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너, 나랑 사업 하나 같이하자 (2) (134/481)

<134화> 너, 나랑 사업 하나 같이하자 (2)2021.09.12.

16549484608858.jpg“죄송합니다.”

16549484608864.jpg“허어. 정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잘 알겠소. 폐가 많았소이다.”

결국 임봉곤은 굳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주인장은 만날 수 없다 하고, 점소이가 무슨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을 테니 체념하고 물러서려 하는 것이다. 잠시 언성을 높이기는 했으나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점소이를 무시하거나 잔뜩 화풀이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마지막으로 정중히 사과하고 나서는 모습은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16549484608858.jpg“잠깐.”

16549484608864.jpg“……?”

하지만 그가 다시 객잔을 나서려는 순간, 광산파라 스스로를 밝힌 작자들이 그를 불러세웠다. 껄렁한 말투가 딱 한마디만 들어도 의도를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임봉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16549484608864.jpg“무슨 일이시오?”

16549484608858.jpg“대협들께서 쉬시는 걸 방해해놓고 그냥 갈 참인가?”

뻔하디뻔한 공식 같은 시비였다. 이쯤 되면 현실이 아니라 여전히 그런 컨셉의 게임 속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16549484608864.jpg“그건 사과를 했지 않소.”

16549484608858.jpg“이거 사람 죽여놓고 사과로 끝낼 놈일세? 네가 사과를 하면, 우리가 받아줘야 하나? 비무대회를 앞두고 휴식과 몸 관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엉?”

억지였다. 적어도 당장 술이나 퍼마시고 있던 놈들이 할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임봉곤은 고민하고 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16549484608901.jpg‘첫 출도라지만 심하구만.’

누가 봐도 그가 슬쩍 내비친 등짐 속 돈을 노린 시비였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 하는 임봉곤을 보며 천화가 혀를 찼다. 저 순진함과 올곧음만 어떻게 하더라도 제법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이일 텐데, 이런 식이라면 또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비무대회에는 참여조차 못할 것 같은 것이다.

16549484608864.jpg“그럼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16549484608858.jpg“흐흐. 당연히 보상을 해야지. 그래도 큰 소란을 벌인 것이 아니니 딱 은자 한 냥만 받도록 하지.”

16549484608864.jpg“흐음. 알겠소. 그럼…….”

결국 놈의 제안을 받아들인 임봉곤이 다시 등짐을 풀어 묵직한 구리문 꾸러미를 꺼냈다.

16549484608858.jpg“이게 장난 하나. 네 눈에는 여기 이 대협들이 보이지 않는 단 말이냐? 한 사람당 한 냥은 내놓아야지.”

하지만 놈들은 욕심을 부렸다. 탐욕의 빛을 드러내며 임봉곤을 압박했다. 이미 겁을 먹은 것 같으니, 적당히 윽박지르면 제법 뽑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16549484608864.jpg“어찌 그런……!”

슬그머니 2층 난간 위에서 얼굴을 내비치는 인원들을 대충 살펴도 임봉곤이 가진 구리문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빈털터리가 되고도 돈이 부족할 것 같았다. 광산파의 무인들은 적어서 서른이 족히 되어보였으니까.

16549484608901.jpg“에헤이. 이거 왜 이러실까?”

그때 천화가 나섰다. 놈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왕 임봉곤을 써먹기로 마음먹은 이상 작은 은혜를 입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16549484608858.jpg“너는 또 웬 놈이냐? 괜히 끼어들지 말고……. 헉!”

다된 밥에 재를 뿌리려하는 천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잔뜩 험악한 인상을 찌푸리며 성질을 부리던 놈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천화가 슬쩍 놈들에게 살기를 쏘아보낸 까닭이었다. 진심으로 살기를 집중시켰다면 아예 넋이 나가버렸겠지만, 적당히 조절을 했기에 겁을 먹고 입을 틀어막는 정도에 그친 것이다. 게다가 살기를 넓게 퍼트렸기에 다른 이들 역시 천화를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16549484608901.jpg“무인이 돼서 좋은 칼 놔두고 입만 털어서 쓰나. 술 처마시면서 휴식 타령하지 말고, 꼬우면 나서는 게 어때? 아니면, 너희도 나한테 보상을 좀 해주든가?”

천화는 그들이 휴식을 방해받았으니 보상을 내놓으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보상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아니면 한판 붙든가. 당연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천화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이미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꼬리를 만다면 꼴이 우스워지니까. 당장 객잔 주인을 볼 낯도 없는 데다, 세간에 알려진다면 광산파의 명성이 땅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천화가 아주 이름 높은 고수라면 또 모르겠지만, 저 정도 나이 대의 후기지수 중 그와 같은 특징이나 생김을 가진 고수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역시 강호초출이거나 아직 명성을 날리지 못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16549484608864.jpg“군자가 사소한 다툼에 칼을 쓰다니,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초를 친 것은 다름 아닌 임봉곤이었다. 선비처럼 꼬장꼬장한 그의 성격이 천화의 계획을 망치려 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천화의 예상의 범주 안에 있는 반응이었다.

16549484608901.jpg“에이! 그거야 군자의 도리지, 강호의 도리는 또 그게 아니거든요. 무인끼리 시비가 붙으면 비무로 답을 구한다. 그게 이 바닥의 법도입니다. 이봐, 안 그래?”

16549484608858.jpg“그, 그렇다.”

천화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리자 광산파 쪽에서도 긍정적인 답이 나왔다. 칼을 뽑지 않으려는 임봉곤의 반응이, 무공에 자신이 없기 때문으로 비친 것이다. 그렇다면 천화의 중재 아닌 중재를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터였다. 천화도 천화였지만 그 뒤에 서있는 여인, 설영의 경지는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자신보다 최소 한 단계 위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절정.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도달할 수 있는 그 경지에 저 여인이 발을 디딘 것이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 고작해야 지금까지 배출한 절정 고수의 숫자가 열을 넘기지 못하는 광산파 따위가 비빌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16549484608864.jpg“으흠. 그런 것이었구려.”

광산파까지 이렇게 나오자 임봉곤도 그 말에 수긍했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봇짐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거의 채워지지 않은 빈 서책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16549484608858.jpg“……뭐하는 거냐?”

16549484608864.jpg“제가 강호 초출이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라 잊어버리지 않게 적어두는 것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16549484642657.jpg“풋.”

그 모습에 황당해진 놈들이 묻자 임봉곤은 황당한 답을 내놓았다. 지켜보던 설영마저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살풋 미소를 지을 정도. 하지만 막상 상대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놀리는 것으로 보였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16549484608858.jpg“누가 나설 테냐.”

16549484608858.jpg“제가 하겠습니다.”

16549484608858.jpg“제가 가죠. 기어서 나가게 만들어주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들의 인솔자로 보이는 장년인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임봉곤이 꼬장꼬장한 성격을 지녔다지만 나이는 어렸으니까. 자신이 직접 나선다면 모양도 살지 않고, 설사 승리한다 하더라도 뒷말이 나올 수 있으니 같은 후기지수 급에서 상대를 찾는 것이다.

16549484608858.jpg“광훈. 네가 나서라. 주독은 태워버리고.”

16549484608858.jpg“예! 장로님!”

그리고 그중 가장 실력이 좋은 한 놈을 골랐다. 기감을 펼쳐 살피니 일류 중반쯤에는 오른 듯한 실력이었다. 더구나 광산파의 무공은 외공에 가까울 만큼 강인한 육체에서 뿜어지는 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조금 약해지긴 하지만 후기지수 정도의 젊은 나이대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장 후기지수 비무대회에 나서더라도 예선 정도는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16549484608901.jpg‘하지만 어림도 없지.’

그에 반해 임봉곤은 평범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무인이었다. 물론 약관의 나이로 일류급에 턱걸이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평범하다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비무대회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서는 평범한 내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개중에는 대문파라 불리는 곳의 소속이 아니더라도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영약을 떡칠해서 내공을 불려온 이들이 수두룩한 걸 감안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강했다. 일신의 내력은 평범한 수준이더라도 지극히 기본에 충실했으니까. 흔히 무인들은 신공절학을 익혀야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임봉곤은, 그가 속한 황산파는 무공의 뿌리가 되는 기본기가 탄탄해야 상승의 무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정통파였으니까.

16549484608901.jpg‘내력이나 무공 등급이 압도적이라면 모르겠지만, 황산파의 무공도 일류급은 되니까.’

그리고 그것은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어설프게 고수 흉내를 내는 것들은 진짜 고수가 되기 어렵다. 물론 신공절학을 익힌다면, 영약을 밥 먹듯 한다면 단숨에 고수로 불릴 수 있겠지만, 기본이 바로서지 않았다면 금세 동급의 무인이나 외려 한 단계 낮은 경지의 인물에게 패할 수도 있다. 게다가 쉽게 힘을 얻은 만큼 벽을 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를 엿보기는 더 어려움이 있었기에 천화는 임봉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가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6549484657723.jpg“이런 이런, 비무를 하신다면 공증인이 필요하시겠군요? 부족하지만 제가 공증인을 맡아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광훈이라 불린 자가 1층에 내려앉은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객잔에 방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 중 하나였다.

16549484608858.jpg“어디의 누구이신가?”

16549484657732.jpg

  비무의 공증인을 자청하는 사내. 천화나 임봉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젊은 나이의 사내였다. 하지만 비무의 공증은 제법 이름이 있거나 배경이 있는 인물들이 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광산파의 장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렇게 자신 있게 공증인을 하겠다 나설 정도라면 제법 배경을 가진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6549484657723.jpg“저는 만금상단의 소가주, 금무성이라고 합니다.”

16549484608858.jpg“만금상단?”

16549484608901.jpg‘오호? 얘도 여기에 있었네?’

만금상단. 그곳은 중원에서 오대 상단에 꼽히지는 않지만 제법 잘 나가는 신흥 상단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빼어난 수완으로 몇 개나 되는 큰 거래를 성사시키며 급격히 덩치를 불리는 곳이지만, 다른 거대 상단들과 다르게 불법적인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6549484608901.jpg‘그게 다 이 녀석 덕분이지.’

거기까지가 일반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리고 사실, 갑자기 만금상단이 덩치를 키울 수 있던 원인은 바로 이 녀석 덕분이었다. 황금수 금무성. 손을 대는 것마다 크게 이득을 보는 투자의 귀재. 상재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사람을 보는 눈이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투자해서 결과적으로 큰 이득을 보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고인물 중 하나인 황금충, 기존의 강호인 천하상단과 함께 천하 상권을 삼등분해먹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천화도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영입해보려던 인재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꽤 운이 좋았다.

16549484608858.jpg“좋아. 만금상단이라면 믿을 만하겠지.”

상대 역시 만금상단의 이름을 들어보았는지 흔쾌히 공증인이 되는 것을 허락했다. 천화와 설영이 공증인이 될 수도 있지만, 약간의 시비가 붙은 상황이니 따로 공증인을 두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16549484608858.jpg“그럼 시작하지.”

16549484608864.jpg“한 수 배우겠습니다.”

공증인까지 나타나자 비무는 즉시 속행되었다. 광훈은 커다란 도를 꺼내들었고, 임봉곤 역시 차분하게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16549484608858.jpg“배울 게 있을지 모르겠군. 금방 끝날 테니 말이야. 차핫!!”

선공을 취한 것은 광훈이었다. 광산파의 무공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패도적인 초식이 중심이니까. 수비보다는 공격에 특화될 수밖에 없고, 선공을 취할 때 그 힘이 십분 발휘되는 것이었다. 결코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폭발적인 힘과 속도로 임봉곤의 머리를 쪼개갔다.

16549484608864.jpg“조심하십시오.”

스르륵- 그 일격에 임봉곤은 무척이나 차분하게 대응했다. 검을 가로로 세워 받아내는가 싶더니 슬쩍 손목에 힘을 풀며 흘려낸 것이다. 지극히 정석적인 대응이었지만 조금만 손목의 힘이 약해도, 검이 부딪히는 순간을 잡아내지 못해도 역으로 큰 타격을 받을 위험천만한 대응이었다.

16549484608858.jpg“큭!”

허나 성공했다. 누구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인물이라는 평가답게, 아주 깔끔한 동작으로 도를 흘려내고 역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베어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리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다음 격돌에 대비했다.

16549484608901.jpg‘저런 모습 때문에 승부욕이 없다는 평가를 믿기도 했지만, 사실 저게 상대 입장에서는 더 빡치는 법이지.’

딱 기대한 만큼의 모습. 천화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상대는 분통을 터트렸다.

16549484608858.jpg“큭! 방심했을 뿐이다!”

그러게 누가 방심을 하랬나? 광훈은 얼른 혈도를 점해 쏟아지는 피를 잠재우고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굳은 표정으로 재차 임봉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16549484608864.jpg“동작이 너무 크신 것 같습니다만.”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한 말투. 사실이었지만 대결 상대에게 들으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콰앙 콰앙 쾅 쾅!!! 그 주둥이를 뭉개주겠다는 듯, 곡괭이를 내리찍듯 연거푸 도를 내리치는 광훈이었지만 임봉곤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때로는 흘려내고, 때로는 살짝 비껴쳐서 상대의 힘을 분산시킨 뒤 드러나는 틈을 향해 검을 찔러넣을 뿐이었다.

16549484608858.jpg“그만!!”

반각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났다. 어쩌면 첫 격돌에서 실력의 차이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었지만,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지켜보던 것인지도 몰랐다.

16549484608858.jpg“장로님! 아직입니다! 아직…….”

광산파의 장로가 시뻘겋게 굳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고, 광훈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을 늘어놓았지만 그 역시도 알고 있을 터였다. 더 해봤자 상처만 늘어날 뿐이라는 것을.

16549484608858.jpg“닥치거라! 상대를 앞에 두고 흥분한 순간, 이미 네가 진 것이다!”

16549484608901.jpg‘늙은이가 말빨이 좋네.’

하지만 장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묘한 말로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광산파의 무공이 패한 것은 아니라는 듯한 표현을 했고, 더 상처를 입기 전에 광훈을 불러들였다.

16549484608858.jpg“저 아이가 졌소. 패배를 인정하리다.”

더 창피를 당하기 전에 승부를 매듭지으려 들었다.

16549484657723.jpg“공증인으로서 선포하겠습니다. 이 승부는 그…… 형장의 별호가 어떻게 되시오?”

16549484608864.jpg“아, 별호는 아직 없습니다. 강호 초출이라서요.”

16549484657723.jpg“그럼 사문이나 성함이라도…….”

16549484608864.jpg“황산파의 임봉곤입니다.”

16549484657723.jpg“황산파의 임봉곤 소협이 승리했습니다.”

16549484687508.jpg“오오오오!!!”

찌릿

16549484687508.jpg“흠흠흠.”

금무성의 선언에 주위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이들이 환호하다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광산파의 일당들이 그들을 노려본 까닭이었다. 코가 납작해지기는 했지만 그들이 몰락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괜히 그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16549484608858.jpg“가자!”

16549484608901.jpg“잠깐!”

모두의 얼굴에 분함이 가득했지만 공증인까지 있던 마당에 더 이상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기에 장로가 날이 선 말투로 소리를 쳤다. 술맛도 떨어졌고, 더 머무를 낯도 없었기에 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허나, 그것을 천화가 불러세웠다. 비무가 끝났으니 이제 셈을 할 차례가 아닌가? 그런데 어딜 내빼려고?

16549484608858.jpg“……무슨 일인가.”

16549484608901.jpg“에헤이! 갈 때 가시더라도 셈은 바로 해야죠.”

16549484608858.jpg“셈? 무슨 셈이 남았다는 게지?”

천화의 외침에 멈춰선 장로가 죽일 듯 노려보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16549484608901.jpg“저 친구가 이 소협에게 은자 한 냥을 요구했었죠? 만약 졌다면 그걸 줘야 했을 텐데, 이겼으니 오히려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약 패배했다면 상처를 입는 것도 문제지만 저들의 수대로 돈을 챙겨주어야 했을 텐데, 이겼으니 역으로 받아야하지 않겠나? 그들이 휴식을 방해한 대가라고 했으니, 이쪽도 땀을 흘린 대가를 받는 것이 옳을 터였다.

16549484608858.jpg“……받게.”

휘익 천화는 그것을 들먹이며 얄밉게 웃었고, 장로는 볼을 부들거리며 은자 한 냥을 꺼내 천화에게 던졌다.

16549484608901.jpg‘이 새끼가?’

감정이 다분히 실린, 내력까지 불어넣어 자칫 내상을 입힐 수도 있는 수법이지만 천화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16549484608901.jpg“거참 셈법도 안 배우셨나.”

16549484608858.jpg“뭣이?”

가볍게 내력을 해소하고 그것을 받아든 천화는 껄렁한 말투로 다시 한 번 그를 붙잡았다.

16549484608901.jpg“사람이 몇인데 한 냥으로 퉁치려고 합니까? 인원수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 건 그쪽 아니셨나?”

이쪽도 인원수에 맞춰서 돈을 내놓으라고 했으면 자신들도 인원수대로 돈을 뱉어내야 하지 않겠나? 어디 한 냥으로 퉁치려고?

16549484608858.jpg“이잇!”

화가 났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 저들까지 끝장을 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들의 배경을 알 수 없는 데다 만금상단의 소가주까지 개입한 상황에서 판을 엎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자신조차 쉬이 경지를 측정할 수 없는 설영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화를 완전히 참을 수는 없었는지 기억해두겠다는 듯 천화를 노려보며 전낭을 통째로 집어던졌다.

16549484608901.jpg“오? 인심이 후하시네!”

그것을 얄밉게 낚아채어 세어보는 천화의 모습을 보자 주화입마에 걸릴 것 같았기에 발을 쿵쿵 구르며 방으로 향했다.

16549484657723.jpg“흐음. 이거 곤란하게 됐군요. 광산파의 협객들께서 이곳에 머물며 객잔을 보호해주신다고 들었는데…….”

그때, 금무성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소리치지는 않지만 조용한 객잔이 울리며 퍼지는, 누가 봐도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객잔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공짜 숙식을 제공받고 있다더니,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설마 낯짝 두껍게 더 있을 건 아니지? 걱정하는 듯 말했지만 해석해보자면 그런 뜻과 다름이 없었기에, 광산파 전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16549484608858.jpg“모두 채비를 해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으니 슬슬 숭산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결국, 광산파의 장로가 변명 같은 명을 내렸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것은 물론이요, 문파의 명성에 똥칠만 할 것 같았기에 도망치듯 짐을 싸서 길을 떠났다.

16549484608901.jpg“주인 아조씨! 빈대 붙던 놈들도 사라졌으니까, 방값이 좀 내려가겠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천화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살피던 객잔 주인에게 말을 던졌다.

16549484657723.jpg“그건 제가 이미 이야기 마쳐두었습니다. 저희의 숙식비는 반값만 받으신다고 하네요!”

하지만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금무성이 객잔 안쪽에서 튀어나온다 싶더니, 시비가 붙는 것을 보고 이미 객잔 주인과 협상을 끝내둔 모양이었다. 그 짧은 순간 광산파를 쫓아주는 것에 대한 협상을 끝내두다니, 하여간 녀석도 대단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만! 천화와 금무성이 서로를 마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고, 설영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 천화가 둘이 된 기분이었다.

16549484718617.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