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체포되셨습니다 (1)2021.08.03.
발견 장소는 역시나 침상의 밑에 있는 비밀공간이었다. 자신의 처소에 무언가를 숨기는 이들 중 약 7할 정도는 이곳에 비밀스런 무언가를 숨기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도 시비들이 청소하면서 건드리기 어려운 곳이고, 잠을 잘 때도 먼저 자신을 해하지 않는다면 뒤지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겠지.
“천화!”
콰앙!
“아이씨, 깜짝이야! 깜박이 좀 켜고 다녀!”
그때 뒤쫓아온 설영이 방문을 세차게 열어젖혔다. 화들짝 놀란 천화는 얼른 소지품창에 물건을 집어넣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운휘는?”
“아직 흑우가 돌아오지 않았어. 마을을 한 바퀴 쭉 돌고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명색이 영물이니 엉뚱한 곳으로 사라져버릴 일은 없겠지. 흑우를 해할 만한 고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다음 질문을 해야 했다.
“근데 운휘는 거기에 왜 데리고 온 거야?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응? 어……? 내가 왜 그랬지?”
그러자 설영이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에 천화의 고개가 끄덕거렸다. 예상하던 바가 있는 것이다. 섭혼. 별도의 섭혼술을 익혔을 리가 만무하지만, 신령지체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귀신과 접촉하기 쉬운 영매 체질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혼령을 제압하거나 간단한 암시 따위를 걸어 마음대로 조종하는 섭혼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단전을 개방했거나 웅후한 내공을 지닌 이들, 그리고 훈련이 된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간단히 생각의 방향을 조종하는 일 따위는 방비되지 않은 일류급에게도 통했다. 이것을 이용해 싸움에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거나 머뭇거림을 만드는 식의 무공도 존재하니, 설영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다 해도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선천진기를 남발하다가는 운휘의 정신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빨리 찾아서 단단히 주의를 주거나 임시적으로 상단전을 막아두지 않는다면 큰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장원을 포위하라!”
“엥?”
그때, 장원 밖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설마 패광문의 지원군이나 잔당들이 나타난 것일까?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너희는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변을 경계하거라!”
그래봤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다수의 인원이 장원 안으로 진입하는 소리가 들렸다.
“포두?”
얼른 전각 밖으로 나가보자 의외의 인물들이 장원을 접수하는 중이었다. 다름 아닌 관아에 소속된 포두와 포졸. 복장만으로도 확 티가 나는 그들이 장원을 통제하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누가 변장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이게 무슨?’
관과 무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저들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상대가 되지 않는 자들이지만, 그들이 나타났다는 자체가 황당했다. 그사이 포두로 보이는 자가 지엄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호통 쳤다.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 모습에 천화가 인상을 찡그렸다. 도망갈까? 아니면 그냥 나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봐? 아무래도 대로에서 싸움을 벌인 일 때문인 것 같은데, 기물을 파손 당한 이들에게 약간의 금전적 보상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고민이 되었다. 이것이 비형검문과 패광문의 일이라는 것을, 혹은 그들과 패광문의 다툼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기만 하면 관에서 굳이 개입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묘하게 느낌이 이상했다.
‘흐음.’
천화는 일단 몸을 빼내며 장원을 둘러싼 인원들을 살펴보았다.
‘포졸들은 맞는 것 같은데.’
일단 포졸 행세를 하는 어떤 세력의 출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에게 느껴지는 내공의 기운은 없거나 일천했고, 걸음걸이나 긴장한 채 포위망을 구축한 모습만 보아도 무림인의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대체 왜?
“가만, 낯이 익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현령쯤 되는지 포두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휘하는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천화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일이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겠다.
“내가 먼저 나갈게. 혹시 모르니까 여기 있다가 상황 봐서 행동해.”
“응? 괜찮겠어?”
천화는 설영에게 이야기한 뒤, 먼저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오랜만입니다.”
“당신은……?”
천화의 갑작스런 등장에 현령은 놀라면서도 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혹여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잊어버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포두들은 죄인을 포박하라!”
“죄인? 설마 저한테 하는 말입니까?”
크게 소리치는 현령의 시선이 정확히 자신을 향하자 천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관절 왜 자신을 체포하려는 걸까? 황당했지만, 그들이 진짜 포두와 포졸이라면 함부로 저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천화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포졸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밧줄을 들고 그를 포박하기 위해 다가왔다.
“좋습니다. 일단 가죠. 대신 제 발로 가겠습니다.”
“으흠. 물러나거라.”
천화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현령을 바라보자, 그 역시 천화를 강하게 몰아붙이지 못하고 주변 포졸들을 뒤로 물렸다. 자진해서 잡혀주겠다는데 무리를 하다가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패광문을 박살낸 천화의 무위가 두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역시 찔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귀주성의 시작 지점에서 현령의 노릇을 하던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까. 천화에게 돈을 주고 현상범들의 신병을 인도 받은 뒤, 그 공을 모두 제 것으로 챙겼던 바로 그였다. 아마 그 공을 인정받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영전을 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찔리는 것이 있기 때문인지 천화를 데려가면서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슬쩍 설영이 숨은 방향을 힐끔거린 천화는, 그녀까지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순순히 잡히는 대신 현령에게 다가갔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주위를 물려둔 까닭에 아무도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는 없는 상황. 현령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대로에서 패광문을 공격하고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입힌 죄네. 신고가 들어왔으니 나로서도 도리가 없음을 이해해주게. 며칠만 구금되면 풀려날 수 있을 게야.”
웃기는 소리. 천화는 그것이 온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무인들끼리의 다툼은 설사 대로가 아니라 관아 앞에서의 싸움이라도 개입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니까. 물론 현령의 말처럼 민간에 피해를 준 것도 분명 있었지만, 그 정도야 약간의 배상을 통해 무마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헌데 며칠간 구금까지 하겠다? 말이야 간단하고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 배후에서 그를 움직인 것이 분명해보였다.
‘패광문과 관련된 곳인가? 아니면 이자가 패광문과 붙어먹고 있었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떠오르는 가설은 몇 가지가 있었다. 패광문에게 눌려있던 문파 중 하나가 이것을 기회라 여기고 패광문과 천화를 같이 가둬두려 했다는 것, 혹은 평소 패광문에게 돈을 받아먹던 현령이 돈줄 끊길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움직였다는 것, 그도 아니면 마교와 연관된 인물이 움직였다는 것 정도가 있겠다. 앞선 두 가지 중 하나라면 현령의 말처럼 기껏해야 며칠 정도 고생하고 풀려날 수 있겠지만, 그 밖의 상황이라면……. 상황이 꽤 복잡해질 수도 있었다.
‘여차하면 다 박살내고 도망칠 수도 있긴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천화에게 크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관과의 관계는 최대한 좋게 유지를 하는 편이 낫긴 하지만, 설사 틀어진다 해도 관군을 보내 그를 잡아들이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차피 무신지로에서도 정사지간의 위치에서 활동을 했던 그였으니 사파로 몰린다 해도 크게 아쉬울 건 없었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꽤 많았기에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때문에 천화는 일단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순순히 그를 따라 관아로 향하면서 귓속말 기능을 이용해 설영에게 현재 상황과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알렸다. 아마 패광문의 주변에 깔린 포졸들이 모두 돌아가지는 않았을 테지만, 설영의 실력이라면 은밀하게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은 간단하겠지. 일단 흑우와 운휘를 찾아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조언을 한 뒤, 순순히 수갑을 차고 옥에 갇혔다. 관아에도 무공을 사용할 줄 아는 포두가 있어서 잠시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제를 당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 어떻게 행동할지를 봐야겠지.’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놈들은 곧 움직일 터였다. 배후가 누구이든 오래 시간을 끌려하지 않을 확률이 컸다. 어차피 명분이 부족한 까닭에 천화를 오랫동안 가두어두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 그렇기에 당장은 지켜보기로 했다. 불편한 감옥이었지만 현령의 배려인지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방을 쓰지 않았기에, 대자로 뻗어 쉬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체가 드러난다면 자신을 귀찮게 한 벌을 제대로 받아야 할 터였다.
“천화?”
“아저씨!!”
“쀼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몇 시진쯤 지나 밤이 되었을 때, 철창 너머에서 천화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왔어?”
다름 아닌 설영과 운휘였다. 흑우는 너무 눈에 띄기 때문인지 데려오지 않았지만, 걱정되었는지 설영이 운휘와 함께 면회를 온 것이다.
“그거 비싼 건데 이렇게 하나를 버리네.”
“인피면구야 또 구하면 되지.”
천화의 죄목대로라면 설영 역시 체포 대상이 될 터였다. 그렇기에 설영은 기존의 인피면구를 벗어버리고 다른 인피면구로 바꿔 쓴 상태였고, 옷차림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렇게 되면 비슷한 것은 체형뿐이니 의심은 할지언정 단정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겠지. 그렇게 무사히 입구를 통과한 두 사람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천화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게 문제야?”
“걱정 마. 곧 나갈 테니까. 그보다, 내가 말한 건 어떻게 됐어?”
이 와중에 인피면구 값을 아까워하는 것을 보고 설영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천화의 물음에 표정을 바꾸었다. 전음을 이용해 은밀히 말을 전했다. 귓속말을 이용해 천화가 요구했던 정보들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네 예상대로 패광문주의 시신은 감쪽같이 사라졌어. 관아에서 따로 관리할 것처럼 수거해갔는데, 시신을 운반하던 자까지 귀신처럼 사라져버렸어.]
역시나, 예상대로다. 마공을 익힌 자의 시신은 그 자체로 증거가 될 수 있었기에, 관련된 누군가가 회수를 해간 것이다. 그것에 현령이 연관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이용당하기만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이런 무리한 체포와 구금 결정을 지시한 이가 누구인지만 알아도 배후를 캐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벌써 연줄을 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건가?’
무신지로에서도 이런 비슷한 상황은 더러 있었다. 이전에는 오직 힘으로 중원을 쓸어버리고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마교이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이다.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당대 천마는 지난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자였고, 기존의 천마들처럼 자존심만 세우느라 막대한 희생을 자초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면 벌써 관부에 줄을 대어 놓았을지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벌고, 흔적을 지울 수만 있더라도 그들에게는 천금 같은 가치를 지닐 테니까. 또한 마교가 발호했을 때 관부에서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미리 약을 쳐놓는 것이라고 보아야겠지. 상황파악을 끝낸 천화는 간단한 잡담과 몇 가지 주의를 주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첫째는 운휘의 선천진기 사용을 제한할 것. 둘째는 이곳에서 나가는 즉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를 통해 이동하고 목격자를 만들어둘 것. 이유는 간단헀다.
“큰일 났습니다! 패광문의 장원이 불타고 있다고 합니다!!!”
“뭣이?!”
약 반시진 후 들려온 포졸들의 고함소리가 그 이유였다. 패광문주의 시신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증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누군가 장원을 불태운 것이다. 자칫 불길이 다른 건물들로 옮겨 붙을 수도 있었기에 관아에 비상이 걸렸다. 장원 주변으로 포졸들을 배치하고도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생겼다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현령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모두 지원하도록 하라! 최대한 빨리 불길을 잡아야 한다!!”
관아뿐 아니라 마을 전체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만, 천화는 느긋하게 벽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눈까지 감고서 쿨쿨 잠을 청하는 여유를 보였다. @ 어스름이 깔린 저녁. 사람이 빠진 탓에 휑하기까지 해진 관아에 검은 인영이 스며들었다.
“……?”
쿠웅 그중에서도 죄인들을 가두어둔 옥사를 지키던 포졸들의 눈이 스르륵 감기며 쓰러졌다. 잠이 들게 만드는 훈혈을 짚은 것이다. 드르렁~. 워낙 은밀하게 제압한 까닭에, 일어나더라도 자신들이 무엇에 당했는지 알지 못하겠지. 아마 자신들이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다고 생각할 터였다.
“…….”
그사이, 검은 인영은 옥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 숙련된 움직임으로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딸깍 그리고 발견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세상 편하게 잠이 들어있는 누군가를. 미리 열쇠는 찾아두었기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물쇠를 여는 소리에 사내가 잠이 깰까 싶긴 했지만 이미 내공이 금제되어있다는 것도, 수갑으로 육신 또한 강제되어있다는 것도 알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설령 깨어난다 한들 피할 수 없을 테니까. 푸욱! 때문에 복면인은 망설이지 않고 사내의 복부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됐군.’
근육을 찢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졌다. 맹수도 죽일 수 있는 극독이 발려있으니, 스치기만 해도 얼마 버티지 못할 터였다. 검에 찔린 흔적은 남겠지만 상관없다. 관아의 옥사에서 죄인이 살해당한 사실을 현령 또한 알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 특히 이자처럼 배경이 없는 인물이라면 강하게 따질 사람도 없을 테니, 자살로 위장하여 처리하고 말 터였다. 이제 조용히 나가기만 하면…….
“응?”
허나 다시 단검을 회수하려는 순간 복면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너무 강하게 찌른 것일까? 근육에 박혔는지 단검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잡았다, 요놈.”
그 순간, 잠든 줄만 알았던 사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천화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놈의 손목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