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금강토룡 (3)2021.04.27.
파츠츠츠츠츳!!! 혈마검의 핏빛 강기가 금강토룡을 베었다. 영초와 영물뿐 아니라 온갖 신묘한 광석들까지 먹어치우며 성장한 녀석답게, 금강토룡은 이름 그대로 금강석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설영의 공격은 혈마검만이 아니라 강기도 함께였다. 단단한 가죽이 베이고 피가 튀었다. 딱히 독혈을 지닌 것은 아니었기에 피가 위협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설영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얕아. 그리고 짧아.’
녀석이 워낙 빠른 속도로 몸을 휘돌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상처부위가 너무 작다. 설영이 최대한 길게 강기를 내리그어 상처를 내기는 했지만, 머리만 2장에 달하는 금강토룡의 거체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녀석의 화를 돋우는 역할만 했다. 부우우웅!! 뒤통수가 따끔해지는 것을 느낀 놈의 머리가 후진을 하듯 되돌아 설영을 후려쳤다.
“커헉!”
파괴력만이라면 밀리지 않지만, 물리력을 완전히 해소해내기는 어려웠다. 설영의 몸이 튕겨져 나갔고, 금강토룡은 그대로 설영을 집어삼킬 듯 흉악하게 생긴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이쪽이다!!”
그때, 천화가 왼손에 쥔 알 수 없는 구슬을 흔들며 녀석을 유인했다. 홰액-!! 그 순간 놈이 목표를 바꾸었다. 우선순위상 설영의 몸뚱아리보다 구슬을 더 우선으로 둔 것이다. 아직도 스멀스멀 구슬에서 피어오르는 냄새 따위는 녀석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금강토룡은 굉장한 능력을 가진 영물이지만 후각은 썩 좋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퇴화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형편없는 후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기운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 대한 집착은 그 어떤 영물보다도 뛰어났다. 그것이 놈의 1순위를 천화로 고정되게 만들었다.
‘일단 어그로는 끌었고.’
천화는 그 틈에 몸을 빼내며 알 수 없는 구슬을 비영사로 묶었다. 소지품 창에는 넣을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뒤, 몸을 빼냈다. 설영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큭!”
쿠과과광!!! 몸을 빼냈다고는 하나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역혈기공까지 사용하며 능력을 강화시켰지만, 상대는 거대한 덩치와 힘을 제외하더라도 절정 수준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괴물이었다. 게다가 무공도 아닌 순수한 육체 공격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세상 모든 무공을 알고 있는 천화라지만, 금강토룡이 사용하는 것은 무공이 아니기에 파훼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잡아본 놈에게 당할쏘냐!!”
때문에 천화는 철저하게 거리를 쟀다. 몸의 사정거리와 속도를 정확히 계산해낸 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나려타곤으로 몸을 날렸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가 무참히 쓸려나가고, 범위 안에 존재하는 것은 나무든 바위든 모조리 박살이 났다. 하지만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며 놈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었다.
“잔혼비검!”
퍼버버벅!!! 그사이 설영 역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일격으로 되지 않는다면 연격은 어떠냐! 한순간에 십여번이나 검을 떨치며 시선이 팔린 금강토룡의 몸뚱아리를 난자했다.
“쿠엑!!”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는지 녀석이 몸을 비틀거렸다.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며 몸을 털어 설영을 떨궈냈다.
“어림없지!”
하지만 설영은 절정에 이른 경신법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는 대신, 놈의 몸에 올라탔다. 정확히는 등 뒤에. 푸욱!
혈마검을 놈의 엉치쯤에 꽂아넣은 뒤, 검강을 일으킨 상태로 달리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아앗!!!!”
요란한 기합소리와 함께 금강토룡의 피부가 갈라졌다. 그대로 가죽을 벗겨버리겠다는 듯, 머리끝까지 솟구치며 설영은 계속 달렸다. 부웅! 부웅! 허나 그 시도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위기감을 느낀 금강토룡이 머리를 세차게 휘돌리며 저항한 것이다. 이 정도면 철퇴도 아니고 거의 기중기다. 팔이나 다리가 없이 뱀처럼 머리와 몸통, 꼬리뿐인 녀석이었기에 움직인 자체는 단순했지만, 육중한 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혔다간 어지간한 외공의 고수가 아니고서는 팔이 먼저 부러져 나갈 터였다.
“어딜 봐? 날 봐!”
그때, 천화가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놈의 머리는 여전히 회전하고 있었기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천화라도 불가능했지만 그렇기에 다른 꼼수를 사용했다. 쐐애액! 바로 비영사. 알 수 없는 구슬을 매단 비영사가 유성추처럼 놈에게 휘감겼다. 신체구조상 머리인지 몸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놈의 회전력을 이용하자 순식간에 몇 바퀴나 감겨버렸다.
“으아아악!!!!”
그리고 천화 역시 어쩔 수 없이 놈에게 딸려들어갔다. 머리를 휘두르는 방향으로, 항거할 수 없는 거력에 따라 이리저리 튕기듯 날아가는 것이다. 멀미가 치밀어오를 만큼 격한 움직임이었지만 참아야 했다. 단 한순간을 위해서.
“켓?”
잠시 후, 금강토룡의 회전이 멈추었다. 비영사에 행동을 제약 당해서? 아니다. 비영사가 질기고 예리하다 한들, 놈의 몸을 멈추거나 파고들 정도는 아니었다. 내공을 불어넣으면 상당한 압박을 줄 수는 있겠지만 타격을 주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다만, 그 끝에 달린 물건이 녀석의 시선을 끌었다. 시선 끝에 간신히 걸릴 정도였지만, 자신의 몸에 한데 묶인 알 수 없는 구슬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휘익- 휘익- 그와 함께 녀석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팔이 없는 까닭에 머리를 움직여 알 수 없는 구슬을 입에 넣으려 드는 것이다.
“뭐, 뭐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이 너무 짧았다. 천화가 조금만 낮게 그것을 매달았어도, 혹은 목이나 혀가 조금만 더 길었어도 어떻게든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묘한 위치에 휘감겨있는 탓에, 머리를 비틀고 혀를 길게 내밀어도 닿지 않았다. 그 모습이 굉장히 이상해 보였지만, 설영도 곧 그 이유를 파악했다. 놈이 완전히 그것에 정신이 팔린 사이, 설영은 혈마기를 끌어모으며 강력한 한 방을 준비했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시간을 준 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한낱 미물에게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것이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었다. 상대가 워낙 빠르고 거칠게 움직이는 통에 즉시 끌어올릴 수 있는 초식들만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과자 따먹기를 하듯 몸을 덜렁거리며 바보짓을 하고 있는 금강토룡을 바라보며 최대한 내공을 끌어모았다.
“일검혈천하!”
“오?”
혈마검의 두 배는 됨직한 핏빛 강기가 솟아오른다. 기합처럼 내지른 초식명에, 천화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혈마신공의 후반부 초식. 지금의 설영으로서는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벽 너머의 초식이 그녀의 몸을 차지한 혈마검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지이이잉- 순간 혈마검에서 솟구친 핏빛이 세상을 물들였다. 마치 색안경을 낀 것처럼,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투엣!”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금강토룡조차 닿지 않는 구슬과 씨름하던 것을 멈추고 설영을 돌아볼 정도. 견제를 위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얼른 바윗덩이를 뱉어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충분히 내공을 끌어모은 설영은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피하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서걱!
“?!”
바윗덩이가 베어졌다. 직경이 1장에 가까운 그것이 일검에 베어져 두 쪽이 난 것이다. 그러고도 혈마강기는 힘을 잃지 않았다. 금강토룡마저 한 번에 베어버리겠다는 듯, 거친 기세로 뿜어져나갔다.
“키에에에에엑!!!!!”
금강토룡이 다급히 몸을 비틀어보지만 피하기에는 늦었다. 녀석이 빠르다 한들 설영의 검강은 더 빨랐고, 피해내기에는 몸이 너무 컸으니까. 푸화아아아악!!! 육편이 터져나가는 찰진 타격음과 함께 녀석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흐하하하! 좋구나!!”
그것을 기꺼이 뒤집어쓰며 설영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영물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녀석이기에, 그 피에 담긴 생명력 또한 기존의 다른 놈들과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덕분에 설영은, 아니 혈마검은 소모한 것 이상의 힘을 흡수하며 연거푸 검을 떨쳤다.
“키학!!!”
금강토룡 역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자신의 원대한 꿈이 이런 곳에서, 한낱 인간 따위에게 저지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통이 엄습해오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피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럴수록 더욱 탐욕스럽게 설영을 씹어삼킬 듯 주둥이를 놀렸다.
“킬킬킬. 뭐가 그리 급하느냐? 느긋하게 놀아보자꾸나!!”
그러나 설영은 녀석과 정면으로 부딪혀주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장 승부를 낼 듯이 굴었지만, 놈의 피맛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뀐 것이다. 오히려 승부를 회피하고, 꾸준히 상처 부위를 재차 가격해 헤집으며 상처를 늘려갔다. 피가 멈추지 않도록 만들며 양껏 힘을 섭취했다. 상대가 강력한 영물일수록, 그 피를 머금을수록 무한히 강해지는 특성. 이것이 바로 천화가 믿는 구석이었다. 혈마검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기야 했겠지만, 녀석의 힘이라면 기회만 만들어주어도 충분히 금강토룡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거나 처먹어라!”
그때, 천화가 놈의 아가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자살을 하기 위해서? 그럴 리가. 도저히 잡히지 않는 설영을 대신해 천화라도 집어삼키겠다는 듯 크게 입을 벌린 녀석의 뱃속으로, 양손 가득 집어든 화섭자를 던져넣었다. 치이이이이익!!! 십여 개의 화섭자가 동시에 켜지며 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끼야아악!!!!”
뱃속이 뜨끈할 거다. 불을 꺼보려는 요량인지 금강토룡이 거대한 혀를 날름거려보지만, 처음부터 깊숙이 던져넣은 까닭에 될 리가 없다. 물론 놈의 거구를 생각한다면 화섭자 십여 개 쯤은 금방 저절로 꺼지겠지만, 속살은 조금 타거나 익어버리겠지.
“……오……!”
그때, 익숙한 울음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케엑?! 켓? 키에에엑!!!!”
그와 동시에 금강토룡이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아직 불이 안 꺼져서? 아니다. 화섭자가 한곳에 뭉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 정도쯤이야 속이 뜨끔한 정도에 불과할 터였다. 무신지로에서는 속성 분류가 큰 의미 없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토(土)의 속성을 지닌 녀석에게 불(火)은 상극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설영에게 당한 것보다 어쩌면 더 격하게 녀석이 반응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마도 내 예상이 맞은 거겠지.’
“무오오오오오!!!!”
금강토룡의 입에서 익숙한 흑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통째로 삼키기는 했지만 흑우가 아직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놈의 속살이 타는, 정확히는 고기 굽는 냄새에 반응한 것이겠지.
‘속살을 파먹고 있지 않을까?’
물론 생고기보다 익힌 고기를 더 좋아하는 녀석이다. 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품은 영물의 고기일수록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입에 맞다면 흑우는 안에서 놈을 뜯어먹을 것이다. 무신지로에서도 일부러 놈에게 삼켜져 내부에서 뚫고 나오면서 죽인 사례가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시도를 해본 것인데, 효과가 끝내줬다.
“지금이야, 공격해!”
천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설영과 함께 놈에게 들이닥쳤다. 몸을 배배 꼬며 뒹굴어 다니느라 아까보다 행동이 많이 둔해진 상태였기에, 지금이라면 천화 역시도 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혈마강천!”
“으랏차!!”
설영은 혈마신공을, 천화는 초식도 없이 무명검의 힘을 이용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강기를 머금은 혈마검에도 얕은 상처만 입었던 몸뚱아리였지만, 고작 충검을 활용한 무명검에는 종잇장처럼 잘려나간다. 이러니 무림인들이 신병이기를 찾아 목숨을 거는 것이겠지. 점점 놈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났고, 고통에 찬 비명 소리 또한 커져갔다.
“꾸르륵!”
돈왕 역시 살아있는지 울음소리로 자신의 생존을 알려왔고, 흑우와 함께 놈의 살점을 파먹기 시작했다.
“투엣! 투에에엣!!!”
결국 참다못한 녀석이 둘을 다시 뱉어내려 애를 썼지만 나오는 건 침뿐, 둘이 다시 입으로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이런! 막아!!”
그러자 금강토룡도 생각을 바꾸었다. 넝마가 된 몸뚱아리를 이끌고 황급히 어딜가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기어간다고는 하지만 몸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용수철이 튕기듯 쭉쭉 몸이 밀려났기에, 보법을 쓰지 않고서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을 한 천화가 다급히 소리를 쳤다. 하지만 설영이 뿌려대는 검강을 맞으면서도 금강토룡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호수?”
풍덩!! 호수를 발견하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냅다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쿠와아아아아아- 뱃속에 들어있는 흑우와 돈왕을 익사시키겠다는 듯, 양껏 물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