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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검치의 무공 (3) (176/481)

<176화> 검치의 무공 (3)2021.12.19.

1654949084473.jpg“이럴 수가……!”

천화의 천무십이검은 완벽하지 않았다. 비급에 그려진 형(形) 그 자체라면 오히려 강현 자신이 더 완벽에 가까울 터였다. 헌데 저 검식에서 느껴지는 현묘한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공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강현은 마치 처음부터 저것이 완성된 천무십이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만약 저것에 자신의 천무십이검을 가져다 댄다면? 과연 몇 초식이나 버틸 수 있을까? 초식이라 부르기 민망한 검로일 텐데도, 그것은 온전하고도 완벽한 초식과 같아 보였다. 강현이 홀린 듯이 천화의 시연에 빠져들었다.

16549490844735.jpg‘역시 그대로인가.’

천무십이검에 빠져든 것은 강현만이 아니었다. 설영 역시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지만, 검을 떨치는 천화야 말로 반쯤은 무아의 지경에 이르렀다. 아홉 개의 검식이 따로, 또 함께 펼쳐진다. 초식을 꼭 순서대로 펼쳐야만 하는 법은 없었고, 한 번에 하나만 펼쳐내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가상의 적을, 무신지로에서 자신이 겪었던 상황들을 상정하고 펼치는 검식은 지극히 효율적이었고 매서웠다. 절정 고수인 천화마저 땀에 흠뻑 젖을 만큼 강한 압박 속에서 완벽한 검을 떨쳐내었다. 10성을 넘어, 11성이나 12성에 이르러야만 보일 수 있는 검의 움직임을 보이며 몇 번이고 아홉 초식을 반복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무십이검을 익혔다는 알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형을 익힌 것만으로는 천무십이검을 익혔다 할 수 없으니까.

16549490844735.jpg“후우.”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천화의 검이 정지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아니,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진짜 천무십이검에 발을 디뎠다.

1654949084473.jpg“어……?”

제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감은 천화가 다시 한 번 경로에 따라 아홉 초식을 펼쳐냈다. 몸이 아니라 몸속 내공을 이용해서. 쿠구구구구구구- 막대한 내공의 운용으로 그가 선 땅이 파이고 갈라졌다. 기존이라면 천화라 할지라도 전력을 다해야 끌어낼 수 있는 수준의 내공이었지만, 천화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했다. 그저 특별한 운기법을 사용했을 뿐, 아직 내공을 절반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천무십이검의 전중반부 아홉 초식. 그것은 검을 움직이는 경로이기도 했지만, 내공의 순환 경로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운기 경로와는 한참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었기에, 감히 누구도 그것을 운기법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천화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수련해도 무공을 익혔다는 알림이 나타나지 않자 미친 척하고 시도해 보았다가 깨달은 것이었다. [천무십이검(5성)을 습득하셨습니다.]

16549490844749.jpg“천화?!”

16549490844735.jpg“흐흐흐! 좋아, 힘이 넘치는구만.”

천무십이검이 익히자마자 5성까지 성취가 높아졌다. 오직 천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익숙한 경로를 따라 내공을 휘돌리자 내공은 점점 더 불어났고, 막대한 기운이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16549490844735.jpg“잘 봐둬. 이게 바로 진짜 천무십이검이다.”

1654949084473.jpg“뭐야, 저거. 저런 거 몰라. 무서워…….”

정작 검치의, 천무십이검의 정통 후계자인 강현조차 본 적 없어 기겁을 할 정도였지만, 천화는 개의치 않고 다시 한 번 검을 떨칠 준비를 했다. [내공의 위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폭발적으로 상승한 공력이 무명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16549490844735.jpg“천무일……!”

푸쉬쉬쉭- 허나 검을 떨치려는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천화의 몸속을 가득 채운 내공이 저절로 흩어져버린 것이다.

16549490844735.jpg“……어라?”

휘청 막상 떨어지는 것은 힘을 다해 비실거리는 검이었다. 파리 한 마리도 잡기 어려워 보이는, 취한 듯 비틀거리는 검과 함께 천화가 그대로 앞으로 거꾸러졌다. [경지가 낮아 해당 무공을 펼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하나의 알림. 고작 절정 수준에 불과한 천화의 능력으로는 아직 천무십이검의 후반부 초식들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16549490844735.jpg“젠장.”

쿠웅! 결국 전신에 힘이 풀려버린 천화가 땅에 머리를 박았다. 탈진한 듯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 후유증인 듯싶었다.

16549490844749.jpg“천화! 괜찮아?!”

설영이 황급히 달려와 안아들었지만 천화는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16549490844735.jpg‘확실히 풍만……. 크흠.’

안 일어나는 것인지 못 일어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한동안 그 상태로 쓰러져있었다.

16549490844735.jpg“끄응. 조금 무리를 했던 모양이군.”

1654949084473.jpg“정말, 그게 천무십이검이란 말씀이십니까?”

마지막에 영 모양을 구기고 말았지만, 이미 강현은 존경어린 눈빛으로 천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것 같았지만, 그 순간의 기세만은 마치 말로만 전해듣던 검치 강무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16549490844735.jpg“그래. 사정이 있어서 끝까지 펼치지는 못했지만, 굳이 따진다면 후반부 삼 초식 중 첫 번째 초식이지. 초식이라고 부르긴 뭣하긴 하지만.”

1654949084473.jpg“사부님!!!”

16549490844735.jpg“엥?”

천화의 대답에 강현은 넙죽 땅에 머리를 박았다. 자신은, 아니 사문을 비롯해 비급을 보았던 이들 중 단 한 명도 갈피조차 잡지 못했으니까. 자신조차 십수 년 동안 그저 형을 흉내내기를 무한히 반복하던 천무십이검을 제대로 구현해낸 최초의 인물이었으니까.

1654949084473.jpg“평생 모시겠습니다. 부디, 부디 제게도 천무십이검을 전수해주십시오!!”

천화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 방향이라도 지도 받을 수만 있다면, 나이 따위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사부로 모시고 수발을 들 생각이었다. 그것이 지난 수십 년 간 사문에 이어져온 숙원을 이룰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16549490844735.jpg“끙차. 뭐, 좋아.”

1654949084473.jpg“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꼭……! 예?”

16549490844735.jpg“가르쳐준다고. 천무십이검.”

1654949084473.jpg“저, 정말이십니까?”

16549490844735.jpg“그래. 그걸 얼마나 어떻게 익힐지는 스스로에게 달렸겠지만 말이야.”

1654949084473.jpg“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천화의 흔쾌한 수락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강현이었다. 말만 저렇게 할 뿐,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보다는 나으니까.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까.

16549490844735.jpg‘그때는 나 혼자 크기도 바쁘긴 했지만, 확실히 기회만 주어지면 크게 성장할 만하지.’

천화 역시 옛 정 때문에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천재까지는 되지 못하지만 수재쯤으로 부를 수 있는 재능에, 형밖에 익힐 수 없는 천무십이검의 아홉 초식을 극한까지 수련한 노력까지. 이미 기본이 충실하니, 약간의 계기와 발판만 마련된다면 강현은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장차 자신의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도.

16549490844735.jpg‘내공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거야 흑점에 몇 번 들르면 그만이고.’

당장 영약을 퍼먹여 성장시키는 것까지는 무리가 있겠지만, 요령을 일러주고 준비를 시켜놓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굳이 여기서 머무르지 않더라도 적당한 숙제만 던져준다면 열심히 수련을 하겠지. 벌써 머릿속으로 몇 가지 계획을 세운 천화는, 기운을 차렸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16549490844735.jpg“단, 이 꾸질꾸질한 곳부터 좀 바꾸지. 받아.”

1654949084473.jpg“이건?”

은자가 잔뜩 들어있는 묵직한 전낭을 강현에게 던져주었다.

16549490844735.jpg“일단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은 만들어야겠지. 그걸로 장원을 좀 고치고, 먹을 것도 좀 사둬. 마을에 깔아둔 외상도 좀 갚고. 한동안 수련에만 매달려도 모자랄 테니까.”

1654949084473.jpg“예!!”

마치 진짜 사부가 된 것처럼 그를 살펴주었다. 단 며칠에 불과하겠지만 한번 제대로 가르쳐볼 생각이었다. @ 단 3일. 천화는 천무문에서 딱 3일을 머물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신 아주 열성적으로 강현을 가르쳤다. 주로 대련을 통해 몸으로 깨닫도록 만들어준 것이지만, 이미 기틀이 다져져 있던 강현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를 이루어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정진한다면 이류 무인들 중에서는 상대가 없을 만큼 빠른 성장 속도였다. 무엇보다 술까지 끊고 완전히 수련에만 몰입한 덕분이었다.

1654949084473.jpg“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

이제 남은 것은 반복 숙달뿐. 체력이 허락하는 한, 쓰러질 때까지 천화와 대련을 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심상 수련만 계속하더라도 한동안은 괜찮을 것이다. 천화가 사용했던 운기법 역시 당장 가르쳐주지는 않았어도 맛보기는 보여줬고, 비급으로까지 남겨 줬으니 굳이 다시 만나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간청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만나 그의 무공을 손봐주기로 하고 천화는 일단 천무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말 잘 듣는 제자를 가르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지만, 일단 자신의 무공부터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당장 천무십이검의 후반부 초식 중 하나조차 발동시키지 못하는 상태로는, 독문 무공이었던 무상천검을 익히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일단 이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6549490844735.jpg‘경지가 낮아서 사용할 수 없다면, 경지를 높이면 그만이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천무십이검의 후반 초식을 강제로 사용 중지 당한 것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레벨. 그리고 내공. 다행히도 그가 복주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16549490844735.jpg‘역시 경험치 노가다에는 전쟁이지.’

바로 이곳에 노다지가 있었으니까. 경험치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으니까.

16549490844749.jpg“바다다!!”

천무문이 있는 민청을 지나 도착한 복주의 끝에는 푸른 바다다 펼쳐져 있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에, 설영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뛰어다녔다. 그리고 천화 역시 저 먼 바라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저기에, 자신의 경지를 끌어올려줄 경험치 덩어리들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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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90844735.jpg“여기 어디에 와있을 텐데…….”

한바탕 망아지처럼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설영을 지켜보던 천화가 누군가를 떠올렸다. 언젠가 복건성으로 미리 보내두었던 인원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일들은 설영과 둘이서도 가능은 하지만, 어느 정도 인원이 있어야 더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6549490844735.jpg“뭐, 못 찾으면 하오문을 이용해서 찾으면 되겠지.”

그들은 다름 아닌 해남파의 잔당들이었다. 수적 행세를 하던 그들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 천화였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을 테니, 상태를 좀 보고 써먹을 생각이었다.

16549490844749.jpg“천화, 우리 이제 뭐해? 여긴 왜 온 거야?”

16549490844735.jpg“참 빨리도 물어본다.”

16549490844749.jpg“네가 어디 가는지도 안 알려줬잖아!!”

16549490844735.jpg“크흠. 그랬나? 여기서는…… 싸워야지.”

16549490844749.jpg“싸워? 누구랑?”

다짜고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천화의 말에, 설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에 어떤 문파가 있었지? 대표적인 사파 세력이 있었던가? 아니면 마교가 나타나는 걸까? 설마 정파와 척을 지려는 것은 아니겠지? 의문과 동시에 걱정이 어리는 것을 보며 천화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간단하게 해답을 내주었다.

16549490844735.jpg“해적.”

16549490844749.jpg“해적?”

16549490844735.jpg“응. 이맘때면 아마 해적들이 기승을 부릴 거거든. 왜에서 온 놈들이 상선을 공격하고 수시로 바닷가 마을을 들이닥쳐 약탈과 살인을 일삼고 있을 거야. 그놈들을 털어먹는 거지.”

왜국에서 온 해적들. 그들이 바로 천화가 여기까지 온 첫 번째 이유였다. 약탈과 방화, 살인 따위를 즐기는 놈들이기에 죽여도 뒤끝이 없고, 놈들이 나타나는 이곳 복주는 ‘전쟁 지역’으로 분류되어 추가 경험치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관에서도 놈들을 주시하고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 임무를 받아 수행하는 것도 가능했다. 경험치는 물론이고 명성과 현상금까지 추가로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놓치면 바보였다. 무공을 높이고,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치러오느라 경지에 비해 부족한 레벨을 채우는 것. 그리하여 역으로 레벨 상승을 이용해 다시 경지를 높이는 것. 그것이 천화가 이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들의 핵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놈들의 ‘몰이’를 해줄 해남파의 존재는 꽤나 중요한 것이었다.

16549490844735.jpg‘역시 사냥의 꽃은 몰이사냥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더 필요하지만, 이미 준비는 끝났다.

16549490844735.jpg“그런 의미에서…….”

천화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바로 흑우에게로.

16549490844735.jpg“흑우야, 헌혈 좀 하자.”

16549490903625.jpg“무우?”

선지는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경지를 높이는 데는 영약이 최고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청석유를 퍼마신 흑우의 피는 그 자체로 영약이나 다름이 없을 터였다. 그동안에는 피 안에 녹아든 기운조차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서 미루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운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은룡이까지 있으니 말이다.

16549490903625.jpg“무우우우?”

16549490844735.jpg“어딜 튀어? 흑우, 역소환. 소환.”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천천히 접근하는 천화의 모습에 뒷걸음질을 치는 흑우였지만, 도망칠 것을 예상했는지 천화는 흑우를 제 옆으로 다시 소환해냈다. 피 값으로 빵이랑 우유는, 아니 고기는 넉넉히 줄 테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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