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도왕 손무양 (1)2021.08.17.
“일단 내장이랑 쓸개를 제거하고~.”
“…….”
흐흐흥~ 꼴깍 한 사람은 거대 황금잉어를 손질하고 다른 한 사람은 침을 꼴깍 넘기며 초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그 자태에 군침을 삼키는 것이 아니다. 천하에 단 한 마리뿐인 영물을 손질하는 것이다 보니, 혹여 잘못 될까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겐가?”
심지어는 천화가 황금잉어의 내장과 쓸개를 제거하는 것이, 혹여 약효에 영향을 줄까 넌지시 물어오기까지 했다.
“걱정 마세요. 요놈들은 잘 쓰면 약이 되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독성을 가진 놈들이라 약해진 사람이 먹으면 독을 퍼먹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럴 바에는 제거하는 게 낫죠. 물론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으니 따로 챙겨두기야 하겠지만.”
“그, 그렇군.”
천화의 자신 있는 말투에 도왕 손무양이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사실 황금잉어를 잡을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지, 이놈을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가는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나름대로 좋은 약과 의원을 찾아 강호를 떠돌았다지만, 주는 대로 다려서 만드는 탕약 만드는 법과 죽, 미음을 쑤는 방법 이외에는 제약이나 요리를 배우지는 못한 그였다. 혈도에 대한 것이야 무공을 익히면서 제대로 익혀두었고, 어지간한 치료는 내공으로 할 수 있었으며, 무림의 빨간약이라는 별명을 가진 금창약이면 대부분의 외상을 회복할 수 있었으니까.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용하다는 의원과 영약, 영물 따위를 찾아나설 생각만 했지, 직접 요리나 의술, 제약 따위를 배우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막상 영물인 황금잉어를 잡은 이후의 처리 방법 까지는 자세히 생각해보지 못한 그였다.
“그래도 그 도인이 황금잉어를 통째로 고아야 한다고…….”
“아, 거참. 옆에서 되게 시끄럽게 구시네! 계속 그러실 거면 방에 들어가서 아주머니랑 계세요!”
“크흠. 아니네. 그냥 여기 있겠네.”
때문에 불안한지 연거푸 천화에게 말을 걸자, 천화도 더는 못 참겠는지 한마디를 했다. 뒤늦게 합류한 설영이 병석에 누운 손무양의 아내를 돌보고 있었기에 따로 그가 거들 것은 없겠지만, 여기서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그러자 손무양은 짐짓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 상태로 푹 고아지기만 하면 되겠네요. 일단 들어가시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천화가 손질을 마친 황금잉어에서 내단을 꺼내고 각종 약초와 함께 푹 고아놓자 제법 여유가 생겼다. 이제 남은 것은 약간의 시간 동안 끓이는 것뿐이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정말 끝난 건가? 뭐 이상하거나 부족한 건 없고? 혹시 다른 영물의 내단 같은 걸 넣으면 좀 낫지 않……. 아, 아니네. 믿지. 믿네.”
홀가분한 표정의 천화와 달리 손무양은 아무래도 무언가 계속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지만, 차가운 천화의 눈초리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아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약(藥)이 그것뿐이니 걱정되는 것은 사실 당연했다. 허나 여기서 무언가를 더 넣는 것은 과유불급이었다. 약효를 강화하고 좀 더 건강을 찾아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 성한 이들에 한해서다. 지금처럼 오랜 투병 생활로 약해질 만큼 약해진 상황에서는 더 약을 써봐야 몸에 부담만 줄 뿐이었다. 이미 여인, 손무양의 아내의 맥은 짚어본 뒤였기에 천화는 자신있게 그의 등을 떠밀었다. 환자가 있는 방으로 옮겨갔다. 약은 정성이라고, 여기서 뜬 눈으로 몇 시진을 보내며 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환자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인, 몸은 좀 괜찮으시오?”
“아아, 상공. 소녀는 괜찮습니다.”
부엌을 나서 옆방으로 옮겨간 천화의 눈에 피골이 상접한 여인의 몰골이 보였다.
‘지저분한 놈에게 걸렸으니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용하지.’
목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피골이 상접해있었고, 얼굴과 눈빛에는 젊었을 적의 생기나 총기가 사라져있었다. 그나마 손무양이 매일 같이 추궁과혈을 하며 막대한 내공을 불어넣었기 망정이지, 이미 죽었어도 진즉 죽어 이상하지 않을 상태인 것이다.
‘혈노침화독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상대도 도왕이 상대라 무리한 거겠지.’
도왕이라 불리며 천하를 오시할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던 손무양의 아내라고 부리기엔 무리가 있는 모습이었지만, 아마 병에 걸리기 전에는 가인이라 부르기 충분한 미모와 기품을 지녔을 터였다. 왕년의 미모와 총기가 사라졌어도 도왕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곁을 지키며, 완치는 무리더라도 생명을 연장시키고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고 구했다. 돈이든, 힘이든, 명성이든 그 무엇이라도 바쳐가면서. 덕분에 지금은 허름한 초가살이를 할 따름이었고 본인 역시 황금잉어를 구하느라 동호에만 붙어사는 까닭에 물고기를 구워먹으며 연명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가…… 아니, 이 소협들이 당신을 구할 영물을 잡아왔으니. 이것만 먹으면 당신도…… 다시……!”
목이 메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손무양. 이래놓고 저 황금잉어로 병이 낫지 않으면 제대로 손질하고 요리하지 못한 천화의 탓이라며 칼부림이 벌어질 것만 같았기에, 설영은 살짝 불안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아내는 현명한 여인이었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이 어떤 선택과 반응을 할지 알기에, 잘 타이르듯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어요. 하지만 설혹 잘못되더라도 이 분들을 원망하시지는 마세요. 황금잉어에 대한 것도, 어차피 그 도인의 말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알겠소. 그러리다. 하지만 꼭 나을 것이오. 내 장담 하리다.”
결국 여인은 손무양에게서 약속을 받아내었다. 힘없고 못난 웃음이나마 지어보이며 설영과 천화를 마저 안심시켰다.
- 천화, 정말 괜찮은 거야? 저걸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건 믿을 수 있을 소리야?
그래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지 설영이 천화에게 슬쩍 전음을 날렸다. 손무양의 폭주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위해 모진 삶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손무양이 화경에 육박하는 내공을 쏟아부어 추궁과혈을 했다지만, 본인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모두 허사였을 터였다.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고통이 뒤따랐으니까. 조금만, 아주 잠시만 마음을 놓아버렸더라도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고 말았을 것이 분명했다.
[주인님, 저 여인의 심령이 무척 떨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인은 불안했다. 마지막 희망이던 황금잉어가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손무양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으로 움켜쥐었던 지푸라기가 그대로 젖어 스러지는 모습을 보고난다면 그는 무엇에 의지하고 살게 될까. 또 무엇을 찾아 광인처럼 헤매고 다닐까.
‘알아. 불안하겠지.’
사실 천화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무신지로에서 이 숨겨진 임무가 드러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니까. 손무양은 끝내 황금잉어를 잡지 못했고, 다른 영약에 대한 소문을 접해 떠돌다가 아내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어찌어찌 귀한 영약을 구해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기다리는 것은 아내의 싸늘한, 아니 썩어가는 시신뿐이었다. 그녀를 돌봐달라 부탁했던 이들은 얼마 있지 않은 재물을 가지고 사라져버린 뒤였다.
‘분명히 폭주할 테니까.’
그리고, 손무양은 폭주했다. 분노의 화살을 아내를 중독시킨 이들에게 돌렸다. 희귀하기 짝이 없는 혈노침화독을 가진 이들이 저 멀리 청해성에 있는 한 정파 계열의 문파라는 것을 찾아낸 뒤, 그들을 멸문시킨 것이다. 그때까지는 존재 자체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이었고, 실제 그들 역시 독의 제조법이 실전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지만, 천무양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 저주받은 독을 만들어낸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라져 마땅한 대상일 뿐이었으니까. 천무양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과 교류가 있던 모든 이들을 모조리 찾아죽였다. 허나 차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손무양의 부인에게 그 독을 사용한 것은 마교였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기에, 이와 같은 상황을 노리고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그 예상은 적중했고, 마교의 중원 진출에 방해가 되던 청해 지역의 문파들이 싸그리 사라졌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렇다고 손무양이 마교의 편에 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사지간에 서서 자신에게 덤비는 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살인귀라 불러 마땅한 모습이 되어 중원을 떠돌았다. 정파는 그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고, 마교는 그가 있는 지역을 피해 중원을 기습했다. 덕분에 결국 그의 처리는 고인물들에게 맡겨졌고, 천화도 몇 번이고 그와 겨루어본 적이 있었다. 꽤 좋은 대련 상대라는 이유로 죽이지는 않고 번번이 살려 보내기는 했지만.
[괜찮을 거야. 저 황금잉어에는 강력한 해독 작용과 피를 맑게 하는 기운이 있으니까. 단번에 낫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차도를 보이겠지.]
천화가 도왕을 찾은 이유 중에는 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그렇기에 기억을 더듬어 그녀를 중독시킨 독과 황금잉어를 포획하며 나타난 정보들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부족해. 그 도인이란 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지? 아니면 너무 늦어버린 건가?’
설영을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완치는 무리다. 적어도 저 황금잉어의 효능만으로는. 혈노침화독은 혈액 속에 녹아들 뿐 아니라 혈관 자체에 스며들기 때문에 어지간한 해약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고, 한번 중독되면 운기조식으로 혈맥을 씻어낼 수 있는 무인이라 해도 몇 번이고 재발하는 독이니까. 독이기는 했지만 불치병에 걸린 것 같은 효과를 보이는, 아주 특수한 형태의 독인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고 해법을 제시한 도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손무양조차 그 생김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니, 찾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당장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천화. 이게 독이라면 혹시……?]
“쀼?”
그때, 설영이 한 가지 다른 제안을 꺼내놓았다. 천화조차 잠시 잊고 있었던 은룡의 존재였다. 녀석이 가진, 정화의 힘이라면 그녀의 몸속에 흐르는 혈노침화독을 단숨에 정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완치도 가능하다. 혈노침화독이 재발하는 이유는 완치가 된 듯 보여도, 혈맥에 스며있던 미세한 독들이 다시 몸집을 부풀리기 때문이니까.
‘가능성은 있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단지 깨무는 것만으로 이미 다른 이의 독을 정화해낸 전력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근데 허락할까?’
다만 물어야 그 효과가 적용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혈노침화독이 특수한 독이기도 하지만, 뱀처럼 보이는 은룡이 자신의 아내를 무는 것을 과연 손무양이 허락할까? 뜻대로 해독이 잘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라면 큰 분노를 사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상태이고, 작은 고통조차 우주만큼 크게 느끼는 쇠약한 상태였으니까. 만약 자신이라면 선뜻 허락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쀼웃!!”
“야!!”
그때, 은룡이 천화를 통해 뛰어올랐다. 노리는 것은 황금잉어의 내단. 혹여 주지 않을 새라 얼른 그것을 입안에 넣은 은룡은 일단 그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뭐, 뭐야?”
파아아앗-!!! 그 순간, 은룡의 몸에서 찬란한 은빛의 기운이 솟구쳤다.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켰다. [신수 ‘은룡’이 100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신수 ‘은룡’의 능력이 진화합니다.] [정화의 힘이 한층 강화됩니다.] [정화의 힘이 정화의 빛으로 진화합니다.] 능력 진화. 유저가 100레벨을 달성하면 무공을 진화시킬 수 있는 특전을 받듯이, 반려동물 역시 모든 능력치의 상승과 함께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가 진화하는 것이다. 진화 능력의 종류는 무작위. 반려동물을 보유한 유저조차 선택할 수 없는데, 은룡의 경우 고유 능력인 정화의 힘이 강화되었다. 정화의 빛이라는 상위 개념의 능력으로 진화했다. 그 순간 따스한 은빛을 쬔 모두가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신수 ‘은룡’이 정화의 빛을 사용했습니다.] [정화의 빛에 노출된 모든 이들의 상태이상이 회복됩니다.] [정화의 빛에 노출된 모든 이들의 체력이 회복됩니다.]
“아아아아……!”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효과를 받은 것은 단연 손무양의 아내였다. 퍼석하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흐리멍텅하던 눈에 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몸속의 독이 정화된 것은 물론, 약간의 체력마저 회복한 것이다.
‘광역 회복이라고?’
허나 가장 놀란 것은 천화였다. 상태이상 회복은 물론 체력 회복 기능까지 가진 광역 기술이라니? 영물이나 신수들이 아주 특별한 힘을 가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것은 고인물인 천화로서도 처음이었다. 정화의 빛이 미치는 범위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뭉쳐있다면 최대 약 열 명 정도는 효과를 볼 만한 범위였으니, 그 효용은 엄청날 것이 자명했고. 뜻하지 않게 비밀병기를 얻은 것 같아 천화의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갔다. [부여담이 혈노침화독에서 해독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고대하던 알림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