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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설산파 (2) (160/481)

<160화> 설산파 (2)2021.11.11.

16549488576853.jpg“허허허허! 살펴가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아이들을 불러주시면 성심성의껏 모실 겁니다.”

16549488576857.jpg‘역시 돈이 최고구만.’

독대 이후, 설산파의 장문인인 포태주의 천화를 대하는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냉랭하던 시선이 따스하게 바뀌었고, 이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모습으로 그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천화 역시 능글맞게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었지만, 그와 크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생각은 없었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으니까.

16549488576857.jpg‘진짜 돈만 많이 주면 문파도 팔아먹을 놈이네. 아니, 이미 팔아먹은 건가?’

전낭이 휑해져버렸지만 수확은 결코 작지 않았다. 비무대회 안목품평회에서 벌어들인 금자의 대부분을 써버리긴 했지만,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장문령부. 장문인이 없는 상황에서 장문인의 명을 대신 내릴 수 있는 신물이 천화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장문인이 있을 때는 당연히 장문인의 명이 우선이 되겠지만, 장문인의 자리가 공석이거나 부재중일 시에는 이것을 가진 이의 말이 곧 장문인의 말과 같다. 즉, 이것만 있으면 중원에 나가있는 설산파의 제자들이 천화를 장문인처럼 따르게 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나예린도 예외는 아닐 터였다.

16549488576857.jpg‘여차하면 장문인을 슥삭 해버려도 되고.’

그렇다 해도 천화가 가진 막대한 금자를 쏟아붓기에는 부족함이 있어보였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장문인을 죽이고 공석이 된 상태에서 자신이 장문인이 되는 것. 약간의 꼼수이긴 하지만, 장문령부를 악용하면 이런 짓도 가능한 것이다. 장문인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장로회의 소집과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장문령부로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면? 장문인의 권한을 가진 것이 장문령부를 가진 이밖에 없게 된다. 장로들의 입김이 센 문파라면 모르겠지만, 설산파처럼 장문인에게 힘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라면 문파 자체를 장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 것을 고작 돈을 떠안겨줬다고 내어주다니, 막상 그의 옆구리를 찔러본 천화 역시도 미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16549488576857.jpg‘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천화가 제시한 또 다른 조건을 믿은 것이겠지. 문서를 통해 약속한 3년간의 임대 조건을 말이다. 장문령부를 딱 3년만 사용하고 돌려주겠다는 각서를 남겨주었다지만, 그 안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장문령부를 넘긴단 말인가?

16549488576857.jpg‘적당히 써먹다가 녹이면 되겠군.’

당연히 천화는 그것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장문령부의 위력도 대단하지만, 설산파의 장문령부는 무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패였기 때문이다. 소림의 경우 녹옥불장을 장문령부로 삼듯이 그 재질과 형태는 문파마다 제각각인데, 설산파의 장문령부는 손바닥만 한 패의 형태였다. 다만 그것이 통짜 만년한철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특별했다. 검이라든지 하는 것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당히 섞기만 하더라도 최소 유일 등급 이상의 장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적당히 써먹다 대장장이 영감에게 가져다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천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안심을 시키는 것이 좋을 테니 이것을 당장 활용하지는 않겠지만, 조만간 써먹을 데가 있을 터였다. 그렇게 천화와 사절단은 설산파에서 극과 극의 대접을 받으며 삼 일을 머물렀다. 곧바로 이동해도 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고 씻거나 쉬지 못했기에 시간을 준 것이다. 더불어 나예린에게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동생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끔 배려를 해준 것이고. 그러면서 슬쩍 동생의 상태를 확인해보려고도 시도해보았지만 나예린이 철벽 같이 막아섰기에 실패했다. 그렇게 삼 일을 머무는 동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이들의 불만이 다소 쌓이는 듯싶었지만, 차별이 문제일 뿐 아예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문제가 일어나진 않았다. 적당히 휴식과 정비를 마치고, 사절단은 다시 최종 목적지인 북해빙궁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6549488576879.jpg“저기가 빙궁이라고?”

16549488576884.jpg“헤에? 얼음으로 된 성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평범하네요?”

설산파를 떠나온 지 다시 열흘 남짓. 저 멀리 보이는 북해빙궁의 성을 확인한 설영과 세주연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이름부터가 북해빙궁이니 당연히 얼음으로 이루어진 성 따위가 있을 것이라 예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럴싸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것이 있다면 금방 녹아버리겠지. 이곳이 항상 추운 편이기는 하지만 얼음이 항상 꽝꽝 얼어있을 정도는 아니고,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기는 꽤나 어려울 테니 말이다.

16549488576888.jpg“모두 의복을 단정히 하세요. 곧 빙궁의 영역에 진입합니다.”

사실 야수궁의 영역이 남만 전역이듯 북해 전역이 빙궁의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특유의 날씨 때문인지 활동이 왕성한 편은 아니었다. 때문에 빙궁의 무인들과 만나기 전, 나예린은 정파 연합이 얕보이지 않도록 사절단에게 주의를 주었고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빙백신장은 비껴 맞아도 얼음동상이 되어버린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강력한 빙공이었으니까. 딱히 중원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크게 환대를 해줄 만큼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위축되어 있는 것이다.

16549488576853.jpg“헉! 저, 저기!!”

그렇게 빙궁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누군가 눈보라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사람의 형상을 했으나 움직이지 않는 그것은 다름 아닌 얼음 조각이었다.

16549488576853.jpg“서, 설마 빙공에 당해서……?”

16549488576857.jpg‘이 아조씨 취향은 여전하시네.’

사람이 빙백신장에 맞아 얼음조각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지만, 천화는 알고 있었다. 저것이 진짜 사람이 아닌 얼음조각상일 뿐이고, 북해빙궁주의 취미 중 하나라는 것을. 보통 북해빙궁을, 또 그 수장인 빙궁주를 떠올리면 차가운 냉혈한에 수틀리면 사람을 얼음덩이로 만들어버리는 괴팍한 성격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무척이나 예술을 사랑하는 섬세한 성격이었다. 세세하게 사람을 표현하는 저 조각상이 증거다. 북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예술가, 혹은 조각가가 되었을 것이라 수줍게 이야기하던 빙궁주를 떠올리며 천화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16549488576857.jpg‘약간 츤데레 같아서 그렇지, 꽤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지.’

내 사람들에게는 따뜻하지만 겉으로는 툴툴대는 그였기에 오해를 사기 쉬울 뿐이었다.

16549488576857.jpg“당황하지 마세요. 그냥 얼음조각일 뿐입니다.”

덕분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천화는 계속해서 사절단을 이동시켰다. 북해빙궁의 문을 두드렸다.

16549488576853.jpg“웬 놈들이냐!”

16549488576857.jpg“중원에서 온 사절단입니다. 정파 연합의 출범을 인사드리기 위해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16549488576853.jpg“중원? 정파 연합?”

16549488576853.jpg“문을 열어라!!”

따지고 보면 다른 빙궁의 무인들도 마찬가지다. 말투가 거칠고 매사에 고함을 질러대서 험악하게 느끼는 것뿐이지, 알고 보면 꽤나 순박한 이들이다. 당장 저렇게 고함을 지르는 것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입이 얼어서일 뿐이니까. 끼이이익- 얼어붙은 성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무공에 자신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사절단이 추울까 봐 얼른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사절단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고, 사실을 말해준다 한들 제대로 알아들을 리가 없기에 천화는 어깨를 으쓱이며 앞장서서 나아갔다. 빙궁의 내부로 진입했다.

16549488576853.jpg“중원에서 왔다고?”

16549488576857.jpg“예. 정파 연합이 새롭게 출범하여 빙궁주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16549488576853.jpg“궁주님께 이야기를 전해주도록 하지. 그동안 저기서 기다리게.”

그들이 들어감과 동시에 다시 문이 닫히고, 두꺼운 털옷을 입은 빙궁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일단 복장부터 틀림없으니 중원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 모습이지만, 슥 훑어보고는 한 건물을 가리켜 그들을 머물게 했다.

16549488576853.jpg“젠장, 살 떨리는군.”

16549488576853.jpg“설마 빙궁이 중원을 적대하려는 건 아니겠지? 저런 눈빛이라니…….”

그렇게 사절단이 안내를 받아 이동하는 동안 북해의 주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슬며시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그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표정에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16549488576853.jpg“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대우라니……!”

그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사내가 가리킨 건물로 들어선 사절단 사이에서, 설산파 때도 나오지 않았던 불만이 터져나왔다. 어쩌면 설산파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던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의 불만인지도 몰랐다. 그들이 배정 받은 장소는 허름한 마구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까. 끌고 온 말들이 머물기에는 괜찮겠지만, 나름 중원에서 알아주는 후기지수들로서는 이런 대우가 무시 받는 것 같고 못마땅했다. 아무리 빙궁이라지만 자신들을 이런 취급을 하다니! 털옷을 입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열을 내는 그들을 보며 천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49488576857.jpg‘그럼 덜덜 떨면서 기다리시든가.’

그들은 투덜거리고 있지만, 북해에서는 이 같은 실내 공간이 아주 귀했다. 그저 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를 해야 할 만큼 황량한 땅이었기에,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를 충분히 갖추는 일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투덜거리고 있으니, 중원과 북해빙궁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겠지.

16549488576857.jpg‘나야 좋지만.’

그럴수록 파고들 틈이 많아질 테니 천화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말이다. 잠시 기다리자 곧 궁주에게 말을 전하러 갔던 이들이 돌아왔다. 방 안에서도 덜덜 떨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그들의 모습은, 사절단의 사내답지 못한 모습을 탓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이 추울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사절단원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찔끔 겁을 먹으며 의연한 척을 해댔고. 그런 미묘한 어긋남에 천화가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지만, 지금은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사절단을 대표하여 나예린, 언중걸과 함께 북해빙궁주를 만나러 이동했다. 설영과 세주연도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설영은 배경이 없었기에 자격이 부족했고, 세주연은 배경이 너무 커다란 까닭에 데려가지 않았다. 야수궁주의 명을 받아들고 왔다면 함께 가고도 남았겠지만, 남만을 대표해 온 것도 아닌데 야수궁주의 딸이 함께 배석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었으니까. 혹시 모를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잠시 기다리도록 했다. 그렇게 궁전 같은 거대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오면서 보았던 얼음조각상이 줄을 지어 세워져있었다. 아주 세밀하게 조각되어 마치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북해빙궁주가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세워둔 것이겠지.

16549488576888.jpg“……기선제압용일까요?”

16549488576853.jpg“그럴 지도요. 이전 궁주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것들이 없었다고 하니…….”

그것들을 보고 언중걸이 애써 겁을 먹지 않은 척 연기했다. 나예린도 별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북해빙궁주에 대해 모르는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예린은 설산파의 사람이니 혹시 알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설산파 역시 북해빙궁과 크게 교류가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인지 정보가 없는 것은 똑같았다. 나은 점이 있다면 음기공을 익힌 까닭에 다른 이들보다 추위를 덜 탄다는 정도? 과연 그것을 차별화된 강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1654948860786.jpg“에잇, 이게 아니야!!!”

콰앙!! 그렇게 북해빙궁주가 기다리고 있다는 방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굉음과 함께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꼴깍! 긴장한 언중걸의 침 삼키는 소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릴 지경이었지만, 천화는 모르는 척 안내인을 바라보았다.

16549488576853.jpg“궁주님, 중원의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1654948860786.jpg“들라 하라.”

16549488576853.jpg“저, 저건……!”

문이 열리고, 북해빙궁주와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산산조각이 난 얼음조각상이었다. 그밖에도 몇 개의 조각상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이미 겁을 집어먹은 그들의 눈에는 절규하는 인간들의 모습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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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8860786.jpg“흠. 잠시만 기다리게.”

그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북해빙궁주가 검은 천으로 그것들을 가리면서 오해는 더욱 증폭되었다. 사실은 남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미 단단히 오해한 나예린과 언중걸의 표정을 풀릴 줄을 몰랐다.

1654948860786.jpg“중원에서 정파 연합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16549488576888.jpg“예. 기존 구파 일방 오대세가가 중심이 되어 중원의 혼란을…….”

덕분에 국어책 읽듯 설명하게 되었지만 전달만 됐으면 그만이다. 말이 좋아 정파연합이지, 사실상 북해빙궁의 입장에서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는 바가 없었기에 빙궁주 역시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대충 넘겼다.

1654948860786.jpg“뭐, 일단 알겠네. 자세한 건 서신을 읽어보면 알겠지. 그리고 선물을 가져왔다고?”

16549488576853.jpg“예. 귀한 보석과 비단, 귀금속을 준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1654948860786.jpg“또인가? 거 먹지도 못하는 걸…….”

선물이란 대목에서 언중걸이 신이 나서 끼어들었지만, 북해빙궁주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주니까 받기는 하지만, 굳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정도의 표정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보석이든 귀금속이든 이 추운 곳에서 가지고 있어봤자 뭘 하겠나? 차가운 금속이 살에 닿으면 더 춥고 달라붙기나 하지. 비단도 마찬가지다. 살에 닿으면 서늘하기만 할 뿐이니까.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보다 한기가 먼저 느껴질 터였다. 중원의 시각에서 귀한 것을 구해 보내다 보니 작고 값이 나가는 것으로 챙겨 넣은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영 쓸데없는 예쁜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땔감이나 왕창 보내든가, 먹을 거나 보낼 것이지……. 사실 대놓고 이야기하면 다음부터는 알아서 잘 챙겨줄 터였지만, 은근히 소심한 북해인들이었기에 매번 이런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1654948860786.jpg“아무튼 알겠네. 서신을 적어줄 테니 며칠 쉬다 돌아가게.”

16549488636789.jpg“감사합니다.”

서신을 전달하고 대답을 듣자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변한 두 사람은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눈치였다. 정중히 인사를 하며 뒤로 물러섰고, 문밖을 나가려는 순간 천화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16549488576857.jpg“잠시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세요.”

16549488576888.jpg“예? 천화 님은…….”

16549488576857.jpg“저는 궁주님과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먼저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제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건 비밀이거든요.”

16549488576888.jpg“알겠습니다.”

사실 정파 연합의 수뇌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비밀인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별도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천화가 사절단장이니 백연 대사에게 따로 받은 밀명이나 전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천화의 유도는 잘 들어맞았고, 그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궁주의 방에서 멀어졌다.

1654948860786.jpg“뭔가? 자네는 왜 가지 않지?”

16549488576857.jpg“궁주님. 괜찮으시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아, 이건 정파 연합의 사자가 아닌 제 개인적인 요청입니다.”

1654948860786.jpg“이야기라, 글쎄. 자네와 나눌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군.”

다시 방으로 돌아간 천화의 말에 북해빙궁주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고작해야 후기지수인 그와 나눌 이야기가 무엇이 있겠나? 물론 천화의 입장에서야 얻을 것이 있겠지. 그와 같은 고수와의 대화는 그 자체로 깨달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북해빙궁주의 입장에서는 괜히 배 꺼지는 일만 될 수 있었다. 그런 수작을 수도 없이 겪어본 그였기에 굳이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천화가 아주 매력적인 화두를 던지지 못한다면 대화는 시작조차 되기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천화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물건을 보여주어 혹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일단은 인간적인 호감을 얻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던 북해빙궁주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한마디를 던졌다.

16549488576857.jpg“예술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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