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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역습의 유가장 (2) (42/481)

<42화> 역습의 유가장 (2)2021.02.09.

16549470868506.jpg“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16549470868511.jpg“응. 이제 곧 신호가…….”

이른 새벽. 유가장에 소속된 모든 인원들이 각자 산개하여 한 장원 주위로 모여들었다. 천화와 설영도 마찬가지. 유가장주 유몽헌의 지시에 따라 각자 위치를 잡았고, 약속된 신호에 맞춰 어느 지점으로 모인다는 약속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피유웅- 퍼엉! 그리고 마침내,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폭죽 하나가 터져나왔다.

16549470868506.jpg“가자.”

16549470868511.jpg“조심해.”

그 신호와 함께 유가장과 유가장의 동맹을 자처하는 문파의 고수들이 흑천문의 담을 넘는다. 일부는 정문으로 들어서기도 했지만, 정문으로만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기도 했고, 담을 넘어 도주하는 자들을 막아서기 위함이기도 했다. 쥐도 도망갈 구석 없이 몰아세우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라지만, 유가장주는 이참에 아주 흑천문의 씨를 말려버릴 각오를 한 것이다.

16549470868506.jpg‘안 그러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마교와의 연관성이 밝혀지는 순간, 여기 동원된 모든 문파의 인원들이 역으로 자신을 공격할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천화만이 느긋함을 유지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잔뜩 긴장을 한 채로 흑천문의 장원에 들이닥쳤다.

16549470868528.jpg“뭐, 뭐야?!”

16549470868528.jpg“유가장? 남천문? 저건……?”

16549470868528.jpg“이 빌어먹을 놈들이……!!”

어젯밤과 반대로 기습을 당한 흑천문도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밤새 진화작업이라도 한 것인지, 옷과 얼굴에 검댕을 가득 묻힌 상태로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녀석들의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보였고, 그것은 제법 수련을 쌓고 내공을 지닌 이류 이상의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상태였으니 몸은 물론 정신도 아득해진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유가장과 그 친구들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이번 전투에는 유가장의 복수라는 명분뿐 아니라, 이 위곡현의 패권을 다투는 큰 이권 다툼까지 걸려있는 것이다. 당연히 유가장이 승리한다면 자신들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눈에 띄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16549470868528.jpg“모두 일어나라! 방화를 일삼은 것도 모자라, 불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힘을 쏟은 상대를 기습하는 저 무뢰배 같은 놈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어……. 그러네? 이쯤 되니 누가 사파이고 누가 정파인지가 모호해질 지경이다.

16549470868528.jpg“현혹되지 마라! 저들은 야밤에 우리의 장원을 넘은 놈들이다! 놈들에게 죽어간 식솔들을 떠올려라!”

16549470868528.jpg“사파 놈들 아니랄까 봐 뱀 같은 혓바닥을 놀리는구나! 이 유몽검이 상대해 주마!!”

그리고 그것은 흑천문의 장원으로 뛰어든 정파의 무리들 역시 속으로 느끼는 바일 터였다. 다만 누구 하나 내색하지 않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마음을 다잡을 뿐.

16549470868511.jpg“쉽게 이기겠는데?”

전투가 시작되고, 이를 악물며 달려드는 흑천문도 둘을 베어낸 설영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천화의 곁에 붙으며 말을 걸었다. 벌써부터 힘을 뺄 필요도 없을 뿐더러, 상대들이 꽤나 지친 상태였기에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승리를 따낼 수 있어 보이는 것이다.

16549470868511.jpg‘호위무사를 해주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천화의 호위무사를 맡아주기로 했으니 곁에서 지킬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16549470868506.jpg“그러게. 잘 싸우긴 하네. 아직까지는.”

그 말을 받으며 천화는 뒷짐을 지고 마실 나가듯 천천히 걸어갔다. 설영의 말처럼 유가장의 세력이 아직까지는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형국이었으니까. 특히 밤사이 기연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객으로 묵고 있는 다섯 고수들의 몸놀림이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몸도 가볍고, 힘도 넘친다. 그렇다고 절정급의 무위를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이라면 흑천문의 일류 고수 두엇도 너끈히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승리의 무게추가 완전히 기울어진 것은 아니었다. 난전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기껏해야 이류 수준의 무인들 뿐, 적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수십 명의 일류 고수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불에 타지 않은 안쪽의 석재 전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모양이다.

16549470868506.jpg‘혼자서 백이든 천이든 쓸어버릴 수 있는 세상이니까.’

함정이나 암습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 이상, 일류 고수 하나가 수십의 이류 무인들을 짓밟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이를 감안하면, 아직 진짜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16549470868528.jpg[주인님, 나옵니다.]

16549470868528.jpg“갈!!”

그 순간 터져나온 고함소리가 장원을 뒤흔들었다. 노기 어린, 막대한 내공이 담긴 음성이었기에 어설프게 내공을 운용하던 이들은 초식이 엉키거나 작은 내상을 입기도 할 정도였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음공과 다름없었으니까.

16549470868528.jpg“이것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호랑이굴로 기어들어오는구나!”

16549470868528.jpg“호랑이굴은 무슨! 도둑놈들의 소굴이겠지!”

허나 유몽헌도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훔쳐갔으니 도둑놈이지 무엇이겠나. 그 서슬 퍼런 고함에 호림 역시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16549470868528.jpg“도둑은 네놈들이겠지! 불을 지른 것도 모자라……!”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맞서 고함을 질러댔다.

16549470868506.jpg“어……. 음……. 살짝 물러나 있을까?”

16549470868511.jpg“그, 그럴까?”

그 말싸움에 괜히 멋쩍어진 것은 천화와 설영이었다. 그 둘 모두의 말이 맞았고, 그 진범이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찔리는 부분이 많았던 터라 슬쩍 다른 이들의 등 뒤에 모습을 감추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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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0868528.jpg“문주님, 저자입니다!”

그러던 중, 흑천문도 가운데 한 명이 설영을 지목했다. 천화야 은밀히 움직였기에 발각되지 않았지만, 설영은 정문으로 돌파를 하며 시선을 끌었으니까. 덤벼드는 무인들은 모조리 처치했지만 무공을 모르는 식솔 몇은 모르는 척 살려두었는데, 그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16549470868511.jpg“야, 너……!”

갑자기 지목당하자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설영은 슬그머니 자신에게서 물러서는 천화를 노려보았지만, 사실 상관은 없었다. 이미 서로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던가? 호림의 시선이 설영에게 쏘아지긴 했지만, 자신의 상대는 유몽헌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시선을 거두고 수하들을 움직였다.

16549470868528.jpg“쳐라!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마라!”

16549470868528.jpg“형님, 저 놈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수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자, 그 가운데서 익숙한 얼굴도 튀어나왔다. 흑겸살광 호랑. 당연히 호림의 손에라도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그가 살아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6549470868506.jpg‘흠, 불을 지른 것 때문인가?’

원래대로라면 탈출한 호랑을 은밀히 죽여 명분을 만들었을 테지만, 그들이 불을 지른 까닭에 일단은 전력을 보전하기 위해 살려둔 듯싶었다. 굳이 그를 죽이지 않더라도 이미 명분은 충분해졌을 테니까.

16549470868506.jpg“뭐, 상관없지만.”

물론 호랑 따위가 살아있든 말든 천화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16549470868511.jpg“흥! 안 도와줄 거니까, 알아서 잘해봐!”

16549470868506.jpg“엥? 저건 또 왜 나한테 와?”

그때, 뒷짐을 지고 싸움 구경을 하던 천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류 무인들 간의 대결. 그것이 시작되자 어설픈 삼류 무사들은 뒤로 빠지며 그저 포위와 대치만을 하는 형국이 되었는데, 호랑이 느닷없이 천화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설영을 노리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놈의 시선은 확실히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애초에 놈을 제압했던 것은 설영일 텐데 말이다.

16549470868528.jpg“네 놈은 내 손으로 찢어죽여주마!!”

아무래도 천화가 점혈을 하고 갈구었던 것을 마음에 담아둔 모양이다. 설영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돕지 않을 것을 선언했지만 멀리가지 않는 것이 여차하면 끼어들 기세였다.

16549470868506.jpg“하, 귀찮게스리.”

당연히 천화에게는 그런 도움 따위는 필요 없지만 말이다.

16549470868506.jpg“그래. 돌려주마!”

쐐애액- 선공을 취한 것은 천화 쪽이었다. 호랑의 독문무기라 할 수 있는 흑겸을 냅다 집어던지자 놈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빼앗긴 자신의 무기에 공격당하는 기분이 더러운 듯 사납게 얼굴을 구기고, 가볍게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해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흑겸의 방향을 바꾸어 공격을 해오거나, 사슬을 이용해 옭아매려 들었겠지만 천화에게는 무리다. 사슬겸을 이용하는 무공을 알 리가 없을 뿐 아니라 내공 또한 부족하니까. 사슬의 길이만큼이나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슬겸을 이용한 무공의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최소 이류쯤은 되어야 어느 정도 다룰 수도 있는 것이고.

16549470868528.jpg“일단 그 알량한 팔목부터 잘라주마!”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기에 호랑은 더욱 강하게 보법을 밟고서, 전력을 다해 겸을 휘둘렀다. 지금이라도 사슬을 놓아버린다면 모를까, 당장 패용하고 있는 검도 없었으니 방어조차 불가능할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16549470868506.jpg“남자 놈이 쫌생이같기는!”

하지만 호랑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좀 전까지 천화의 손에 흑겸이 들려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16549470868506.jpg“이왕 할 거면 손목보다는 역시 뚝배기지!”

16549470868528.jpg“?!”

파앗 그 순간, 천화의 손에서 무언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바로 흑겸이다. 이미 저만치 날아가 회수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던 그것이 어느새 천화의 손에 들려있었다.

16549470868528.jpg“큭!”

후웅! 또 다시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흑겸의 모습에, 호랑은 순간 환상인가 싶다가 얼른 무기를 들어 방어했다. 까앙!! 날아오는 기세,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게 어디에서 난 거야? 혼란스러웠지만 천화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혈마검을 빼어들고, 직접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16549470868528.jpg“귀, 귀신?”

그 모습에 호랑이 다시 한 번 기겁했다. 분명 날아왔던, 자신이 막고 튕겨냈던 흑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흔적도 없이.

16549470868506.jpg“형이 갓(GOD)이라고 불리긴 했지!”

일단은 살고 봐야 했기에 다급히 겸을 들어 혈마검을 막아보지만, 부딪히는 순간 내부에 퍼지는 충격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16549470868506.jpg‘이런 꼼수도 여전히 통하는군.’

방법은 간단했다. 무기 교체. 호랑의 생각처럼 아직 천화에게는 사슬겸을 제대로 다룰 만한 내공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무신지로의 시스템이 그를 보조한 것이다. 보통 무기를 집어던지면 그 즉시 장착이 자동 해제된 것으로 판정 받지만, 흑겸의 경우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여전히 장비 중인 것으로 판정을 받았고, 천화는 그것을 해제한 뒤 다시 착용을 했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흑겸이 재장착되며 천화의 손으로 돌아온 것이고. 순간적으로 장비를 소지품 창에서 장착하고 해제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으면 버벅거리며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천화에게는 숨 쉬듯 간단한 행동이기도 했다. 허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호랑에게는 죽을 맛이었다. 사라진 흑겸에 대한 공포. 당장 상대하는 것은 혈마검임에도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흑겸을 의식하느라 정신이 팔린 데다, 붉은 기운이 솟구치지는 않지만 일렁이는 검기를 두른 혈마검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혈마기의 붉게 피어오르는 효과는 사라졌어도. 일반 검기와 비슷한 아지랑이 같은 효과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16549470868506.jpg‘이것도 안 보였으면 진짜 사기지.’

만약 그것마저 보이지 않았다면 상대가 거리와 검기 사용 여부를 전혀 파악할 수 없기에, 처음 싸우는 상대에게는 무조건 먹힐 수밖에 없는 사기적인 능력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16549470868528.jpg“어떻게 검기를……?!”

그것이 더욱 호랑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실력을 숨긴 것이라면 검기를 뿜어내는 순간 내공 수위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여전히 천화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은 고작 삼류를 벗어나지 못한 정도인 것이다. 이전보다 확연히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이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 확실했다.

16549470868528.jpg‘설마, 가늠조차 불가능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사실 천화가 가늠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절정 이상의 무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오해 때문일까, 호랑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긴장과 공포로 몸이 굳으며 초식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16549470868506.jpg“뚝배기!!”

빠악!!! 당연히 그것을 놓칠 천화가 아니다. 순간 살기를 집중시켜 놈을 더욱 긴장시킨 천화가 놈이 펼친 수비형 초식을 뚫고 혈마검의 검면을 놈의 머리에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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