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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체포되셨습니다 (4) (120/481)

<120화> 체포되셨습니다 (4)2021.08.10.

스르륵- 변장한 천화가 진입한 곳은 어느 허름한 장원이었다. 낮에는 이류 수준의 무인이 차린 평범한 무관이었지만, 특정한 날 밤이면 마교인들의 회합 장소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16549482458522.jpg“흥. 실패한 주제에 잘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군.”

16549482458527.jpg“…….”

그곳에 발을 딛자 먼저 와있던 흑의인이 천화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호흡이나 걸음걸이 등을 통해 천화가 누구인지 추측한 것인지 날이 선 말로 천화를 몰아세웠고, 천화는 무심히 그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16549482458522.jpg“목표가 살아서 나왔다길래 놈에게 뒈진 줄 알았더니, 목숨을 부지한 모양이지?”

허나 눈초리에는 의심이 담겨있었다. 그를 단악검이라 생각하면서도, 임무에 실패했기 때문인지 슬쩍 도발을 하는 것인지 몰랐다.

16549482458527.jpg“붙잡혀 흔적을 남기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대꾸하는 천화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단악검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정도는 목상태의 차이 정도로 볼 수 있을 만큼 똑같았다. 목소리를 변조하는 기술쯤이야 천화에게는 간단한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자백제를 맞은 상태이기는 해도 기본적인 목소리는 감지할 수 있었기에, 몇 번이나 들은 천화가 따라하지 못할 리 없었다.

16549482458522.jpg“왜 실패했지?”

그때, 또 다른 복면인이 질문을 던졌다. 처음의 복면인보다는 사이가 좋은지, 무심하기는 해도 몰아붙이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16549482458527.jpg‘저자가 수장이로군.’

그것을 통해 천화는 놈이 이 회합을 주관하는 무리의 수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 녀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까칠하게 답하는 대신, 무심하면서도 정중하게 대꾸했다.

16549482458527.jpg“내공이 금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독도 통하지 않더군요. 게다가 제가 자신을 노릴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눈치였습니다.”

16549482458522.jpg“배신자가 있다는 소리인가?”

그 말에 두 번째 복면인이 반응을 보였다. 내공 금제도 안 되어 있고, 독도 통하지 않고, 심지어 암습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방심을 했다 해도 본신의 무공도 상당한 데다 경험 또한 만만치 않은 단악검이 실패할 정도라면 천화의 무공이 뛰어나기도 하겠지만, 미리 알고 대비를 했기 때문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들의 계획이 새어나갔다는 뜻. 아직 대업의 발판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 계획까지 먼저 드러났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16549482458527.jpg“그건 모르겠습니다. 매복이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16549482458522.jpg“흐음…….”

하지만 천화는 담담히 대꾸했다. 거짓된 정보로 놈들을 혼란시킬 생각이긴 했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이 신분을 유지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만약 정말로 배신자가 있었다면 적들이 매복을 하고 있다가 덮쳤겠지. 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천화 개인의 예측 정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6549482458522.jpg“일단 현령 놈을 캐봐야겠군.”

내공이 금제되어있지 않았다면 현령이 미리 손을 쓴 것일 수도 있었기에,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지부대인까지 구워삶은 마당에 현령 따위가 반기를 들었을 리는 없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한 그들의 신분이기에 조심, 또 조심하려는 것이다.

16549482458522.jpg“몸 상태는 좀 어떤가? 대비를 하고 있었다면 놈도 그냥 보내주지는 않았을 텐데.”

16549482458527.jpg“……생각보다 강하더군요. 상처를 조금 입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16549482458522.jpg“그래? 그럼 요양을 좀 하는 편이 좋겠군. 괜히 돌아다니다가 상처를 입은 것이 알려지면 의심을 살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16549482458527.jpg“그러겠습니……?!”

천화가 대꾸를 하려는 순간, 걱정해주던 척을 하던 복면인이 대뜸 그에게 놈을 날렸다. 왼손에 맺힌 것은 마기가 서린 장력. 패광문주 따위가 익힌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취의 흑월마장이 놈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16549482458527.jpg“컥!”

그것이 천화의 가슴팍을 때렸다. 마기가 몸 안으로 침습하며 순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16549482458527.jpg“무슨…… 짓입니까.”

일장을 얻어맞고 주르륵 몸이 뒤로 밀린 천화가 간신히 자세를 바로하며 입을 열었다.

16549482458527.jpg‘빤히 보이는 거 맞아주기도 힘드네.’

사실 피하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동작이었지만 천화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기에, 단악검의 수준을 생각해 그냥 얻어맞아준 것이다. 놈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설마하니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임무에 실패한 것에 대한 죄를 묻는 것일까? 순간 천화도 긴장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모든 상황을 상정하고 머릿속으로 대응책을 떠올렸다.

16549482458522.jpg“무슨 짓이긴, 좀 더 푹 요양을 하라는 거지. 어설프게 요양을 하면 저들도 의심을 할 것 아닌가?”

조금은 의심스런 눈초리. 천화는 즉시 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만약 단악검이라면 그 말대로 기존의 상처보다 더 푹 요양을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단악검이 아니라면? 마기가 침습하여 죽거나 폐인이 되겠지. 복면을 걷어보라고 하면 사실 간단한 일이지만, 최고 수준의 비밀 유지를 위해 그들끼리도 서로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확인을 한 것이다. 마공을 익힌 마인은 마기에 적중당했다 해도 다른 이들처럼 심각한 피해를 입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그들도 알지 못했다. 천화에게 마기 내성과 천화만변무상심법이 있다는 사실을.

16549482458522.jpg“이곳에서는 손을 뗀다. 잡스런 것들이 냄새를 맡은 것 같더군. 모두 석 달 동안은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도록. 사호는 당분간 요양이 필요할 것 같으니 다음 작전에서 나머지 인원들이 좀 더 바빠져야 할 거다. 삼호, 배첩은 확보했나?”

16549482458522.jpg“예. 세 개를 구했고 가짜도 만드는 중입니다.”

16549482458522.jpg“잘했다. 그럼 일단 닷새 후 무한에서 제물들을 구하는 일은 이호와 삼호, 육호가 참여하고 오호는 현령 놈을 조사한 뒤 합류하도록. 혹여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선 조치 후 보고해도 좋다.”

16549482458522.jpg“예.”

천화가 고통스러운 척 연기하는 동안,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하오문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또한 벌써 알아차렸는지, 이곳에서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16549482458527.jpg‘무한?’

다음 목적지는 무한. 헌데 뒷말이 수상하다.

16549482458527.jpg‘제물을 구한다고?’

다른 이들도 아닌 마교 소속의 마인들이 하는 말인 만큼,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16549482458527.jpg‘설마 그건가?’

예상가는 것도 몇 가지 있었다. 마교에서 제물이라 칭할 만한 것이라면 몇 종류로 제한되니까. 그리고 그 말은, 닷새 뒤 많은 이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16549482458522.jpg“그럼 나흘 뒤에 다시 보지. 해산하도록.”

마지막 말을 끝으로 복면인들은 저마다 몸을 날렸다. 은밀하게 장원을 벗어나 이곳에 없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16549482458527.jpg‘이걸 어쩐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당연히 천화였다. 흑월마장에 적중 당한 것을 모두가 보았기에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무리해서 내공을 일으키는 대신 조심히 걸어 장원을 빠져나왔다.

16549482458527.jpg“어때, 기억할 수 있겠어?”

16549482458522.jpg[예. 대충은…….]

  그리고 장원에 들어오기 전, 한편에 숨겨둔 혈마검을 집어들었다. 저마다 지닌 생명력이 조금씩은 다르기에, 녀석을 이용해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려는 것이다. 약간의 특질과 생명력의 크기만으로 기억하는 것이니 완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들 정도의 고수라면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벌인 꼼수였다.

16549482458527.jpg“무한이라……. 바빠지겠군.”

그렇게 절뚝거리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천화는, 설영이 기다리고 있는 하오문의 은신처를 향해 어둠속을 녹아들었다. 일단은 몸속에 침투한 마기부터 해소시킨 뒤, 무한으로 향할 참이었다. @

16549482503473.jpg“저도 갈래요.”

다음 날, 작별을 고하고 먼저 떠나려는 천화와 설영을 운휘가 가로막았다.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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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82503473.jpg“절대 방해가 되지 않을게요. 말도 잘 들을게요. 저 잘 싸우는 것 보셨잖아요.”

16549482458527.jpg“안 돼. 패광문 놈들이야 깡통 같은 놈들이니 통했던 거지, 진짜 고수를 만나면 널 지켜줄 수 없어.”

16549482503473.jpg“괜찮아요. 안 지켜주셔도 돼요. 그러니까…….”

16549482458527.jpg“그럼 어머니는 어쩌고?”

16549482503473.jpg“그건…… 제가 설득해볼게요. 비형칠검을 되찾고 다시 무가로 이름을 떨치는 건 아버지의 소원이기도 했으니까, 어머니도 이해해주실 거예요.”

강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처음 만났을 때, 비형칠검을 팔아먹으려던 운휘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이이잉- 딱!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녀석의 이마를 천화가 손가락을 튕겨 톡 때렸다.

16549482458527.jpg“벌써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어디서 수작질이야?”

녀석이 선천진기를 이용해 자신을 설득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소운휘의 섭혼술에 저항합니다.] 설영이야 방비 없이 당했지만, 천화는 이미 상단전을 개방한 상태였으니까. 물론 그것이 아니라도 통하지 않았을 테지만, 운휘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고 있기에 단호하게 녀석을 혼냈다.

16549482458527.jpg“내가 선천진기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그건 방심한 상대나 어설픈 이들에게나 통하는 거지, 어지간한 고수들한테는 안 통해. 지금처럼 함부로 수작을 걸었다가는 제 명에 살기 힘들 거다.”

16549482503473.jpg“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마 거짓은 아닐 터였다. 아직 무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운휘가 의지대로 섭혼술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주의를 주는 편이 좋았다. 천화의 말처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수법이니까. 만약 자신의 정신에 간섭을 하려했다는 것을 알면, 그 의도가 무엇이건 칼부림이 날 것이 분명했다.

16549482458527.jpg“다시 말하지만 난 네 스승도 뭣도 아니야. 그저 네 조부의 유언대로 무공을 돌려줬을 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넌 우리에게 짐덩어리야. 이만큼이나 도움을 줬는데 언제까지 우리한테 빌붙을 생각이야?”

16549482503473.jpg“그건…….”

냉정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그 말에 운휘도 할 말을 잃었다. 천화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비형칠검의 형을 모두 익혔고, 선천진기를 사용할 수 있다 해도 한시적으로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뿐인 데다 경험마저 일천해, 당장 일류 고수 하나를 제대로 상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절정의 경지를 눈앞에 둔 설영이나 일류 고수이지만 미지의 능력을 발휘하는 천화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무공이 아니라 선천진기를 이용한 기문둔갑의 술을 익힌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운휘는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16549482503473.jpg“……알겠어요. 따라가지 않을게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강해져서 아저씨랑 누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게요.”

결국 운휘는 두 사람을 따라나서겠다는 의지를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확신이 섰을 때, 다시 두 사람 앞에 나타날 것을 다짐하며 무인으로서 뼈에 새기는 다짐을 했다.

16549482458527.jpg“그래. 앞으로 무림에 우리 이름이 널리 퍼질 테니까, 진짜 자신이 생기면 그때 찾아와도 늦지 않을 거야. 대신, 어중간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가차없이 내칠 테니까 각오하고.”

16549482503473.jpg“네!”

그리고 그 다짐이 차후 운휘를 어디까지 성장시킬지는 천화조차 아직까지 짐작하지 못했다.

16549482458527.jpg“흑우야, 가자.”

16549482518263.jpg“무우우우!!”

이미 두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하오문에 맡겨두었다. 당장은 어머니의 건강을 되찾고 스스로 무공을 익히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장원을 구입하고 무가를 다시 여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 정도면 두 사람이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하겠지. 더구나 중요한 정보를 다수 공유해준 보답으로 추가연이 두 사람을 종종 들여다봐주기로 했으니 걱정 없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하오문을 떠나 무한으로 향했다. 마교가 일으킬 혈겁을 막기 위해서.

16549482458527.jpg‘그 전에 그 양반들부터 만나야겠군.’

그리고 새로운 기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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