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용화지회 (2) (87/481)

<87화> 용화지회 (2)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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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낑 낑 당장이라도 천화를 향해 달려오려는 은룡을 당소련이 억지로 잡아끌었다. 무려 신수급의 존재이니 전력을 다해 뿌리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천화의 당부 때문인지 육체 능력은 그리 강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은룡이는 버둥거릴 뿐 당소련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16549477725422.jpg‘다행히 멈췄나 보군.’

좀 전부터 은룡이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알림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소련과 유모 모두 심령을 제압하는 것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일단 크게 반항적이라거나 공격적인 것도 아니니 지켜보기로 한 것이겠지. 당문 내부로 들어간다면 다른 수단들이 많이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은룡이를 제어할 방법도 그리 많지 않았고, 나이는 어리지만 당소련의 무공도 만만한 것은 아니니까.

16549477725431.jpg“아는 분들이십니까?”

16549477725437.jpg“아니오. 몰라요. 전혀.”

그 미묘한 기류를 읽은 것일까? 주최자인 양 당소련에게 다가간 남궁훈이 묻자, 당소련은 천화를 향해 짧게 눈을 흘기며 모르는 체를 했다. 자신이 억지를 부려 은룡이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어쨌든 당문이 왕처럼 행세 할 수 있는 사천 땅이기는 하지만, 명색이 정파를 대표하는 집단이니 사파나 파락호들처럼 다른 이를 위협하고 협박하여 빼앗았다는 것은 썩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니까. 더구나 이곳은 각 문파들의 후기지수들이 친목을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문파와 무공을 자랑질 하러 나오는 자리이기도 하지 않은가? 게다가 당소련은 처음으로 걸음을 하는 곳이니 조심하는 것이다. 누구도 당소련이 그 둘을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16549477725431.jpg“크흠.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소저를 뵙고 나니 조만간 무림이화가 아니라 삼화로 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하하하!”

실제 일어날 일이기도 하고, 상대가 당문의 여식이니 추켜세워주는 말이겠지만, 아름답다는 말이 싫지는 않은지 당소련이 살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쯤 되면 기존에 이화라 불리는 나예린과 이소란의 반응이 안 좋을 법도 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나예린은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표정을 지을 뿐이고, 이소란은 인사치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당소련이 아무리 예뻐진다 한들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맞장구를 치며 조잘거릴 뿐이었다. 그렇기 시작된 용화지회. 고작 일곱밖에 안 되는 조촐한 자리였고, 중대한 안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준비는 나름대로 거창했다. 서기까지 갖추어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옮겨적게 했고, 이 모임이 끝나면 중원 전역에 뿌려지게끔 했으니까. 물론 그들에게 불리한 이야기나 표현,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은 전음으로 전달하기에 담기지 않겠지만 말이다.

16549477725446.jpg“꺄악! 동생, 이 아이는 어디서 얻은 거야? 너무 예쁘다!”

16549477725437.jpg“아, 그게. 우연히 발견했어요.”

16549477725446.jpg“와, 정말? 당문은 좋겠다. 영물을 다루는 실력이 좋아서, 발견만 하면 길들일 수 있을 거 아니야?”

16549477725437.jpg“어, 음. 그렇죠?”

그래서인지 초반 화두는 단연 은룡이에 대한 것이었다. 슬쩍 천화와 설영의 눈치를 본 당소련은 마치 오래 전부터 제 것이었던 양 은룡이를 자랑했고, 이소란이 호들갑을 떨며 소란을 피웠다.

16549477725437.jpg“앗!”

그 틈을 이용해 은룡이 탈주를 시도했다. 당소련의 손길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뛰어오른 것이다. 스르륵- 허나 천화나 설영에게 간 것은 아니었다. 어딘지 친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나예린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소련과 달리 안정감 있는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 자리를 잡았다. 수룡인 녀석인지라 설산파의 기운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일 수도 있지만.

16549477725437.jpg“어, 언니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요.”

살짝 홍조를 띄우기는 했으나 그 매끈한 느낌이 싫은 기분은 아닌지 담담히 은룡이 머물도록 두는 나예린을 보며 당소련이 당황한 기색을 표했지만, 억지로 잡아 끌어낼 수도 없었다. 민감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데다, 차갑기로 유명한 나예린은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니까. 덕분에 조용하고 한산하던 주루가 꽤나 떠들썩해졌지만 감히 그들에게 나서서 뭐라고 할 만한 강심장은 없었다. 다들 그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혹여 주워듣는 정보가 있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용화지회는 일부러 정보를 흘리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16549477725431.jpg“슬슬 음식이 나오는군요. 일단 먹으면서 말씀 나누시죠.”

그러는 사이 속속 주문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분명 먼저 주문한 건 천화와 다른 사람들이건만 그들의 음식이 먼저 상에 올랐고, 당연하게도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에게 밉보였다가는 당장 7개 문파와 척을 지게 되는 것이니까. 그것은 천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그들의 문파가 겁나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때문에 조용히 풍광을 즐기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용화지회의 장소가 바뀌었듯, 중원을 떠나있는 동안 자신이 모르는 변화와 정보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16549477725431.jpg“……그렇다고 하더군요.”

16549477725446.jpg“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저희 속가 중 하나가 그 쪽에 있거든요.”

16549477725431.jpg“아, 화정문 말씀이시군요. 화정문주 황 대협께서 공명정대한 처사로 인망을 얻고 있다는 말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주로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뿐이었다. 속가에서 일어난 일이나 사파와의 마찰 혹은 누가 어떤 경지에 올랐다더라 하는 자랑 섞인 말과 서로를 금칠해주는 말들이 주를 이루었으니까.

16549477743409.jpg“헌데 문악이와 청수 도장께서는 아직도 무해에 머물고 있는 겁니까? 그곳으로 떠난 지가 꽤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당문에서 이만큼이나 고전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 대단한 진법인가 봅니다.”

그러다 은근슬쩍 제갈무기가 당소련을 도발했다. 제갈세가였다면 벌써 진법을 파훼했을 텐데라는 은근한 조롱이 깔린 말이었고, 당소련 역시 알아들었는지 표정이 굳어졌지만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오라버니였다면 언성을 높이며 함께 으르렁거렸겠지만 자신은 오라비를 대신하여 이곳에 왔을 뿐, 제갈무기와 견줄 정도의 위치와 무력을 갖추지 못한 까닭이었다.

16549477725437.jpg“수상한 이들을 함께 조사 중이라 신중을 기할 뿐이에요. 진법의 파훼에만 집중했다면 벌써 목적을 이루셨겠죠.”

하지만 오라버니가, 가문이 무시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살짝 언급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정보일 테니 슬쩍 언급한 것이었지만, 그 또한 제갈무기의 계략이었다.

16549477743409.jpg“흠.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16549477725437.jpg“아,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수상한 이들의 정체가 마교로 추정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주변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이것은 구파일방 오대세가 전체에 은밀히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그 외의 이들에게는 아니니까. 그런 기밀 사항을 간접적이나마 당소련이 말해버린 것이다.

16549477725422.jpg‘어리네, 어려.’

쯧쯧! 이런 간단한 수작질에 당하는 모습에 천화가 혀를 차는 동안, 당황한 당소련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튀어나온 말을 되돌릴 수는 없는 상황. 곤란한 듯 유모에게 눈짓하자 표정을 굳힌 그녀가 주변에 앉은 이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16549477743409.jpg[조금 전 이야기는 잊어주시기를 이 당모가 부탁드립니다.]

흠칫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하나,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다. 당씨 성을 언급하는 유모의 협박 아닌 협박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고, 유모는 그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겠다는 듯 훑어보았다. 혹여 이야기가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들을 찾아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듯이.

16549477743409.jpg“흠흠, 어쨌든 많이 곤란하다면 연락을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이 제갈무기가 한달음에 달려가 해결해드릴 테니. 하하.”

호의를 베푸는 듯하지만 은근히 속을 긁어놓는 제갈무기의 말에 당소련의 표정이 구겨졌다. 당문의 2패. 이 이야기가 전해지면 오라버니가 또 한바탕 성질을 부릴 것이 뻔했기에 당소련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분위기가 삭막해짐을 느낀 남궁훈이 끼어들었다.

16549477725431.jpg“제갈형께서도 좋은 뜻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당문이라면 능히 곧 해결해낼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벌써 해결하고 문악이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지요. 게다가 무당신룡 또한 함께라 하니, 무엇이 있든 곤란을 겪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보다, 제갈형께서는 요즘 어떠십니까? 듣자하니 매파가 줄을 선다고 하던데요.”

16549477743409.jpg“후후.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관심 없습니다. 제 외모와 능력만 보고 연을 이어보려는 이들보다는, 저라는 사람 자체를 알아보는 이와 혼인을 하고 싶거든요. 게다가 이렇게 중원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분들만 보다 보니 눈이 높아지기도 했고 말이죠.”

편을 들어주는 것인지 한 번 더 맥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남궁훈이 화제를 전환하자, 제갈무기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느끼한 말과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자화자찬을 하고 나섰다. 머리 좋기로 소문난 제갈세가일 텐데, 하는 말과 행동은 왜 이렇게 단순한지 모르겠다.

16549477725422.jpg‘슬슬 운을 띄워볼까?’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그들이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동안, 가만히 술과 요리를 즐기며 여유를 부리던 천화가 몸을 들썩거렸다. 그들이 퍼트린 몇 가지 정보는 제법 쓸 만했지만 대부분 알고 있거나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이제는 슬슬 자신이 나설 때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16549477725422.jpg“아참, 이따가 배에 타면 조심해야 해.”

16549477759027.jpg“응? 왜?”

천화가 슬쩍 운을 띄우자 설영이 덥석 물었다. 진짜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슬쩍 천화가 눈치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반응이 없다. 일부러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고,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섞여 잘 들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16549477725422.jpg“듣자하니 요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16549477759027.jpg“이상한 일?”

16549477725422.jpg“응. ‘수상한 자’들이 배를 나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고, 밤에 어떤 소리에 홀려 물에 빠지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대. 그렇게 사람이 없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배들도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지. 그 안에 있던 물건들도 모두 그대로라고 하고 말이야.”

쫑긋 그러나 좀 더 말이 이어지자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느껴졌다. 천화는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다. 당연히 거짓은 아니다. 천화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면 위로 떠오르며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들 일이지만,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이었다.

16549477759027.jpg“그런 일이 있으면 관에서든 주변 무림 문파에서든 조사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니야?”

16549477725422.jpg“나섰지. 그런데 번번이 허탕을 쳤다는 것 같더라고. 상대가 괴물인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출귀몰한 자라는 건 분명해.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집단이거나 주변에 협조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16549477759027.jpg“수로채는? 장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장강수로채의 짓일 수도 있잖아?”

16549477725422.jpg“그놈들은 아니야. 놈들은 수로에 거점을 만들고 통행료를 받잖아. 그런 일을 벌여서 손님이 끊기면 더 싫어할걸? 흠, 그런 걸 보면 수로채에서 먼저 흉수를 찾아낼지도 모르겠군.”

16549477725431.jpg“그 이야기, 좀 더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 값으로 술과 요리 값은 제가 대신 치르겠습니다.”

걸려들었다. 자기들끼리 하는 나지막한 이야기였지만 최소 일류급인 무림인들의 귀를 피할 수는 없던 것이다. 귀를 기울이고자 하면 천화와 설영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저 구석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이들이니까.

16549477725422.jpg“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16549477725431.jpg“아, 귀가 밝아 본의 아니게 두 분께서 나누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소개가 없었군요. 저는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훈이라고 합니다.”

천화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다가온 것은 한창 이야기를 주재하던 남궁훈이었다. 은근히 자신을 밝혀 천화가 이야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는 했지만, 제법 정중한 어투로 물어오는지라 천화도 곤란한 척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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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7725422.jpg“저도 주워들은 이야기라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목숨이 중해 조심하자는 뜻에서 한 이야기이니…….”

16549477725431.jpg“괜찮습니다. 틀린 이야기라 해도 탓하지 않을 테니, 가감 없이 말씀해주십시오.”

남궁훈이 나서자 나머지 용화지회의 구성원들도 자연히 천화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더불어 주변에 자리잡고 있던 상인들과 주변 문파의 인물들, 그리고 하오문에서도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천화가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기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용화지회의 인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보는 눈, 듣는 귀가 있으니 무시하고 지나가지는 못하겠지. 한번 조사라도 해볼 테고 잘하면 공을 세울 수 있겠지만 허탕을 칠 수도, 곤욕을 치를 수도 있을 터였다. 보모처럼 멀찍한 곳에서 그들을 따르는 이들도 있으니 큰 화를 입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전력을 고려하더라도 제대로 마주친다면 고생 깨나 하게 될 것이다. 상대는 다름 아닌 마교였으니까. 무해에서 만났던 탐마각과는 또 다른 마교의 세력인 흡혼각. 마교에서도 가장 사악한 수법을 펼친다는 그들이 장강 어딘가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천화는 기회와 위험이 뒤섞인 떡밥을 마지못해 풀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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