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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도왕 손무양 (3) (125/481)

<125화> 도왕 손무양 (3)2021.08.22.

16549483480921.jpg“흐흐흐.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인간.”

16549483480926.jpg“오게.”

파앗! 혈마검이 설영의 몸을 지배하는 순간, 그 몸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보법을 펼쳐 도왕의 앞으로 짓쳐들어간 것이다. 천화조차 겨우 그 모습을 따라갈 정도였으니, 깜박 눈을 떼고 있다가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목이 베일 터였다. 콰앙!!! 그러나 도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혈마검을 막아내었다. 이전처럼 평온한 모습은 아니었다. 혈마화는 강제로 절정의 경지까지 힘을 끌어올리는 사기적인 능력이었으니까. 혈마강기에 맞서기 위해 도왕 역시 도강을 끌어내며 자세를 잡고 맞부딪혔다.

16549483480921.jpg“제길. 역시 부족한가.”

그러나 이번에도 도왕은 제자리에 굳건히 자리했다. 혈마화로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지만, 그는 절정조차 넘어선 초극의 경지에 이른 몸이었으니까. 혈마기의 폭발적인 기운을 찍어누를 만큼 막대한 내공을 지니고 있었기에, 물러서지 않고 도를 휘두를 수 있었다. 콰앙 쾅 쾅 쾅 쾅!!!! 이어 펼쳐진 혈마검의 강격에도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짓쳐드는 혈마검의 폭발력에도, 두 눈은 물론 심령까지 현혹시키는 환검에도 우직하게 제자리에 선 채 맞서 겨루었다.

16549483480921.jpg“젠자앙!!!”

그것이 짜증났는지 혈마검이 마주 휘몰아쳐갔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천하 십대고수의 벽은 아직 미숙한 설영의 몸으로 깨뜨릴 수 없었다. 설영 본신의 능력이 이미 절정을 넘어섰다면 좋은 승부가 되었겠지만, 그 몸으로 펼칠 수 있는 힘의 한계가 분명했기에 혈마검은 혈마화를 하고서도 도왕을 한 발자국도 움직이게 만들 수 없었다.

16549483480926.jpg“이쯤이면 다 본 것 같군. 그만해도 좋네.”

16549483480921.jpg“뭣? 이런 건방진……!”

16549483480951.jpg“그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이 좋지 못한 도왕의 말에 혈마검이 발끈했지만, 천화가 녀석을 가로막았다. 그의 말처럼 더 이상 대련해 봐야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16549483480921.jpg“조금만 기다려라, 인간. 다음에는 박살을 내주지.”

때문에 혈마검도 더는 달려들지 못하고 부들거리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몸의 통제권을 다시 설영에게 넘겨주었다.

16549483480921.jpg“후우, 후우. 한 수 배웠습니다.”

혈마화를 끝내자 몸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설영이 포권을 취했다. 사실 배운 것은 많지 않다. 거대한 벽을 느꼈을 뿐. 하지만 그조차 무인에게는 큰 배움과도 같았다. 무슨 짓을 해도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해법을 머릿속으로 연구하고, 다시 붙어보며 심상 수련을 하다 보면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주화입마에 드는 경우도 있지만, 설영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16549483480926.jpg“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네만, 말해줄 수 있겠나?”

16549483480921.jpg“예?”

그때, 도왕이 설영에게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16549483480926.jpg“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겐가?”

16549483480921.jpg“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전력을 다했습니다.”

왜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덤비지 않았냐는 것이다. 당연히 설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어찌 자신이 감히 도왕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나? 최선을 다했지만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설마 도왕이 자신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지만 도왕의 표정은 여전히 냉담했다.

16549483480926.jpg“내가 보기에 자네는 이미 절정의 무위를 갖추었네. 허나 사용하는 것은 일류 수준에 지나지 않더군. 헌데 어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겐가? 최선을 다했다면 혈마화라는 것을 하기 전과 후가 비슷한 수준이었을 걸세.”

설영이 이미 절정의 무위에 이르고도 제대로 힘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에 설영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혈마화를 한 뒤, 절정의 경지에 이른 것은 어디까지나 혈마검이 지닌 공능일 뿐이었으니까.

16549483480921.jpg“그럴 리가요. 저는 아직 일류 수준인 것이 맞습니다. 아직 임독이맥을…….”

16549483480926.jpg“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전력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고?”

하지만 도왕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에 설영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혈마기는 절대 남의 앞에서 드러내서는 안 되는 힘이다. 평생을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실천해왔다. 감추기 위해 노력했고, 감출 수 있다고 자신하는 순간 강호에 나왔다. 그럼에도 바로 들키는 바람에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 그 때문에 은연중 힘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머뭇거림이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이 깊어지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력을 내려 해도 낼 수 없게끔 몸이 스스로 제어를 하고 있었다.

16549483480921.jpg“아……!”

무의식 속에 있던, 그리고 알 듯 말 듯 머릿속에 아른 거리던 그 생각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 설영이 각성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눈빛이 아련해지더니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16549483480951.jpg‘제법인데?’

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방법으로 흔히 알려진 방법은 깨달음을 얻고 임독이맥을 타동하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단번에 임독이맥을 뚫어내지 못한다면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내공이 폭주하여 기맥이 상하고, 뇌가 충격을 받아 백치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설영 역시 그것이 두려워 그동안 스스로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허나,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혈마검을 통해 절정의 무위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사실 이미 미세하게나마 임독이맥이 열렸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절정급의 무위를 발휘할 수 없을 테니까. 물론 완전히 혈도가 열린 것은 아니겠지만, 작은 틈이라도 뚫려있는 것과 꽉 막힌 것을 뚫어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차이가 있었다. 쏴아아아- 천화의 귓가에 설영의 혈도가 열리고 막힌 기혈의 찌꺼기가 쓸려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두려움을 극복한 설영이 단숨에 임독이맥을 뚫어내고 절정의 경지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미 몸에 각인된 머뭇거림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수습한 이후에도 제법 많은 수련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첫 걸음은 내딛은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이겨냈을 때, 도왕이 이야기한 것처럼 혈마화를 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겠지. 또한 혈마화를 했을 때의 무공 수위나 위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 분명했다. 억지로 경지를 끌어올려 사용하던 것을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게 될 테니, 혈마검도 그 다음 단계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몸이 거부하던 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될 테고.

16549483480926.jpg“역시 재능이 넘치는 친구로군.”

깨달음에 잠겨 있는 설영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도왕은 대련을 시작하고 처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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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을 하는 중에는 조금 과할 정도로 무시하는 말투를 쓰긴 했지만, 나이를 생각해보면 엄청난 성취가 아닐 수 없었다. 당금 무림에 있어 저 나이에 절정급의 무위를 갖춘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마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일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니 그의 냉소적인 태도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설영을 몰아붙이기 위한. 그 결과 이처럼 큰 깨달음을 얻고 절정의 무위를 이루어내는 중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6549483480926.jpg“이제 자네 차례군.”

16549483480951.jpg“네? 음……. 저는 괜찮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린 도왕이 천화를 바라보았다. 설영에게 가르침을 주었듯, 이번에는 천화에게 가르침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16549483480926.jpg“괜찮다라?”

허나 천화는 손을 내저으며 그것을 거부했다. 어차피 도왕의 무공은 알고 있는 것이었고, 그와 겨루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괜히 땀이나 흘리고 내상이나 입지 않으면 다행이지.

16549483480951.jpg“예. 저는 됐습니다. 괜히 빡세게 움직여봤자 배만 꺼져요.”

그 말에 도왕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천화는 무인이고, 자신이 도왕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헌데 대련을, 배움을 거부한다? 언제 그가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있겠나? 당장 그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 천하 무인들이거늘. 때문에 호기심과 함께 은근한 오기가 생겼다.

16549483480926.jpg“자네에게는 내 좀 더 살살하지. 괜찮으니 덤벼보게.”

16549483480951.jpg“에이, 됐습니다. 요양을 해야 하는 사람이 주변에 깔렸는데 괜히 소란 피워 뭐해요.”

16549483480926.jpg“그 정도는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덤벼보게.”

운기조식 중에 충격을 받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들어 거부해보지만, 도왕도 끈질겼다. 그의 말처럼 설혹 충격파가 생기더라도 기막을 펼쳐 제어할 만한 능력이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16549483480951.jpg“거참, 배울 게 없…… 흠흠. 아무튼 됐습니다.”

그러자 천화가 귀찮다는 듯 대꾸하다가, 실수를 깨닫고 말을 삼켰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도왕의 귀에 들어간 상태. 자존심이 상했는지 도왕의 은근히 투기를 끌어올리며 천화를 압박했다.

16549483480926.jpg“배울 게 없다라. 그 자신감만큼 실력이 있는지 필히 확인해봐야겠군. 어디 가서 이 도왕의 은인이 객사하는 것은 면해야 하지 않겠나?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나를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게 해보게. 그럼 자네의 실력을 인정하고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네. 내공도 제한하도록 하지.”

16549483480951.jpg“어휴. 알겠습니다. 한 발자국이면 되죠?”

그 번들거리는 눈을 보니 아무래도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천화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며 도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작 한 발자국이라고는 하지만, 혈마화를 한 설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니던가? 아무리 내공을 제한한다 해도 천화가 해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단 한 사람, 천화를 제외하고는.

16549483480926.jpg“덤벼보게.”

16549483480951.jpg“예, 예. 갑니다.”

어쩔 수 없이 무명검을 꺼내든 천화는 가볍게 내공을 휘돌렸다. 무명검을 꺼내는 것은 자칫 탐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도왕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가진 그가 무명검을 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도를 주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은혜를 모르고 탐욕을 드러내는 무뢰배도 아니라고 믿은 까닭이었다. 천화는 가볍게 땅에서 발을 튕기며 귀찮은 듯 도왕에게 달려들었다. 펼쳐지는 것은 무형보. 거기에 허리를 활처럼 휘어 튕기는 궁신탄영의 묘리가 섞였다. 그 탄성으로 말미암아, 어느 보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쾌속의 보법이 펼쳐졌다.

16549483480926.jpg“좋군!”

설영 때와 달리 도왕의 입에서 긍정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호흡을 몇 번이나 쪼개어 들어오는 절묘한 엇박자를 읽어낸 것이다. 실력이 모자란 자들은 뭐가 다른지도 모르고 부딪히겠지만, 그 작은 호흡의 차이가 미묘한 반응의 차이를 불러올 터였다. 부딪혀놓고도 왜 밀리는지 모르는 체 휘둘리고 말겠지. 하지만 도왕은 그것을 읽어냈고, 적절하게 대응했다.

16549483480926.jpg“읏차!”

천화의 검이 강맹하게 짓쳐들었다. 호아파참. 호구검이라는, 다소 미묘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별호를 만들어낸 초식이었다. 허나 그 위력만은 만만하지 않아서, 도왕조차 흐뭇한 표정으로 도를 움직였다.

16549483480926.jpg“잔재주를 부리는군.”

휘익- 그렇게 검과 도가 부딪히려는 순간, 천화의 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귀혈참과 마찬가지로 쾌속하고 강맹한 참격을 날리는 호아파참에서 조룡연아참으로 변화를 준 것이다. 처음에 빼앗은 호흡이 대응을 느리게 만들고, 좀 더 큰 엇박자를 만들어내는 절묘한 변화였다. 쩌엉!! 그러나 그 또한 도왕에게 막히고 말았다. 애초에 호흡을 빼앗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끝까지 천화의 검을 주시하던 그였기에, 그 변화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16549483480926.jpg“?!”

하지만 검과 도가 맞닿는 순간, 도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황급히 내기로 귀를 감싸며 충격을 해소했다. 검과 도가 부딪히는 순간, 내기를 품은 소리가 귀를 강타한 것이다. 빠르게 내공으로 귀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고막이 터지고 귀에서 피가 흘렀을 터였다. 자연히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말았겠지. 음공. 놀랍게도 천화는 검을 이용해, 서로의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이용해 음공을 펼친 것이다. 오가는 동안 틈틈이 악마칠음을 수련한 덕분에, 이제 약간이나마 소리를 무공에 응용할 수 있게 된 천화였다. 아직은 순간적으로 소리를 증폭 시킬 수 있을 뿐, 소리에 무형의 기운을 싣거나 소리를 유형화하여 쏘아내는 경기까지는 무리였다. 하지만 청력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무인들의 귀를 순간적으로 손상 시킬 정도는 되었다.

16549483480951.jpg“일원참!”

그렇게 도왕이 깜짝 놀라는 사이, 천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의 발목을 노려갔다. 원류검법의 일초를 사용하여 원을 그리듯 회전했고, 그대로 발목을 베려 한 것이다. 까앙!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다. 엄청난 의외성을 지닌 천화의 공격에 당황하긴 했지만, 천하십대고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즉시 발을 떨치며 휘둘러오는 천화의 검면을 올려찼다.

16549483480951.jpg“됐죠?”

16549483480926.jpg“뭣?”

어쩔 수 없이 검이 튕겨진 천화가 뒤로 물러섰지만, 천화는 다음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거두고 심드렁하게 말을 건넸다.

16549483480951.jpg“한 발 움직였잖아요.”

도왕이 한쪽 발을 땅에서 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16549483480926.jpg“아닌데? 아직 한 발이 땅에 붙어 있는데?”

순간 오기가 생긴 도왕이 어린 아이처럼 맞받아쳤다. 한 발은 떼었지만 다른 한 발이 땅에 붙어있으니 움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16549483480951.jpg“어휴. 그래요. 그렇다고 합시다.”

고개를 저으며 바로 인정하는 천화를 보니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뻔뻔하게 인정하지 않고 버티었다.

16549483480926.jpg“그보다 조금 전에 그거, 어떻게 한 건가?”

16549483480951.jpg“뭐요? 아, 그거? 흠. 비밀인데…….”

16549483480926.jpg“혹시 음공을 이용한 건가? 하지만 어찌 악기도 아닌 병장기로…….”

16549483480951.jpg“에이. 신검합일만 해도 검을 육신처럼 다루는데, 악기라도 별 다를 게 있나요. 소리만 낼 수 있으면 그게 곧 악기인 거지.”

대신 음공을 이용한 변칙 공격에 대해서는 궁금한지 물어왔다. 천화는 짐짓 비밀이라는 듯 의뭉을 떨었지만, 마지못하는 척 그 비밀을 털어놓았다. 사실 개념의 차이일 뿐, 별로 특별할 것도 없으니까.

16549483480926.jpg“그렇지. 악기란 소리를 내는 도구일 뿐이지. 그리고 내공 역시……. 으음…….”

허나 도왕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나 보다. 만약 단순한 소리가 아닌, 진짜 유형화된 내공을 담은 공격이었으면 어땠을까? 순간 철렁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스륵 눈이 풀렸다.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다.

16549483480926.jpg“호법을 부탁하네.”

16549483480951.jpg“아니, 개복치도 아니고 뭐 말 한마디만 하면 다 깨달음을 얻고 난리야? 어휴. 이래서 재능충들은……. 쯧!”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참오를 시작하는 도왕을 보며 천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에게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며, 지금 도왕이 깨달은 바가 무엇일지 가늠했기 때문이다. 화경. 초극을 넘어선 그 경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은 것이다. 화경의 특징과 화경으로 가기 위한 깨달음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천화였기에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내공과 주변에 공기처럼 퍼져있는 기운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 그리하여 실시간으로 나와 주위의 내공을 공명시켜 제 것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마르지 않는 내공을 지니게 된다는 화경의 핵심을 깨닫게 된 것이리라. 물론 지금의 깨달음으로 단번에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하지만 그저 단서를 잡은 것만으로도 그의 무공에, 내공의 수발에 큰 발전이 있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해보였다. 그렇게 연구하고 발전시키다 보면 언젠가 화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 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그는 무신지로에서 결국 화경의 경지를 밟은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16549483480951.jpg“끄응. 호법을 서야 하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설영과 도왕, 두 사람 모두가 운기조식에 들어가는 바람에 천화는 뜬금없이 호법을 서야 했다. 주변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지만, 혹시 모를 충격을 받으면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깨달음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 천화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며 누군가가, 혹은 새나 동물 따위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호법을 섰고, 두 사람의 참오는 한참 뒤에야 겨우 끝이 났다. 맑은 정광과 함께, 둘은 거의 동시에 감았던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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