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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남만야수궁 (2) (70/481)

<70화> 남만야수궁 (2)2021.04.15.

콰아앙!!! 다시 한 번 흑우와 야수궁주가 격돌했다. 정확히는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들이받으려는 흑우의 뿔을 야수궁주가 강하게 움켜쥐고 버텨선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변이 터져나갈 만큼 어마어마한 힘의 격돌이었다.

1654947509364.jpg‘문제는 저게 진심이란 말이지.’

자신이 힘에서 밀리다니? 흑우의 커다란 눈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천화는 녀석을 돕지 못했다. 그저 저것을 진심으로, 장난을 치며 노는 것이라 여기는 야수궁주의 행동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쏟아지는 파편들을 쳐낼 뿐이었다.

1654947509364.jpg‘만나면 반갑다고 주먹질부터 해대는 통에 죽을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무신지로에서도 그랬다. 속아서 키웠던 대붕의 알부터 그 이전에 키웠던 영물들까지. 영물을 수급하기 위해 수시로 남만을 들락거렸던 탓에 야수궁주와 제법 친분이 있었다. 그에게 직접 임무를 부여받아서 진행한 적도 있었고,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그때마다 반갑다고 주먹부터 날려온 통에 한 대 맞고 죽을 뻔한 게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흑우는 당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녀석에게까지 주먹질을 하거나 뿔을 부러뜨리는 등의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기에,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도와달라는 듯한 흑우의 당황어린 눈빛을 슬쩍 피하면서.

1654947509364.jpg“크흠.”

그렇게 흑우가 야수궁주를 몇 번이나 날려버리고, 다시 야수궁주가 웃으며 달려드는 상황을 반복하고 나서야 장내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헛기침을 하는 천화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야수궁주가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천화에게 어깨동무를 한 것이다.

16549475093653.jpg“하하! 손님을 가만히 서있게 하다니, 이거 미안하군!”

1654947509364.jpg“괜찮……. 컥!”

그것만으로도 목과 어깨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천화는 내공을 끌어올려 어떻게든 버텨냈다. 이렇게까지 친근함을 표시하는데 매몰차게 팔을 쳐낼 수도 없었기에,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며 힘겹게 대꾸할 뿐이었다.

16549475093653.jpg“영물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다 싸우면서 크는 게 아니겠나? 개의치 말게!!”

그들을 안내한 사내에게서 천화의 주장에 대해 전해듣고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호탕하게 웃은 것은 그다음이었다. [남만야수궁주 세주안의 호감도가 대폭 증가했습니다.] 율법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오히려 자신들의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천화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야수궁주 세주안이었다. 실상 남만 내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영물들이 서로 영역 다툼을 위해, 또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기 위해 죽고 죽이지 않던가? 거기에 천화와 설영이 조금 가세했다 해서 생태계가 무너질 일도 없었기에 무척이나 호탕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16549475093653.jpg“요 귀여운 녀석을 해하려고 했다면 이미 죽어 마땅하지! 암, 그렇고말고!”

물론 거기에는 흑우에 대한 사심이 조금 섞인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16549475093673.jpg“저 여인에게는 영물이 없습니다만…….”

그러자 천화를 안내했던 사내는 살짝 못마땅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영물에게 위협을 가한 그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천화야 그렇다 치자. 흑우 때문에, 흑우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다면 어쨌든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설영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해석에 따라 율법에 어긋날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물고 늘어진 것이다.

16549475093653.jpg“그게 뭐?”

16549475093673.jpg“예? 그야…….”

그러나 다시 돌아온 세주안의 답변은 싸늘하기만 했다. 오히려 그가 당황하며 말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세주안에게 차단당하고 말았다.

16549475093653.jpg“맹거야. 영물과 미인은 언제나 옳은 법이다!”

남만족이 우대하는 것은 영물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미인! 미인 또한 영물만큼이나 존중하는 것이다.

1654947509364.jpg‘이쪽으로는 심미안이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 말에 천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들에게 쏟아지던 시선은 다름 아닌, 설영의 미모를 바라보는 뭇 남성들의 불타는 시선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도 영물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물들은 미인을 좋아하니까. 당장 흑우만 하더라도 설영에게 수시로 애교를 부리지 않았던가? 설영 정도면 그냥 미인이 아니라 중원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빼어난 미인이었으니, 개인적인 감정으로 시비를 거는 맹거가 이상한 것인지도 몰랐다.

1654947509364.jpg‘흠, 취향은 존중해야지.’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을 데려온 맹거의 취향을 의심하며 천화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영 정도의 미인이라면 굳이 영물을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인정을 받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결국 영물의 주인을 존중하는 것도 ‘영물이 인정한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개념인데, 미인은 그 자체로 거의 모든 영물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인 것이다.

16549475093653.jpg“그런 자잘한 일들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새로운 친구가 생겼으니 잔치를 열자꾸나!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는 거다!!”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하는 설영이 당혹스러워했지만, 어쨌든 나쁠 것은 없으니 다행이었다. 친구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그들이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한 것이 또 야수궁의 사람들이었으니까.

16549475093653.jpg“이럴 게 아니라 내 친구도 소개시켜 주지! 아주 예쁘게 생긴 녀석이니 이 녀석도 좋아할 게야!”

16549475112347.jpg“무웃?!”

세주안은 즉시 궁도들에게 지시해 잔치를 준비하는 한편, 천화와 설영, 흑우를 데리고 자신의 반려동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예쁘다는 소리에 흑우도 혹했는지 코를 벌름거리며 따라갔지만, 천화는 알고 있었다. 저 야수궁주 세주안의 영물이 무엇인지를.

16549475112347.jpg“무우! 무우!”

아까는 그렇게 질색을 하더니, 예쁜 영물을 소개시켜 준다고 하니 절친이 된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 재촉하는 흑우였다.

16549475093653.jpg“흐흐흐. 기대되느냐? 그래. 한껏 기대해도 좋다. 너도 예쁘지만 고것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거든!”

16549475112347.jpg“무히힛!!”

16549475093653.jpg“자, 소개하지. 내 오랜 친우이자 남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물인 라오라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둘은 죽이 잘 맞았다. 맹거에게 뒷정리와 잔치 준비를 맡긴 세주안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신의 처소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16549475112347.jpg“무이잇!?”

그와 동시에 흑우가 제일 먼저 안으로 튀어들어갔다. 괴성을 내지르며 상대를 덮칠 듯 달려들었다.

1654947509364.jpg‘어? 그럴 리가 없는데?’

흑우의 눈이라면 문이 열리자마자 상대의 외모를 파악했을 텐데, 뭔가 이상했다. 얼른 따라들어간 천화가 본 것은, 흑우가 어떤 소녀에게 얼굴을 마구 비벼대는 모습이었다.

1654947509364.jpg‘인간?’

그 모습을 확인한 천화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흑우에게 가려져 얼굴이 완전히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의 모습은 인간 여자아이와 같은 것이다.

1654947509364.jpg‘그럴 리가. 세주안의 영물은 분명…….’

짜아아악!!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흑우를 말리려는 순간,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흑우의 거체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세주안이 그랬던 것처럼, 벽을 부수고 날아가 처박혔다.

16549475127355.jpg“뭐, 뭐야?”

16549475127359.jpg“어디 못생긴 게 달라붙어?!”

설영이 당황하는 사이, 여자아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흑우가 세주안의 영물이라 착각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세주안의 딸이었던 것이다. 야수궁주의 자리가 핏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천생신력이 대단하고, 귀여운 외모로 영물들을 사랑을 받는 까닭에 차기 야수궁주가 유력한 인물이기도 했다.

1654947509364.jpg‘그래, 얘가 있었지.’

그 모습에 슬쩍 천화가 뒤로 말을 뺐다. 무신지로에서도 이 아이와 엮인 바가 있는 것이다.

16549475127359.jpg“어맛?”

1654947509364.jpg‘젠장…….’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음을 직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볼을 발그레 붉히는 소녀의 모습에서 불길함이 느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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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5093653.jpg“연아야, 괜찮은 것이냐?”

그사이 세주안이 자신의 딸에게 얼른 달라붙어 상태를 살폈다. 오히려 얻어맞는 흑우를 걱정해줘야 할 판이지만, 딸바보를 어찌하랴. 흑우가 아닌 그 누구라도 어디 가서 얻어맞고 다닐 만한 힘을 지닌 것이 아닌 딸아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없이 여리고 약한 아이처럼만 보이는지, 어디 다친 곳이 없는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살펴보았다.

16549475127359.jpg“아빠야?”

16549475093653.jpg“으, 응?”

16549475127359.jpg“저 검둥이 들여보낸 게 아빠냐구.”

찌릿 그 강인한 세주안이 겁을 먹은 듯 떨어대는 꼴이 애처로웠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아비를 쥐어 팰 기세였기에 어쩔 수 없이 천화가 나섰다.

1654947509364.jpg“미안합니다. 소저. 저 녀석은 제 친구인데 궁주님께서 친구를 소개시켜준다는 말에 잠시 흥분했나 봅니다.”

16549475127359.jpg“아! 그러셨군요. 소녀는 괜찮습니다.”

정중한 사과에 이번에도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천화에게 한눈에 반한 것이다.

1654947509364.jpg‘끄응. 임무 수행도 하기 전인데 왜 벌써…….’

그것을 천화도 곧장 알아보았다. 저 반응은 무신지로에서도 본 적 있는 것이니까. 무신지로를 플레이할 당시에도 이 소녀, 야수궁주의 딸 세주연이 자신에게 반해서 중원까지 쫓아온 것이다. 냉정히 말해 천화는 설영처럼 빼어난 미모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쌓은 친밀도와, 우락부락한 남만인들과 확연히 다른 외모 등으로 세주연은 그에게 처음부터 큰 관심을 보였다. 허나 그건 무신지로를 플레이하던 때의 이야기일 뿐, 이렇게 첫 만남부터 반응을 보일 줄을 천화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흑우 때문일까? 아니다. 세주연은 썩 흑우를 예쁘게 보지 많는 것 같았으니, 그건 아닐 터였다.

1654947509364.jpg‘그럼……?’

  [남만야수궁주의 딸 세주연과 마주쳤습니다.] [중원인에 대한 호기심이 높은 상태입니다.]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1654947509364.jpg‘젠장, 이거였군.’

그 이유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중원에 대한, 중원인에 대한 관심이 높던 터였기에 천화에 대한 호감도가 첫 만남부터 증폭된 것이다. 아무런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음에도. 물론 흑우가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영물을 다룬다는 것에서도 호감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천화는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집요함과, 야수궁주를 빼다 박은 힘과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6549475142042.jpg“크롱?”

그때,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요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야수궁주 세주안이 원래 소개를 시켜주려 했던 그의 영물이 세주연과 함께 있던 것이다.

16549475127355.jpg“이, 이게 무슨?”

세주연을 달래려는 듯 가만히 다가온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설영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의 외형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1654947509364.jpg‘미니 티라노사우루스라고 해야 할까?’

공룡. 정확히는 도마뱀 종류가 영물로 진화한 것인데, 그 모습은 천화가 알고 있는 티라노사우르스와 거의 흡사했다. 크기가 인간 아이 정도로 작기는 했지만, 거대한 머리와 흉악한 이빨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주기 충분하다. 게다가 다른 이도 아닌 야수궁주의 영물이니, 강함도 보장이 되었다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나? 작은 크기를 얕보았다가는 그 누구라도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천화는 녀석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슬쩍 눈을 피했다.

16549475112347.jpg“무우!!!!”

그 순간, 튕겨나갔던 흑우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끼이이익! 다시 세주연에게 애교를 부리려다가, 그녀의 옆에 선 공룡의 모습을 보고 급정거를 시도했다. 토옥? 하지만 단숨에 멈추기에는 달려오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급정거 시도에도 불구하고 흑우의 몸뚱아리는 관성을 이기지 못해 조금 더 나아갔고, 부들거리던 몸이, 아니 입에 아주 살짝 녀석의 주둥이 끝에 닿고 말았다.

16549475142042.jpg“크로옹!!”

퍼억!!!! 그와 동시에 날아든 녀석의 꼬리치기에 흑우의 몸이 다시 벽 너머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1654947509364.jpg‘저거, 지금 수줍어하는 건가?’

헌데 세주안의 영물이 보이는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처음에는 열이 받아서 흑우를 날려버린 줄 알았는데, 짧은 팔다리를 배배 꼬는 것이 마치 수줍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나? 순간 뭐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천화는 애써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다시 벽 뒤에서 기어나오는 흑우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타격 없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나오는 흑우가 더 대단해보일 지경이었다.

16549475093653.jpg“크하하하! 첫 만남부터 우리 롱롱이의 입술을 빼앗다니, 역시 배짱 두둑한 놈이구나! 이거 혼인이라도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오히려 흑우는,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조금 전 입맞춤이 처음이었음을 이야기하는 세주안의 모습에, 지금까지 보인 적 없던 두려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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