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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누가 악당인가 (2) (65/481)

<65화> 누가 악당인가 (2)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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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4472544.jpg“무훙? 무후우우!!!!”

타다다닷-!! 흑우의 질주는 정확히 말하자면 멈춘 것도 아니었다. 녀석의 코끝을 간지럽히는 다른 표적을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간 것이니까. 노릇하게 향을 풍기는 고기 익는 냄새가 녀석의 후각을 자극한 것이다.

16549474472551.jpg“아니, 이건……?”

그러나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진수성찬이 아니라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일방적인 도륙과 방화로 인한 화재의 흔적들. 누군가 그들을 학살하고 불을 지른 것이다. 고기 굽는 냄새는 다름 아니라 불타버린 시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16549474472557.jpg“윽.”

이미 죽음과 시신에 익숙한 세 사람마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릴 만큼 끔찍한 모습이었다.

16549474472563.jpg“야,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천화는 코를 킁킁거리는 흑우의 뒤통수를 때리며 녀석을 진정시켰다. 아무리 고기가 좋다지만 이건 아니지.

16549474472563.jpg“아주 쑥대밭을 만들었구만. 대체 무슨 생각이지?”

16549474472551.jpg“대체 누가 이런 짓을…….”

여전히 인상을 찡그린 채 천화가 폐허가 된 마을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역한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당한 모습 역시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대체 누가 그런 것일까? 이만한 잔혹성이라면 당연히 마교를, 마인들을 떠올리겠지만 천화는 아니었다. 아직은 정체와 세력을 감추고 싶은 그들이 아니던가? 그런 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학살을 자행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있다면 그건 아주 멍청한 놈일 터였다.

16549474472563.jpg‘하지만 때로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법이지.’

그러나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혹은 소수 민족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 흉수로 마교가 지목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시신들의 흔적으로 볼 때 마교라고 특정 지을 만한 뚜렷한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지만, 반대로 그들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만한 흔적 또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에 옆에서 누군가 헛바람이라도 좀 불어넣는다면? 군자의 복수보다는 즉각적인 피의 복수를 선호하는 소수 민족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16549474472563.jpg“사천당문. 그놈들 짓인가.”

그렇기에 천화는 이 일의 흉수를 거꾸로 생각했다. 사천당문. 독이나 암기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천화는 확신했다.

16549474472551.jpg“당문? 마교가 아니라?”

그 말에 설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황과 분노가 섞인 떨림이다. 설마하니 정파의 기둥이라는 구파일방 오대세가에 속한 이들이 이런 참혹한 짓을 벌였을까 하는 불신,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럴지도 모른다는 내재된 분노가 함께 들썩인 것이다. 혈마라고 희대의 살인마여서 무림공적이 된 것은 아니니까.

16549474472563.jpg“아마도.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 자신들만으로 마교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을 거고, 소수 민족을 움직이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지. 잘 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태반이야. 애초에 전사가 많이 있던 마을은 아니라는 소리지. 그런 이들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16549474472551.jpg“……구천을 떠돈다?”

16549474472563.jpg“맞아. 전사로서 명예롭게 죽지 못했으니 그 영혼이 전사묘로 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들로서는 최대의 치욕이자 저주와도 같은 일이야.”

16549474472551.jpg“그럼 일부러 소수 민족을 자극하기 위해 마교인 척 이런 학살을 벌였다는 거야?”

16549474472563.jpg“응. 적어도 내 예상대로라면 말이지.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대한 잔인하게 손을 썼어. 그러나 마공은 아니지. 굳이 말하자면 무공도 아닌, 막싸움에 가깝다고나 할까?”

무력의 차이가 분명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16549474472563.jpg“좀 더 살펴보면…… 여기 있군.”

고개를 끄덕거린 천화는 좀 더 시신들을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상처일 뿐이다. 그러나 천화의 눈썰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16549474472563.jpg“철종검법의 흔적이야. 아무래도 칼질을 하면서 흥이 좀 났던 모양이군. 아무리 철저하게 속이려 들어도 자잘한 습관이나 순간적인 실수는 있기 마련이거든.”

16549474472551.jpg“철종검법? 당문에 그런 검법이 있었나?”

16549474472563.jpg“정확히는 ‘없었’던 거지. 뭐, 지금도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군. 당문은 혈계를 중시하는 세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특이하게 데릴사위를 받고 있지. 그들을 통해 독과 암기 이외에 자신들에게 부족한 무공을 수혈하는 거야. 그렇게 받아들인 무공을 해체하고,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거지. 그래서 독과 암기가 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당문의 검법도 무시 할 수 없는 거고. 철종검법 또한 그런 무공 중 하나였지.”

16549474472551.jpg“그런…….”

당문과 데릴사위. 그것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설영과 고불은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49474472563.jpg“그리고…… 분명 뭔가 남아있을 텐데.”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좀 더 정확한 증거를 찾기 위해 천화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시신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16549474472563.jpg“역시.”

그리고 누군가의 입안에서 찢어진 천 조각 하나를 끄집어냈다.

16549474472551.jpg“그건?”

녹(綠). 거기에 적힌 것은 단 한 글자였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추리를 더해보자면 거의 확정적인 답이 될 수 있었다. 녹의. 그것은 당문의 상징과도 같은 색이었으니까. 따로 별도의 상징적 문양을 사용하지 않는 그들이기에 보이는 그대로를 남겼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16549474472563.jpg“나름대로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했겠지만, 소수 민족의 집요함을 얕봤군.”

죽어가면서도 흉수의 정체를 알리기 위해 남긴 그것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정말로 당문의 짓일 확률이 아주 높았으니까. 아니, 모두가 심정적으로는 그들의 소행이라 단정하고 있었다.

16549474472563.jpg“게다가 아까 봤잖아? 마교 놈들은 끝까지 마공을 사용하지 않았어. 마공을 전력으로 끌어냈다면 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건 아직까진 정체를 감추고 싶다는 뜻이야.”

16549474472551.jpg“으흠.”

확실히 그들이야 이미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마교라는 걸 인지한 것이지,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종류의 무공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 대단한 무당과 당문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16549474472563.jpg“당가의 소가주와 무당신룡을 죽이면 그 파장이 너무 커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몸을 사린 것이라 봐야겠지.”

만약 탐마각주가 마공을 전력으로 발휘했다면 제 아무리 무당신룡이라 할지라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을 터였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듯 설영과 고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49474472551.jpg“정파라는 작자들이 어찌 그런 짓을…….”

16549474501743.jpg“그럼 무당의 도사들도 이런 짓을 묵인했다는 거야?”

16549474472563.jpg“아니, 무당은 몰랐을걸? 아무리 호랑말코 같은 놈들이라도 이런 짓까지 묵인할 만큼 막가지는 않거든. 당가 놈들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겠지.”

그렇다고 해도 분노가 덜한 것은 아니다. 시신 중에는 여인을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있었으니까. 그 생때같은 아이들까지 처참하게 살해한 당문, 아니 당가 놈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 그놈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뼈가 아리도록 안타깝고 서글펐다. 힘이 없는 자는 진실을 알릴 수도, 복수를 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16549474472563.jpg“슬슬 벗어나자. 금방 쫓아오진 못하겠지만, 여기 있다가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16549474501743.jpg“난 여기서부터 따로 움직일게.”

16549474472563.jpg“응? 하지만…….”

상황 파악을 마친 천화가 떠날 것을 종용하자 고불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뜻을 같이하며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성격상 한동안 그들과 함께 다니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 고불이 혼자 움직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미 얼굴이 팔린 이상, 마교인들에게든 무당이나 당가의 무인들에게든 쫓길 수 있음에도 말이다.

16549474501743.jpg“난 이곳에 남아 이 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어. 정파라고 모두 공명정대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만약 이 일이 정말 당가의 짓이라면…… 그들이 이끄는 정파 무림에 휘둘릴 이유도 없겠지.”

이 사건을 좀 더 조사해 보겠다는 것이다.

16549474472563.jpg‘뭐, 상관없으려나?’

나중에 중요 분기 임무에서 제법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불인 만큼, 천화는 가급적 그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피하게 만들고 싶었다.

16549474472563.jpg‘그것도 쥐여줬으니까.’

그러나 딱히 말릴 생각도 없었다. 낭인왕 고불이라는 자는, 수많은 시련과 생사고비를 넘어서서 완성되는 인물이니까. 오히려 온실의 화초처럼 감싸고 돌다가 그의 앞길을 망칠 수도 있었기에 천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이럴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설영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 검’을 고불에게 넘긴 것이었으니까.

16549474472563.jpg“조심해. 아직 전사묘가 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놈들 역시 금방 물러나진 않을 거야.”

16549474501743.jpg“알고 있어.”

그저 그의 무운을 빌어줄 뿐이다. 이미 단단히 마음을 정한 고불과 악수를 하고 일별한 천화는 흑우와 설영을 이끌고 어디론가 방향을 잡았다. [고불이 친구로 등록되었습니다.]

16549474472563.jpg“우리도 가자.”

참변이 일어난 마을을 벗어나 다음의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16549474472563.jpg“왜, 실망했어? 모르던 것도 아니잖아? 나름 도가 계열이던 혈마도 그렇게 몰아붙이던 놈들인데. 세월이 흘렀다고 다시 착해질 리가 없지.”

빠르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전처럼 전력을 다한 질주는 아니었다. 흑우라면 그 정도 속도를 유지한 채 한참을 더 달릴 수도 있겠지만, 갈 길은 멀고도 멀었으니까. 그렇게 이동하는 사이, 표정이 안 좋은 설영을 향해 천화가 물었다. 그가 앞에 타있기에 표정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야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나름대로 같이 보낸 시간이 있는데.

16549474472551.jpg“아니,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이만큼이면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고작해야 도망을 칠 뿐이라니…….”

그러나 설영의 마음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정파인들의 더러운 이면에 분노하고 실망하긴 했지만, 그보다 자신의 나약함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힘이 있었다면 이렇게 도망만 치지 않았을 테니까. 그 말에 천화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49474472563.jpg“힘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게 무림이잖아.”

16549474472551.jpg“너…….”

뼈를 때리는 바른 말에 설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원래 무림은 그런 곳이니까. 그 역시 모르던 바가 아니기에 자괴감만 더 깊어져갔다. 혈마신공이라면, 또 혈마검까지 지니고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생각을 했는데 강호출두 초반부터 쫓기고 도망치기만 하는 자신이 바보 같아진 것이다.

16549474472563.jpg“이제 두 달쯤 남았나?”

그때, 천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16549474472563.jpg“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약속했잖아? 단숨에 천하제일인이 되지야 못하겠지만, 다시 중원에 돌아갈 때는 이전과 같이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봐. 그놈들 다 대가리 박게 될 테니까.”

16549474472551.jpg“……응.”

어딘지 이상하지만 묘하게 믿음직스러운 천화의 말에 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빨라지는 흑우의 속도 때문인지 천화의 허리춤을 감싸안은 손에 슬며시 힘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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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4472551.jpg“우리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천화를 믿고 그가 이끄는 대로 이동하기를 열흘. 보통의 말이었다면 쉬는 시간을 포함하여 보름 이상 걸렸을 만한 거리를 계속해서 달리고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자, 설영이 답답함에 의문을 표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예 귀주성 자체를 벗어날 판이니까. 딱히 귀주성에 볼일이 있거나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면 중원이 아니라 세외로 빠져나갈 판이었기에 마냥 기다릴 수 없던 것이다.

16549474472563.jpg“남만.”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쉽게 대답을 해주지 않던 천화였지만, 계속해서 물어오는 설영의 말에 귀에서 피가날 지경인지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16549474472551.jpg“남만?”

그리고 그 대답은 놀라웠다. 진짜로 세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16549474472551.jpg‘중원으로 돌아온다는 게, 진짜 중원을 벗어난다는 말이었어?’

설영은 화들짝 놀라며 천화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천화는 그게 뭐 별것이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16549474472551.jpg“거기에 대체 뭐가 있는데?”

16549474472563.jpg“많은 것이 있지. 일단 너, 강해지고 싶다며?”

16549474472551.jpg“……그, 그랬지?”

16549474472563.jpg“그럼 뭘 해야겠어?”

16549474472551.jpg“수련?”

설영의 대답에 천화가 참 태평한 소리 한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려 돌아본 천화가 다시 대꾸했다.

16549474472563.jpg“그동안 혈마검은, 굶어 죽고?”

16549474472551.jpg“무슨 소리야 그게?”

16549474472563.jpg“혈정에 남은 기운, 확인 안 해 봤어? 아마 혈마화 두세 번만 하면 거의 바닥날걸?”

16549474472551.jpg“너 설마……?”

그 말에 설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혈정의 기운을 회복시킨다고? 그렇다면 세외로 나가 양민들을 학살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당가 놈들처럼? 대답 여하에 따라 당장 뛰어내리기라도 할 듯한 기세를 보이자 천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49474472563.jpg“뭔 생각을 하는 거야? 양학은 해봤자 티끌만큼이나 회복될걸? 이왕이면 생명력이 그득그득한 놈들을 잡아야지!”

16549474472551.jpg“……? 잠깐, 너 설마?”

그 순간 설영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남만야수궁. 세외사궁이라 불리는 세외 최강 세력의 이름이었다.

16549474472563.jpg“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이제부터 우리는 영물 사냥을 할 거야.”

그들이 터를 잡은 남만은 사나운 짐승과 기묘한 영물들이 대거 서식하는 아주 특수한 지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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