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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고금제일의 문지기 (1) (35/481)

<35화> 고금제일의 문지기 (1)2021.01.24.

산공독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천화는 호랑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비상금을 숨겨둔 위치를 전해들었다. 물론 설영에게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천화와 호랑의 거래이니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대신, 큰돈을 쾌척해준 호랑을 위해 한 가지 배려를 해주었다. 바로 말을 한 필 구입한 것이다. 말은 아무리 비루먹은 놈이라도 값이 제법 나갔기에 설영을 처음 만났을 때 탔던 놈은 얼른 다시 되팔고 말았지만, 이번 비무행 등을 통해 꽤 많은 돈을 모았기에 큰 맘 먹고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구입한 것이다. 물론 말 한 마리에 천화와 호랑, 설영까지 셋이 모두 탈 수는 없기에 설영도 따로 한 마리를 구입했다. 덕분에 비무행으로 벌어들인 돈이 상당 부분 소모되었지만, 호랑을 넘기고 현상금을 받을 것까지 감안해 투자를 한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봤자 흑월문의 습격만 거듭될 테고, 이후 이동을 함에 있어서 말 한 필쯤은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였으니까.

16549469916346.jpg“으억! 억! 악!”

16549469916355.jpg“시끄러, 임마.”

그렇게 말 위에 안장처럼 걸쳐진 호랑은 말이 뛸 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들썩거렸다. 차라리 천화가 들쳐메었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완충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이 덜렁거리니 이러다 유가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장이 파열되어 죽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16549469916355.jpg“왜, 균형 맞게 등짝도 때려줄까?”

16549469916346.jpg“아, 아닙니다.”

그 괴이한 신음소리도 천화의 몇 마디에 곧 멈추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유가장이 있는 위곡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작은 사당이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일종의 가묘였기에 어지간한 이들은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누가 사파의 인물이 아니랄까 봐, 호랑은 그 점을 이용해 이곳에 자신의 비상금을 감추어둔 것이다.

16549469916355.jpg“끙차!”

녀석이 말한 대로 묵직한 단상을 힘을 주어 밀었다. 허나 천화의 힘으로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16549469916355.jpg“제길, 드럽게 무겁네. 대체 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16549469916346.jpg“어, 그거 저희 부모님이 만드신 건데요.”

16549469916355.jpg“여기가 관제묘였나? 신력이 장군감이셨는걸~?”

천화가 탈룰라 급의 태세전환을 보여주며 더욱 힘을 가하자 드디어 단상이 밀려나갔다. 그 아래로 작은 구덩이가 하나 나타났다.

16549469916355.jpg“오호?”

구덩이 안에 들어있는 건 금자와 은자로 가득 찬 전낭뿐이 아니었다. 단순히 비상금만 감춰두던 곳이 아니라 개인 창고쯤 되었는지, 몇 가지 다른 물품들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16549469916355.jpg“이건 뭐지?”

16549469916346.jpg“그거요? 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16549469916355.jpg“이게 공기야? 아무것도 아니게?”

그중 하나, 여러 개의 작은 상자 중 하나를 가리키자 호랑이 슬쩍 눈알을 굴렸다. 대답을 회피하는 듯하다가, 마지못해 답변을 내놓았다.

16549469916346.jpg“약(藥)입니다.”

16549469916355.jpg“무슨 약?”

16549469916346.jpg“영약……까지는 아니고, 그냥 요상단인데 잘하면 약간 추가적인 내공을 얻을 수도 있긴 하죠.”

16549469916355.jpg“오호, 그래?”

순간 천화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약간이라고는 하지만 추가적인 내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개이득이 아닌가? 그것도 공짜로! 아니, 내공을 얻을 수 없다 해도 마찬가지다. 내상을 입었을 때 기혈을 진정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요상단이었으니,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무림인이라면 요상단 몇 개쯤은 상비약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빈털터리로 시작한 천화와 추격전을 펼치느라 가진 것을 몽땅 잃어버린 설영이야 단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16549469916355.jpg“그럼 저건?”

16549469916346.jpg“그건…… 독약입니다.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니지만요.”

16549469916355.jpg“저건?”

16549469916346.jpg“해약입니다.”

그 외에도 값이 제법 나가 보이는 귀금속과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그 세 가지였다. 일단 주머니부터 챙기고.

16549469916355.jpg“아참, 아까 배가 아프다고 했지? 기분이다. 내가 입에 넣어줄게!”

16549469916346.jpg“예?! 아,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천화는 그중 요상단이 든 상자를 열어 한 알을 호랑의 입에 집어넣었다. 턱을 꽉 잡은 상태였기에 호랑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삼켰고, 곧 표정이 까맣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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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변 유도제][일반] 복통과 함께 배변을 급속도로 유발시키는 약. 약간의 운기 방해 효과를 가지지만 변비 치료에 특효가 있다.

16549469916355.jpg‘어디, 첫 판부터 장난질이야? 뒈질라고.’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유저인 그에게는 소유권이 넘어온 대상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설명창이 떴으니까. 덕분에 호랑이 말한 것과 반대로, 요상단이라 했던 것은 독약이고 독약이라 했던 것은 요상단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 수 있었다.

16549469916355.jpg“어때, 속이 좀 편해지나?”

16549469916346.jpg“해약, 해약을……!”

저 생글거리는 사악한 미소를 보자마자 호랑은 알아차렸다. 이놈은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었다! 각각 주머니며 나무 상자 따위에 담겨 향을 맡을 수도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삼킨 독약은 말한 것처럼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지만 지독하고 추잡한 놈이었으니까. 기본적인 효능은 내공의 이동을 방해하는 것이었지만, 그보다 큰 역할은 바로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일단 먹여놓으면, 승부에서는 확실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나름의 필살 비약인 것이다.

16549469916355.jpg“뭐라고? 주머니가 가벼워서 잘 안 들리는데~?”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독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서 티도 잘 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환단의 형태가 아니라 음식이나 음료에 타 넣어도 맛이 조금 이상할 뿐, 운기를 통해 제대로 점검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중요한 결투 때마다 사용하던 것이다. 배가 꾸룩거리고 괄약근에 힘을 바짝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엉덩이를 뒤로 빼느라 제대로 자세도 잡기 힘들고, 초식에도 힘이 제대로 전해지기 어려우니까. 상대도 똥싸개라는 별호를 얻기 싫다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16549469916346.jpg“다, 다 가지십시오. 그러니 제발 해약만…….”

그런 의미에서 호랑에게도 지금은 위기였다. 더구나 그는 지금 마혈을 잡혀 몸이 마비가 된 상황이 아니던가? 괄약근에 힘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고, 만약 말이라도 탄다면 배에 자극이 더해져 금방이라도 구린내가 주변에 퍼져나갈 수 있었다. 만약 수하들이 자신을 구하러 왔을 때, 똥을 지리고 있다면?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올린 위엄은 똥통에 처박힐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건 수하들이 성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16549469916355.jpg“흐음,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사악한 미소를 지은 천화가 해약을 꺼내 호랑의 입에 물려주었다. 해약이 바로 통하며 배변 유도제의 효능을 중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바지에 똥을 지려버리면 자신 역시 데리고 다니기 껄끄러워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굳이 장난을 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재빨리 손을 놀려 구덩이 안의 물건들을 소지품 창에 담기 시작했다.

16549469916355.jpg“어?”

그러다, 바삐 움직이던 천화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 구덩이 바닥에 깔려있던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16549469916355.jpg‘이게 여기서 왜 나와?’

그것은 얇은 장갑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얇고 허름한, 별다른 특징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그런 장갑. 허나, 천화는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기도 했고. [비영투][유일] 인영비주 박허가 사용하던 수투. 천잠사를 꼬아 만들었기에 검기가 아닌 공격에 베이지 않고, 내공을 주입하면 접착력이 생기는 특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 방어력 : 580 - 내구력 : 87,381 / 100,000 비영투! 그것은 인영비주라 불리던 전대의 고수가 사용하던 수투였다. 무려 유일 등급의! 쉽게 말해 장갑이었지만 빛깔 자체가 투명했기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거나 얼핏 보면 맨손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쓸모는 있다. 수공을 펼치는 이들에게도 훌륭하지만 내공을 주입하면 접착력이 생기는 기능은,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무기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고작 호랑의 개인 창고에 처박혀 있는 이유는 그 효과가 애매하기 때문일 터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오른 무인이라면 무기를 놓치는 일이 전혀 없다고 보아도 좋았고, 맨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낼 일도 거의 없었으니까. 무신지로에서는 일반 RPG 게임에서처럼 장비를 착용한다고 몸 전체의 방어력이 같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려두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16549469916355.jpg‘……라고 생각하기 쉽겠지.’

그러나 천화는 알고 있었다. 이 비영투의 제대로 된 활용법을. 그 가치를.

16549469916355.jpg‘완성되면 재미난 짓을 할 수 있는 놈이니까.’

무려 유일 등급씩이나 되지만,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16549469916346.jpg“하아아아아아…….”

그사이, 호랑이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비영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일까? 구덩이가 텅 빈 것을 확인했다면 그것을 천화가 챙겼다는 것도 알아차렸을 텐데 딱히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거나. 후자의 경우, 일단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추격하여 빼앗을 자신이 있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애매했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빠져본다면 천화와 설영은 각각 삼류와 일류 무인에 불과했으니까. 흑월문이라는, 본인을 포함에 일류 고수만 일곱을 보유한 제법 큰 규모의 문파를 이끌고 있는 호랑이 처리하지 못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16549469916355.jpg‘아니지, 벌써 둘이 줄긴 했으니까. 이제 다섯인가?’

게다가 흑월문에는 동맹도 있었고, 형제 문파 격인 흑천문도 있었다.

16549469916355.jpg‘뭐 어때. 내 손에 들어왔으면 끝이지!’

16549469916355.jpg“끝났어? 대체 뭘……. 윽! 이건 또 무슨 냄새야?”

슬쩍 호랑의 반응을 살피던 천화는 천연덕스럽게 채비를 마쳤다. 살짝 지린 듯한 냄새를 풍기는 호랑을 다시 말의 등에 널어두고 유가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흑월문의 습격이 있기 전에, 그리고 구린내가 옷에 배기 전에! 다행히 객잔에서의 일 때문인지, 그들이 말을 타고 달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까닭인지 중간에 습격은 없었다. 아침에 출발해 어스름이 깊어지는 저녁이 될 때쯤, 유가장이 위치한 위곡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16549469916346.jpg“정지!”

16549469916346.jpg“용무를 말하시오.”

위곡현에서 유가장의 장원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천화가 그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위곡현에서 가장 큰 장원을 찾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유가장의 영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인지, 막판에 붙었던 시선들도 그들을 주시하기만 할 뿐 습격을 해오지는 않았다. 소란을 일으켰다가는 당장 유가장의 무사들이 뛰쳐나올 테니까.

16549469916355.jpg“돈 받으러 왔는데요?”

16549469916346.jpg“돈? 무슨 돈?”

16549469916346.jpg“혹시 우리 식솔 중 빚을 진 이가 있는 겐가?”

생글거리며 말 위에서 답하는 천화에게 입구를 지키던 무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근방에서 명망이 높은 유가장이긴 하지만 식솔 하나하나까지 장담을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되물은 것이다. 누굴까? 노가놈? 아니면 이가놈? 얼마 전에 황 씨가 진탕 취해서 돌아왔던 것 같은데……. 쿠웅 그런 그들의 앞으로 소만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말의 안장에 걸쳐있던 호랑의 몸뚱아리였다.

16549469916355.jpg“이걸 가져오면 금자로 바꿔준다길래?”

16549469916346.jpg“뭐?”

16549469916346.jpg“이게 무슨…….”

다행히 오는 동안 냄새는 대충 빠진 상태였기에 무사들이 얼른 다가가 ‘덩어리’를 살폈다.

16549469916346.jpg“헉?”

16549469916346.jpg“흐, 흑겸살광 호랑?”

그리고 얼이 빠졌다. 그토록 유가장주가 이를 갈며 찾던 이였지만, 고강한 무공과 뒷배 때문에 아직 그 사건 이후로 제대로 된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6549469916346.jpg“잠시만 기다리게!”

16549469916346.jpg“장주님! 장주님! 나와 보십시오!!!”

한 명이 남아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의 무사가 장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큰 소리로 유가장주를 찾으며 이하 식솔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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