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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전사묘의 수호자 (1) (60/481)

<60화> 전사묘의 수호자 (1)2021.03.23.

수호자 혹은 묘지기쯤으로 표현을 하면 될까? 거부할 수 없는 삼겹살의 유혹에 넘어온 어떤 존재가 동굴의 안쪽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타닷! 동굴의 어둠에 숨기고 있던 몸을 드러내자마자 극상의 경신법을 펼치며 날듯이 불판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릅! 허공을 유영하는 긴 혀. 뜨거운 불판을 겁도 없이 핥은 녀석은 곧 반응을 일으켰다.

1654947345645.jpg“푸헤엑?!”

촤압 촤압 혀와 입천장에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녀석이 화들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녀석은 재차 혀를 놀려 불판의 삼겹살을 모조리 입안으로 빨아들였다.

16549473456455.jpg‘나왔군.’

그런 녀석을 천화가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거대한 검은 소. 녀석의 정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물. 전사묘를 지키는 수호자이자 묘지기는 사람이 아니라 영물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수 민족마저 출입이 제한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을 수 없겠지. 만약 천연 진법이 펼쳐진 무해의 생문을 정확히 알고 있다 해도, 오가는 것이 발각되면 소수 민족이든 중원인이든 모두의 표적이 될 테니까. 때문에 녀석은 이곳에서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 동안 머무르며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16549473456455.jpg‘그러니 먹을 것에 환장하지.’

그런 이유로, 맛있는 음식만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드는 것이 특징이었다. 맨날 맛없는 동굴 이끼 따위로 연명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천화는 그것을 알기에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우며 녀석을 유인한 것이었다.

1654947345645.jpg“푸흥!”

그때, 비어버린 불판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던 검은 소가 천화를 돌아보며 콧김을 뿜었다. 시스템 알림이 나타나거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서 다음 고기를 올리라는 것이다.

16549473456455.jpg‘소 주제에…….’

어쨌든 소인 주제에 고기를 탐하는 모습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천화는 말없이 소지품 창을 열어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서웠으니까. 검은 소의 외형은 무지막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엄청났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못 먹어서 많이 쇠하긴 했지만 그 근육은 소수 민족의 대전사보다도 우락부락했고, 두 발로 서기만 한다면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와도 비견될 정도로 덩치도 대단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소수 민족 외공의 정수이자 총아. 그것이 바로 녀석이었기에, 어지간한 일류 고수도 저 검은 뿔에 들이받히면 그대로 즉사를 할 터였다.

16549473456455.jpg‘눈 돌아가 있는 놈을 잘못 건드리면 큰일나지. 암.’

치이이이이익! 맛있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익어가는 삼겹살. 코를 킁킁거리고 혀를 날름거린 녀석은 불판에 올린 고기를 채 뒤집기도 전에 혀를 놀려 그것을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1654947345645.jpg“?!”

그리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애매한 것이다. 불판이 뜨겁게 달궈졌다 한들, 삼겹살을 올리자마자 익을 리가 없으니까.

16549473456455.jpg‘소 주제에 익힌 고기만 먹는단 말이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천화는 말없이 삼겹살을 다시 불판 위에 올렸다. 날름 타악! 다시 퍼지는 맛있는 냄새에 뻗어내는 검은 소의 혀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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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345645.jpg“크흥, 크흥.”

감히 내 식사를 막아? 검은 소가 천화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픈 것도 아니고, 맞은 것이 기분이 나빠서도 아니었다. 식사를 방해했다는 것. 그것에 골이 났는지 금방이라도 천화를 들이받을 기세로 노려본 것이다. [강력한 살기에 노출됩니다.] [상태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할만큼 하락합니다.] 그와 함께 천화의 몸이 축 늘어졌다. 저절로 몸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났다가는 큰일을 당한다. 그것을 알기에 배에 단단히 힘을 주며 버틴 뒤, 말없이 삼겹살을 뒤집었다. 치이이익-

1654947345645.jpg“크흥~.”

대번에 바뀌는 기세. 다시 고기 굽는 냄새에 홀린 녀석은, 천화에게 쏘아보내던 살기를 거두고 삼겹살에 집중했다.

1654947345645.jpg“무우?”

그때, 천화가 막 다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녀석에게 내밀었다. 촵 촵 촵 살짝 눈치를 보더니 날름 그것을 받아먹는 검은 소.

1654947345645.jpg“푸흥흥!!”

아까와 같은 맛이라는 것을 확인한 검은 소가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마저 혀를 놀려 불판 위의 삼겹살을 모두 거두어 먹었다.

1654947345645.jpg“무우우~.”

그러고는 천화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빈다. 더 달라고 애교를 피우는 것이다. 그 힘이 엄청난 탓에 천화의 몸이 종이인형처럼 휘청거리긴 했지만, 좋은 징조였다. 전사묘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확. 그것이 바로 이 검은 소라는 영물을 길들이는 것이었으니까.

16549473456455.jpg‘이제 조련을 시작해볼까?’

씨익 검은 소에 밀려 몸이 휘청거리면서도 천화는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먹을 것에 약한 검은 소의 공략법을 제대로 짚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동물들은 살기를 통해 제압할 수 있지만, 전사묘에서 오랜 세월을 지낸 탓에 검은 소에게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방법을 통해 길들이기를 시도해야하는 것이다. 포옹!

1654947345645.jpg“무무!!”

이내 천화가 소지품 창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마개를 열자마자 검은 소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주지 않았다가는 그대로 들이받을 것 같은 격한 반응이었지만, 천화는 당황하지 않고 병의 주둥이를 놈에게 내밀었다. 츄릅 츄릅 검은 소가 얼른 혀를 뻗어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병의 주둥이가 너무 좁았으니까.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혓바닥도 커다란 녀석으로서는 혀도 적시지 못할 만큼 좁은 입구였기에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불쌍한 얼굴로 천화를 바라보았다.

16549473456455.jpg‘연기하고 있네.’

하지만 천화는 저것이 연기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슬쩍 주둥이를 기울여 혀를 축이게 만들어준 후, 다시 병을 세워 마실 수 없게 만들었다.

1654947345645.jpg“무! 무우!”

술맛을 보았기 때문일까? 검은 소의 흥분은 더욱 격해졌다. 주지 않으면 빼앗을 듯 콧김을 뿜으며 천화를 위협했지만, 천화는 왼손 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술병을 등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6549473456455.jpg“안 돼. 기다려.”

1654947345645.jpg“무?”

흔들리는 동공. 그러면서도 뜨거운 콧김으로 위협해보지만 천화는 단호했다. 설령 녀석이 자신을 공격하더라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로 놈을 외면했고, 그것은 제대로 먹혀 들었다.

1654947345645.jpg“무우우우…….”

위협으로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놈이 다시 불쌍한 척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천화는 무심히 녀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털썩 그렇게 잠시 기 싸움을 하던 녀석은 결국 포기했는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예 배를 까뒤집고 강아지처럼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16549473456455.jpg“잘했어.”

쪼르르륵 츄릅! 츄릅!! 천화가 하사하듯 내려주는 술을 단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녀석은 혀를 몇 번이고 날름거리며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가만 두었다가는 고기뿐 아니라 술까지 되새김질을 해가며 즐길 판이었다.

16549473456455.jpg“앉아, 일어서. 돌아.”

그다음부터는 간단했다. 꼭 삼겹살과 술이 아니더라도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환장을 하는 녀석이었기에, 소지품 창 가득 음식을 채워놓은 천화가 녀석을 굴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련? 사실 조련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애초부터 녀석은 인간의 말을 알아들으니까. 평범한 동물이 아닌 영물이니까. 사람 말을 직접 하지는 못해도, 알아듣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16549473456455.jpg‘자기 불리할 때는 모르는 척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참 신기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16549473456455.jpg“너, 나랑 같이 갈래? 매일 고기를 배불리 먹여주고.”

1654947345645.jpg“무웃?!”

16549473456455.jpg“칠 일에 한 번, 좋은 술도 사주고.”

1654947345645.jpg“무우웃?!”

16549473456455.jpg“예쁜 암컷도 소개해 주지.”

1654947345645.jpg“무우우웃!!!”

그러기를 한참. 천화가 슬며시 제시한 제안을 들은 검은 소가 크게 흥분을 하다가 머뭇거렸다. 술도 고기도 탐이 나지만, 녀석이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 머무르던 이유는 전사묘를 지키기 위함이니까. 이미 한참 전에 죽어버렸지만 자신을 길러준 주인과의 약속이 떠오른 것이다.

1654947345645.jpg“무우우…….”

결국,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 이곳에서 맛없고 지겨운 이끼만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의리를,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모습이 천화는 싫지 않았다. 동물이지만 그만큼 신의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준비한 물건을 꺼내 놓았다.

1654947345645.jpg“무우?!”

대전사의 붉은 심장. 대전사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을 꺼내보이자 검은 소의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1654947345645.jpg“무우우우우우!!!!!”

그러고는 천화를 향해 냅다 달려들었다. 할짝! 할짝!

16549473456455.jpg“으윽!”

공격이 아니었다. 좀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친밀감을 보이며 검은 소가 천화를 혀로 마구 핥기 시작했다. 덕분에 머리가 엉망이 되었지만 녀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거듭 표출할 뿐이었다.

16549473456455.jpg“그만해, 임마!”

녀석의 핥기 공격(?)은 엉망이 된 천화가 버럭 성질을 부리기 전까지 이어졌다.

16549473456455.jpg“어때, 이제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

끄덕 끄덕 천화의 말을 알아들은 녀석이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사묘에 방문한 대전사. 그것이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주인이 원한다면, 녀석 역시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더럽게 맛이 없는 동굴 이끼 따위로 연명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밖에도 자잘한 조건이나 시험 같은 것이 존재하긴 했지만 크게 중요치 않은 것들이다. 가장 큰 대명제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녀석은 즉시 천화를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영물 ‘검은 소’를 길들이시겠습니까?]

16549473456455.jpg‘그래.’

그와 함께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 알림. 예상대로 무신지로에도 존재했던 반려동물 기능이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다. 영물이나 신수는 결코 흔하지 않아서 끝까지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긴 했지만, 특수한 조건에 맞춰 길들이기에 성공할 경우, 반려동물로 함께 전투를 치르거나 이동 등에 사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그 종류에 따라 전투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을 강화하거나 상대를 약화하는 용도로 쓰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천화야 어떤 영물이나 신수보다 제 스스로 싸우는 것이 월등히 강력한 탓에 이동수단 계열의 영물을 사용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16549473456455.jpg‘역시 나타나지 않는군.’

그것을 확인한 천화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본래 무신지로에서 반려동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동물, 야수, 영물, 신수의 숫자는 하나로 제한된다. 때문에 반려동물을 등록하려 할 때, 등록을 완료하면 추가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알림이 함께 나타나야 했다. 그런데 그 알림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 또한 행동 제한의 삭제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는 것은 반려동물을 몇 마리고 등록할 수 있다는 얘기. 사실 이 녀석 하나만 얻더라도 큰 무리나 아쉬움이 없는 천화였지만, 앞으로 이동할 곳에서 만날 영물들을 떠올리니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영물 ‘검은 소’가 반려동물로 등록되었습니다.] [영물 ‘검은 소’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이름을 지어주면 친밀도를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그때, 반려동물로의 등록이 완료되며 검은 소가 천화에게 귀속되었다. 동시에 녀석의 새 이름을 지어주라는 알림이 나타났다.

16549473456455.jpg‘이름이야 정해져 있지.’

이름 짓는 데는 재주가 없는 천화였지만 이번만은 자신 있었다. 녀석에게 꼭 맞는 이름이 있었으니까.

16549473456455.jpg“네 이름은 흑우다.”

1654947345645.jpg“무우!! 우……?”

  [영물 ‘검은 소’가 새 이름 ‘흑우’를 얻었습니다.] [영물 ‘흑우’가 좋아하다가, 뭔가 찜찜해합니다.] 검은 소. 아주 직관적이었기에 딱히 나쁜 이름은 아니었지만 흑우는 이유 모를 찝찝함을 느꼈다.

16549473456455.jpg“자, 먹어.”

1654947345645.jpg“쿠히힝!”

  [흑우의 친밀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때문에 좋아하다가 잠시 멈칫거렸지만, 곧이어 천화가 내민 고기만두에 황홀해하며 경망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1654947345645.jpg“꺼억!”

그렇게 소지품 창에서 음식을 꺼내 건네주기를 한참. 흑우도 배가 찼는지 길게 트림을 하며 만족스러워했다.

16549473456455.jpg[먼저 올라가. 나는 다른 길로 올라갈 테니까.]

기분 좋아진 흑우를 씨익 바라보던 천화는 즉시 귓속말을 보내 설영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먼저 절벽을 타고 올라가라는 것이다. 자신은 절벽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해 갈 것이라고. 설영은 귓속말을 보낼 수 없고, 전음은 대상이 근거리에 있고 위치를 특정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그녀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을 겪어본 설영이라면 그 뜻을 따라줄 것이라 믿었다.

16549473456455.jpg‘먼저 도착하는 건 이쪽이겠지만 말이야.’

그렇기에 되풀이해 말하는 대신, 흑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에 올라탔다. 전사묘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 대전사의 붉은 심장을 지니지 않은 이들이 동굴로 출입하려 할 경우 흑우에게 제지를 당하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절벽을 타고 올라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자격을 증명한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16549473456455.jpg“자, 가자. 꼭대기까지 도착하면 술 한 병 더 먹여줄게.”

1654947345645.jpg“무우우웃!!!!”

그 말에 흑우가 즉각 반응했다. 콧김을 내뿜으며 동굴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16549473456455.jpg‘아무리 영물이라지만 신법이라니…….’

무려 신법까지 펼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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