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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초원의 지배자 (1) (156/481)

<156화> 초원의 지배자 (1)2021.11.02.

초원의 길은 넓고 투박했다. 땅덩어리가 제법 큰 까닭에 관도도 널찍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많은 이들이 오가는 곳은 아니다 보니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있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뻥 뚫린 지형이다 보니 이동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중원의 영역을 반쯤 벗어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흑갈파를 비롯한 사파 놈들이 호되게 당한 소문이 퍼져서인지 딱히 시비를 걸거나 매복을 한 이들도 없었고.

1654948791792.jpg[100장쯤 벗어난 곳에 몇 놈이 있긴 한데 딱히 접근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유목민들인 것 같군요.]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해도 혈마검이 있는 이상, 천화를 놀라게 하지는 못할 테지만.

16549487917925.jpg“이제 곧 마을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었다. 유목민들의 마을 중 가장 큰 곳에 곧 도착할 예정이니까. 그리고 그 마을은 현재 전란의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16549487917925.jpg“다시 한 번 당부드리겠습니다. 제발 눈에 띄는 행동은…….”

16549487917934.jpg“그,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그렇기 때문일까? 나예린의 당부와 별개로 이미 마을의 외곽에는 어수선한 움직임이 있었다. 계속해서 노숙을 하느라 꾀죄죄한 모습이지만 제법 커다란 행렬이다 보니 이미 마을 쪽 망루에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다. 고수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한 무리의 기운이 마을 입구로 모여들고 있었다.

1654948791792.jpg“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곧이어, 그들이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중하듯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16549487917934.jpg“저희는 중원에서 온 무인들입니다. 잠시 이곳에서 쉬어갈 수 있을까요?”

1654948791792.jpg“오, 중원에서 오셨다고요?”

허나 나예린의 우려와 달리 천화는 정중했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 또한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이곳의 몽고인들은 중원인을 꽤 좋아하는 친 중원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16549487917934.jpg‘짝사랑 같은 거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 그들의 호의와 달리 중원은 그들에게 썩 살갑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북해에는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가는 것에 비해, 그들보다도 가까운 몽고에는 별다른 대응이 없는 것만 봐도 그랬다. 어차피 최단거리로 이동하려면 그들을 거쳐야 함에도, 당연히 그들을 피해 돌아가거나 부딪히지 않을 것을 상정하고 정파 연합에서 선물 하나 마련해주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랬다. 그렇게 이유 없는 천대를 받는 것이 이들이지만 천화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로 뭉치지 않아 세력을 갖추지 못했을 뿐, 단순히 무력만으로 보더라도 이들은 중원인들에게 무시 받을 이유가 하등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이들 하나하나가 최소 이류나 일류 고수에 육박했고, 말까지 탄다면 그 전투력은 급상승한다. 말과 활이라는 중원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을 무기로 삼기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반대로 개활지에서는 그것만큼 강한 무기도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이 활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기에, 창이나 도를 사용하는 무공 역시 훌륭한 편이었다.

16549487917956.jpg“환영합니다. 저는 이 부족을 이끌고 있는 바야르라고 합니다. 누추하지만 내 집처럼 얼마든지 쉬다 가십시오!”

가장 선두에 선 젊은 청년이 그들을 대표해 사절단을 환영했다. 그가 바로 이곳의 수장인 바야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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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목민 부족의 수장이 된 그였지만 세습된 직위라고 무시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중원의 어느 천재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재능을 갖춘 인물이니까. 인품도 제법 훌륭하고, 머리도 비상한 편이었기에 친분을 맺어둔다면 결코 후회가 없을 인물이기도 했다. 단 한 가지, 초원의 지배권을 둔 싸움에서 대패하여 쫓겨난다는 것만 제외하면.

16549487917934.jpg‘경험 부족이 컸지.’

그를 제치고 초원의 지배자가 될 숙부에 비해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지만 경험과 모략에서 패배한 것이다. 지략은 뛰어나지만 모략이 부족해 패하다니, 조금 우습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간신히 죽음은 면했지만 상당한 시간 동안 음지에서 다시 힘을 키우며 기회를 노려야만 했고.

16549487917934.jpg‘내가 있는 이상, 이번에는 아니겠지만.’

천화는 그 미래를 바꿀 참이었다. 그의 숙부는 중원에 적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유목민들을 강제로 통합해 세력을 갖춘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힘의 화살이 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원 정벌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양측 모두 큰 타격을 입어 향후 마교와의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정파가 약화되면 그만큼 마교의 발호가 빠르게 일어나고 천화가 중요 분기 임무를 서둘러 마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천화는 그보다 믿을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이곳에는 자신을 도와줄 플레이어나 고인물들이 없으니까.

16549487917956.jpg“감사합니다.”

긴 행렬과 수레에 가득한 짊을 훑어보는 바야르의 눈에 어떤 열망 같은 것이 가득했다. 물건에 대한 탐욕은 아니다. 혹여나 중원에서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으로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16549487917934.jpg‘응. 니 거 아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몫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실망이 크겠지만, 천화는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할 참이었다. 금무성을 통해 따로 준비한 물품 중에 그들이 혹할 만한 것들이 제법 있었으니까. 그것을 이용한다면 중원 무림이나 정파 연합에 대한 호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호감과 감사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16549487917934.jpg“감사합니다. 그럼 사양 않고!”

나예린가 언중걸 등 다른 이들은 그들의 환대를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지만, 천화는 환하게 웃으며 기꺼이 호의를 받아들였다. 사양은 미덕이라지만 유목민들의 문화를 생각하면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으니까. 손님에게 후한 대접을 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고, 손님이 그것을 사양하면 집주인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이쪽으로 넘어온 이들이 꽤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음식이든 술이든 입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참고 넘긴다면 친구가 될 것이요, 거부하거나 포기한다면 적이 될 수도 있었기에 천화는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며 앞장서서 그들을 따라갔다.

1654948791792.jpg“그래도 간만에 편히 쉴 수 있겠군요.”

1654948791792.jpg“혹시 저들이 저희를 공격해오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숙소를 안내받은 사절단은 그간의 피로가 몰려왔는지 노곤한 표정을 지었다. 사문에서 어떤 교육을 받은 것인지, 혹은 유목민들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여전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아예 접촉을 꺼려했기에 어지간해서는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았다.

16549487917934.jpg“짐을 풀고 편히 쉬십시오. 외부의 공격이 있다면 모를까, 저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하거나 암습을 해오지는 않을 겁니다.”

사절단을 안심시키고, 천화는 세 가지 당부를 늘어놓았다. 그들과 가능하면 접촉하지 말 것. 혹여 저들이 호의를 보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사양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 사절단의 목적지가 북해빙궁이라는 것을 알리지 말 것. 크게 보면 이 세 가지였다. 여기에 더해 자잘한 그들의 예법을 일러주자, 꺼림칙해하면서도 모두 알아들었다. 애초에 첫 번째 원칙처럼 그들과 교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이들이었기에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들이 긴 여정을 하며 피로가 쌓였고,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두었기에 굳이 숙소까지 찾아와 귀찮게 구는 이들도 없을 테고 말이다.

16549487917934.jpg“그럼 쉬고 계십시오.”

그런 가운데, 오직 천화만이 숙소 바깥으로 나왔다. 설영과 세주연이 따라 나설 것을 이야기했지만 천화가 거부한 까닭에 그냥 쉬기로 한 것이다. 남들보다 체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피로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숙소라고는 해도 중원처럼 객잔 따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커다란 천막을 내어준 것에 불과했기에 문을 열고 나오면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는 판이었다.

16549487917934.jpg“바야르 님에게 안내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천화는 그들 중 아무나 붙잡고 바야르의 위치를 물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천화로서도 알기 어려웠다.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유목민의 특성 때문인지, 중원에 친화적인 그의 성향 때문인지 지금 사절단이 묵고 있는 숙소는 본디 이 부족의 장인 바야르의 천막이었으니까.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갔으니 그가 어디 있는지를 알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1654948791792.jpg“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지만 그 위치가 비밀인 것도 아니었기에, 천화가 말을 붙인 유목민은 기꺼이 그를 바야르에게로 인도했다.

16549487917956.jpg“하하! 제가 먼저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숙소는 마음에 드십니까?”

심각한 얼굴로 수하들과 뭔가를 논의 중이던 바야르가 천화를 발견하고 환히 웃으며 반겨주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천화이기에 그것이 순수한 호의라는 것을 알았다. 초원을 넘어 중원까지 먹어치울 야심에 부푼 숙부와 달리, 그는 이 생활과 환경에 만족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다만 자신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중원과의 교류를 통해 메우고 싶어 할 뿐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원과 친교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겠지만.

16549487917934.jpg“예. 훌륭하더군요. 감사드립니다.”

16549487917956.jpg“다행입니다. 이런, 제가 손님 대접이 소흘했군요. 이봐라! 여기 술상을 푸짐하게 봐오거라!!”

1654948791792.jpg“그럼 저희는 일단 물러가 있겠습니다.”

천화의 기꺼운 화답에 바야르는 즉시 본격적인 손님 대접에 나섰다. 손님에게는 술부터 한 사발 대접하는 예법에 맞춰 거하게 술상을 봐오도록 지시했고, 수하들도 그런 그를 이해하는지 알아서 자리를 정리한 뒤 공손히 물러섰다. 둘만의 술자리가 벌어졌다.

16549487917956.jpg“오오오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16549487917956.jpg“하! 역시!”

16549487917956.jpg“정말 언제든 중원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군요.”

대화의 주제는 소소했다. 바야르는 마치 짝사랑하는 여인의 소식을 전해듣는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중원의 소식들을 묻고 들었고, 천화가 새로 창설된 정파 연합의 인룡단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새삼 달라 보인다는 듯 동경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16549487917956.jpg“그럼 혹시…… 저희에 대해서는 뭔가 이야기가 없었습니까?”

16549487917934.jpg“죄송합니다. 따로 그런 이야기는 전해듣지 못했습니다.”

16549487917956.jpg“그렇군요.”

그리고 실망했다. 사실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중원에게 구애의 몸짓을 하는 것에 비해, 그들은 자신들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하지만 정파 연합이란 것이 창설되고, 세외와의 교류와 협력으로 세력을 공고히 하려 한다면 자신들에게도 무언가 전언을 보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헛된 희망을 품은 것이다. 그 희망은 곧 실망으로 다가왔고, 시무룩해져 있는 그에게 천화가 슬며시 운을 띄웠다. 이간질을 할 생각까지는 없지만 사실이었고, 자신에게는 그를 도울 방법이 있으니까.

16549487917934.jpg“정파 연합에서는 그렇지만 저는 이곳의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바야르 님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고 싶고요.”

16549487917956.jpg“예?”

16549487917934.jpg“이건 정파 연합이나 인룡단장으로서가 아니라 저 개인의 의사이고 결정입니다만, 바야르 님을 돕고 싶습니다.”

그 탓일까? 침울해져있던 바야르의 표정에 희미한 빛이 스쳐갔다.

16549487917956.jpg“말씀만이라도 감사하군요. 마음은 감사히…….”

16549487917934.jpg“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이대로라면 호약에게 밀리실 텐데요.”

16549487917956.jpg“!!”

그저 위로라고 생각하던 바야르에게 천화는 돌직구를 던졌다. 그의 숙부인 호약의 이름을 대며 경고한 것이다. 자신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는.

16549487917934.jpg“현재의 전황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큰 전투가 있겠죠?”

16549487917956.jpg“그걸 어떻게…….”

16549487917934.jpg“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바야르 님과 초원의 일에 관심이 많다고요.”

16549487917956.jpg“으흠.”

그 역시 현재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았기에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천화 혼자서 그들을 돕는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고민인 듯싶었다. 당장 호약의 세력과 자신의 세력은 큰 격차가 나지 않으니 분명 도움이야 되겠지. 아니, 자신들이 조금은 더 우위에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개인적인 호감과 관심은 고마워도 딱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천화가 강자라고는 하지만 초원의 싸움에는 익숙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또 중원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중용한다면 겨우 다독여놓았던 일부 세력들이 반발을 할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기에 천화는 그 불안과 미심쩍음을 불식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16549487917934.jpg“일단 이것을 보시겠습니까?”

그래서 천화는 자신의 소지품창을 열어보였다. 그 안에서 금무성을 통해 구해온 물품들이 담긴 수레 두 개를 꺼내보였다.

16549487917956.jpg“이건?! 이 많은 게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16549487917934.jpg“뭐……. 술법쯤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이것 외에도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제법 많이 있습니다. 특히 조만간 벌어진 대회전에서 가볍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황을 확실히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그것들을 보자 바야르의 눈이 반짝거렸다. 어쩌면 천화의 도움보다도 그것들이 가져올 이점이 훨씬 클 것 같았다.

16549487917934.jpg“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16549487917956.jpg“조건이요?”

이제는 눈빛이 바뀌어 깊은 관심을 보이는 바야르에게, 천화가 음흉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대로 적들이 움직여준다면 아주 쉽고 빠르게 초원 통일이 가능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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