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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어서와. 고인물은 처음이지? (4) (116/481)

<116화> 어서와. 고인물은 처음이지? (4)2021.08.01.

16549481934498.jpg“……?”

순간 묘한 정적이 흘렀다. 혈마검이 끝까지 휘둘러졌음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모두가 물러섰기에 검에 직접 베인 이조차 없었으니, 다들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16549481934498.jpg“컥?!”

허나 약 1초 정도가 지나자 모두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베인 이가 없음에도 근방 약 3장 거리에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쓰러진 것이다. 열공참. 그것은 화기를 머금은 검기를 뿌려 일정 공간을 일격에 베어버리는 기술이었으니까. 치이이익- 상처부위를 즉시 지져버리는 까닭에 회복조차 어렵다. 애초에 회복을 할 수 있을 만한 상태인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검기를 검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유형화하여 날리는 기술은 상당한 내공 소모를 요했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단전이 휑하게 비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충만하게 채워졌다. 레벨 업의 효과다. 그 순간적인 상실감이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감히 아무도 달려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문제없었다.

16549481934511.jpg“조룡연아참.”

그 정적을 깬 것도 천화였다.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지 못해 얼어있는 놈들 사이로 뛰어들어 단숨에 베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허둥대며 대항해보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패광도법은 천화가 비형칠검을 연구하여 익히 알고 있는 무공이었고, 하물며 극의도 깨닫지 못하고 어설프게 펼치는 초식쯤이야 보지 않고도 피할 수 있으니까.

16549481934511.jpg‘오히려 어설퍼서 못 피하려나?’

어쨌든 이런 허튼 생각을 하면서도 여유 있게 피해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천화와 설영이 작정하고 검을 떨치자 적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죽이는 쪽이 경험치가 가장 좋았지만, 무력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약 8할 정도는 경험치가 들어왔기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들을 베어나갔다. 마음만 먹으면 몰살 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대로에서 학살을 벌이는 것은 명성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니까. 무림인이라는 종자들이 으레 그렇긴 하지만, 자칫 살인귀로 몰려 악명이 높아질 수도 있었기에 적당한 수위조절이 필요했다. 보는 눈은 많았고, 지금은 경험치보다 명성이 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16549481934519.jpg“이 정도 고수였다니……!”

그렇다 보니 패광문주도 후회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패광문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천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 천화가 보여준 무위는 실로 무시무시했지만, 설영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실착인지를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웅! 부웅! 힘이 잔뜩 들어간 패광문주의 도가 번번이 허공을 갈랐다. 패광도법은 빠르고 위력적이지만, 그 투로가 직선적인 것이 결정적인 문제였으니까. 어중간한 상대라면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지만, 그 이상의 상대라면? 통하지 않는다.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하다못해 비등한 수준의 무인만 만나더라도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천화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천화는 가볍게 몸을 젖히는 것만으로 패광문주의 도를 모조리 피해내고 일검을 내질렀다. 사실 초식까지 쓸 이유도 없지만 숙련도를 올릴 겸 내지를 뿐이었다.

16549481934519.jpg“흐읍!”

콰앙!! 호아파참. 검과 도가 부딪히는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일류의 무위를 노름으로 딴 것은 아닌지, 다급히 도를 휘둘러 천화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다. 내기의 충돌. 검기끼리의 격돌이었기에 땅이 흔들리고 기물들이 떨어져내렸다.

16549481934519.jpg“빌어먹을!!”

내공 싸움으로 몰아붙인다면 어떻게든 희망이 보이겠지만, 내부를 따끔거리게 만드는 저 이상한 기운이 문제였다. 혈마기에 적응하지 못한 패광문주는 내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빼내었다.

16549481934511.jpg“어딜!”

하지만 천화가 시간을 주지 않고 따라붙었다. 할퀴듯 검을 비틀어 찌르고 베어가며 놈을 압박했다. 까앙 까앙 상황이 반전되었다. 자신있게 달려든 것과 달리 패광문주가 뒤로 몸을 빼기 시작하자 역으로 천화가 쫓는 형국이 된 것이다. 패광문주는 내공 대결은커녕 검을 맞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듯 거칠게 도를 떨쳐내었다.

16549481934511.jpg‘응. 안 돼.’

그러나 천화는 놈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냈다.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검과 도를 붙여놓았다.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빼면 빼는 대로 검을 이어붙이며 혈마기를 놈의 내부로 흘려보냈다.

16549481934519.jpg“이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패광문주가 승부수를 던졌다. 뒤로 빼던 몸을 한순간에 앞으로 빼며 천화에게 달려든 것이다.

16549481934511.jpg“다 보인다니까.”

허나 천화는 이미 놈의 의도를 읽고 있었다. 이렇게 몸의 방향을 급반전하려면 하체의 중심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몸은 젖히는데 하체는 주저한다? 중심축을 이용한 무언가를 하려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잔재주야 수도 없이 보아온 천화였다. 자신을 속이려면 운룡대팔식이나 허공답보의 수법을 이용해 완전히 몸을 빼내는 척하다가 허공을 딛고 돌진을 했어야지. 물론 그런다고 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16549481934511.jpg‘어?’

헌데 도가 날아드는 궤적이 이상하다. 이건 패광도법의 투로가 아닌데? 물론 그 정도 되는 실력이라면 초식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초식대로 펼치는 것보다 못한 투로인 것만 같았다. 뭔가 의도가 있는 느낌.

16549481934511.jpg‘패광문에 쓸 만한 장법이 있던가?’

천화는 변칙 공격을 의심했다. 진짜는 도가 아니라 왼손을 이용한 장법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녀석의 왼손으로 상당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콰앙!! 놈의 장법과 천화의 권이 부딪혔다. 예상대로 장법을 펼치는 놈을 상대로 칠성무적권의 일초를 펼쳐 맞부딪힌 것이다.

16549481934511.jpg“큭?!”

그러나 놀랍게도 손해를 본 것은 천화였다. 놈의 일장에 담긴 기운이 특수한 까닭이었다.

16549481934511.jpg“이 미친 새끼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주먹을 부딪친 순간 알아차렸다. 흑월마장. 적중 당한 상대에게 검은 초승달 모양의 흔적을 남기는 마공이 패광문주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흑월마장에 적중당하셨습니다.] [마기가 내부에 침습합니다.] 튕겨나간 정도가 아니라 마기가 내부에 침습했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육신이 썩고 내기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고통을 맛보게 만드는 사이한 기운이 파고든 것이다. [천화만변무상심법이 마기를 흡수합니다.] 하지만 천화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전처럼 삼재심법만 익힌 상태였다면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천화만변무상심법은 모든 종류의 기운을 포용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숨에 흡수를 하고 정화하려면 운기를 해야겠지만, 잠깐 버티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16549481934519.jpg“너만은 죽여주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패광문주도 마공을 내보인 것에 대한 부담은 분명히 있었다. 이미 정사대전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마공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지만, 들키는 순간 무림공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들키지 않더라도 시신을 조사하면 누군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아니, 당장 천화의 반응만 보더라도 벌써 마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싶었다. 이대로라면 살려보내기만 하더라도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들통날 터였고,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빨리 천화와 설영을 처리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것뿐이었다.

16549481934519.jpg“죽어! 죽어! 죽어엇!!”

파앙 팡 팡! 패광문주의 연격에 천화의 몸이 속절없이 밀려났다. 마공의 사이한 기운은 무공의 경지를 넘어서까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기에, 일류 무인인 천화가 해소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16549481934511.jpg“큭, 여기서 이렇게…….”

천화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천화만변무상심법의 효능 덕분에 당장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지만 즉시 해소가 불가능했기에, 마기가 조금씩 몸 안에 쌓이고 있었다.

16549481934511.jpg“……내성을 얻을 줄은 몰랐네.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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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81934519.jpg“?!”

  [마기에 대한 내성을 획득합니다.] [특수 체질 : 마기 내성을 습득하셨습니다.] 아니다. 몸 안에 마기가 쌓여 따끔한 고통이 느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천화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제대로 효과를 주지 못한 채 쌓여가는 마기 덕분에 천화는 마기에 대한 내성을, 저항력을 얻을 수 있었다. 콰앙!! 마기 내성을 얻은 탓에 살짝 답답하던 느낌마저 사라지자, 천화는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칠성무적권의 이초, 이중극점. 하나의 타점을 진동하듯 찰나에 두 번 가격하는 수법에, 흑월마장을 펼치던 패광문주의 팔이 꺾였다. 한 번은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거의 동시에 밀려든 내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대로 팔이 튕겨 꺾여나간 것이다.

16549481934519.jpg“크아아악!!!”

고통에 비명을 질러보지만 천화는 무심하게 혈마검을 내질렀다. 이대로 끝장을 보겠다는 듯, 최후의 일격을 노렸다. 쐐액!! 그 순간 패광문주가 들고 있던 도를 천화에게 집어던졌다. 그래봤자 잠깐의 시간밖에 벌지 못할 텐데도 무기를 버리는 선택을 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16549481934511.jpg“쳇, 귀찮게도 구는군.”

흑우가 있었다면 단번에 따라잡았겠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무형보로는 무리다. 한쪽 팔이 망가져 균형 감각이 엉망이라지만 보법의 차이는 분명했기에, 천화는 놈을 쫓는 대신 품안으로 손을 넣었다. 한 자루의 비도를 꺼내 비뢰투술의 일초를 사용해 놈에게 집어던졌다.

16549481934519.jpg“큽!”

16549481934511.jpg“아……, 미안!”

그리고 순간 머쓱해졌다. 방향은 정확했지만, 팔이 망가진 놈이 기우뚱하게 달린 탓에 비도가 엉덩이 골 사이에 꽂힌 것이다. 아무리 처치해야 할 적이고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지만 이건 좀 미안했다.

16549481934519.jpg“크아아아아아아!!!!”

엉덩이에 꽂힌 비도를 뽑으며 괴성과 함께 내달리는 패광문주. 천화는 하는 수 없이 뒤를 설영에게 맡기고 놈을 쫓기 시작했다.

16549481934511.jpg“생명연장의 꿈이냐.”

놈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패광문의 장원이었다. 허수아비 같은 수하들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는 걸까? 시간을 벌 수야 있겠지만 아주 조금 수명을 연장 시킬 뿐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16549481934511.jpg‘에이, 설마.’

혹시 저 안에 은밀히 마공을 익힌 마인들이 득실거린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천화를 막기는커녕 닿지도 못할 터였다. 아무리 패광문에 소속되어 있다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까지 죽이는 취미는 없었기에, 천화는 막아서는 패광문의 식솔들을 따돌리거나 뛰어넘어 놈을 쫓았다.

16549481934511.jpg“으랏차차! 잡았다, 요놈!”

지혈을 했다고는 하나 옆구리에 상처를 입고 왼팔까지 작살이 난 놈은 그리 오래 도망치지 못했다. 전각의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천화를 교란시키려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천화에게는 혈마검이라는 탐지기가 있었으니까. 전각 내부의 구조는 알지 못했지만 놈의 위치와 방향은 정확히 감지해낼 수 있었다. 천화는 비영사를 이용해 전각의 지붕 위로 날아오른 뒤, 놈이 향하는 방향을 정확히 짚어 한발 먼저 도착했다.

16549481934511.jpg“뚝배기!!”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져내리며 날린 일격에 패광문주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덕분에 장원 내부가 소란스러워졌지만, 감히 천화에게 덤벼드는 이들은 없었다. 눈치 빠른 자들은 얼른 장원의 담을 넘어 도망쳤고, 천화 역시 굳이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16549481934511.jpg“도움은…… 필요 없겠지.”

설영을 도와주러 가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차라리 전각을 뒤져 흑월마장을 사용한 패광문주의 처소를 털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16549481934511.jpg“일단 이놈은…… 데려가는 게 나을 것 같군.”

품에서 뭔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천화는 패광문주의 시신을 끌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나 안으로 들어간 사이, 마교과 관련된 놈들이 시신을 탈취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공을 익힌 자의 시신은 그 자체로 증거가 되니까. 패광문 내에 다른 마인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시신을 들쳐 메고 패광문주의 방을 찾았다.

16549481934511.jpg‘이쯤이었지.’

그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혈마검을 통해 놈의 위치를 파악할 때, 놈이 잠시 머무르며 머뭇거리던 위치가 있던 것이다. 아마도 무언가를 숨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의심하며 놈이 머물렀던 장소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16549481934511.jpg“뭔가 있을 텐데…….”

아마도 마교와 관련된 정보 따위일 확률이 높았다. 마공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과의 연락 방법이나 지령서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을 얻어내기만 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기에, 천화는 명탐정으로 빙의하여 방안을 뒤져댔다.

16549481934511.jpg“찾았…….”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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