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고금제일의 문지기 (3) (37/481)

<37화> 고금제일의 문지기 (3)2021.01.28.

쐐애애액!

16549470176777.jpg“컥!”

16549470176777.jpg“젠장, 뭐가 이렇게 빨라?!”

먼저 움직인 것은 천화였지만, 더 빠르게 상대의 숨통을 끊어나간 것은 역시 설영이었다. 단신으로, 스물 남짓이나 되는 적진에 홀로 뛰어든 것이다. 보통이라면 미친 짓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순식간에 설영을 막으려던 두 명이 베어졌다. 무림인들은, 특히 검기라는 사기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일류 무인들은 이미 인간을 넘어선 초인의 영역이라 할 수 있기에 일반적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16549470176786.jpg“천화, 잠깐만 버티…….”

그러나 그 행동이 위험한 이유는 포위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역할이 무엇이던가? 문지기. 장원의 정문을 지키는 것이었다. 헌데 제 멋대로 뛰쳐나가버린다? 만약 저들이 설영을 잡아두는 사이에 남은 이들이 입구를 밀고 들어간다면, 전투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략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무공이 약한 천화가 순식간에 당해버릴 수도 있었기에 설영은 걱정스레 눈을 돌렸지만, 곧 자신이 허튼 걱정을 했음을 깨달았다.

16549470176786.jpg“……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설영의 강호초출스러운 실책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지만, 천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심히 공격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아니,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들을 압도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16549470176777.jpg“으악!”

16549470176777.jpg“뭐야? 무슨 일이야?”

16549470176777.jpg“대체 뭐가 지나간 거지?!”

입구를 떡하니 막고 선 천화를 향해 달려든 흑월문의 패거리는 무려 열이 넘었다. 설영이 시선을 끌기 위해 나선 덕에 일류 고수 셋이 모두 발이 묶였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일제히 천화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하나하나가 무려 이류 수준의 무위를 갖춘 놈들이 말이다.

16549470176777.jpg“흐, 흑겸?”

16549470176777.jpg“저걸 왜 저놈이……!”

허나 생각처럼 천화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천화가 제 자리에 굳건히 선 채로 무언가를 날려댔기 때문이었다. 바로 흑겸. 본디 흑겸살광 호랑이 사용하던 독문무기였지만, 지금은 천화의 손에서 날아다니며 그의 수하들을 베고, 찍고, 후려치는 중인 것이다.

16549470176819.jpg‘독문심법까지 익힌다면 약간의 방향 조절까지도 가능하겠지만, 이 정도 놈들을 상대하는 것쯤이야 문제없지.’

사용하는 내공심법이 달라 정교한 초식 따위까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기교를 통해 펼치는 공격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아니, 단순히 기교로만 따진다면 호랑보다도 더 뛰어난 천화였다. 그렇기에 달려들던 놈들의 걸음이 멈추고, 잘 보이지 않는 흑겸을 피하고 막아내는 데 급급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스름이 깔린 밤, 검은빛을 내는 낫과 쇠사슬은 마치 암기처럼 상대를 노리기에 아주 적합했으니까. 까앙!

16549470176777.jpg“큭!”

16549470176777.jpg“어떻게든 막아! 무기만 봉쇄하면 끝이다!!”

심지어 상대가 충검의 묘리를 사용하며 방어하고, 어떻게든 쇠사슬을 엉키게 만들어 천화를 무력화시키려 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슬을 튕겨 흑겸의 방향을 조절하고, 때로는 사슬을 무기삼아 후려치는 천화의 기교는 감히 그들 따위가 따라오기 벅찬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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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천화는 일부러 사슬이 꼬이게 만든 뒤, 쇠뭉치가 된 그것을 이용해 후려치는 묘기까지 선보이는 중이었다.

16549470176819.jpg‘역시 초반엔 템빨이지.’

게다가 흑겸은 무려 희귀 등급의 무기였다. 희귀 등급 치고는 하급에 해당하는 놈이기는 했지만, 흑철을 섞어 만든 까닭에 검기쯤 되지 않고서는 날이 상하게 만드는 것도 어려웠기에, 내공을 담아 무기를 휘두른들 막아내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그 병기의 이점을 천화는 십분 활용했다. 던지고, 당기고, 휘두르며 십여 명의 이류 무인들을 농락하듯 쓰러뜨려가기 시작했다.

16549470176819.jpg“읏차!”

쐐애애액- 푸욱! 힘껏 던져낸 흑겸이 적의 정수리에 꽂힌다.

16549470176819.jpg“손 머리 위로~.”

휘릭 출렁! 천화가 빨래를 털듯 사슬을 크게 위로 튕기자, 박혔던 날이 뽑혀져 허공에 떠올랐다.

16549470176819.jpg“좌우로 흔들~.”

그와 동시에 좌우로 크게 흔들린 사슬이 접근하던 놈들을 후려쳤고.

16549470176819.jpg“그리고 또 옆으로~. 앞뒤로 왔다! 갔다!”

흑겸이 당겨지며 그중 한 놈의 뒷목을 베어버렸다. 낫이라는 형태의 특성상, 오히려 잡아당겨 베어내는 쪽이 더 위력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손목을 튕기면 좀 더 뒤쪽으로 날아갔기에, 적들은 천화를 앞에 두고도 뒤를 돌아서야 할 만큼 후방을 주의하고 있었다.

16549470176819.jpg“뒤쪽을 경계한다고? 그럼 왼손은 노냐?”

퍼억!!! 문제는 그들이 뒤를 보는 동안 천화가 왼손으로 소지품 창에서 꺼낸 무기들을 던져댔다는 것이다. 낡은 철검 따위의, 공격력이 높지 않은 무기들이지만 게임도 아닌 현실에서 공격력은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도검불침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찔리면 꿰뚫리고, 뚝배기가 깨지면 죽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뚝배기는 머리를 말한다.

16549470176819.jpg“오호, 이거 쓸 만한데?”

사실 천화에게 고인물 시절의 기교가 남아있다 해도 사슬겸이라는 특수한 무기를 쉽게 다루기는 힘들었다. 다른 걸 차치하고라도 일단 무기에 맞춰 단련되지 않은 손바닥이 쓸리고 까지면서 금방 손이 못 쓰게 될 테니까. 하지만 천화에게는 마침 비영투라는 신물이 있었다. 완전히 단련되지 않은 손바닥이라 해도, 고작 쇠사슬이 쓸고 가는 정도로는 아무 감흥을 느낄 수 없게끔 만들어주는 수투(장갑) 덕분에 이처럼 자유자재로 사슬을 조종할 수 있던 것이다. 어쩌면 호랑 역시도 흑겸을 제대로 다루기 전까지 이걸 착용하다가, 맨손으로도 다룰 수 있게 되어 벗어둔 것인지도 몰랐다.

16549470176777.jpg“괴, 괴물 같은……!”

16549470176777.jpg“무공 수위를 숨긴 건가? 분명 삼류…….”

덕분에 삼류의 내공을 지니고도 십여 명의 이류 고수를 거의 다 쓸어버린 천화에 대해 오해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이처럼 이류 무인들을 단숨에 쓸어버리려면 적어도 일류급의 무위는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16549470176819.jpg“슬슬 저쪽도 시작할 것 같은데 우리도 마무리를 지어볼까?”

그러나 천화는 애써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까! 주저리주저리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악당의 사망 플래그 따위를 꽂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렇게 천화가 흑겸을 다룰 때마다 꼬박 한 명씩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고, 스물이나 되던 인원 중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해야 다섯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치명상을 입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16549470176777.jpg“빌어먹을 놈들!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줄 아느냐!!”

그사이 설영도 분투를 하는 중이었다. 일류급의 고수가 무려 셋이나 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승부를 보고 있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삼대일의 전투를 치르면서도 큰 부상 없이 놈들을 막아내고 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상처는 다른 세 놈에게 더 크게 나 있었다.

16549470176819.jpg“막타 치는 사람이 임자다?”

쐐액!! 천화가 전투에 끼어든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미 흑월문의 이류 무인들은 전투력을 상실했기에, 살짝 버거워 보이는 설영 쪽으로 합류한 것이다.

16549470176777.jpg“놈!!”

하지만 기습은 성공하지 못했다. 흑겸이 어둠에 녹아들었지만, 일류 고수의 안력은 어둠조차 꿰뚫어볼 수 있었으니까. 천화가 내공을 가득 실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던져냈다면 모를 일이지만 상대는 수하들의 전멸에 빠득 이를 갈며 흑겸을 잡아챘다. 천화가 더 이상 수작을 부릴 수 없도록 자신의 손에 사슬을 휘감으며 강하게 당겼다.

16549470176819.jpg“날아간다~!”

허나 천화는 기다렸다는 듯, 그 반동을 이용해 날아올랐다. 사슬을 당기는 상대를 향해 입체적인 기동을 펼쳤다.

16549470176777.jpg“멍청한 놈! 감히 혼자서 덤비다니!”

우우웅!!! 천화가 자신 있게 몸을 날려 뛰어들자 상대의 입꼬리에 비웃음이 걸렸다. 무기를 다루는 재주는 제법이지만, 고작해야 삼류 수준의 내공으로 자신에게 덤비다니? 그대로 썰어주마 자신하며 검기를 피워올린 것이다. 맨손인 상대 따위는 검기가 아닌 충검만으로도 두 쪽을 내어 죽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단숨에 놈을 처치하는 것이 자신보다 반수 쯤 앞서는 고수인 설영의 집중을 흩트려 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6549470176819.jpg“어, 나 싱글이야.”

그러나 그 순간, 빈손이던 천화의 왼손에 한 자루의 검이 생겨났다. 혈마검? 아니다. 혈마검조차 두려워하는 그것. 바로 무명검이 들려진 것이다 까가가강!

16549470176777.jpg“!!”

푸확!!! 그 일격에 승부가 갈렸다.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린 천화의 일격에 놀랍게도 검기까지 피어올랐던 상대의 검이 잘려나간 것이다. 두 동강이 난 것은 물론이요, 몸뚱아리 역시 머리부터 두 쪽으로 잘려나갔다. 이것이 바로 무명검의 힘이다.

16549470176777.jpg“이, 이게 무슨?!”

덕분에 적들은 크게 당황했지만, 천화는 지체하지 않고 다른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3대1이던 상황이 졸지에 2대2로 변해버렸고, 오직 설영만이 천화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검을 떨칠 뿐이었다.

16549470176777.jpg“괴, 괴물!!”

쩌어엉!! 무기가 좀 더 좋은 놈이었는지 다급히 검기를 끌어올린 상대가 한 번은 공격을 막아냈지만 두 번은 어림도 없었다. 검기까지 통째로 잘려나간 것은 물론이었고, 보법이 꼬여 도망조차 치지 못한 채 그대로 목이 베였다.

16549470176786.jpg“차핫!”

기합을 내지르며 귀혈참을 펼친 설영의 검에 나머지 한 명까지 목숨을 잃었다. 유가장의 정문으로 쳐들어왔던 스무 명의 무인들이 전멸하는 데는 고작해야 일각이 채 걸리지 않았다.

16549470176786.jpg“너 정말…….”

16549470176819.jpg“눈독들이지마. 이거 다 내 거니까.”

볼수록, 알수록 신비한 천화의 능력에 새삼 설영이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자, 천화는 다시 한 번 분배 기준을 들먹이며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리고 놈들이 가진 전낭과 무기 따위들을 모조리 자신의 소지품 창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물건을 넣고 꺼내는 능력이라니. 실로 초현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수긍이 가는 것은 왜일까. 이 역시 시스템의 보정 중 하나였지만, 설영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천화가 병장기들을 주워담는 모습을 보다가, 장원의 안쪽으로 눈을 돌렸다.

16549470176786.jpg“이놈들뿐이었을까?”

16549470176819.jpg“응? 아, 그거? 아마 지금쯤 눈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정문에서 소란을 피워주기로 한 놈들이 잠잠하니까. 아마 지금쯤…….”

놈들의 목적이 자신이었다면 이걸로 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호랑을 구출하는 것이었다면? 고작 스무 명. 그것도 일류 고수는 셋밖에 포함하지 않은 상태로 유가장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생각 따위는 아니었을 테니, 뭔가 더 소란이 있을 터였다. 그러자 천화가 별것 아니라는 듯, 시간을 가늠했다. 만약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심한 고문을 당해 폐인이 되거나, 어쩌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문주를 구해야하는 상황에서 약속된 정문의 소란이 없다고 이대로 포기를 할까?

16549470176777.jpg“적이다!”

16549470176777.jpg“흑월문의 기습이다!!!”

그때, 장원의 안쪽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대기하며 장원의 담을 넘을 준비를 하던 흑월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린 것이다. 본래는 소란을 틈타 일부는 기습을, 일부는 우회하여 잠입을 해야 했겠지만, 조급해진 까닭에 모조리 발각되어 버린 것이다. 유가장의 무사들이 즉시 대처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16549470176777.jpg“감히 내 의제를 해하다니! 네 놈들이 무사할 성싶으냐!!”

장원을 넘어 정문에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내공이 가득 담긴 음성.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흑겸살광 호랑의 의형이자 흑월문의 동맹인 흑천문의 문주. 흑천패도 호림이 담을 넘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6549470176819.jpg“어휴. 기차화통을 삶아드셨나.”

호랑과 마찬가지로 일류 끝자락에 위치한 무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한 걸음 더 절정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의 등장에 유가장의 모든 이들이 긴장했지만, 아직까지 쓰러진 자들의 병장기를 수집중이던 천화는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16549470176786.jpg“이렇게 빨리……?”

반면 설영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호림이 도착했다는 것은, 그의 휘하에 있는 다른 흑천문의 고수들도 함께라는 이야기일 테니까. 하필 그들이 도착한 날, 흑천문이 유가장에 제대로 전쟁을 걸어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호랑을 끌고 왔기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도와야 할까? 받은 것이 있으니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호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호랑이야 병기의 특수성과 천화가 미리 알려준 파훼법 덕분에 어떻게든 제압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혈마검을 이용한 혈마검법이라도 펼쳐낸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럴 경우 아직 자신의 수준으로는 혈마기를 감출 수 없기에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설영은 도의에 어긋나더라도 이대로 도주를 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정문으로 쳐들어온 흑월문의 고수들을 상대해준 것만으로도 제 역할은 다했다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16549470176819.jpg“뭐해? 안 들어갈 거야?”

16549470176786.jpg“응? 으흠, 천화. 그냥 우리…….”

별 생각 없이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천화를 설영이 말리려 했지만, 천화는 설영의 생각을 이미 읽고 있다는 듯 씨익 웃으며 자신의 계획을 꺼내놓았다.

16549470176819.jpg“저렇게 정신없이 싸워주는데 빈집털이를 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16549470176786.jpg“……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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