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이게 다 마교 때문이다 (1)2021.02.18.
‘뭐지? 개꿀잼몰카인가?’
순간 뭔 개소리야? 하고 소리칠 뻔한 천화는 유몽헌의 반응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무언에도 의미가 담기는 법이니까.
“교에서 어째서 내게 이런 짓을……. 설마 그것까지 알아낸 건가?”
‘그것’이라는 말에 천화가 반응했다. 보통 이런 경우, 숨겨진 무언가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숨겨진 임무가 있다는 건가?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이 사건들의 경우, 천화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른 고인물을 통해 전해들은 것이니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겠지. 애초에 상황이 너무 바뀌어버린 데다, 녀석이 놓치고 넘어간 무언가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천화가 대꾸를 하지 않자 유몽헌의 오해는 더욱 깊어갔다. 정말 마교의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는 것이라면 도망친다고 해결 될 리가 없었다. 아니, 이미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으니 도망치는 것이 의미가 없을지 몰랐다.
“이놈……!! 네가 교에서 나왔든 아니든 상관없다. 반드시 네놈만은 함께 지옥으로 데려가주마!!”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이 자리에서 천화를 죽이는 것이다. 이후 마교의 추격을 받기야 하겠지만, 다른 마인들이 녀석을 몰라본다는 것은 그 역시 은밀하게 이 일을 행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뿐이라는 소리였다.
“뭐야, 항복은 하지 않는 건가?”
다시 전의를 불태우는 유몽헌의 모습에 천화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잘만 구슬리면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글러버린 모양이었으니까.
“끄응. 그것 좀 펼쳤다고 후달리는구만. 얼른 레벨 업을 하든지 해야지……. 야, 힘드니까 얼른 끝내자. 엉?”
어쩔 수 없이 다시 무명검을 들어올리는 그 모습에, 흔들리던 유몽헌의 동공이 잦아들었다. 천화의 손이 부들거리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힘껏 내리치던 검을 역으로 쳐올렸으니, 막대한 내공을 지닌 것이 아닌 이상 육체에 부담이 가는 게 당연한 것이다. 덕분에 자신이 생겼다. 초식에 대한 이해도는 천화가 더 높을지 몰라도, 이쪽은 무려 절정급의 내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던가? 천화가 들고 있는 검이 범상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제 아무리 신병이기라 할지라도 주인의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저 잘드는 칼일 뿐이었다.
“흑영보!”
사사사삭- 그 순간, 유몽헌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천화의 눈으로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보법을 밟아 이동하는 것이다. 내공의 우위라는 강점을 십분 활용한 공격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단숨에 모든 내공을 쏟아붓는 공격이라면 천화가 막아낼 수 있을 리 없다. 그것을 노리며 유몽헌이 숨죽여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
“죽어라!!!!”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울림으로 혼란을 가중시킨 채, 유몽헌이 단숨에 천화에게로 짓쳐들었다. 검강을 머금은, 필살의 일격을 뻗어냈다.
“?!”
그 순간, 섬뜩한 살기를 품은 천화의 눈동자가 놈을 마주보았다.
“헉?”
명계의 사신이 그런 모습일까. 순간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천화의 모습에 유몽헌의 호흡이 끊어졌다. 아주 짧은 순간뿐이었지만 천화 같은 고인물에게는 한없이 길고 긴 시간이다. 그들은 일초를 수십으로 쪼개어 움직이는 자들이니까. 휘익 까앙!! 검강을 머금은 유몽헌의 검이 천화를 베었다. 다만 일어나는 것은 쇳소리뿐이다. 천화가 무명검을 들어 막는 대신 운철을 꺼내 방어한 것이다. 무명검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긴 했지만, 검강쯤 되는 공격을 정면으로 막았다가는 내상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큭?!”
유몽헌의 몸이 다시 재빨리 천화에게서 멀어졌다. 손끝에 전해지는 반탄력은 별것이 아니었지만 운철과 부딪히며 내공이 흩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꾸역꾸역 쌓아놓은 마공의 기운이 한순간에 흔들리고 깨져나갔으니까.
‘쉽진 않겠네.’
하지만 섣불리 반격을 가하지 못하는 것은 천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명검이라는 절세의 보검을 지니고서도 천화가 마음껏 꺼내지 못하고 다닌 이유는, 절정 고수들의 몸놀림을 아직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니까. 지금이야 그나마 살기와 운철 덕분에 어떻게든 버텨내었지만, 만약 마공이 아닌 일반적인 방식으로 내공을 쌓아올린 자들이라면 운철과 함께 날아가버리는 것은 자신이었을 터였다.
“마공이 흔들리다니, 역시 네놈은……!”
그러나 유몽헌의 오해는 깊어져만 갔다. 강인한 마공의 기운을 깨부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상승의 마공을 익힌 존재뿐일 테니까. 흔들리는 눈동자만큼이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지만 이미 기호지세다. 이대로 도망친다한들 모든 것을 잃고 마교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 테니까. 때문에 이를 악물고 다시금 짓쳐들었다.
“쉽게 당해줄 줄 아느냐!!!”
“큭!”
콰앙!!! 모든 내공을 폭발시킨 일격이 천화를 다시금 베어갔다. 천화도 이번만큼은 운철이 아닌 무명검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뱃속이 뜨거워지며 목구멍으로 핏물이 왈칵 솟구쳐올랐지만, 간신히 참아내며 발을 차올렸다. 정확히는 자신이 떨어뜨린 운철을 차서 놈의 복부로 날려보냈다.
“크악!!”
덕분에 이득을 보고도 유몽헌은 연격을 날리지 못했다. 마공이 깨어지는 고통에 신음하며 다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휘익- 그때, 튕겨나가던 운철이 다시 놈에게 들이닥쳤다. 비영사. 천화가 왼손을 떨쳐 내공을 주입하자 강한 접착력을 지니게 된 비영사가 운철을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철퇴처럼 휘둘러졌다. 퍼억!!!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공이 가미되었기에 충격은 상당했다. 더구나 마공을 분쇄하는 특성을 지닌 운철이 아니던가? 내공을 이용한 방어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유몽헌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스르릉- 촤악! 그 틈에 무명검이 땅을 긁으며 날아들었다. 한 움큼의 모래와 함께.
“비겁한!”
“싸우는데 비겁한 게 어딨냐? 이기면 장땡이지!”
후웅! 모래까지 뒤집어쓴 유몽헌이 크게 흔들렸지만 아쉽게도 공격은 적중하지 않았다. 녀석이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바닥에 몸을 던져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쳐 뛰어 올랐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운철로 인해 내부가 진탕이 되었을 텐데도, 완전한 마공을 익힌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유몽헌은 어느 정도 힘을 쓰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하이브리드 정도인가?’
무려 일류의 경지까지 스스로 쌓아올린 무공을 버릴 수 없던 것인지, 기존의 내공을 완전히 폐하고 다시 마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 기존 내공의 성질을 마공 쪽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그런 만큼 정통 마공을 익힌 것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지금 천화에게는 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완벽한 무력화가 아니니 운철로 몇 번쯤 더 방어를 하더라도 일류 수준의 무위는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우……. 역시 그대 정도의 인물을 상대로 멀쩡히 돌아갈 생각은 버려야겠지.”
그때, 열심히 보법을 펼쳐 거리를 벌려낸 유몽헌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휘청거리는 내공을 부여잡고 역으로 휘돌리기 시작했다. 펄럭! 내공의 증폭에 소맷자락이 저절로 펄럭거릴 지경이었다. 역혈마공. 천화는 놈이 끌어올린 힘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단숨에 내공을 폭발 시킬 수 있는 무공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하아. 이거 쓰면 멀미해서 쓰기 싫었는데.”
고오오오오- 그 순간, 천화의 몸속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역혈기공. 유몽헌이 사용한 것과 같은 역혈의 내공심법이 천화에게도 펼쳐진 것이다.
“이걸로 이류급 정도인가? 아쉽지만 뭐, 그런대로 쓸 만하겠네.”
“역시!!”
그 모습에 유몽헌이 더 깊은 오해를 품으며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공이 증폭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봤자 일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니까. 반면 자신은 절정급, 그것도 절정의 중턱을 넘어선 내공을 보유한 상태였다. 흩어진 내공을 감안하더라도 어떻게든 절정의 문턱은 넘었기에 천화가 어떤 마공을 익혔든, 어떤 검법을 사용하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며 주저 없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성질도 급하기는. 자, 그럼…….”
그 모습에 천화가 느긋하게 움직였다. 빠르게 짓쳐들고 있다고는 하나, 이미 유몽헌이 제 스스로 거리를 벌려놓은 덕분에 한 가지 동작을 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사장니임~.”
“……?”
“나이스샷!!!”
콰앙!!! 천화는 골프를 치듯 무명검을 휘둘러 땅에 떨어진 운철을 날려보냈다.
날아오는 운철을 피하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다. 그 정도 속도쯤이야 일류 고수만 되어도 충분히 피해낼 수준이니까.
“어림없다!!”
저것에 부딪히면 안 된다는 학습이 비로소 된 것인지 검으로 튕겨낼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의 내공을 분쇄하는 것이 어떤 특수한 마공이 아니라 저 광물 덩어리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무명검에 부딪혔을 때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안심하며 속도를 높이는 녀석을 향해, 천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까딱 무명검을 쥐지 않은 왼손의 손가락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
타닷! 그 순간 유몽헌의 몸이 비틀렸다. 이전의 경험이 있었기에, 천화가 운철에 비영사를 붙여 날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딜 봐? 날 봐!”
후웅!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천화는 애초부터 비영사를 쓰지 않았으니까. 이미 한 차례 당했던 기억이 놈의 반응을 느리게 만들었고, 천화는 그사이 돌아간 고개의 반대쪽으로 무명검을 휘둘렀다.
“이 놈!!”
유몽헌이 다급히 검을 들어올려 무명검을 방어했다. 아니, 검기까지 진득하니 끌어올리며 역으로 천화를 베어버릴 작정을 했다. 까앙!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검강마저 버텨내는 무명검이 고작 검기 따위에 휘청이기나 할까? 부딪힌 두 검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가는가 싶더니, 천화가 그대로 몸을 휘돌려 놈의 허리를 쓸어갔다. 원류검법. 그저 반탄력과 회전력을 이용한 임기응변 같지만 그 움직임에는 이미 원류검법의 묘리가 담겨져 있었다.
“엇?!”
그리고 그와 함께 유몽헌의 허리가 함께 돌았다. 무명검을 떨치는 순간, 왼손으로 한 박자 느리게 뻗어낸 비영사가 유몽헌의 허리춤에 달라붙은 것이다. 크게 회전하는 천화를 따라 몸이 출렁거렸고, 버텨보려 했지만 원심력까지 머금은 그 힘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서걱! 자세가 무너지는 그때를 노려 천화가 놈의 허리를 베어냈다. 복부의 절반이 날아가고 유몽헌이 허무하게 피를 뿌리며 제 자리에 쓰러져갔다.
“사, 살려주시오……!”
다급히 스스로를 점혈하여 출혈을 줄여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내장 기관들이 쏟아지며,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으니까. 중원에 명성이 자자한 신의나 마의가 와도 못 고칠 게 분명했지만, 유몽헌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듯 천화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쿨럭!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소. 전사묘에 대한 것도 전부…….”
‘전사묘? 이게 여기서 왜 나와?’
마무리 일격조차 필요 없는 상태. 가볍게 몸을 돌려 슬슬 마무리 중인 설영에게 합류하려던 천화가, 놈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머뭇거렸다. 전사묘. 그것은 이곳 귀주성에서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장소의 이름이었으니까. 더불어 귀주성에서 받을 수 있는 숨겨진 임무 중 가장 거대한 것이기도 했다.
“뭘 알고 있지?”
이미 생기를 잃어가는 녀석이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천화는 아무렇지 않은 척 추궁했다.
“지도……. 품에……. 쿨럭!”
“…….”
그러나 녀석에게 허락된 시간은 예상대로 길지 않았다. 하려던 말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억울한지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이 끊어진 것이다.
“어쨌든 품에 있다 이거지.”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일단은 얼른 녀석의 품부터 뒤졌다. 그러자 피에 젖어 피부처럼 몸에 딱 붙은 가죽 지도 한 장이 발견되었다. 일단 확인은 나중에. 천화는 얼른 그것을 소지품 창에 던져넣고 설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