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이무기와 용 (5) (165/481)

<165화> 이무기와 용 (5)2021.11.23.

16549489470626.jpg

16549489470631.jpg“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은룡이 물의 이무기를 길들여버리자 천화가 난감해졌다.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아니, 애초부터 단철우가 원한 그림도 이런 것이었으니, 어떻게든 설명을 할 수도 있었다. 세주연이 어찌 해주기를 바랐던 것을 은룡이 해낸 것뿐이다. 일단 길들이기에 성공했다고 했으니 말도 잘 듣겠지. 자신의 말은 듣지 않을지 몰라도 은룡의 말은 잘 따를 터였다. 다만 녀석을 그대로 두면 호수의 물고기가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단과 부산물을 얻지 못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설령 이무기가 북해인들이 낚시하는 것을 허락하고 묵인한다 해도, 녀석이 저만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법 많은 식량이 필요할 터다. 그렇다면 놈이 이곳에 계속 살면서 물고기의 개체수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 천화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무기의 무리 위로 올라탄 은룡이 방방 뛰면서 부하가 생긴 것을 기뻐했다.

16549489470631.jpg“만금상단의 건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어쩔 수 없이 천화는 한숨을 크게 푹 내쉬고 놈에게 박혀서 열심히 피를 빨고 있는 혈마검을 회수했다.

16549489470643.jpg[아앗, 주인님 조금만 더……!!]

  혈마검이 아쉬운지 비명 같은 애원을 해댔지만 무시했다. 이제 슬슬 빙궁의 무인들도 이쪽에 관심을 가질 테고, 자칫하면 혈마검의 특성인 생명력 흡수를 들킬 수 있기 때문이다.

16549489470643.jpg“키르릉…….”

꽤 고통스러울 텐데도 이무기는 용케 혈마검이 뽑히는 고통을 참으며 낮게 소리를 내었다. 은룡이 함께이기 때문인지 온순하기 짝이 없는 모습. 천화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몰아쉰 뒤, 녀석에게 경고했다. 절대 호수에 접근하는 북해인들을 공격하지 말 것. 그들이 낚시를 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 그리고 호수의 물고기들을 적당히 잡아먹을 것. 마지막 항목에 대해서는 자신 없는지 칭얼거리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대로 마구잡이로 먹어치우다가는 자신이 먹을 것도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16549489470631.jpg“모두 물러나세요!”

쿠웅!!! 그렇게 단단히 약속을 받아낸 천화는, 여전히 빙판 위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이무기의 곁에서 무명검을 거꾸로 쥐었다. 사후폭염진. 대지를 폭발시키는 용호십삼검 상의 초식으로 빙판을 내리찍으며 무너뜨려버렸다. 풍덩! 이무기의 거체가 물에 빠지며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천화는 수상비의 수법으로 무너지는 빙판 위를 벗어났고, 은룡이 역시 그의 어깨에 올라탄 채 인사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1654948947066.jpg“쀼우우우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긴 울음소리와 함께 힘을 발산했다. [신수 ‘은룡’이 호수에 축복을 내립니다.] [호수에 진한 생명력이 감돕니다.]

16549489470631.jpg“하?”

그것으로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천화로서도 처음 보는 능력이지만, 대충 설명만 보더라도 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 경험이 그에게 있었으니까. 아마 이제 이 호수의 물고기들은 더 크게 성장을 할 테고, 번식 능력도 활발해질 터였다. 그러면 이무기로 인해 줄어든 개체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겠지. 그것으로 북해인들과의 공생이 완전히 가능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물고기들이 자라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만금상단과의 거래를 통해 식재료 등을 수급하면 될 터였기에 문제없었다.

16549489470631.jpg“상태가 어떻습니까?”

16549489470643.jpg“둘 다 내상을 제법 입기는 했지만 괜찮을 겁니다. 헌데 어째서…….”

천화가 설영과 나예린에게로 다가가자, 미리 그들을 치료하며 천화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빙궁과 야수궁의 무인들이 간략히 보고했다. 이미 야수궁의 무인들은 어찌된 것인지 상황을 파악한 듯싶었지만, 빙궁의 무인들은 다 잡은 이무기를 어째서 놓아준 것인지 의아해했기에 천화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녀석을 완전히 굴복시켰고, 이제 더 이상 북해인들을 해치거나 낚시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단철우에게도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식량을 수급하기 위해 물고기를 대량으로 잡아들이는 행위는 자제하는 편이 좋다고 경고한 뒤, 둘의 임시처치가 완료되는 대로 다시 빙궁으로 향했다.

16549489485634.jpg“정말인가? 그 괴물을 길들였다고? 정말 놀랍군. 야수궁이 영물을 다루는 데 천하제일이라더니…….”

소식을 전해들은 단철우는 북해를 책임지는 이로써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사실 집단의 수장으로서는 기쁜 내색을 조금은 숨기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 그래야 보다 적은 보상을 해도 문제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약간의 손해보다 북해인들의 명줄이, 배곯는 것을 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가감 없이 기쁨을 표출하며 그들의 공을 치하했다.

16549489485639.jpg“아니에요. 저희가 아니라 천화 공자께서 하신 일입니다.”

16549489485634.jpg“이 친구가? 정말 자네에게는 신세만 지는군. 좋아.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말해보게. 북해의 은인인 자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터이니!”

  [호수의 이무기 처리 (2)가 완료되었습니다.] [극대량의 명성을 획득하셨습니다.] [북해 및 북해빙궁과의 우호도가 최대치까지 상승합니다.] [북해인들이 당신을 은인으로 여깁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 남만야수궁 때와 비슷한 흐름이었다. 지역 임무나 특수 임무를 넘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커다란 문제를 해결해내자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줄 듯 기껍게 나선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말하든 어지간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테지만, 천화는 일단 잠자코 있었다. 분명 성공 보상란에 적혀있던 것이 있었으니까.

16549489485634.jpg“아니지. 일단 가세! 자네들에게 특별히 우리 북해빙궁의 보고를 개방하도록 하지. 일단 원하는 것을 하나씩 선물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북해빙궁의 보고 개방. 구파일방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세외사궁 중 하나의 보물 창고를 개방하는 것이다. 워낙 특이한 지형이기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범상한 것일 리 없었다. 게다가 우호도를 화폐삼아 차감하여 구입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엇이든 하나를 주겠다고 했으니 거저 받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차후에 필요한 부탁이 있다면 그건 그때 가서 요구해도 충분할 터였기에, 천화는 기쁜 마음으로 지금의 선물을 받아들였다.

16549489470631.jpg“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영물들의 몫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준 천화와 설영, 나예린의 몫으로 하나씩을 인정해주겠다고 약조했으니, 설영을 잘만 구슬리면 원하는 것을 두 개나 골라 나올 수 있을 터였다. 세주연과 야수궁도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은 까닭인지 그들의 몫은 없었지만, 세주연도 그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16549489470631.jpg‘우는 거야, 웃는 거야?’

그렇게 함박웃음을 짓던 천화가 나예린을 슬쩍 돌아보았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기묘한 표정으로 상기된 그녀의 모습은 이전까지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구하려던 것은 북해에서도 아주 희귀한 무언가였고, 북해빙궁의 보물창고라면 그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동생을 천형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말이다.

16549489470631.jpg‘제대로 고를 수는 있을지 모르겠군.’

그것을 잘 골라낼 수 있을지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화로서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무리가 있었다. 설산파에서 며칠을 묵는 동안 슬쩍 동생의 진맥을 해보려 했지만, 나예린의 철벽에 막혀 살피지 못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라면 대충 가늠은 할 수 있어도 완벽히 진단을 하긴 어렵다. 북해 쪽의 일에 정통했던 다른 고인물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지만,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나예린의 동생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병을 앓고 있었다.

16549489470631.jpg‘하지만 끼어들기는 어렵지. 고작 절정 고수 한 명을 얻자고 무리를 할 수는 없으니까.’

괜히 나서서 훈수를 뒀다가 문제가 생기거나, 굳이 자신의 몫을 희생하여 그녀의 환심을 살 필요는 없었기에 천화는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슬쩍 설영에게 다가가 물품 선택에 대한 권리를 양도해줄 것을 꼬드길 뿐이었다.

16549489485673.jpg“미안. 이번에는 나도 원하는 게 있어서.”

16549489470631.jpg“응? 어. 흠……. 알겠어. 어쩔 수 없지.”

허나 그 또한 실패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설영 역시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억지로 갈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신의 몫이라도 제대로 챙기는 수밖에. 잠시 후, 단철우의 안내를 받은 세 사람은 빙궁의 지하에 위치한 창고로 이동했다. 오직 궁주와 그에게 인정받은 특별한 인물들만 들어설 수 있는 곳이었기에, 다른 무인들은 모두 물러난 상태였다.

16549489485634.jpg“이곳이네.”

쿠구구궁- 육중한 무게감을 드러내며 창고의 문이 열리자 그야말로 보물창고가 나타났다. 북해에서만 볼 수 있는 온갖 희귀한 영초들. 만년한철 등 특수한 금속으로 제련된 무구들. 그리고 진귀한 보석과 장신구들이 그득그득 들어있는 보물상자들까지. 어느 하나 진귀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지경인 물품들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다. 저 중 일부만 나돌아도 중원 몇 개 성이 들썩들썩하겠지.

16549489504836.jpg“제가 먼저 골라도 되겠습니까?”

새삼 세외사궁의 저력을 느끼고 있을 때, 나예린이 초조한 표정으로 먼저 나섰다.

16549489470631.jpg“그러시죠. 저희도 천천히 골라보겠습니다.”

천화나 설영으로서도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기에 그것을 허락했고, 나예린은 즉시 종종 걸음으로 안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천화와 설영도 그 뒤를 따랐다.

16549489504853.jpg“무우?”

1654948947066.jpg“쀼웃!!”

그들과 함께 보고에 들어선 흑우와 은룡도 제법 기분이 좋아진 듯싶었다. 기운에 민감한 영물과 신수이다 보니 이 안에서 느껴지는 짙고 거대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16549489485634.jpg“얼마든지 머무르며 골라도 좋지만 조심하게. 이 안에 감도는 한기는 범상치 않은 것이니. 무리가 되지 않는 선까지 버티다가 나오는 것이 좋을 걸세.”

때문에 단철우도 그들에게 경고했다. 시간을 써서 신중히 고르는 것은 괜찮지만, 자칫 이 안의 시린 한기가 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다. 단철우야 빙공을 익혔으니 극음의 기운에도 저항하고 버틸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니까. 감시라기보다는 보호자의 입장으로 함께 보고 안으로 들어선 단철우가 뒷짐을 진채 그들을 지켜보았고, 세 사람은 각각 흩어져 물건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16549489470631.jpg‘흠. 뭘로 고를까…….’

잔뜩 쌓여있는 보물들도 눈에 밟혔지만 역시 돈보다는 물건이 좋을 터였다. 단철우가 혹여 귀금속 따위를 원하거든 상자째 가져가라는 이야기를 해서 혹하기는 했지만, 그거야 나중에 언제든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다. 그렇다면 영약, 혹은 기물을 얻어가는 것이 최선이겠지. 천화가 입맛을 쩝하고 다시며 이리저리 물건들을 살폈다. 세세하게 능력치와 효과를 비교하며 쓸 만한 놈을 골랐다.

16549489504836.jpg“……죄송하지만 여기 있는 게 전부인가요?”

그리고 잠시 후, 실망한 표정의 나예린이 조심스레 단철우에게 다가가 물었다. 찾던 물건이 이곳에 없는 모양이다.

16549489485634.jpg“그렇네.”

그렇기에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북해의 지배자인 빙궁의 보고에도 없다면 북해에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16549489485634.jpg“뭔가 찾는 게 있나 보군. 그럼 좀 더 안쪽까지 찾아보는 건 어떤가?”

16549489504836.jpg“안쪽…… 말입니까?”

다만 실망하기는 아직 일렀다. 북해빙궁의 보물창고는 지금 그들이 있는 이곳만이 아니니까. 정확히는 같은 장소이지만, 더 깊숙한 곳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단철우가 일부러 감추려 한 것은 아니었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일정 범위까지 물품들이 늘어져 있기에 딱 거기까지라고 지레짐작을 했을 뿐.

16549489504836.jpg“그럼, 안으로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16549489485634.jpg“물론이네. 다만 내공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할 걸세. 이 안쪽에는 이곳보다 더한 한기가 감돌고 있으니.”

16549489504836.jpg“예!”

그렇게 되자 천화와 설영의 관심도 이곳에서 멀어졌다. 저 안쪽에 있다는 것은, 뭔가 더 좋고 중요한 물건들일 확률이 높다는 뜻일 테니까. 단철우가 이 정도로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상당한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듯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예린이 앞장서고, 천화와 설영이 뒤따르며 보다 안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흑우와 은룡은? 녀석들도 문제가 없는지 그들의 뒤를 따랐다.

16549489485634.jpg“내공을 끌어올리게!”

16549489519364.jpg“흡?!”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가자 좀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한기가 몰려왔다. 이미 통로를 구성하는 벽은 얼음덩이가 되어있었기에 마치 알몸으로 빙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안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런 한기가 서려있는 것일까? 그 의문을 해소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6549489504836.jpg“저건…….”

막다른 길. 그 끝에 위치한 것은 거대한 얼음덩어리였으니까.

16549489504836.jpg“설마 만년빙정……입니까?”

음기의 정수라는 빙정. 그중에서도 만년빙정이라 불리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빙정이었다. 만년간 힘을 잃지 않으며 평범한 사람이 만지면 만년을 얼어붙는다는 전설까지 가진 전설의 기물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16549489485634.jpg“그렇다네. 우리 빙궁의 보물이자 재앙이지.”

단철우가 씁쓸한 미소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설영과 나예린의 눈빛이 돌변했다.

16549489519378.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