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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이게 다 마교 때문이다 (4) (49/481)

<49화> 이게 다 마교 때문이다 (4)2021.02.25.

저벅 저벅 저벅. 앞장서서 걷는 천화의 걸음이 신중했다. 그러나 동시에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가벼웠다. 마치 정말로 뒷산에 마실이라도 나온 듯한 모양새랄까.

16549472044989.jpg‘좌측 사선으로 삼보에 이보 전진, 그리고 우로 한 보.’

그러나 그 걸음 속에는 어떤 법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단 진입하고 나면 정해진 생문으로 걷지 않는다면 꼼짝 없이 갇혀버리게 되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되어 버리는 것이 진법이었기에, 각 진법에 맞춘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천화의 머릿속에는 이 진법을 파훼할 방법이 들어있었다.

16549472044989.jpg‘환영미로진. 간단하면서도 티가 잘 나지 않는 녀석이지.’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평범한 나무와 풀들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파앗 하지만 조금은 비틀거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몇 걸음 더 내딛자 눈앞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약초꾼들이 머무는 작은 오두막 한 채가 허깨비처럼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16549472044998.jpg[주인님, 오두막 안에서 기척이 느껴집니다. 숫자는 열다섯. 모두 기척을 숨기고 있군요.]

  그와 동시에 혈마검이 천화에게 주의를 주었다. 무려 일류 수준의 무인이 열다섯이나 오두막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끼이익.

16549472045003.jpg“……!!”

그때, 오두막 안에 있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천화와 설영의 진입을 알아차린 것이다.

16549472044998.jpg“뉘시오?”

그러나 나서는 것은 한 명뿐이었다.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얼른 문을 닫고 나선 그의 행색은 영락없는 약초꾼이었다. 사내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천연덕스럽게 천화에게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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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판단을 내리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간혹 아주 간혹 우연에 우연이 겹쳐 진법의 생문을 걸어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으니까. 물론 다른 이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니만큼 그대로 죽여 없앨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산에 오른 사실을 아는 이들이 있다면 수색이 벌어질 테고, 그러다 보면 자신들이 발각될 수 있기에 별일 아니라면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16549472044989.jpg“수행 중인 무인입니다. 상비용으로 지혈제를 만들어 두려고 약초를 찾고 있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혹, 하루 묵어 갈 수 있겠습니까?”

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천화도 연기를 시작했다. 마치 정말로 길을 잘못 들기라도 한 것인 양, 묵어가기를 청한 것이다.

16549472044998.jpg“미안하지만 자리가 없수다. 돌아가줬으면 좋겠는데.”

그때 상대가 내공을 퍼트려 기운을 감지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인이라 밝혔으니 자신의 경지를 파악하기 위함이겠지. 하지만 그래봤자 나올 것이라고는 삼류라는 사실뿐이다. 천화가 미리 설영에게도 기운을 갈무리하라고 일러두었기에, 뒤에 선 설영을 보고도 사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6549472044989.jpg‘절정급은 없나 보군.’

그 모습에 천화도 한 가지 확신을 가졌다. 상대 중에 절정급의 무인은 없다. 만약 있었다면, 감추었다 한들 설영의 경지를 파악하고 격한 반응을 보였겠지.

16549472044989.jpg“벌써 날도 어둑해졌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좀 씁시다. 오두막은 약초꾼들의 것이니 삯은 내겠습니다.”

16549472044998.jpg“거, 자리가 없다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끝까지 천화가 들러붙자 상대는 험악한 인상을 찡그리며 거부의 의사를 다시 한 번 밝혔지만, 거기에 겁을 집어먹을 천화가 아니었다.

16549472044989.jpg“허어. 거참 인색하시네. 아니지. 약초꾼이면 이렇게 합시다. 마침 우리도 약초를 캐러 온 것이니 당신들이 가진 것을 파시오. 값을 후하게 쳐주겠소.”

16549472044998.jpg“없소. 우리도 오늘 막 들어온 참이라.”

그러나 상대는 끝까지 철벽을 쳤다. 약초꾼 무리가 밤이 어둑해져오는 시점에 약초를 찾으러 들어왔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아침부터 약초를 캐다가 늦어질 경우 머무르는 곳이 바로 약초꾼들의 오두막이니까. 약초꾼에 대한 조금의 지식만 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물론 지식이 넓지 않은 이들이라면 속아넘어갈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스스로도 그것을 알기 때문인지 녀석은 왼발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더 다가가면 출수를 하기 위한 준비 동작이라는 것을 천화가 모를 리 없었다.

16549472044989.jpg‘제대로 찾아왔나 보군.’

덕분에 확신은 짙어졌다.

16549472044989.jpg[준비해.]

  설영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보낸 뒤, 마지막 확인 사살 같은 말을 던졌다.

16549472044989.jpg“그러지 말고 딱 두 자리만 주지? 어차피 네 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텐데 그 정도쯤은 괜찮잖아?”

16549472044998.jpg“뭣?!”

순간 놈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화가 이야기한 네 자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한 것이다. 흑천문에서 절정급 무위를 선보였던 두 명의 대주와 일류급 무위를 선보인 두 명의 대원들. 이미 고혼이 되어버린 까닭에 연락이 닿지 않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이었으니까.

16549472044998.jpg“이놈들!!”

쐐애액-!!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천화가 누구인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천화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살인멸구를 하기에 충분한 이유였으니까.

16549472064774.jpg“귀혈참!”

천화를 적으로 인식하자마자 일장을 내뻗으려던 놈의 어깨가 움찔 떨리며 몸을 뒤집었다. 천화의 말과 동시에 검을 빼어든 설영이 그를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16549472044998.jpg“큭!”

같은 일류급의 무인이라도 수준의 차이는 분명했다. 마공의 경우 단기간에 무공 수위를 높일 수 있지만 그 깊이가 다른 무공들에 비해 깊지 못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놈에게는 무기가 없었다. 약초꾼의 행세를 하느라 오두막에서 빈 몸으로 나온 것이다. 콰앙! 그 순간, 오두막의 문이 박살났다. 그 안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16549472064774.jpg“잔혼비검!”

하지만 놈들은 한 놈이 채 밖으로 빠져나오기도 전에 설영의 검기 다발을 맞이해야 했다. 첫 번째 상대의 오른 어깨를 베어내자마자, 설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향을 돌려 오두막으로 뛰어든 까닭이다.

16549472044998.jpg“아닛?!”

덕분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은 오두막에 숨어있는 놈들 쪽이었다. 입구라는 좁은 공간으로 나오려다 설영의 혈마기를 맞닥뜨린 상대는 다급히 내공을 끌어올리며 방어에 나섰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면서 뒤에서 밀려나오던 동료들과 부딪히고 만 것이다. 덕분에 간신히 끌어모은 내공이 흩어졌고, 몇 놈은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서로를 공격한 꼴이 되고 말았다. 콰과광!!! 그사이, 설영의 검기가 뭉쳐있는 놈들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상대가 마교라는 사실은 이미 환영미로진을 통과하며 천화에게 들은 상태. 그렇다면 무공을 숨길 이유도, 손속에 사정을 둘 이유도 없었기에 전력으로 검기를 뽑아낸 것이다. 영혼마저 잘게 썰어버릴 듯한 기세로 뿜어진 혈마기가 준비되지 못한 놈들을 몰아치며 더욱 힘을 부풀렸다.

16549472044998.jpg“감히……!”

그런 설영의 뒤를 상처 입은 약초꾼, 아니 마인이 노렸다. 손에 쥔 무기가 없다지만 이미 일류에 오른 이라면 전신이 흉기가 될 수 있었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권각술의 일초를 펼쳐내며 설영에게 뛰어든 것이다.

16549472044989.jpg“아조씨는 내 거야.”

푸욱! 그때, 어느새 그의 뒤를 잡은 천화가 녀석의 등에 혈마검을 꽂아넣었다.

16549472044998.jpg“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쓰러지는 마인.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천화가 보여준 속도는 결코 삼류 무인이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16549472044989.jpg“레벨 업 좀 했지!”

지난 밤, 무공 비급을 돌려주며 쌓은 경험치들로 획득한 여유 능력치를 민첩 수치에 대거 투자한 덕분이었다. 열심히 책을 읽은 덕분에 지능은 올릴 필요가 없었고, 초반 여유 능력치를 오성에 투자하고 여러 실전을 거치며 감각 수치 역시 상당한 수준에 올랐기에 이처럼 몰빵에 가까운 투자를 할 수 있던 것이다. 덕분에 힘과 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졌지만, 어차피 맞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16549472044989.jpg“야, 그만 처먹고 일하자.”

16549472044998.jpg[크흠. 알겠습니다.]

  탐욕스레 피를 흡수하던 혈마검이 뽑혀나오자마자 천화는 재깍 설영 쪽으로 몸을 날렸다. 지형적 이점과 기습의 묘를 살려 우위를 점하고 있다지만, 열넷이나 되는 일류 고수를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물론 혈마검을 통해 혈마화를 한다면 무공 수위가 절정까지 오르며 열이든 스물이든 너끈히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겠지만, 천화는 혈마검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혈정의 기운을 대량으로 소모하는 그 방법은 설영에게도 혈마검에게도 썩 좋은 선택은 아닌 것이다.

16549472044989.jpg“이 정도야 지금 상태면 충분하지.”

대신 혈마검에 혈마기를 피워올렸다. 검기만 어떻게든 해소할 수 있다면, 천화 혼자서도 저들 중 상당수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어제까지였다면 조금 무리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급을 돌려주는 임무를 완료했을 뿐 아니라 일류급의 마인을 처치하고 절정 고수인 유몽헌을 쓰러뜨리며 폭발적인 레벨업을 마친 상태였으니까.

16549472064774.jpg“혈마강천!”

콰앙!!! 그사이에도 설영은 아끼지 않고 내공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조금 전의 격돌의 여파로 오두막의 문짝과 벽들이 터져나갔지만,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최대한 피해를 입히기 위해 혈마기를 전력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덕분에 오두막 전체가 무너져 내리며 파편과 검기가 놈들에게로 쏟아졌고, 그 여파에 휘말린 놈들 중 몇 놈이 치명상을 입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16549472044998.jpg“놈들을 죽여라!!”

파앙! 허나 다음 순간, 오두막의 잔해를 뚫고 놈들이 뛰어올랐다. 몇몇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는지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이미 정체를 들킨 이상 그들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죽든가, 죽이든가. 여기서 목숨을 보전하고자 물러났다가는 자칫 대업을 그르칠 수 있었기에, 전력을 다해 설영을 처치하고자 달려든 것이다.

16549472044989.jpg“으랏차!”

푸확! 하지만 모두가 뜻대로 날아오를 수는 없었다. 잔해를 박차고 뛰어오른 이들 중 무려 둘이나 되는 인원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아니, 베어져 뒤로 넘어갔다. 토옥 토옥 그들이 멈춘 자리에서 붉은 핏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은사. 천화가 발출해낸 비영사가 주변의 나무에 꽂히며 팽팽하게 당겨진 것이다. 무색에 가까운 투명한 천잠사로 만들어진 비영사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분간하지 어려울 정도로 은밀했기에, 놈들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베어진 것이다. 거기에 천화의 내공까지 더해졌으니 어지간한 칼날보다 절삭력이 높아져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6549472044998.jpg“이호! 육호!”

뒤늦게 그것을 파악한 동료들이 소리를 질러보지만 한 놈은 즉사, 다른 한 놈은 빈사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치료를 한다면 한 명은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복수뿐.

16549472044998.jpg“웬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가장 처참하게 죽여주마!!!”

놈들의 전신에서 사이한 기운이 뿜어져나오며 천화와 설영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16549472064774.jpg“흥!!”

콰앙 쾅 쾅 쾅!! 하지만 그들의 폭주하는 마기도 설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마기의 가장 두려운 점 중 하나인, 상대의 내부를 진탕시키고 회복을 방해하는 능력이 그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16549472044998.jpg[같잖은 놈들이 재롱을 떠는군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보다 더 지독하고 더러운 기운이 혈마기였으니까. 극성까지 익히면 마교의 수장인 천마와도 대적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혈마신공을, 감히 그들의 수준으로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16549472044989.jpg‘덕분에 편하긴 하네.’

그리고 그 덕을 천화 역시 보고 있었다. 수준의 차이 때문인지 최우선적으로 설영을 상대하고 있는 마인들이었지만,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까닭에 무려 세 명이나 되는 마인이 천화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까앙 까앙 까앙.

16549472044989.jpg“어휴, 무식한 것들이 힘만 쎄가지고.”

흑색의 검기를 피워올리는 그들의 합공을 혈마검으로 받아내며 천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검기야 혈마기로 해소를 한다지만, 검을 부딪칠 때마다 시큰하게 아려오는 손목의 통증은 썩 유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16549472044989.jpg“그럼 안 부딪히면 그만이지~.”

그래서 모조리 피했다. 무려 일류 고수의 셋의 합공을 삼류 무인 따위가 피한다는 말은 그리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가 누구인가? 고인물 중의 고인물! 썩은물! 해골물! 석유 그 자체라 불리던 천화였다.

16549472044989.jpg“얼씨구? 이걸 익혔다고?”

무형보를 최대한 발휘하여 상대가 익힌 무공을 파악했고, 즉시 분석을 마쳤다.

16549472044989.jpg“음혈마공이라면 최소 백 명의 여성에게 음기를 취해야만 익힐 수 있는 걸 텐데?”

그리고 분노했다.

16549472044989.jpg“이 부러운 자식! 이제 여한이 없을 테니 당장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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