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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장강수로채 (3) (94/481)

<94화> 장강수로채 (3)2021.06.10.

다시 수채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수로채의 무인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기 바빴다. 무진과 천화, 설영이 무섭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채주 또한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대로 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필사의 항전을 해보는 것이 옳을까?

16549478547879.jpg‘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 고민을 천화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고작 세 명의 후기지수만으로 수로채 하나를 어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들을 데려간다는 것은, 놈들에게도 상당한 위험 부담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고민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16549478547885.jpg“천화 형님, 수로채주 정도면 그래도 말이 통하겠지요?”

16549478547879.jpg“글쎄. 워낙 자존심이 강한 놈들이기는 한데, 될 것도 같군.”

너니까. 무진이니까. 곤륜에서 모든 것을 걸고 키워낸 무진을 어떤 식으로든 해하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전쟁이다. 아무리 중원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곤륜이라 해도 수로채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문파의 미래를 꺾은 이들을 그냥 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물론 그들이 그것까지 알 턱은 없지만, 적당히 운을 띄우기만 해도 충분할 터였다.

16549478547879.jpg‘여기가 13채였지?’

또한, 천화에게는 장강수로 13채주를 설득할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16549478547879.jpg“조심해. 저놈들이 그냥 데려다주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쿠웅! 그때, 배가 격하게 흔들렸다. 결코 작지 않은 배임에도 물살이 거세지며 균형을 잃은 것이다. 놈들의 수채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16549478547904.jpg“뛰어 내려라!!”

16549478547904.jpg“하지만 또 배를 잃게 되면……!”

16549478547904.jpg“그럼 채주에게 맞아죽든가! 잔말 말고 튀어!!”

16549478547904.jpg“에라 모르겠다!!”

16549478547904.jpg“멍청한 놈들. 물고기 밥이 되어라!!”

그 순간, 배를 조종하던 놈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장강의 격랑에는 그들조차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이대로 수채에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16549478563067.jpg“으윽!”

쿠웅 쿵 쿵 쿵- 당연히 그들만 한 수공을 익히지 못한 세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은 더 낮다. 그 과정에서 배를 잃어버리게 될 테지만, 그보다는 채주에게 질책을 받을 것이 두려웠는지 놈들은 망설이지도 않고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16549478563067.jpg“천화!”

설영이 다급히 천화를 부르며 난간에 매달렸다. 무진 역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난간을 붙들었다. 경험이 부족한 그인지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오직 천화만이 팔짱을 낀 채 편안하게 갑판 위에 자리를 잡을 뿐이었다.

16549478547879.jpg“은룡아, 일단 멈춰봐.”

16549478563079.jpg“쀼우!”

16549478563083.jpg“?!”

은룡이 소리를 내지르자 거세게 휘몰아치던 물살이 그들이 탄 배 주변으로만 잠잠해졌다. 기우뚱거리던 배가 안정을 되찾았다.

16549478563079.jpg“쀼우우우…….”

허나 은룡이도 배 전체를 통제하기에는 힘이 드는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길을 따라 흘러갈수록 물살은 더욱 거세질 테니 그만큼 힘도 더 많이 소모가 될 터.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잠깐이면 족했다.

16549478547879.jpg“어쩔 수 없군. 건너가는 수밖에.”

16549478563067.jpg“건너간다고? 대체 어떻게?”

그때 천화가 저 멀리 보이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수채는 이미 가까워진 상태였다. 다만 징검다리 삼아 건널 만한 암초조차 없을 뿐. 수공을 사용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평생을 산속에서 살아온 무진이 수공은커녕 자맥질조차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부러 빠뜨리고 끌고 가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이 무식하게 센 놈이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구하려다 몽땅 같이 죽을 수도 있었기에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16549478547879.jpg“지금부터 요령을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

16549478563067.jpg“요령이라니 무슨…….”

16549478547879.jpg“시간이 없으니까 듣기만 해. 우리는 지금부터 물 위를 달려서 이동할 거야. 요령은 발끝에 내공을 모아 물을 밀어낸다. 이때, 물에 살짝 내공을 담아주고 물의 반탄되어 올라오는 힘을 다시 내공으로 딛듯이 차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물이 아니라 내공끼리의 반탄력을 이용하는 거지. 여기까지가 한 동작. 그 이후는 이걸 반복하면 되고. 쉽지?”

16549478563067.jpg“뭐?”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일까. 하지만 알고 보면 심오한 내공의 운용법이 포함된 묘리였다. 수상비라 불리는, 초절한 신법의 묘리이기도 했다.

16549478547885.jpg“수상비……입니까? 그런 원리였군요!”

그 옆에서 무진이 깨달았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본디 수상비는 절정의 무위를 갖추었더라도 신법과 내공 운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펼칠 수 없는 최상위 신법으로 분류되는 것이었기에, 자세히 파고 들자면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고인물인 천화이기에 최대한 단순화해서 알려준 것이다. 물론 그것을 바로 따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책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둘의 천재성이라면 대충이나마 흉내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다못해 이 근방의 격류 지역만 벗어날 수 있어도 섬으로 이동하는 것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

16549478547879.jpg“그럼 먼저 갈 테니까 따라와!”

16549478563067.jpg“야! 천화!!”

16549478563079.jpg“쀼! 쀼!!”

타다다닷!!! 무형보를 펼쳐낸 천화의 몸이 물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완벽한 수상비는 아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물살이 너무 세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천화의 상태에서 펼치기에는 내공 소모가 너무 컸으니까. 하지만 마치 초극의 고수처럼 편안하게 물위를 달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은룡의 덕분이었다. 천화의 몸에 감긴 채 이동 중인 은룡이 천화의 발밑을 조종하며 물의 흐름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물 자체를 응집시켜 반탄력을 일으키기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16549478547885.jpg“저도 갑니다!”

그 덕분에 은룡이 떠난 배가 다시금 뒤흔들리기 시작했지만 무진은 거침없이 그곳을 뛰어내렸다. 첨벙 첨벙 천화에 비해 심한 물보라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대로 빠지지 않고 다음 발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무식하고 과격해보이지만 어쨌든 수상비를 깨우친 것이다.

16549478547885.jpg“하하하하!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16549478547879.jpg“어우, 재능충 극혐.”

먼저 수채가 있는 섬에 도착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화의 표정이 살짝 질렸다. 자신조차도 저것을 익히기 위해 수백 번을 물에 빠졌건만, 무진은 어설퍼도 단번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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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8547879.jpg‘운룡대팔식 덕분인가?’

하기야, 곤륜파는 공중에서 여덟 번이나 몸을 뒤집을 수 있다는 운룡대팔식을 보유한 문파였다. 그것을 익힌 무진이 고작 수상비를 익히지 못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리라.

16549478563067.jpg“와, 이거 진짜였잖아?!”

16549478547879.jpg“……저걸 진짜 하네. 에잇, 더러운 세상!”

뒤이어 설영까지 수상비를 성공시키는 것을 보며 천화가 혀를 찼다. 그대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구해주고 생색 좀 낼 생각이었는데, 두 사람의 미친 재능이 그것을 허락지 않은 것이다.

16549478547879.jpg“어휴. 나도 얼른 임독이맥을 뚫고 공청석유를 퍼마시든 해야지 원…….”

물론 천재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가진 막대한 내공을 듬뿍 쏟아넣은 까닭에 더 쉽게 수상비를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많은 내공이 소모되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둘이 가진 내공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새삼 서러워진 천화였지만, 일단은 무사히 섬에 도착한 둘을 반기며 본격적으로 수채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16549478547879.jpg“모두 조심해. 다짜고짜 공격이 날아올 수도 있으니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기에, 발견되는 즉시 화살 따위를 날리거나 칼을 빼들고 달려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천화는 둘에게 주의를 주고, 수로채가 있는 방향을 짚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수적이기 때문에, 언제 정파나 군부의 공격을 받을지 몰라 수로채의 방비는 제법 세밀한 편이었다. 그들이 배를 몰아 접안하는 장소를 제외하면 온통 함정과 기관 따위가 가득 매설되어 있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꽤 효과적인 장치들이기에 어지간한 일류 고수라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화 일행은 그 어떤 함정에도 걸리지 않은 채 터벅터벅 섬을 오르고 있었다. 헤엄쳐서 수채에 도달하기, 수로채의 함정 모조리 격파하고 살아남기 등 여러 방송 콘텐츠를 진행한 바 있는 천화였으니까. 나중에는 하다하다 절대금지라는 마교의 뇌옥까지 들락거리던 천화였으니, 이 정도 함정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총채주가 있는 섬이라면 모를까, 고작 13채의 함정쯤이야. 상위 수채를 제외하면, 몇 번 수채냐에 따라 커다란 실력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척 봐도 함정 각이 보였고, 작동 방식까지 잘 알고 있었기에 마실 나가듯 유유히 걸어서 그곳들을 통과할 수 있었다.

16549478547885.jpg“저기 수채가 보입니다!”

콰앙!! 무진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수채를 가리킨 순간, 수채의 외벽이 폭탄 맞은 듯 터져나갔다.

16549478547885.jpg“저, 저는 아무것도……!”

그 공교로운 상황에 무진이 당황하며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아무도 그가 행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려면 전설 등급의 무공인 일지선쯤 되어야 할 테니까.

16549478547879.jpg“가보자!”

다만 수로채에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은 분명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여전히 함정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상황. 피해가려면 제 아무리 천화라도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천화는 치트키, 만능 열쇠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16549478547879.jpg“흑우야, 나와!”

1654947859235.jpg“무우우우!!!”

허공에서 거대한 체구의 검은 소가 튀어나왔다. 며칠 간 아공간에 들어가 있던 터라 반가웠는지 녀석은 얼른 설영에게 얼굴을 부벼댔지만, 왜 주인인 자신이 아닌 설영에게 그러는지 핀잔을 줄 시간도 없었다.

16549478547879.jpg“올라타!”

녀석의 등에 올라탄 천화가 소리치자 설영이 능숙하게 자리를 잡았고, 흑우를 처음 보는 무진이 당황하면서도 그 뒤로 올라탔다.

16549478547879.jpg“꽉 잡아!”

16549478547885.jpg“하, 하지만……. 으아아악!!!!”

천화의 뒤에 설영이 올라탔기에 어쩔 수 없이 설영의 허리춤을 붙잡아야 하는 무진이 주춤거렸다. 여자에 면역이 없다 보니 망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흑우가 엄청난 기세로 달리기 시작하자 하는 수 없이 설영의 허리를 꽉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쿠웅! 파바바박!!! 그물이 솟구치고, 화살과 독침이 날아들었다.

1654947859235.jpg“무오오오!!!”

철침이 박힌 단단한 철벽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흑우가 마음먹고 들이받자 말라비틀어진 흙더미처럼 가볍게 부서져내렸다. 투사체 형태의 함정들은 이미 흑우가 지나간 자리를 관통할 따름이었고, 바닥이 꺼지는 함정조차 가뿐하게 뛰어넘자 더 이상 그 어떤 함정도 그들을 막아세우거나 곤란하게 만들 수 없었다. 물론 그에 따라 상당한 소란이 일어났지만, 수로채에서 누군가 달려나오는 일조차 없었다. 이미 수로채의 내부가 난장판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16549478547879.jpg‘습격? 하지만 대체 누가?’

그렇게 단숨에 함정 구간을 넘어 달리는 와중에도 천화는 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유추했다. 이 시점에, 장강수로채를 공격할 만한 집단은 누가 있을까? 마교? 가능성은 높지만 아니다. 그들 역시 장강의 물길을 틀어쥔다면 중원 진출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설령 절정급 이상의 강자들만 모아 습격을 하더라도, 습격 인원들에게 제법 뛰어난 수공을 익히게 하더라도 평생을 물과 함께 살아온 수로채의 인원들을 잡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장강수로채의 총채주인 곽만후는 구파일방의 장로급과도 자웅을 겨룰 만큼 무공이 고강하고, 물에서 싸운다면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그러니 장강수로채를 완전히 손에 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향후 정사대전이 일어날 당시에도 마교가 수로채를 장악하거나 휘하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지. 허면 누가 있어 이들을 습격한 것일까? 천화조차도 선뜻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다른 문파로 변장을 하고 이간계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수로채를 습격할 이유도, 그만한 배포를 지닌 문파도 없는 것이다.

16549478547879.jpg“흑우야, 더 빨리!”

1654947859235.jpg“무웃!!”

적어도 상대가 누구인지는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무신지로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아니 적어도 알려지지는 않았었으니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16549478547879.jpg“어? 저놈들은……?”

수채의 안쪽으로 달려들어가자 청색 무복과 복면을 휘감은 이들이 수로채의 인원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는 무엇 하나 특정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천화는 그들을 보자마자 정체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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