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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해남파 (1) (95/481)

<95화> 해남파 (1)2021.06.13.

해남파. 간밤에 천화가 쓸어버렸던 물귀신들에게 남해삼십육검을 전수했던 호구, 아니 무인들이었다. 나름 정통성을 지니고는 있으나 현재는 문파에서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숨어살던 이들. 이들이 왜 갑자기 장강수로채를 공격하고 있을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중원에 적을 만들수록 불리해질 텐데 말이다.

16549478679755.jpg“이쪽으로!”

그들의 움직임과 방향을 살피던 천화가 어느 한곳을 지목했다. 그러고는 가장 먼저 몸을 날리며 습격 중이던 청의의 복면인을 공격했다. 휘리리릭! 천화의 접근을 눈치챈 청의인의 검이 한순간 십여 개로 분화했다. 변화의 극을 이루었다는 남해삽십육검을 제대로 수련한 자의 일격이었기에, 한순간 눈이 현혹되고 무엇이 실체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워졌다.

16549478679755.jpg“어디서 장난질이야? 손모가지 날아가려고!”

까앙!!! 그러나 천화는 담담하게 혈마검을 떨쳤다. 나름대로 현란한 공격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모두 보였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다면 변화에 다시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식이라는 것은 가장 잘 통하는 투로를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에 변검의 경우, 처음 만난 상대를 대상으로는 초식을 그대로 펼치는 경향이 강했다. 그 투로를 천화가 모두 꿰고 있던 것이고. 순식간에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낸 천화가 검신의 하단을 때렸고, 상대를 순간적으로 검을 놓치며 튕겨나갔다.

16549478679763.jpg“누, 누구?”

16549478679755.jpg“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얼른 싸우기나 해요!”

16549478679763.jpg“어? 어! 그래!”

덕분에 그와 싸우던 수로채의 무인이 목숨을 건졌지만 피아를 식별할 새도 없이 다시 전장으로 내몰렸다. 천화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적의 적은 아군인 셈이니까. 그 광경을 본 다른 수로채의 인원들도 잠정적으로 천화 일행을 아군이라 판단했고, 살짝 경계하긴 했지만 먼저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았다. 그사이, 천화는 청의인들을 하나씩 밀어내며 목표 지점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16549478679755.jpg“역시 그런가.”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했다. 쇠창살로 만들어진 우리 속에 갇힌 몇몇의 인원들을. 해남파의 잔당들은 아마도 붙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공격한 모양이었다.

16549478679779.jpg“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저놈들은 또 누구고.”

제각기 공격을 방어하고, 청의인들을 날려버린 설영과 무진이 금방 천화를 뒤따랐다. 흑우는? 딱히 역소환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무시무시한 덩치와 흉악한 얼굴을 보고 덤벼드는 이들은 없었기에, 홍해를 가르듯 전장을 가로질러 천화의 곁에 선 상태였다.

16549478679755.jpg“포로를 구출하러 온 모양이야. 돈이 필요했던 건 아무래도 저 청의인들과 한판 붙은 뒤에 손해가 컸기 때문인 것 같은데.”

16549478679787.jpg“음, 그럼 누구를 도와야 하는 겁니까?”

이렇게 되자 무진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로채주와 담판을 짓기 위해 온 것이니, 청의인들을 일단 물리쳐야 할까? 하지만 어쨌든 수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저들 역시 피해자 일 수 있는데? 전후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곤란한 모양이었다. 명색이 곤륜의 도사이니, 함부로 누군가를 예단하고 검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겠지. 더구나 절정 수준의 고강한 무공을 지닌 그이니, 그가 참전한다면 힘의 균형은 급격히 무너질 수 있으니까.

16549478679755.jpg“일단은 수로채를 돕는다.”

16549478679787.jpg“하지만…….”

16549478679755.jpg“괜찮아. 대신 저들을 죽이지는 말고 최대한 수채에서 밀어내는데 주력해봐.”

16549478679787.jpg“알겠습니다!”

천화의 대답에 머리가 맑아졌는지 무진이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를 해하지 않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습격을 한 것은 청의인들이고, 자신들은 수로채주에게 볼일이 있으니 이들의 원한은 미루어두고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 뒤 수로채주를 설득하거나 화해를 주선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림의 은원이란 그리 간단하게 중재되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만, 천생 도인인 무진은 그렇게 믿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6549478679787.jpg“모두 물러서시오!!!”

콰아아앙!!! 마음속 근심과 잡념이 사라지니 무진은 어마어마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뚫고 오는 동안 청의인들을 상대한 것은 몸풀기조차 되지 않는다는 듯, 일합에 상대를 몇 장이나 밀어내는 괴력과 웅후한 내공을 선보이며 수로채의 무인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로채의 무인들이 청의인들에게 일격을 날리려하면 교묘하게 끼어들어 공격을 비껴나가게 만들고, 오직 청의인들을 밀어내는 것에 주력했다.

16549478679779.jpg“정말 괜찮은 거야? 아무리 수로채주에게 볼일이 있다지만…….”

그러나 설영은 조금 망설였다. 최소 일류 이상, 그리고 절정급의 무공까지 갖춘 저들의 무공에서는 현묘한 기운까지 느껴지고 있으니까. 마교나 사파 따위와는 명백히 다른 기운이기에, 저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저들의 동료가 잡혀있기도 하고. 이 또한 편견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천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49478679755.jpg“괜찮아. 저 녀석들과는 따로 볼일이 있거든.”

역으로 저들을 도와 수로채를 격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터였다. 저들은 해남파의 정예라고 할 수 있으니 가능성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 그러나 저들이 동료를 구출한다는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내빼버린다면? 자신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오히려 수로채의 무인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게 될 터였다. 물론 저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들을 구해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선주와 상인들의 안전 또한 보장할 수 없었다. 자신들을 버리고 배에서 뛰어내린 이들 중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은 이들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살아남아 돌아오고 있는 중일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수로채를 돕는다. 그만큼 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겠지만, 그것을 단번에 뒤집을 방법 또한 천화는 알고 있었다.

16549478679755.jpg“일단 채주부터 구하자.”

16549478679779.jpg“흠, 알겠어.”

천화의 대답을 들은 설영은 더 이상 반문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이미 무진이 양떼 속의 호랑이처럼 전장을 누비고 있으니 저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오히려 수세에 몰려 있는 수로채주의 쪽으로 몸을 날리며 청의인들에게 달려들었다.

16549478679763.jpg“웬 놈들이냐!!”

16549478679755.jpg“웬 놈들이시다!!”

쩌엉!! 최대한 빠르게 수로채주를 제압하려던 그들을 가로막으며 천화와 설영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16549478679763.jpg“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소!”

천화와 설영의 정체는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어느 편에 섰는지는 명확했기에, 수로채주가 감사를 표하며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 역시 절정급의 무인이었고, 같은 수준의 복면인들에게 협공을 당하다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자 제대로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6549478679763.jpg“일파참!”

수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문 무공인 이십칠파도(二十七破刀)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쩌어엉!!! 패력이 가득한 그의 도법은 어떤 의미에서 남해삼십육검의 상극이었다. 남해삼십육검은 일검이 수십으로 쪼개지는 듯한 변화를 품은 절세의 검법이지만, 그만큼 일검에 담긴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연계하고 누적시켜 점점 큰 힘을 발휘하기에 중반부를 넘어서면, 어지간한 패력에도 버티거나 찍어누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일수에 강맹한 힘을 떨쳐버리면 공격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16549478679763.jpg“손모가지를 날려주마!!”

특히나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수로채주의 도가 놈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중심인 손목을 노려갔다는 것도 중요했다. 변화의 핵을 공격당하니 물러나느라 변화가 줄어들었고, 그만큼 검법의 위력도 죽은 것이다. 단숨에 맞서던 복면인이 튕겨나갔고, 수로채주는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16549478679779.jpg“원류삼풍!”

그사이 설영은 적들의 사이에서 원류검법을 펼쳐 물러나게 만드는 중이었다. 검법 자체의 우위로 따지자면 당연히 남해삼십육검이 위였지만, 다른 이가 아닌 설영이 펼치는 원류검법에는 혈마신공의 묘리까지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원을 그리듯 회전하며 사방을 장악하니 단신으로 두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고, 혈마검의 불편한 기운이 상대의 변화를 가닥가닥 끊어놓으니 저들 역시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저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빈다면 설영 또한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피해와 전멸을 각오하고 덤비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16549478679755.jpg“위, 아래, 위, 위, 아래. 그쪽이 아니라니까!”

그럼 천화는? 딱히 무공이랄 것도 없었다. 공격이 뻔히 보이고 예측되니 피하고 때릴 뿐이었다. 그래도 죽이거나 심각할 상처를 입힐 생각은 없었기에, 검면으로 손목을 때리며 무력화시킬 뿐이었지만 아주 착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16549478679763.jpg“제길, 모두 물러나라!”

그렇게 수십 합의 공방이 오가자, 복면인 측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최대한 수로채의 고수들의 발을 묶고, 포로로 붙잡힌 동료를 구출해내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으나 그것이 무산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내린 퇴각 명령이었다.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이후에는 수채의 방비가 더욱 삼엄해질 테니 이번과 같은 기습이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이 있겠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더 큰 희생을 낼 수는 없었기에 빠른 판단을 내렸다.

16549478679763.jpg“쫓지 마라!”

빠르게 물러나는 청의인들을 보며 수로채주 역시 결단을 내렸다. 저들을 추격하며 최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수로채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저들이 구출하려던 자들도 여전히 자신들의 손에 있으니, 기회는 또 있을 터였다.

16549478679763.jpg“출구를 봉쇄하라!”

16549478714739.jpg“……?”

그리고 그들이 모두 물러났을 때, 수로채주는 이해 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16549478679787.jpg“무슨 짓이오?”

습격을 당했으니 혹시 모를 재습격이나 함정에 대비해 정비를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자신들을 도와준 천화 일행을 포위하듯 둘러싼 모습이라니? 무진이 억울한 듯 소리를 높였지만, 그들을 포위한 수로채의 무인들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수로채주 역시 잔뜩 기세를 피워올리며 그들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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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78679763.jpg“일단 그대들의 도움은 고마웠소. 하지만 그대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덥석 믿으라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지. 저들과 그대들이 한패일지 모르는 일이지 않소? 당장 그대들이 저 치들을 격살하는 것을 보지도 못했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의심이기는 했다. 천화 일행이 그들을 도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죽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로지 쫓아내는 것에만 집중을 했기에, 오히려 자신들을 속이려고 이중 작전을 펼친 것이라 의심할 수도 있었다.

16549478679787.jpg“한패라니! 이것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허나 무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천하의 곤륜파가 무엇이 아쉬워 그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호의와 도움을 이런 식으로 갚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무진이 버럭 화를 내며 억울함을 표했지만, 수로채주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을 전적으로 믿기에는 강호밥을 너무 오래먹었으니까.

16549478679755.jpg“워워, 진정해.”

그것을 알기에 천화가 무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으로 대신 나섰다. 그리고 자신을 포위한 무리 중 한 명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 자신들과 배를 버리고 도망쳤던 무리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16549478679763.jpg“그대가 곤륜의 도사라는 것을 믿기도 어려울 뿐더러, 곤륜이 무슨 이유로 우리를 찾아온단 말인가? 도움은 도움이지만 확실하게 할 건 해야겠지.”

곤륜의 도사들이 사용하는 도포와 구름 문양을 보고도 섣불리 상대를 믿지 않는 채주를 보며 천화가 입을 열었다.

16549478679755.jpg“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자에게 물어보면 간단할 것 같군요. 우리는…….”

차분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채주의 생일을 핑계로 돈을 걷으려던 이야기부터, 그들을 제압하고 채주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곳으로 오던 중 그들이 자신들을 수장시키기 위해 배를 버리고 도망친 일 등을 간략히 설명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이곳에 온 일차적인 목표였으니까. 그러자 채주의 표정이 굳어지며 살아돌아온 수하를 지목하여 되물었다.

16549478679763.jpg“저 말이 사실이냐?”

16549478679763.jpg“채주님, 그것이…….”

추가 요금을 받으려했던 것이 채주의 명은 아니었는지, 놈이대답하기를 주저했다.

16549478679763.jpg“못난 놈들. 저놈을 가둬라! 저놈과 함께 영업을 나갔던 놈들도 몽땅!”

그 모습에 채주는 확신을 가졌는지 단호하게 대처했다. 그러나 그것이 천화 일행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은 아니었다.

16549478679763.jpg“그대들의 말이 사실이란 것은 알겠으나, 그 또한 곤란하군. 장강에서 우리 수로채의 영업을 방해한 것이 아닌가?”

그들의 입장에서 영업을 방해당한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신들을 도와주긴 했지만 수로채의 행사를 방해받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니, 상대가 곤륜이라는 이유로 물러선다면 체면이 살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꼬투리를 잡듯 다시 그들을 몰아세웠다.

16549478679755.jpg“그럴 리가요. 부하 단속을 대신해드린 거죠.”

쩔렁 하지만 천화는 지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선주가 처음 그들에게 주었던 전낭을 내려놓았다.

16549478679755.jpg“통행료입니다.”

이렇게 되면 채주인 그를 대신해 월권을 행사하던 부하를 혼내준 것이 된다. 물론 자잘한 문제들이 있기는 했지만, 억지를 부린다면 충분히 서로 묵인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채주는 고민했다.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천화 일행이 자신들에게 대항한 것은 맞으니까. 자칫 잘못 넘어갔다가는 자신의 위신이 서지 않을 수 있었다. 부하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한 멍청이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때, 천화가 은밀하게 전음을 날렸다. 그의 판단을 도울 한마디를 던졌다.

16549478679755.jpg[이쯤에서 넘어가시죠, 채주. 아니 춘앵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사내 중의 사내라고 자부하는 장강수로채의 채주에게 춘앵이라니? 허나 그 전음을 들은 채주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그의 은밀한 취미인 여장을 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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