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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초원의 지배자 (3) (158/481)

<158화> 초원의 지배자 (3)2021.11.07.

말이 통제력을 잃은 기마병과, 온전히 제 몸처럼 다루는 기마병의 전투력은 압도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차이가 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기마병이 강력한 이유는 특유의 기동력과 돌진력, 그리고 말 위에서 기예를 펼치듯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을 퍼붓는 기마술에 있으니까. 그것이 불가능해지니, 차라리 말에 올라타지 않은 것만 못한 상황이 되었다.

16549488308379.jpg“멈춰!”

16549488308379.jpg“앉아!”

16549488308379.jpg“일어나!”

16549488308379.jpg“돌아!”

심지어 세주연은 그들이 탄 말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래서야 싸움이 되지 않는다.

16549488308403.jpg“어딜!”

까가가강!!! 이대로라면 답이 없다. 그것을 깨달은 이들이 세주연을 향해 강기가 실린 화살까지 날려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세주연의 곁에는 설영이 있었으니까. 혈마화를 하지 않아도 이제 강기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게 된 설영이었기에, 화살을 쳐내며 방어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 한 발의 화살도, 단 한 명의 전사도 세주연에게 다가오지 못했고, 그사이 바야르의 전사들이 파도처럼 그들을 휩쓸어버렸다.

16549488308403.jpg“큭? 어째서?!”

원래대로라면 그렇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공방은 이루어져야 했다. 그들의 기마술이라면 날뛰는 말 위에서도 최소한의 힘은 발휘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막상 부딪혀보니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들이 가진 무기 때문이었다.

16549488308411.jpg‘템빨에는 장사 없는 법이지.’

천화가 바야르에게 지원해준 수레 몇 개분의 물품은 다름 아닌 무기였다. 아직 손에 익지는 않았겠지만, 초원에서 만들고 구할 수 있는 물품보다는 월등한 성능을 지닌 무기들이 그들의 손에 들려있었다. 아무래도 제련 기술이 중원에 비해 떨어지는 초원이다 보니, 무력에 비해 그들이 사용하는 병기는 그리 질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중원의 명품 또는 희귀급 무기들을 쥐어주자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그야말로 날아다니듯 적진을 휘저었다.

16549488308403.jpg“피, 피해라!”

16549488308403.jpg“이게 관통을……?!”

그리고 천화가 선물한 것들 중에는 상당한 숫자의 화살도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화살은 상당한 탄성을 자랑하며 멀리 쏘아내기에 좋았지만, 중원에서 벼려낸 화살은 화살촉이 달랐다. 화살대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잘 제련된 화살촉은 무시무시한 위력과 관통력을 자랑했고, 거기에 그들의 궁술이 더해지자 단거리에서는 훨씬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만약 시간이 있어 그들의 화살대에 중원의 화살촉을 더할 수 있었다면 더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했겠지. 때문에 평소처럼 막거나 쳐내려고 했다가는 적잖은 손해를 보는 일이 속출했고, 전황은 한순간에 일방적으로 변해버렸다.

16549488308411.jpg“이거 꽤 재미있는데?”

그사이 천화는? 흑우, 롱롱이와 함께 적들의 후방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흑우에 올라탄 채 검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저들처럼 싸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흑우와 롱롱이는 그저 탈것으로만 이용하기에 너무 강력했으니까. 두 녀석을 알아서 싸우도록 풀어두고, 천화는 적들이 탄 말들을 옮겨다니며 검을 휘둘렀다. 날뛰는 말 위에서 중심을 잡거나 발판삼아 움직이는 것은 절정의 무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무형신보가 그것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어떤 자세, 어떤 위치에서도 펼칠 수 있는 무형신보였기에, 천화는 징검다리 건너듯 말들을 뛰어넘어 다니면서도 지상처럼 편안하게 검술을 펼칠 수 있었다. 더구나 살기라면 천화 또한 어디 가서 빠지지 않게 사용할 수 있으니, 순간적으로 말에 살기를 쏘아내어 상대의 균형을 빼앗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게 후방을 교란시키다 못해, 궤멸시켜 나갔다.

16549488324425.jpg“호약!!!”

그리고 그 순간, 친위대가 열어준 길을 따라 말을 달린 바야르가 상대 진영의 수장인 호약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16549488308403.jpg“제길! 막아라! 막아!!”

그러나 놈은 바야르와의 일전을 회피했다. 수하들을 부려 그를 막아서게 지시한 것이다.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물론 그 역시 초원의 전사들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강자였다. 그렇기에 다른 파벌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허나 바야르의 무력은 나이를 초월하여 그를 압도했다.

16549488324425.jpg“직접 나서라!!”

이제는 숙부라는 호칭도 붙이지 않는 바야르가 자신을 막는 전사들을 베어넘겼다. 그는 특이하게 언월도를 사용했는데 때로는 휘두르고, 때로는 찌르며 덤벼드는 상대들을 단박에 격살하는 모습이 마치 수염 없는 관우와 같았다.

16549488308403.jpg“분명, 승기가 넘어 왔었는데……!”

털썩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며 바야르가 직선으로 달려 숙부인 호약의 목을 따는 것은 불과 일각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무위의 차이부터가 분명한 데다, 그들의 말은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미리 세주연이 바야르 측의 말들에게는 따로 친화력을 발휘해 주인의 뜻을 따르고 있으라는 지시를 내려둔 까닭에 이런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보유한 말의 숫자에서부터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을 그들이지만, 반대로 말의 우위에서 비롯된 차이로 인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천화와 세주연이 있었고.

16549488324425.jpg“모두 멈추어라!!!”

그렇게 호약의 목을 베어내자마자 튀어오르는 수급을 취한 바야르가 그것을 높이 쳐들었다. 모두가 보이도록 언월도의 끝에 끼운 뒤, 내공을 가득 실어 초원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어쩔 수 없이 베어내긴 했지만, 초원을 물려받고 지배하는 이로서 같은 유목민들의 목숨을 취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6549488308403.jpg“아아, 호약님이……!”

16549488308403.jpg“벌써 승부가 갈렸단 말인가!”

16549488308403.jpg“초원의 신께서 바야르 님의 손을 들어주셨군.”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전투가 멈추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했으니까. 조금 전까지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무기를 휘두르던 그들이지만, 그 이전에 같은 초원의 일족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싸움을 통해 초원의 신의 뜻을 살필 뿐이지,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각오로 겨룬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치열하고 격렬하던 전투였지만, 바야르의 승리를 확인한 순간 모든 이들이 다시 친구가 되었다.

16549488308411.jpg‘이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탈하는 건 소수겠지.’

물론 저들 중 호약의 뜻에 진심으로 동조한 몇몇은 이탈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일 뿐, 대다수의 인원은 다시 바야르의 뜻을 따르게 될 테고 초원의 유목민들은 한데 뭉치게 될 터였다. 바야르의 성격을 생각할 때 강제적인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지금처럼 자유로운 소수 부족 생활을 원하는 이들은 놓아둘 테지만, 그 외에는 한데 뭉치게 될 테고 제법 큰 세력을 구축할 터였다. 그들은 다시 천화의 힘이 되어줄 테고.

16549488324425.jpg“전투는 여기까지다! 모두 부족으로 돌아간다!”

16549488340323.jpg“예!!!”

마치 연극을 하듯 말 한마디에 적대하던 이들을 따르는 모습이 비현실적이었지만, 그것이 저들의 문화인 것을 어쩌겠나. 천화는 세주연에게 부탁해 말들의 통제를 풀어주었고, 그날 밤 초원은 밤이 늦도록 밝게 빛났다. 술과 고기를 풀고 어울리며 화해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16549488324425.jpg“이제 떠날 텐가?”

16549488308411.jpg“그래. 내일 아침에는 슬슬 출발을 해야겠지. 그들이 이동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얼추 설산 근처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6549488324425.jpg“자네와 친구들 덕분에 많은 목숨을 건졌네. 초원이 자네들에게 큰 빚은 진 셈이야.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16549488308411.jpg“뭐,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그 자리에서 바야르는 천화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보다, 압승을 거두면서 피해가 최소화되었다는 것이 더 기쁜 모양이었다.

16549488324425.jpg“그래. 친구끼리는 돕는 것이지. 훗날 자네에게도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나와 초원의 전사들이 힘껏 도울 것이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를 상대하는 것이든.”

결연한 표정으로 약속하는 바야르의 모습에 천화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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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더 전해주었다.

16549488308411.jpg“말이 나온 김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16549488324425.jpg“제안?”

사실 선물이라고 이야기하기는 뭐하다.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인 것은 맞지만, 엄연한 거래였으니까. 천화는 바야르에게 만금상단과의 교역을 언급한 것이다. 그들이 중원의 물품들과 무기를 공급하고, 그들은 초원에서 나는 물품들을 만금상단에 판매하는 것이다. 남만처럼 희귀한 약초 따위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초원이 넓게 펼쳐진 곳답게 가축들은 풍부했으니까. 예를 들어 양을 잡는다고 하면 지금까지는 먹을 만큼 먹고, 털을 깎아 적당히 옷을 해 입거나 버렸지만, 이제는 남는 것들을 모두 만금상단에 파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하면 만금상단이 손해였다. 옷감이나 고기 따위는 중원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천화는 그 너머까지 보고 있었다. 북해로의 판로 확장. 단련된 무인이면 좀 낫겠지만 늘 추위에 떨 수밖에 없는 북해인들에게 따뜻한 옷을 지어 판매하고 북해에서만 나는 물품들과 교환 또는 매매하여 중원에 가지고 오는 것이다. 초원에는 이렇다 할 만큼 중원인들이 혹할 물건이 없지만, 북해는 다르니까. 다만 먼 거리와 운송기한 대비 수익이 나지 않아 천하상단조차 그들과 정기적인 거래를 틀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초원이 중간다리 역할을 해준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천화는 그 점을 알기에 만금상단과 초원 부족들을 연결해준 것이었고, 제대로 성사된다면 양측 아니 세 곳 모두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터였다.

16549488308411.jpg‘나한테도 콩고물이 좀 떨어질 테고.’

이미 금무성이 일을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만금상단의 소가주 자격으로 수익 배분을 해줄 것이라 약속했기에, 천화는 적극적으로 그 거래에 대해 설명했다.

16549488324425.jpg“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야 당연히 환영할 일이네. 부족민들의 생활이 훨씬 윤택해질 수 있겠군.”

제법 긴 설명이 끝난 후, 바야르는 그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로서도 손해 볼 것이 없었고, 무엇보다 중원 친화적인 그였기에 중원의 물품들을 들여올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단순히 중원에 대한 동경 때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물품을 수공예에 의존하는 초원의 특성상 중원 물품을 구하는 것으로 인한 삶의 질 향상이 예상되었으니까. 더구나 이제 그가 부족을 더 키우고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한다면 잉여자원들이 더 늘어날 터였다. 그것을 처분하고 원하는 물품을 구할 수 있다면 부족민들을 달래는 것도 더 수월해지겠지. 그렇게 천화는 바야르와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 물론 그 외에 언제든 천화를 돕겠다는 약조 또한 유효했다. 이제 빙궁을 찾아 임무를 완수하고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기만 한다면, 앉아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구조가 완성될 터였다.

16549488308411.jpg‘늘 새로워! 늘 짜릿해! 돈이 최고야!’

무림이라 하면 힘 센 놈이 장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신지로를 플레이하며 천화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무력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보다 돈지랄을 잘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바로 천화였다. 모종의 거래가 끝나고, 천화와 설영, 세주연은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며칠이나마 머무른 덕인지 입에 잘 맞지 않던 음식들도 먹을 만했고, 천화가 솜씨를 발휘한 덕분에 맛있는 요리들도 제법 나왔기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중원이었다면 그렇게 취한 틈을 타서 암습을 시도하는 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 초원에는 그런 불명예스러운 짓을 하려는 자는 없었다. 있다 해도 통하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날이 밝자마자 술기운을 내공으로 몰아낸 천화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먼저 출발한 사절단과 나흘이나 거리가 벌어진 까닭에 한동안은 전력으로 뒤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대충 설산파의 인근에서 합류할 수 있겠지.

16549488308411.jpg“흑우야, 가자.”

16549488308379.jpg“롱롱아, 출발!”

투다다다다다다다- 술기운을 몰아내지 않았다면 숙취로 멀미가 날 만큼 거칠고 빠른 속도였지만, 이미 적응한 세 사람은 잘도 버티며 속도를 높였다. 빠른 속도로 사절단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들이 달리는 동안 사절단도 꾸준히 이동을 했기에, 마을을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 다시 사절단과 합류할 수 있었다. 마침 설산파가 위치한 북해와 초원의 경계, 설산이라 불리는 만년설 가득한 산을 눈앞에 둔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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