라 번들거리는 녹빛 비도를 만지작거리는 놈도 있었다.

16549469786847.jpg“혼자 괜찮겠어?”

16549469786861.jpg“괜찮아. 하지만 너는…….”

그들을 돌아보며 천화가 묻자 설영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눈길을 주었다. 상대하는 것은 자신 있지만, 천화까지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한 놈이 발목을 붙들고 나머지 둘이 천화에게 들이닥친다면? 솔직히 피해 없이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저들 중에는 무려 일류급의 강자도 있었으니까.

16549469786847.jpg“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16549469786861.jpg“어휴. 말을 말지. 아무튼 어떻게든 버텨.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까.”

타닷! 먼저 검을 휘둘러 간 것은 설영의 쪽이었다. 혈마검법이 아닌 원류검법. 그 자체도 꽤나 괜찮은 무공인 데다 원류검법은 사용자가 장악하는 공간의 범위가 큰 탓에 동시에 여럿을 상대하기 수월한 까닭이다. 물론 단숨에 제압하기 위해서는 혈마검법을 꺼내는 것이 맞겠지만,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혈마신공 상의 초식을 꺼내는 것은 부담이 있었다. 천화가 저토록 자신 있어 하니 믿어보는 것이기도 했고.

16549469786847.jpg“재미있네.”

달려드는 설영을 상대로 둘이 함께 움직였다. 천화와 설영의 무위 차이가 극명하니, 설영만 잠시 잡아둘 수 있다면 천화를 쓰러뜨리고 호랑을 빼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 점해진 혈도만 풀어내더라도 충분했다. 호랑이 몸을 움직일 수만 있어도 삼류 무인인 데다 산공독까지 시원하게 들이켠 천화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을 테고, 남은 한 명까지 가세한다면 삼대일로 설영을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인 것이다. 쐐애액- 검으로 변화를 일으키며 달려드는 상대를 보며 천화는 잔뜩 근육에 힘을 모았다. 방어를 위해서. 허나 천화의 팔에 들린 것은 혈마검이 아니었다.

16549469786847.jpg“가라, 프렌드 실드!!”

천화가 방패처럼 휘두른 것은 다름 아닌 마비된 호랑의 몸뚱아리였다. 엄밀히 말하면 친구는 아니지만, 뭐 어때? 어깨도 빌려주고, 부축도 해주고. 어?

16549469805726.jpg“헛?!”

그럴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흉수가 다급히 검을 회수했다. 단숨에 목숨을 끊어놓을 작정이었는지 검기까지 피워올린 상태였기에, 내상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울컥 속에서 올라오는 한 움큼의 피를 입가에 흘리며 몸을 날리는 것에 맞춰 천화 역시 놈에게 나아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호랑의 몸뚱아리를 무기 삼아 휘두르며 압박해나가기 시작했다.

16549469805726.jpg“이 빌어먹을 자식이 감히 누구를!”

덕분에 상대는 분통을 터트렸지만, 마땅히 손을 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일류 고수쯤 된다면 삼류밖에 되지 않는 상대가 무슨 짓을 하든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황이 상황인데다 천화의 보법이 워낙 자유분방한 까닭에 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16549469805726.jpg“문주님, 죄송합니다!”

이대로 끌려다녀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상대도 그렇게 판단을 했는지 눈빛에서 살광이 뿜어졌다. 설령 호랑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저 빌어먹을 놈을 제압하고 말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아니, 갈기갈기 찢어죽이지 않는다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16549469786847.jpg“너, 인망이 별로 없구나?”

그 각오를 읽어냈음에도 천화의 표정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마침 호랑의 거구를 내공도 없이 휘두르느라 팔이 아프던 차였기에, 잘됐다는 듯 혀를 차며 마지막으로 크게 놈을 휘둘렀다. 부웅! 크게 회전하는 호랑의 몸뚱아리였지만 상대는 보법을 밟아 그것을 피해냈다. 대신, 천화의 등 뒤를 노렸다.

16549469786847.jpg“신병 받아라!”

휘익! 하지만 그 또한 천화의 예상 범주 안이었다. 천화는 호랑을 휘돌려 그대로 적에게 던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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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긴 하지만 상관없다. 적은 호랑을 받아내기 위해 다시 내력을 회수했고, 동작 또한 제한되고 말았으니까.

16549469786847.jpg“그럼 나도 찔러도 되지?”

그 틈에 천화가 들이닥쳤다. 혈마기를 피워 올린 혈마검으로 호랑과 흉수의 몸뚱아리를 함께 찔러갔다. 까앙!! 흉수가 호랑을 안아든 채로 검을 휘둘렀다. 어렵게 유지하던 검기가 혈마검을 잘라낼 듯 휘둘렀으나 어림없는 일이다. 오히려 놈의 몸이 튕겨나가버렸다.

16549469805726.jpg“쿨럭!”

같은 검기라 해도 체급 차이라는 것이 있고, 다시금 속이 진탕되며 특성의 차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상대가 불완전하게 끌어올린 검기는 이미 온전한 형태를 갖춘 혈마기를 넘어설 수 없었다. 더구나 상대의 내부를 진탕시키는 지저분한 특성을 지녔으니까.

16549469805726.jpg[아니, 주인님. 지저분하다는 건 좀…….]

16549469786847.jpg‘맞잖아.’

16549469805726.jpg[틀린 건 아니지만 표현이……. 크흠.]

16549469786847.jpg“오?”

타닷탓 내장이 꼬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상대는 천화와 거리를 벌리며 제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호랑의 막힌 혈도를 뚫어내는 것. 천화가 심어둔 내공을 흩어버리고, 호랑에게 몸의 자유를 찾아주려는 것이다.

16549469805726.jpg“크아아아아아아악!!!!!”

16549469786847.jpg“내가 말했잖아. 허튼 짓하지 말라고.”

허나 될 리가 없었다. 천화가 펼친 점혈법은 오직 그만이 풀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오래 방치하면 자연적으로 해소가 되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 내공을 불어넣어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럴 리도 없었고. 때문에 호랑은 몸의 자유를 되찾기는커녕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는 감각은 아무리 무공을 수련한 무림인들이라도 쉬이 버티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종종 살수들을 고문하는 방법으로도 써먹던 것이니, 효과야 이미 입증된 지 오래였다.

16549469805726.jpg“놈! 문주님께 무슨 짓을 한 거냐!!”

16549469786847.jpg“무슨 짓을 한 건 너겠지.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벌집을 쑤셔? 쯧!”

이렇게 되자 상대도 크게 당황했다. 점혈을 풀었을 뿐인데 이처럼 고통스러워하다니? 자신이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비명을 지르며 호랑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해하며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두 가지다. 천화와 설영을 죽이고 호랑을 데려가 방법을 찾아보거나, 어쩌면 유일한 해혈법을 알고 있는 천화가 직접 해혈을 하도록 만들거나. 어느 쪽이 좋은 방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천화를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16549469805726.jpg“해혈을 하는 건 손가락 하나만 남겨도 문제없겠지!”

자신의 검기를 천화가 멀쩡히 받아냈다는 사실 따위는 잊어버렸는지, 흉수는 호랑을 남겨두고 검을 떨쳐 천화에게 달려들었다.

16549469786847.jpg“쯧쯧! 요즘 것들은 학습 능력이 없어요. 라떼는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막 덤비고 그러면 어? 대가리 박고 1km씩 끌려다니고 그랬어!”

정작 천화는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하며 가볍게 혈마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16549469786847.jpg‘어디보자, 이게 흑성검이었던가?’

아까운 혈마검을 쓸 것도 없었다. 혈마기를 사용할수록 혈정이 소모되니까. 이전의 싸움들로 약간의 피를 흡수하고 힘을 회복하긴 했지만, 만약을 대비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놈들에게까지 허비하기에는 아까웠다.

16549469786847.jpg‘여기서 반보만 이동하고, 45도 각도로 찌르기. 쓸데없이 마지막에 환검을 펼치려다 빈틈을 보이다니, 사파놈들답게 참 멍청한 무공이라니까.’

16549469805726.jpg“?!”

푸욱! 놈의 검기는 매서웠지만 맞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16549469786847.jpg‘이미 알고 있는 무공, 알고 있는 초식인데 맞아주는 것도 이상하지!’

놈이 사용하는 무공과 초식, 파훼법까지 모조리 꿰뚫고 있는 천화였기에 가볍게 몸을 틀어 근력으로 검을 찔러넣는 것만으로 놈이 심장을 꿰뚫어낼 수 있었다. 방심을 하지 않고,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면 어떻게든 저항을 해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불행히도 둘 모두 아니었던 탓에 그대로 절명해버리고 만 것이다.

16549469786847.jpg“아이고, 삭신이야.”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듯 쓰러진 놈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천화가 앓는 소리를 냈다. 내공도 없이 근력으로만 움직여댄 탓에 온 몸이 삐걱거리는 것이다. 산공독이 해소된 뒤 운기조식 한 번 하면 괜찮아지겠지만, 당장은 제법 힘들었기에 어깨를 두드리며 호랑에게 다가갔다. 저번의 각성 덕분인지 이대로라면 설영도 무난하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16549469786847.jpg“저쪽도 곧 끝날 것 같은데, 우린 그사이에 이야기 좀 할까?”

사악하게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리는 천화의 모습에, 겨우 통증이 가시던 호랑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16549469805726.jpg“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보셨잖습니까, 저 미친놈이 저까지 찌르려고 했던 거!”

16549469786847.jpg“그래서?”

16549469805726.jpg“……예?”

16549469786847.jpg“그래서 뭐 달라지는 게 있냐? 어쨌든 널 구하러 온 놈들인데 내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해? 그냥 이럴 바에는 널 죽여서 데려가는 게…….”

상황 파악을 마친 호랑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통할 리가 없는 말이다. 어쨌든 그를 구하려는 노력이었고, 실제 그가 칼에 찔렸건 목이 따였건 천화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역시 귀찮다는 듯 천화가 혈마검을 들어올리자 호랑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16549469805726.jpg“드리겠습니다!”

16549469786847.jpg“응?”

16549469805726.jpg“절 살려주시면, 아니 놓아주시면 금자 10냥, 아니 20냥을 드리겠습니다.”

천화를 상대로 협상을 시도한 것이다. 돈을 밝히는 것을 보았으니,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해본 것이다.

16549469786847.jpg“흐음, 금자 20냥이라…….”

16549469805726.jpg“제가 이래봬도 꽤 큰 문파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를 풀어주시면 반드시 금자 20냥을 가져다……. 아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제가 비상금을 숨겨놓은 곳이 있습니다. 문파까지 갈 것도 없이 그리로 가서…….”

천화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호랑은 점소이 입을 털어댔다. 조금만 더 꼬드기면 넘어올 것 같았기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이 살랑거리며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흑월문으로 돌아가면, 점혈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즉시 천화의 목을 따버리리라 다짐하면서.

16549469786847.jpg“좋아.”

마침내, 희망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16549469786847.jpg“살려는 드릴게. 자, 그래서 비상금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지! 당장이라도 점혈을 풀어줄 것처럼 흥미를 보이던 천화는, 호랑이 하는 말을 가만히 다 듣고 난 뒤 생글 미소를 지었다. 애초부터 그가 요구한 건 살려달라는 것 아니었나? 물론 비상금이 숨겨진 장소를 직접 찾는 건 번거로운 일이지만, 착한 내가 그 정도 귀찮음은 감수해주지 뭐! 자신의 친절함에 스스로 감탄하는 천화의 미소에 호랑이 절망했다.

16549469786861.jpg“후우! 천화. 괜찮아?”

때마침 설영도 자신이 상대하던 상대 둘을 모두 처치했다. 한 명은 일류 무인이었지만 독과 암기를 사용하던 녀석은 이류에 불과했기에 제법 빠르게 정리할 수 있던 것이다.

16549469786861.jpg“응? 얘는 표정이 왜 이래?”

16549469786847.jpg“글쎄? 살려주겠다니까 기뻐서 그런 게 아닐까~?”

돌아온 설영이 기괴해진 호랑의 표정에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그저 자신을 구하러온 수하들이 실패했다는 것에 실망한 것쯤으로 넘기며 다시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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