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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다시 중원으로 (3) (80/481)

<80화> 다시 중원으로 (3)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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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6390925.jpg‘무형보.’

무형보를 펼친 천화의 몸이 자유분방하게 이동했다. 보통의 보법이라면 최대한 힘을 폭발시키기 위해 특정한 경로를 밟는다. 하지만 무형보는 기운을 터트리고 폭발시키는 힘의 원리 그 자체와 같은 것이었기에, 준비동작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 최단거리, 최단시간으로 상대에게 도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천화의 검은 세주안의 턱 밑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16549476390929.jpg“제법이군. 실전적이야.”

까앙! 그러나 첫 일격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죽일 기세로 충검까지 사용해 내뻗은 검이건만, 세주안은 손등으로 검면을 후려쳐 검을 튕겨낸 것이다. 그나마 천화의 보법이 신기했기에 구경을 하느라 여유를 둔 것이지, 전력으로 했다면 천화의 손아귀가 찢어지고 팔이 꺾였을지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공격이 닿기도 전에 세주안의 주먹이 천화의 얼굴에 꽂혔거나.

16549476390925.jpg“회선각.”

16549476390929.jpg“호오?”

검이 튕겨나가며 균형을 잃었지만 천화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원심력을 이용해 오히려 뒤돌려차기를 꽂아넣었다. 일류에 손색이 없는 속도와 그것을 뛰어넘는 판단력. 세주안도 제법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게 통할 리 없다.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턱하고 천화의 발차기를 잡아내더니 그대로 몸뚱아리를 뜰어올려 땅에 내리꽂았다. 콰앙! 휘익-

16549476390929.jpg“?!”

그 우악스러운 손에 잡힌 이상 회피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천화는 다른 수를 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친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다 못해 반격까지 당했지만, 투지를 잃지 않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세주안의 발목을 노려간 것이다. 신체의 일부가 서로 닿아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기에 치명적일 수 있는 일격이다. 패앵!

16549476390929.jpg“좋군. 이번 건 꽤 날카로웠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세주안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가 발을 굴러 천화의 검날을 밟아버린 것이다. 검이 부들거리며 울음을 토해보지만 세주안의 걸음에는 자비가 없었다. 초식동물의 목을 물어뜯는 사자처럼 단호하게 밟아 비틀며 제압해냈다. 발바닥마저 단련시킨 세주안이 아니었다면, 조금만 빠르거나 늦게 발을 놀렸다면 오히려 발이 피로 흥건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주안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해내고서도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16549476390925.jpg“드롭킥!”

허나 그 정도야 충분히 예상했다. 내공을 제약한 것이지, 몸뚱아리가 약해지거나 감각과 기예가 무뎌지는 것은 아니니까. 때문에 천화는 그 즉시 검을 놓아버리고 양발을 모아 몸을 튕겼다. 내공을 가득 실어 세주안을 공격했다. 부웅! 그와 동시에 세주안의 일권이 천화의 양발을 노렸다. 그 순간, 가지런히 모아졌던 천화의 발이 변화를 일으켰다.

16549476390925.jpg“……은 훼이크고, 무영각!”

타다다닷!! 힘 대결로 가면 승산이 없다. 내공 대결로 가도 마찬가지. 내공 수위를 맞춰준다고는 했지만, 설령 천화의 내공이 더 많고 운용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만으로 세주안을 압도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천화는 난전을 택했다. 발바닥으로, 발끝으로 세주안의 주먹을 걷어차며 힘을 죽이고 방향을 전환시킨 천화의 발끝이 드디어 세주안의 몸을 두들겼다.

16549476390925.jpg‘젠장, 무슨 쇳덩어리를 차는 것 같네.’

걷어찬 것은 천화인데 발목이 시큰거린다. 내공으로 걷어찼기에 반작용도 더 큰 것이겠지만, 내공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발목이 부러지지 않았을까?

16549476390929.jpg“크하하하! 투지와 대응 능력은 훌륭하군!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자, 그럼 이제 초식도 좀 볼까?”

섬뜩한 생각과 함께 물러서는 천화를 보며 세주안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천화에게 무언가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감지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그 역시 처음 확인하는 것이다. 일단은 합격점. 천화의 임기응변도 마음에 들었고, 독기와 투지도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었으니 수월히 막아낸 것이지. 정말로 비슷한 수준의 무인이었다면, 아니 일류 무인쯤만 되더라도 벌써 발목이 잘리고 가슴팍이 함몰되어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검기를 사용한다면 상황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천화의 내공이 상승하거나 검기를 막아낼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춘다면 이야기가 다를 테니 상관없었다.

16549476390929.jpg‘흐흐흐. 하지만 이 형님께 발길질을 한 벌은 받아야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공 그 자체를 견식할 차례. 사실 처음부터 지킬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삼 초식은 양보했으니, 이제 자신이 선공을 취할 차례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세주안이 천화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16549476390925.jpg‘야수궁의 무공은 강하지만 정직하지.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본능적인 감각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하니까.’

하지만 그 투로는 천화도 익히 아는 것이었다. 첫 만남부터 저 주먹을 날려대서 곤혹을 치렀던 게 몇 번이던가. 강하고 간결하지만 투로를 안다면 충분히 예측하고 피할 수 있는 것이기에, 천화가 오히려 파고들어 검을 날렸다. 다만 아까 놓아버린 것과 같은 장검을 꺼낸다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소지품 창에 잠들어있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16549476390929.jpg“어딜!”

그 순간 세주안의 주먹이 펴졌다. 응조수. 매의 발톱과 같은 모습으로 손가락을 만들어 할퀴듯 움켜쥐듯 천화의 뒤를 노렸다. 휘익 그러나 천화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상체를 숙여 그것을 피해냈다. 급작스런 변화인 데다 무지막지한 근력으로 관성을 무시한 일격이었음에도, 세주안의 손은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16549476390925.jpg“으랏차!”

전갈차기. 천화는 상체를 숙인 김에 아예 뒷발을 올려찼다. 전갈의 꼬리처럼 요가하듯, 공중제비를 돌 듯 날아 세주안의 안면을 노려갔다. 가볍게 막히긴 했지만 그 반격에 세주안의 표정이 묘해졌다.

16549476390929.jpg“!!”

형의권. 동물의 모습을 본따 움직이는 권법은 꽤나 광범위하게 알려진 무공이지만, 지금은 소수 민족과 남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장된 것이었으니까. 동물의 형을 흉내낸다고는 하지만 그 진의를 깨닫기는 쉽지 않았다. 더불어 인간의 신체구조로 동물의 형을 흉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신체 단련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제대로 형의권을 펼칠 수 없는 이들이 형의권을 삼류 무공으로 매도한 것이다. 자신이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16549476390925.jpg‘말도 안 되는 소리지. 당장 야수궁주의 절기부터가 형의권의 변형인데.’

그렇기에 세주안 역시 천화가 형의권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대처는 여전히 민첩했다. 손바닥을 펼쳐 발뒤꿈치를 쳐내고, 거의 동시에 찔러오는 단검 또한 피해냈다.

16549476390925.jpg“컥!!”

피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발차기를 날려 천화를 걷어차버렸다. 천화의 몸이 몇 장이나 튕겨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작 발차기일 뿐인데 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으니까. 스윽 막는다고 막았는데, 힘의 차이가 워낙 컸던 탓인지 천화는 왈칵 피를 토한 뒤 거칠게 닦아냈다.

16549476390925.jpg‘어디 진짜로 해보자 이거지?’

다시 한 번 전의를 불태웠다.

16549476390929.jpg“그만!”

16549476390925.jpg“?”

그때, 세주안이 대련의 종료를 알렸다. 천화의 움직임을, 실력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16549476390929.jpg“내가 졌네.”

16549476390925.jpg“하지만…….”

16549476390929.jpg“조금 전의 일격이 만약 단검이 아니라 장검이었다면 내가 당할 수도 있었겠지. 아우의 실력이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은 무의미하네. 그러니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말게나.”

맞는 말이었고, 동시에 틀린 말이었다. 만약 장검이었다면 세주안에게 닿기야 했겠지. 그러나 저 강철 같은 근육을 과연 뚫어낼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렵지 않았을까? 무명검이나 혈마검 정도라면 모를까, 일반 장검으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세주안은 천화를 인정했다. 확실히 자신이기에 내공 수위를 맞춰주고도 이 정도로 상대한 것이지, 이류 수준의 무인 중에서는 적수가 없고, 일류급이라 해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더불어 천화에게는 검기조차 통하지 않는 검이 있지 않은가? 이 정도라면 능히 일류 수준, 그것도 최소 중상위 수준의 일류 무인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벽은 이런 식의 도움으로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본인의 깨달음이 중요한 영역이다. 설령 일류 끝자락에 있는 이라 해도, 천화가 내공만 조금 더 보충하면 쉽게 상대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끝내려는 것이다. 조금 더 했다가는 정말로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16549476390929.jpg“좋아. 그러면 아까 이야기했던 것을 들어주기로 하지. 자네에게 더는 이런 식의 수련 방식은 필요 없겠어. 그러면 영약을…….”

16549476390925.jpg“다른 이들과 대련을 하게 해주십시오.”

천화를 인정한다는 듯,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영약을 주겠다 이야기하는 세주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터져나온 천화의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16549476390929.jpg“……뭣?”

대련? 갑자기 대련이라니? 그것도 다른 이들과의? 순간 세주안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대체 천화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수준의 무인들이라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이라면 그럭저럭 상대가 되기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럴 것이라면 자신과 계속해서 대련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스스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자신이 지도 대련을 해주겠다고 하면 중원에서도 천금을 들고 쫓아올 이들이 어디 한 둘도 아닌데 말이다. 때문에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까지 했다.

16549476390925.jpg“정확히는 사람이 아니긴 하죠. 영물들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16549476390929.jpg“영물들과?”

16549476390925.jpg“예. 보셨겠지만 저도 형의권을 익히고 있거든요. 영물들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제야 세주안의 표정이 풀어졌다. 야수궁의 무인들이 아닌 영물이라니?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흐뭇해졌다. 형의권을 꼭 남만의 것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들만큼 동물의 형을 자세히 관찰하고 표현해낼 수 있는 이들이 또 어디 있겠나? 자연히 남만을 대표하는 무공이 형의권이 되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이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 이류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내공만 뒷받침 된다면 대성할 싹이 보이는 천화였기에 더 기쁘기도 했고.

16549476390929.jpg“크흠흠! 좋은 자세로군. 이런 기회가 또 없긴 하지.”

때문에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다. 천화의 부탁을 허락하는 한편, 한 가지 조건을 더 제시했다.

16549476390929.jpg“좋아. 하지만 이것은 받아주게.”

16549476390925.jpg“그게 무슨…….”

세주안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것을 확인한 천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눈이 동그래졌다.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린 목함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영약이었으니까.

16549476390925.jpg“구초영기단?”

아홉 가지 영초에 담긴 영기를 조합하며 만들었다는 남만야수궁의 비전 영약 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천화에게는 기쁜 일이었지만, 갑자기 이걸 왜?

16549476390929.jpg“흠흠. 아우의 실력이 뛰어남은 확인했지만, 이제 무림에 나가면 많은 위험이 닥칠 걸세. 실력이 뛰어남과는 별개로 충분한 내공이 없다면 위태로운 일이 많을 게야. 그러니 이건 내 선물로 받아주게. 내 아우가, 그리고 연아의…… 크흠. 아무튼 일류 수준의 내공 정도는 갖추어두어야 나도 마음이 놓이지 않겠나?”

뭔가 사위의 보양식을 챙기는 장인 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복잡한 감정 속에 세주안이 목함을 천화에게 넘겼다.

16549476390925.jpg“흐음,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헌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단 주는 것이니 받는다. 당장 섭취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조금만 더 운기를 한다면 기존의 내단에서 얻은 내공은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구초영기단을 섭취하고 흡수하기를 시도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지.

16549476390925.jpg‘뭔가 있나?’

다만, 세주안의 얼굴에 미세하게 서린 근심이 마음에 걸렸다. 천화에 대한 걱정과 염려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수상한 그림자가 세주안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이다. 그것을 포착한 천화의 예리한 질문에, 세주안은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16549476390929.jpg“그래, 미리 말해주는 것이 좋겠지. 아우가 악물 사냥에 나선 동안 중원에서 사람이 왔었다네. 자네와 설영 소저를 찾는 것 같더군.”

1654947639092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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