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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비형칠검 (1) (110/481)

<110화> 비형칠검 (1)2021.07.18.

무인으로서 명성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첫째는 단연 전쟁이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처럼, 정사대전으로 대표되는 마교와의 전쟁은 수많은 영웅들은 탄생시켰으니까. 두 번째는 의외로 군문에 투신하는 것이다. 그쪽 역시 변방에서 꾸준히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도 한 데다, 따로 무림에서의 명성과 군문에서의 명성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군문을 통해 얻은 명성도 다시 무림에 나왔을 때 통합하여 적용되니까.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유를 제한당한다는 것 때문에 선호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 방법은 바로 남의 명성을 빼앗아오는 것이다. 이미 명성이 높은 이를 찾아 쓰러뜨리고 그가 가진 명성을 가져오는 것. 자칫 명망 높은 이와 겨루었다가는 악명만 쌓일 수 있지만, 이름난 사파인들이야 얼마든지 있었으니 그 또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대뜸 쳐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들이 명성 낮은 자들을 상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제법 격차가 나는 명성을 지녔다하더라도 맞붙고, 명성을 옮겨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했다. 차근차근 임무 반복 노가다를 통해 자잘한 명성을 쌓기보다 최소 수준의 명성을 맞추고 단 번에 상대의 명성을 탈취하는 편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한을 사기는 하겠지만, 그 또한 약간의 작업만 해둔다면 대놓고 해코지를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16549481154728.jpg“먹음직스러운 놈들은 제법 있긴 하지만…… 일단 최소치부터는 맞춰야겠지.”

다시 길을 떠난 천화가 선택한 것 또한 이 세 번째 방법이었다. 이미 무력이야 충분하니 적당한 일류 고수들부터 찾아 쓰러뜨리고, 가능하다면 절정 고수까지 쓰러뜨리려는 것이다. 당장 그들과 같은 젊은 후기지수들 중에 절정급의 무위를 갖추었거나, 절정 고수와 겨룰 수 있을 만한 실력을 지닌 이들은 대문파의 미래를 짊어진 몇몇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을 테니 단번에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 그 정도면 먼저 찾아가지 않더라도 배첩을 지닌 이들이 먼저 와서 줄을 대려고 할 터였다.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면 일류 고수급으로만 명성을 쌓다가 추천장을 부탁해도 되고.

16549481154733.jpg“이게 다 뭐야? 교역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명성 뻥튀기, 혹은 명성 배팅이라 불리던 그 방법을 쓰기 위해서도 기본적인 명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천화가 준비한 것은 중앙이 불룩하게 솟은 꽤 커다란 수레였다. 비단으로 위를 덮어 내용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단 가림막부터 비단을 사용할 정도라면 꽤나 값나가는 물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설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를 가려고 이런 걸 준비한 것일까? 통 통

16549481154733.jpg“……?”

비단 덮개를 들추고 상자를 두드려본 설영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건 마치 속이 빈 것 같지 않은가?

16549481154728.jpg“그거 비었으니까 궁금해할 것 없어. 이리 와서 묶는 거나 좀 도와주던가.”

16549481154733.jpg“비어?”

16549481154728.jpg“어. 그거 미끼거든. 낚시를 하려면 미끼가 필요하니까.”

16549481154733.jpg“……?”

설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천화는 음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가까운 마을에서 간단한 정비를 마친 천화와 설영은 다시 흑우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흑우에게 거창해 보이는 수레가 딸려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수레가 흑우의 속도를 버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잠시 달리다 흑우를 멈춰세운 천화의 손짓 한 번에 간단히 해결되었다.

16549481154728.jpg“쩝. 역시 안 되나? 어쩔 수 없지.”

스르륵 천화가 수레를 통째로 소지품창에 넣어버린 것이다. 짐을 잔뜩 실은 수레가 그 자체로 하나의 물품처럼 분류되어 소지품창의 한 칸을 차지했다. 덕분에 홀가분해진 흑우는 제 성질대로 달리기 시작했고, 곧 천화가 목표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16549481154728.jpg“이쯤에서 슬슬 다시 달아두고…….”

상인들이 종종 오가는 산기슭. 녹림은 아니지만 산적들이 자주 출몰을 한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무당파가 호북의 패자라고는 하지만 이런 구석구석까지 살필 수는 없기 때문인지, 근처에 무파가 있음에도 설치는 산적들은 곳곳에 있었다. 천화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흑우에게 다시 수레를 설치한 천화는 지시를 내려 천천히 걷도록 만들었고, 내공까지 갈무리하며 평범한 마부의 행세를 했다. 그리고 약 이각의 시간이 흐른 후, 입질이 왔다.

16549481154769.jpg“거기 정지!”

타다다닷- 산비탈을 타고 뛰어내려온 일단의 무리가 그들의 앞과 뒤를 막은 것이다.

16549481154728.jpg“3인 이하로 움직일 경우 나타날 확률 20%, 수레의 짐이 수레 높이보다 높게 쌓였을 경우 10% 추가, 내공을 감추거나 무공 수위가 일류 미만일 경우 20% 추가. 수레에 비싸 보이는 무언가가 보일 경우 20% 다시 추가. 7할이면 충분하다고 내가 말했지?”

흑우의 등에 탄 천화가 그것 보라는 듯 그들이 아닌 설영에게 시선을 주며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지만, 산적들은 개의치 않았다.

16549481154769.jpg“가진 것을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16549481154769.jpg“어? 두목, 저기 여자인 것 같은데요?”

16549481154769.jpg“뭣? 으흐흐! 그렇다면 추가하지. 그년도 내놓고 가라.”

흔해 빠진 말들을 지껄이며 음흉한 시선으로 수레와 설영을 훑어볼 따름이었다.

16549481154733.jpg“정말 이게 명성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단 말이지?”

16549481154728.jpg“그렇다니까. 다음 마을에 이놈들을 끌고 가면 돈도 벌고, 명성도 올리고. 일석이조로 이득을 취할 수 있지.”

16549481154733.jpg“좋아. 그럼 잠시만 기다려. 이 녀석들에게는 호된 매질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16549481154728.jpg“얼마든지.”

그 순간 설영이 흑우의 등에서 뛰어올랐다. 감추고 있던 내공을 드러내며 매정한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놈씩. 굳이 검기까지도 필요 없었다. 놈들의 무공 수위는 고작해야 삼류였고, 두목이라 불린 자만이 간신히 이류에 걸쳐 있었지만 익히고 있는 무공의 수준이 달랐고, 경험이 달랐다. 뒤늦게 설영이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린 녀석들이 도망쳐보려 하지만 신법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에, 몇 걸음 떼지 못하고 혈도를 제압당하거나 운이 나쁘면 근육이 잘리고 말았다.

16549481154728.jpg“읏차!”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신, 천화는 수레 위에 있는 빈 상자들의 뚜껑을 여는 작업을 했다. 설영이 그들을 남김없이 제압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쓰러진 놈들을 짐짝처럼 옮겨 상자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천화의 언질이 있었기에 설영이 표독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살수를 펼치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야 더 많은 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으니까.

16549481154728.jpg“산채는 어느 쪽이지?”

16549481154769.jpg“그, 그건 말할 수……!”

16549481154769.jpg“저기! 저 비탈을 따라 올라가면 반각이면 도착합니다요!”

빠르게 손절각을 잡은 수하 때문에, 수레 위 남은 상자에는 놈들의 산채에서 찾은 물건들이 담겼다. 어설픈 산적 집단인 만큼 가진 것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천화는 악랄하게도 돈이 될 만한 것은 개밥그릇 하나까지도 탈탈 털어 소지품창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수레로 돌아와 남은 빈 상자들 안에 그것들을 쌓았다. 그래봤자 무기류를 제외하면 은자로 환산해도 10냥이나 될까 말까한 수준의 잡동사니에 불과했지만,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천화가 하려는 것은 기행이니까. 오히려 값어치가 많이 나가는 것들을 얻는다면 열이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16549481154769.jpg“저, 저놈들은?”

16549481154769.jpg“무사님이 산적들을 잡아오셨다!!”

그렇게 산적과 그들의 물건을 담고 산을 내려오자 마을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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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접한 실력으로 인해 설영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하기는 했지만, 이래봬도 인근에서는 제법 악명을 떨치던 산적들인 것이다. 덕분에 관아에서도 현상금을 걸어둘 정도였으니까. 천화와 설영은 일단 그들을 지나쳐 관아로 향했다. 그들을 관아에 인도하고, 그들에게 걸린 현상금을 차지하자 명성이 상승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임무 ‘현상수배’를 완료하셨습니다.] [명성이 200만큼 상승합니다.] 고작 이류 무인이 두목이라서인지 명성의 상승은 크지 않았다. 정확히는 애매하다고나 할까. 아주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천화와 설영의 무력을 생각할 때 많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수준인 것이다. [임무 ‘정의구현’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이 200만큼 상승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있기에 괜찮았다. [정의구현][기한한정][반복 임무] 소림사에서 무림대회의 개최를 공표했습니다. 무림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중원 전역에서 산적 소탕 등 협행을 진행할 경우, 획득하는 명성이 두 배가 됩니다. - 성공 조건 : 협행 완료 - 성공 보상 : 명성 2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만큼, 그들을 털어먹으려는 산적이나 사파들도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약 화를 당할 경우, 정파의 힘을 보여주려던 소림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소림에서 수작을 부렸다. 협행을 할 경우, 명성을 2배로 쳐주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협행을 독려하고, 산적과 사파 무리의 행동을 위축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이유와 의도가 어찌되었든 단기간에 명성을 올려야 하는 천화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16549481154728.jpg‘개꿀이지.’

일종의 명성 수치 2배 이벤트 같은 것이니, 제대로 단물을 쪽쪽 빨아먹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관아를 돌아나온 천화는, 마을의 가장 큰 공터로 이동해 흑우가 끌고 있는 수레에서 상자들을 내려놓았다.

16549481154728.jpg“이것들은 산적들의 산채에 있던 것들입니다. 이것들로 여러분의 상처가 치유되진 않겠지만, 그들에게 무언가를 빼앗기셨던 분들이 있다면 와서 가져가십시오. 다만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여 양심껏…….”

16549481154769.jpg“우와아아아아아아!!!”

16549481154769.jpg“최고다!!”

16549481154769.jpg“비켜! 이건 내가 잃어버린 거라고!!”

16549481154769.jpg“웃기고 있네! 넌 저 산길로 간 적도 없잖아!”

마을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모조리 풀어버렸다. 잡동사니에 가까운 것들이 많고, 실질적으로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이미 팔아 병장기와 식량 따위를 구입하는 데 써버린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공짜였으니까. 때문에 정말 산적들에게 당한 적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엉켜서 물건을 집어갔지만, 천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까지 공정하게 해줄 방법은 없으니까. 대신 다른 방식으로 불만을 무마시켰다.

16549481154733.jpg“줄을 서세요! 곡식은 한 사람 당 딱 한 됫박씩만 나누어드릴 겁니다!”

사람들은 천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다투어 물건들을 집어가는 동안, 설영은 그 옆에서 목청껏 소리를 높였다. 잡다한 물품들이야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지만, 곡식의 경우 분명 욕심을 내서 가마니째 들고 가려는 이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설영이 직접 딱 한 됫박씩만 곡식을 나누었고, 그 무서운 산적들을 가볍게 때려잡은 두 사람에게 직접 행패를 부릴 만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16549481154728.jpg‘전시 효과도 있고, 딱 좋지.’

게다가 이처럼 한 됫박씩 곡식을 나누어주면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길게 보여주며 소문이 퍼질 시간도 벌어주었기에, 효과는 꽤나 좋았다. [임무 ‘구휼’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이 300만큼 상승합니다.] [임무 ‘정의구현’을 완료하셨습니다.] [명성이 300만큼 상승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천화와 설영이 산적들에게서 빼앗은 물건들을 모조리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자, 관아에 놈들을 넘겼을 때보다 큰 명성이 들어왔다. 정의구현 임무가 다시 한 번 완수되며 획득한 명성을 두 배로 만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것이야말로 협행이었으니까.

16549481154728.jpg‘기행을 펼치는 것. 그게 바로 명성 작업을 하는 네 번째 방법이지.’

협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것은 기행이기도 했다. 마치 의적처럼 무인이 산적을 털어 백성들을 구휼한다? 의와 협을 숭상하는 무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철저히 이기적이었고 일차원적이니까. 산적이 있으면 그들을 죽여 괴로움에서 해방시켜준다. 이것으로 생각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 만큼 천화와 설영의 행위는 이례적인 것이고, 무척이나 특이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유일성은 더 커질 터였다.

16549481154728.jpg‘아예 귀찮다고 산적은 잡은 척만 하고 돈으로 사들인 물건들을 풀었던 놈도 있었지.’

따지고 보면 중요한 건 아주 약간의 명분이기에, 돈을 버릴 생각을 한다면 산적을 잡는 수고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그 방법이 돈지랄이라며 고개를 저은 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통했다.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저것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돈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확인해보라.] 차후 황금충이라 불렸던 한 플레이어가 남긴 명언이었다. 너무 적은 금액을 푼다면 베풀고도 빼돌린 것이 아니냐는 소리나 들을 수 있었지만, 넉넉히 풀어놓는다면 탈이 날 리 없었다. 그렇게 모든 재물과 곡식을 나누어준 뒤 잠시 휴식을 취한 천화와 설영은, 곧바로 마을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당신의 기행이 호북성 전역에 알려집니다.] 호북의 끝자락에 위치한 무한에 도착할 즈음에는 무려 다섯 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었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지며 천화에게 새로운 별호가, 설영에게는 첫 별호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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