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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전사묘의 수호자 (4) (63/481)

<63화> 전사묘의 수호자 (4)2021.03.30.

전사묘는 무덤이지만 사람이 살기에 아주 부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그 바닥이 기연 동굴처럼 어딘가로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공청석유 이외에도 물을 길어먹을 수 있는 우물이 있었고 영약까진 아니어도 약간의 음기를 머금고 자라는 이끼들이 있었다. 당연히 맛은 더럽게 없지만 배를 채우기엔 충분한 수준이니 생존 자체는 걱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천화의 소지품 창에는 3인, 아니 3인 1우가 아껴먹으면 두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들어있었으니, 천화의 말처럼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우물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몇 개나 되는 진법을 뚫어야만 하지만, 그들에게는 흑우가 있었다. 천화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흑우에게 음식을 주는 조건으로 우물을 길어오게 했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수련과 두 사람의 조련, 아니 훈련을 돕기 시작했다.

16549474238752.jpg“어허, 가슴 펴고!”

16549474238752.jpg“회원님, 그거 다 핑계예요.”

16549474238752.jpg“자, 마지막 다섯! 넷! 셋! 둘! 하나! 하나! 하나!”

우습게도 소수 민족의 수련방식은 일부를 제외하고 현대의 헬스와 무척 닮았다. 일단 기본은 체력 단련과 근육의 생성이었으니까. 다만 거기에 단지 부풀기만 한 근육이 아니라 실전에 쓰이는 근육을 만들고 제어할 수 있는 비법이 적혀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훈련 교관을 자처한 천화의 말투도 헬스 트레이너를 닮을 수밖에 없었다.

16549474238765.jpg“아니, 나는 대체 왜…….”

얼떨결에 함께 훈련을 받는 고불이 뭔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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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영에 비해 몸 관리를 잘했다지만 천화가 보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었으니까. 특히 그가 사용하는 무공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야말로 제대로 몸을 쓰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천화는 그가 유성창법을 익히는 것을 제한시키고 설영과 함께 굴리고 또 굴렸다. 더불어 틈이 나는 대로 자신 역시 몸을 만들고, 새로 획득한 다섯 개의 비급들을 익혔다. [잊혀진 바이족의 호흡법을 습득하셨습니다.] [자연지기의 흡수량이 증가합니다.] [내공 심법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삼재심법(8성)이 삼재심법(9성)으로 성장합니다.] 먼저 익힌 것은 호흡법이었다. 이제는 표지의 이름조차 흐릿해진 호흡법이었지만 다행히 내부의 글과 그림은 온전했다. 심법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 소수 민족의 전사들이 과거 뼈와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자연지기를 실을 수 있도록 고안한 호흡법이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심법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단전을 형성할 수 없기에 심법이 아닌 호흡법으로만 알려지고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진가는 심법과 결합될 때 나타났다. 특히 자연지기 자세를 쌓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재심법과 결합이 될 때에. 그 증거로, 호흡법을 익히는 것만으로 삼재심법의 성취가 증가할 정도였다.

16549474238752.jpg‘다른 심법들은 자연지기 중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을 골라서 취하려고 하니까.’

꼭 실전된 이것이 아니더라도 소수 민족들은 저마다 이와 비슷한 호흡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효율은 이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오래 전에 실전되었다는 무공이나 기술이 나올 경우, 현대의 그것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16549474238752.jpg‘원래는 더 발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처 전수를 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며 실전되었거나, 소수 민족의 경우 전사들의 넋과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시신에 손을 대지 않고 이곳에 옮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무신지로 내에서 나오지만, 이는 게임적 설정이라 생각하는 편이 속 편했다.

16549474238752.jpg‘하긴, 이곳에 펼쳐진 진법도 그 때문인 거니까.’

따지고 보면 무해를 펼쳐놓은 천연의 진법 또한 전사들을 풍장하던 풍습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전사들의 시신에 녹아있던 자연의 기운이 시신을 중심으로 풀려나가면서 주변의 사물들에 맺힌 것이다. 그것이 진법을 이루었고,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깨부술 수 없는 절진이 완성되었다. [잊혀진 바이족 보법을 습득하셨습니다.] [오성 수치가 높습니다.] [무형보(9성)가 잊혀진 바이족 보법과 결합됩니다.] [무형보(9성)가 진(眞) 무형보(1성)로 진화합니다.] 호흡법에 이어 바이족의 보법을 습득하자 무형보가 변화를 일으켰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무형보와,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바이족의 보법이 무척이나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화의 높은 오성 수치가 아니었다면 그저 성취가 조금 높아지고 말았을 터였지만, 이 또한 모두 천화의 계산 범위 내의 일이다.

16549474238752.jpg‘됐다.’

과거, 고금제일인 천화를 만든 기틀 중 두 가지가 갖추어진 순간이었다.

16549474238752.jpg“아직 세 권 남았다.”

그리고 천화에게는 아직 세 권의 비급이 더 남아있었다. 과거 무신지로에서는 얻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중 한 권은 함께 전사묘를 찾았던 다른 고인물이 획득했기에 대충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권은 천화로서도 처음 얻어 보는 것들이었다. [거라오족 형의권(4성)을 습득하셨습니다.]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해집니다.] 먼저 알고 있던 하나는 동물의 움직임을 본떠 펼치는 권각술이었다. 기본적으로 권각술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조금만 응용하면 보법이나 검법 따위에도 적용시킬 수 있었으니, 천화라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16549474238752.jpg“이게 여기서 왜 나와?”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비급은 상당히 의외의 것이었다. 무공 자체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읽어보는 것만으로 어떤 종류의 무공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혈류가속(1성)을 습득하셨습니다.] 천화의 뛰어난 오성에도 불구하고 1성으로 시작하는 두 가지는 무척이나 특징적인 것들이었다. 혈류가속은 말 그대로 혈류를 빠르게 가속시켜 육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이었다. 내공을 거꾸로 휘돌려 폭발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역혈기공과는 조금 결이 달랐기에 함께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16549474238752.jpg‘판타지로 따지면 헤이스트 같은 거지.’

몸 자체에 과부하를 주는 방법이기에 삼재심법으로도 그 후유증을 상쇄하기 어려웠지만, 단숨에 힘과 속도를 모두 증폭시키기에 기습적으로 사용하기 좋은 능력이다. [선천심결(1성)을 습득하셨습니다.] 마지막은 무공이지만 무공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정신 수양의 방법이라고나 할까? 사람, 아니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 혹은 영혼의 힘이라 불리는 선천진기를 쌓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줌으로써, 상단전을 개방할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 같은 것이었으니까. 선천진기는 내공처럼 인위적인 방법으로 회복할 수 없기에 한번 소모하면 요양을 통해 천천히 회복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 줌의 진기로 십수 년 분의 내공과 겨룰 만큼 거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선천진기는 일종의 양날의 검과 같았다.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육체와 단전의 단련 상태와 관계없이 몸이 쇠하거나 병에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16549474238752.jpg“선천진기라니……. 이것 덕분이었나?”

그런 것이 야만인이라고도 불리는 소수 민족들에게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그 덕에 무신지로의 역사 중 한 가지가 이해되었다. 지금은 그 숫자가 턱없이 적은 탓에 소수 민족이라 불리고 있지만, 과거의 언젠가는 중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그들의 역사가 말이다. 아마도 선천진기로 무장을 한 전사들이 무림인들과 겨루었던 것이겠지. 아무리 외공의 고수들이라 한들 관군은 물론 무림인들까지 격파했다는 것이 의아했는데, 이제야 머릿속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16549474238752.jpg“이걸 벌써 익힐 수 있다니, 좋은데?”

소수 민족들의 선천진기 수련법이라니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익혀서 나쁠 것은 하나 없었다. 일반 내공 심법과 달리 선천진기를 수련하는 심결은 어느 것을 익히든, 혹은 교차해서 익혀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 오히려 개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선천진기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일찍 익혀두는 편이 좋았다.

16549474238752.jpg“앞으로 환술에 걸릴 걱정은 없겠군.”

더불어 선천진기를 깨우치게 된다면 상대의 정신을 조종하거나 환상을 보게 만드는 환술 계열의 능력들로부터 자유로워질 테니 큰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정도까지 선천진기를 싹 틔우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찍 시작을 했으니 그만큼 시간을 번 셈이었다.

16549474238752.jpg“어허, 어깨 펴라니까!”

기분 좋게 비급들을 모조리 익힌 천화가 다시 설영과 고불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16549474255317.jpg“무우? 푸르르륵!”

역시 인간은 재밌어. 그 모습을 보며 흑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천화가 챙겨준 술과 고기를 먹어치우면서. @ 보름. 전사묘의 천연 진법 안으로 들어온 이후 정확히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사이 설영과 고불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좀 더 다부져진 몸매. 시간도 짧았고 철저히 실전용 근육을 키운 탓에 덩치가 눈에 띄게 커지지는 않았지만, 훨씬 몸매가 탄탄해진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어디 그뿐인가? 눈빛도 달라졌다. 정광 넘치던 두 눈에는 독기가 드러났다. 먹은 음식을 토할 만큼 혹독한 훈련의 결과였다.

16549474255317.jpg“무후후~.”

16549474238752.jpg“다들 준비됐지?”

그와 반대로 천화와 흑우는 여유가 넘쳤다. 덩치에 비해 말라있던 흑우의 몸은 그간 양껏 먹어치운 덕분에 다시 살집이 붙었고, 천화 역시 둘과 달리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설영과 고불이야 근육을 쓰는 법을 익히기 위해 몸으로 때웠지만 천화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쓰는 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1654947425533.jpg“응.”

16549474238765.jpg“준비 됐어.”

16549474238752.jpg“흑우야, 가자!”

준비를 마친 세 사람과 소 한 마리가 전사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본래는 며칠쯤 더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흑우의 미친 먹성 때문에 보관해둔 식량이 슬슬 떨어져가는 까닭이었다. 애초에 세 사람뿐이었다면 최대 두 달까지도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하지만 진법을 뚫고 물을 길어올 수 있는 것이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흑우가 영악하게 음식을 요구해대는 통에, 급격히 소진이 되어버린 것이다.

16549474238752.jpg‘뭐, 상관없겠지.’

예상을 살짝 엇나갔지만 나쁘지 않았다. 흑우라는 변수 이상으로 두 사람이 잘 따라와줬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전사묘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16549474238752.jpg“다들 긴장해.”

문제는 이다음. 저 바깥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누구와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될지는 천화라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모두에게 경고했다. 설영과 고불, 그리고 흑우와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다각 다각 흑우가 안개를 헤치고 나아갔다. 적막 속에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지만 누구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저 안개 속에서 살수들의 그것과 같은 마인들의 검이 언제고 뻗어나올 수 있으니까. 이 무해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인들이 들어와 있는지, 혹은 무해 바깥을 둘러싸고 얼마나 두꺼운 포위망이 펼쳐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16549474238752.jpg‘슬슬 모여들 때가 되긴 했는데.’

다만 천화는 다른 가능성도 점치고 있었다. 마인들의 등장을 알아차린 정파 무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파에서 소수 민족의 무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마교의 흔적을 쫓다 보면 여기까지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자신이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장난을 좀 쳐놓은 까닭에 혼선이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한들 큰 문제는 아니다. 설령 정파의 견제나 도움이 없더라도 이곳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으니까. 스으으읏-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공격은커녕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물러선 것일까? 아니면 주변을 포위하고 진법을 파훼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나아가자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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