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영물 사냥 (3)2021.04.11.
남만의 기후와 지형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비가 미친 듯이 퍼붓다가도 잠시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이 타들어갈 듯한 열기와 햇빛이 쏟아졌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숲이 펼쳐져있다가도 황무지에 가까운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양기와 음기가 응집된 지역들이 교차되듯 펼쳐지기도 했다. 꼭 그때마다 희귀한 영물들이 출현을 했고, 천화는 어울리지 않는 온화한 얼굴로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이리 온? 해치지 않아. 자, 착하지? 우리 친구할까?”
“뀨?”
처음 길들이기를 시도한 대상은 독담비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맹독을 품고 있어 독에 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어지간한 무인들은 자신도 물린 줄도 모른 채 죽어가기 십상일 만큼 암살에 능한 데다, 결정적으로 플레이어들의 편의성을 엄청나게 높여주는 까닭에 인기가 많았던 놈이다. 바로 자동 루팅이라 불리는, 처치한 상대로부터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알아서 찾아다가 소지품 창에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도 그것이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녀석의 암살 능력만 하더라도 쓸 만한 데다 추적 능력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행동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한 마리밖에 길들이기가 불가능했지만 그것이 사라졌으니, 추가적인 반려동물로 손에 넣기에는 퍽 쓸 만하지 않은가? 때문에 천화는 열과 성을 다해 녀석을 꼬드겼다.
“자, 여기 맛있는 열매도 있다. 한 입 먹어볼래?”
온갖 칭찬과 미사여구를 섞은 말들로 녀석을 달래는 한편, 미리 따놓은 나무 열매를 손바닥에 담아 유인했다. 칭찬과 음식. 그것이 길들이기의 기본이었으니까. 덥석!
“……?”
하지만 쭈뼛거리며 다가오던 독담비보다 한 발 앞서 천화의 손바닥 위로 주둥이를 들이미는 놈이 있었다.
“야, 너……!”
다름 아닌 흑우였다. 녀석은 빼앗길 수 없다는 듯 날름 나무 열매를 집어먹었다. 좀 전에 고기를 배가 터지도록 처먹었지만 냄새부터 달콤한 까닭인지 나무 열매를 뺏어먹은 것이다.
“캬하하학!!!!”
모름지기 줬다 뺏는 것이 가장 열받는 법이었다. 독담비는 제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는지 버럭 성질을 부리며 털을 곤두세웠다. 녀석이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덕분에 천화도 흠칫 놀랐다. 독담비의 움직임은 일류 고수에 육박했고, 녀석이 품은 맹독은 독을 전문으로 다루는 살수만큼이나 지독했으니까. 피독주인 대전사의 붉은 심장이 있다지만 녀석의 독에 제대로 통할지는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기에, 긴장하며 슬쩍 물러나려 했다.
“무우?”
어쭈? 그때, 다시 한 번 흑우가 나섰다. 작아서 약해 보이는 까닭인지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외려 한 발 앞으로 나선 것이다.
“캬학?!”
그러자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독담비 쪽이었다. 흑우의 거대한 몸뚱아리에 놀라서? 아니다. 이곳 남만에는 흑우보다도 거대한 놈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흑우가 그냥 앞으로 나서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부르르르- 독담비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파르르르 떨린다. 감당하기 어려운 진득한 살기에 노출된 까닭이었다. 이름난 대전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전사묘의 사기를 품고 긴 세월을 살아온 흑우가 내뿜는 살기는 천화의 그것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캬아아악!!!!”
순간 독담비의 눈에서 붉은 살광이 번뜩였다. 발작적으로 튀어올랐다.
“뀨귯!!”
“엥?”
벌러덩! 공격이 아니다. 독담비는 흑우가 잘 보이도록 배를 까뒤집었다. 짐승들의 흔한 복종 자세. 천화가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독담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는 것보다는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나으니까. 최선을 다해 흑우에게 애교를 피우기 시작했다. 할짝!
“퉤! 퉤!”
그런 녀석에게 콧방귀를 뀌며 다가간 흑우가 슬쩍 혀를 가져다대었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밀어내었다. 영 맛이 없었으니까. 피부와 털에도 독이 묻어있는 독담비였지만, 그것을 맛보고도 흑우의 반응은 그저 맛이 없음을 표출할 뿐인 것이다. 전사묘에 쌓인 시체에서 흘러나온 시독에 적응하고, 공청석유를 퍼마시며 체질이 변화한 까닭에 어지간한 독은 그저 별미처럼 삼킬 수 있는 흑우였으니까. 타다다닷-!!!! 그사이 살았다고 생각한 독담비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흑우도 잡아먹을 생각이 사라졌기에 굳이 쫓지는 않았고.
“어휴. 내가 못 살아.”
천화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도망치는 독담비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도, 그 다음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 것이다. 다시 꼬셔본 또 다른 독담비도, 마비 효과를 가진 침을 뱉어내는 독와(독개구리)도, 강철 같은 깃털을 가지고 있는 철응도 모조리 흑우에게 겁을 먹고 달아나고 말았다.
“그만 좀 해, 임마!!!”
“무우!”
덕분에 성질이 난 천화가 흑우를 다그쳐보았지만 흑우는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마치 천화에게 자신 이외에 다른 반려동물은 필요가 없다는 듯.
“가만, 너 설마……?”
거듭되는 실패와 흑우의 반응. 그것을 종합한 천화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흑우를 돌아보았다.
“너, 먹을 게 줄어들까 봐 그러는 거냐!!”
“무히히히!”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긍정이라는 것은 모를 수 없었다. 어이가 없어진 천화가 몇 번이고 녀석을 어르고 달래며 풍족한 식사를 약속했지만, 흑우의 행동을 달라지지 않았다.
‘아오, 이걸 그냥 족치고 딴 놈들을 꼬셔?’
열이 받은 천화가 흑우를 해방시키고 다른 놈들로 채울까 고민까지 할 정도. 그러나 무신지로 마지막까지 1급으로 꼽히던 영물이기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이만 박박 갈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만난 녀석들은 다 합쳐도 흑우 하나만큼의 가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네. 일단은 사냥부터 하는 수밖에.’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방식을 바꾸었다. 영물들을 대상으로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대신, 영물을 사냥하여 혈마검의 혈정을 충전하고 레벨을 올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분명 이곳 남만에는 흑우에게 겁먹지 않을 만큼 강력하고 희귀한 영물들이 더 있었지만, 그런 놈들을 만나려면 야수궁이 관리하는 저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광렙이라도 해야지!”
설영과 함께 2단계 작전인 영물 사냥에 돌입했다. 물론 설영은 아직까지도 영물 사냥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발을 뺄 수도 없다.
“뭐? 벌써 그만큼이나 모였다고?”
게다가 영물의 생명력은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냥이 이어질수록 혈마검의 혈정에 쌓이는 기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에 제법 사냥하는 맛도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영물 사냥, 아니 학살이 시작되었다. @
“아오, 이 운빨좆망겜!!!”
피해가 전무한 성공적인 사냥의 연속이었지만 천화는 뭐가 불만인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름 영물이라 불릴 만한 놈들의 서식지를 꿰고 있는 천화였기에 가는 곳마다 영물들과 마주칠 수 있었지만 화령독사 이후로 내단을 가진 놈은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영물이라는 것은 영성을 지닌 동물이라는 뜻이지, 내단을 반드시 보유했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무신지로에서는 소위 게임에서 말하는 드랍률이라는 방식으로 영물이 내단을 가질 확률을 계산했지만, 원래 확률이란 것이 그런 법이다. 운 좋은 이에게는 잡템처럼 우수수 떨어지지만 운이 나쁜 이에게는 백 마리, 천 마리를 사냥해도 하나 구경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천화는 흔히 망캐라고 불리는 아주 운이 나쁜 케이스였다.
“너무 그러지 마. 영물의 내단이라는 게 그렇게 흔한 거라면 고수가 아닌 사람이 없지 않겠어? 야수궁이 중원을 지배했겠지!”
설영이 천화를 달래듯 위로의 말을 건네 보았지만 고작 그런 말로 천화의 화를 삭일 수는 없었다.
“그래.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내가 괜히 노가다의 신이라고 불린 줄 알아? 열 마리, 백 마리로 안 나오면 천 마리, 만 마리를 잡아 주마!!”
완전히 눈이 돌아간 천화가 흑랑이라 불리는 검은 늑대 영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우야, 몰아!!”
흑랑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늑대답게 무려 다섯 마리가 함께 나타났지만, 천화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달려들며 흑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후후후!!!”
그러자 흑우가 양치기 개처럼 늑대들의 주변으로 원을 그리듯 돌며 놈들을 몰아세웠다. 흑랑이라면 나름대로 용맹하고 공격성 높기로 유명한 놈이지만, 이미 영물의 수준을 넘어선 흑우에게는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크릉!!!”
그 때문일까? 한결 만만해 보이는 천화를 덮치며 활로를 찾고자 했다. 둘은 흑우를 경계하고, 셋이 동시에 천화의 머리와 양팔을 물어뜯을 기세로 덤벼들었다.
“무형보!”
그러나 내공이 부족하다 해도 천화는 천화였다. 어지간해서는 상하지 않는 두꺼운 가죽과 한번 물리면 곧바로 살점이 뜯어져 나갈 것 같은 흉악한 이빨을 들이미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천화가 보법을 밟으며 혈마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일검에 정면으로 달려들던 흑랑의 턱이 꿰뚫렸다.
“캬항!!”
두꺼운 턱뼈를 통째로 자르며 휘둘러진 이검에 좌측에서 짓쳐오던 흑랑의 목이 베어졌다. 퍼억!! 그와 거의 동시에 올려찬 뒷발에, 우측에서 달려들던 흑랑의 고개가 돌아갔다. 내공을 가득 담은 일격이었기에 눈앞이 아득해지며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 정도야 원샷 원킬이지!”
곧장 휘두른 혈마검이 비틀거리던 흑랑의 주둥이 안으로 처박혔다. 그대로 놈을 절명시키며 마구 피를 빨아댔다.
“깨갱!!!”
그와 동시에 남아있던 흑랑 중 한 놈이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주위를 돌던 흑우가 틈을 보인 즉시 들이받아버린 것이다. 그 한 방에 뼈가 부러졌는지 녀석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했고, 남은 한 놈은 설영의 검에 꿰뚫려 이미 죽어가는 중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순식간에 끝이 나긴 했지만 꽤나 격한 움직임이었음에도 천화의 내공의 소모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충검을 이용해 혈마검을 휘두르고 내공을 가득 담은 발차기를 돌려찼지만, 레벨이 오르며 모든 생명력과 내공이 회복된 것이다. 벌써 남만에 들어와서만 열세 번째 레벨 업이었지만, 천화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손을 휘저어 알림창을 치웠다.
“내단, 내단을 보자!”
내단의 보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쯤 눈이 돌아간 상태로 놈들의 시신에 다가갔다.
“멈춰라!!!”
“응?”
그때, 웅후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천화를 멈춰세웠다.
“삐이이익!”
그와 동시에 울린 호각 소리에 거대한 매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와, 존멋!”
크으~. 반려동물하면 역시 저거지! 그 모습에 천화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신이 무신지로에서 원하던 것이 바로 저 모습이 아니던가! 성인 남성의 크기만 한 매의 발목을 잡고서 내려오는 구릿빛 피부의 사내를 천화가 선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삐야아아아아아아-!!!”
허나 대지와 가까워지는 어느 순간, 사내를 태우고 날던 매가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푸득거리기 시작했다.
“어?”
“진정해! 얌전히…… 큭!”
당황한 것은 매에 매달려 내려오던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작 같은 몸부림에 당황했는지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매의 발목에서 손을 놓더니 공중제비를 돌아 홀로 지상에 착지했다.
“오, 착지 좀 해본 놈인가?”
일명 히어로 랜딩이라 불리는,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떨어지는 사내를 천화가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반면 설영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소속을 단번에 알아차렸으니까. 남만야수궁. 남만 지역을 통치하는 문파이자 하나의 국가와도 같은 그들이 드디어 두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