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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무상천검 (2) (183/481)

<183화> 무상천검 (2)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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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492236299.jpg“대단하군.”

앞을 가로막은 은령을 살짝 비껴 세우며 설영의 무위를 지켜본 진왕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호위들이 고전하는 것으로 보아 적들은 결코 약한 이들이 아님에도, 설영의 무위는 독보적이라 할 만큼 뛰어났다. 마기를 전신에 두른 마인들은 절정 고수인 호위들의 검에 맞고도 멀쩡히 움직일 만큼 단단했지만, 설영의 앞에서는 두부마냥 으스러졌다. 막으면 잘려나갔고, 부딪히면 뭉개졌다. 마공의 효과를 믿고 동귀어진의 자세로 덤벼들던 녀석들이 어느새 겁을 먹고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16549492236299.jpg“마치 마귀를 제압하는 선인의 모습 같구나.”

운철검의 효과가 큰 몫을 하기도 했지만, 마인들을 마구 썰어버리며 날뛰는 설영의 모습은 실제로 그러했다. 그 위용이 어찌나 대단한지, 진왕의 호위들이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나며 수비를 굳힐 정도였다.

16549492236299.jpg“놈들을 제압할 수 있겠느냐! 배후를 캐내야겠다!”

16549492236311.jpg“죄송합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전황은 뒤집어졌다. 처음에는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몰아붙이던 마인들이 이제는 오히려 수세에 몰려있었고, 거기에 힘을 얻은 진왕이 아예 설영에게 생포를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설영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놈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마기를 폭주시킨 상태였으니까. 이대로라면 제압을 한다 한들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16549492236315.jpg“안 될 건 없죠!”

그때, 어느새 바다에서 돌아온 천화가 나섰다. 사용하는 것은 용호십삼검. 붉은 화염을 일으키며 놈들을 베어넘긴 그가 난입해 마인들을 썰어버렸다.

16549492236315.jpg“설영, 검!”

마인의 마기들로도 무명검의 예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베는 족족 거리낌 없이 잘려나갔다. 용호십삼검에 깃든 양강의 기운이 상처 부위를 지져버리며 회복을 막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천화가 손을 뻗으며 소리치자 설영이 자신의 무기를 바꾸었다. 운철검을 천화에게 던지는 대신, 만년한철검인 서리로 무장을 바꾼 것이다. 그만큼 마인을 상대하기는 어려워졌지만, 대신 천화가 더욱 힘을 쓰기 시작했다.

16549492236323.jpg“크악?!”

쌍검술. 무명검과 운철검을 양손에 각각 쥔 천화가 쌍검술을 펼치며 놈들을 베어간 것이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설영이 날뛸 때보다 더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절정 고수인 설영과 달리 천화는 최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었으니까. 화경이라는 전설적인 경지를 눈앞에 둔 자. 이미 한번 화경을 넘어선 현경, 혹은 자연경이라 불리는 경지마저 밟아본 자. 무형신보를 펼쳐 미끄러지듯 마인들의 틈에 파고든 천화가 양손으로 검을 떨치자 마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16549492236315.jpg“미친개한테는 매가 약이지!!”

퍼버버버버벅!!!! 전신 요혈을 베어 목숨을 거두는 것뿐 아니라, 일부 마인을 상대로는 아예 운철검의 검면만을 이용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놈들의 마기가 휘청거렸다. 자신조차 주체하지 못하던 마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16549492236315.jpg“제압해!”

이내 완전히 힘이 빠지고 정신을 잃은 마인이 쓰러지자, 설영에게 제압을 요청하며 다음 마인을 향해 옮겨갔다. 독하기 짝이 없는 마교인들인 만큼, 한 놈만 살려두었다가 자결이라도 하면 문제이니까.

16549492236315.jpg“어딜 가시나!”

도저히 천화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자각한 마인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도주다. 목숨이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마기를 폭주시킨 상태에서 힘을 잃고 제압당한 동료들을 보니 위기감이 든 것이다. 정보를 발설할 바에야, 도주한 뒤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편이 나았다. 고문 따위에 입을 열지는 않겠지만 섭혼술 따위의 방법도 분명 존재하니까. 왕야의 목숨을 노린 만큼 저들은 황궁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테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보가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붙잡힌 동료를 죽이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그들이 말해서는 안 될 정보를 입에 담을 수 있기에, 자신의 손으로 끝장내어 후환을 없애려는 것이다.

16549492236311.jpg“어림없다!”

허나 그것 또한 설영에게 제지당했다. 서리의 힘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설영의 혈마기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혈마기를 뿜어낼 때마다 함께 뿜어져나오는 냉기 역시 상대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상대의 검이 힘을 튕기거나 흘려내지 못하도록 붙잡으며 혈마기의 난폭한 기운을 몸속에 주입하고 터트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천화가 마지막 한 명의 마인까지 모조리 쓰러뜨렸다.

16549492236315.jpg“모두 동작 그만!”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이들 중에 아직까지 힘을 숨긴 마인이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천화는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포박했다. 마인이 힘을 드러내면 밧줄 따위야 우습게 끊어버리고 말겠지만, 일단 행동을 제약시킨 후 색출해내겠다는 계산이었다. 저항하거나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자신이 마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될 테니까.

16549492236315.jpg“마인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잠시 물러나 계시지요.”

16549492236299.jpg“마인? 그럼 저들이 마교도란 말인가?”

천화의 말에 진왕이 크게 놀랐다. 이런 식의 암습이야 지금껏 수도 없이 겪어본 그였지만 자신을 노린 이가 마인이라는 것은, 마교도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감히 무림인이 황실의 후손을 노린 것이 아닌가? 이것은 황실과 무림의 대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

16549492236315.jpg“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마공을 익힌 것은 확실하지만 마공을 익혔다고 모두 마교도는 아니니까요.”

16549492236299.jpg“허면, 저들 중 살수가 남아있다는 것은 어찌 찾아낼 텐가?”

천화의 말에 진왕의 시름이 깊어졌다. 차라리 마교라면 낫다. 마교는 무림에서도 배척 받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반 무림인들, 어쩌면 정파인들 중에 마공을 익히고 자신을 암습하려 한 이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찌 다스려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마공을 숨기고 있는 이가 있다면 어찌 밝혀내야 한단 말인가? 마공은 그 괴이함과 악랄함에 치를 떠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부 기본의 무공들과 융합하여 파괴력을 발휘하는 것들도 있기에 더 악명이 높았다. 만약 작정하고 숨긴다면 스스로 드러내기 전까지 발견할 수 없는 종류도 있어, 단지 맥을 짚는 것만으로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16549492236315.jpg“이거면 충분합니다.”

그런 걱정 따윈 버리라는 듯, 천화는 가볍게 대꾸했다. 그가 믿는 것은 바로 운철검. 아무도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명령한 천화는, 병사 하나하나의 어깨에 운철검을 올려놓았다가 떼었다. 아무 일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지만,

16549492236323.jpg“윽?!”

서걱! 조금의 반응이라도 보인다면 그대로 목을 쳐버렸다. 그런 자가 무려 셋. 정확히는 셋이 아니었다. 세 번째로 목을 쳤을 때 위기감을 느낀 마인 둘이 도주를 시도한 것이다.

16549492236315.jpg“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푸욱! 물론 채 십 장을 벗어나기 전에 천화와 설영에게 당하고 말았지만.

16549492236315.jpg“이 정도 숫자의 마인이라니, 놈들도 많이 준비했군요.”

16549492236299.jpg“대체 그 검은 무언가?”

16549492236315.jpg“운철로 만들어진 검입니다. 운철에는 마를 다스리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있죠.”

16549492236299.jpg“마를 다스리는 힘이라……. 참으로 신묘하구나. 혹, 검에 이름이 있더냐?”

16549492236315.jpg“아직 없습니다.”

16549492236299.jpg“그럼 내가 이름을 붙여주고 싶구나. 그리해도 되겠느냐?”

16549492236315.jpg“영광입니다.”

마인을 찾아내는 신기한 힘을 지닌 검이 마음에 들었는지 진왕은 직접 검에 이름을 붙여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천화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딱히 진왕이 검을 탐내고 권위를 이용해 빼앗으려들지도 않았기에 기꺼이 그것을 허락했다.

16549492236299.jpg“복마검이라 부르겠다. 마를 다스리는 검이니 그리 부르면 좋겠구나.”

  [운철검(패왕)이 새 이름 ‘복마검’을 얻었습니다.] [복마검에 이야기의 힘이 담깁니다.] [일부 능력이 강화됩니다.] 그 말에 복마검이 한층 강화되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질 만큼 특별한 무기에는 그 이야기에 걸맞은 힘과 전설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16549492236315.jpg‘복마검이라, 나쁘지 않군.’

어차피 검으로서의 성능보다는 마기나 사기 따위를 흩어버리는 능력에 특화된 검이니 천화도 만족했다. 이대로 운철검, 아니 복마검이 활약하며 마기를 분쇄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온다면 복마검은 더욱 강력한 파마의 기운을 가지게 될 터였다. 만약 진왕이 이상한 이름을 붙였다면? 사실 그 또한 방법은 있다. 결국 이름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니, 부여받은 이름을 말하는 대신 마인들을 상대하는 모습으로 드러낸다면, 더 많이 불리는 쪽의 이름으로 변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6549492236299.jpg“자, 그럼 이제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 저들이 누구인지, 누가 사주를 한 것인지.”

16549492236315.jpg“제 생각 따위가 어찌 중요하겠습니까. 자세한 것은 심문을 통해 밝혀질 테니 기다려보시지요.”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들이 지나고, 일단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진왕이 비로소 본론을 꺼냈다.

16549492236299.jpg“추측이어도 좋다. 불경한 말이라도 상관없다. 내 모두 책임을 질 것이니, 가감 없이 말해보거라.”

천화는 말하기 어려운 듯 한발 물러섰지만, 진왕은 집요하게 천화의 생각을 물어왔다. 아마 자신도 알고 있을 터였다. 자객을 보낸 것이 누구인지를, 해적들에게 정보를 흘린 것이 누구인지를. 그렇지 않다면 ‘불경한 말’이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겠지.

16549492236315.jpg“좋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이니 그저 참고만 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16549492236299.jpg“물론이다. 판단은 본 왕이 할 것이다.”

16549492236315.jpg“좀 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저들은 마교와 연관이 된 이들일 겁니다. 마교도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마공 비급 따위를 전해받은 누군가의 수하일 수도 있겠지요. 어찌되었든 마교가 이 일에 연관이 되어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무림에서도 최근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16549492236299.jpg“마교라……. 그 사악한 무리들이 나타났다는 정보는 나도 들었다.”

과연 황실의 정보력도 만만치 않음인지 마교에 대한 것은 얼추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교가 아니다. 그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황실을 노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황실에는 동창과 금의위가 있다. 먼 옛날 무림에서 수집한 비급들을 토대로 황실에서 발전시킨 무공들은 당금 무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설령 천마가 역모를 꾸민다 해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관도 무림을 별개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무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언제든 제압할 수 있는 상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16549492236315.jpg“그리고 저들을 사주한, 혹은 저들과 손을 잡은 이는 아마도 왕야분들 중 한 분이실 겁니다.”

16549492236299.jpg“역시, 그런가.”

이어 천화가 제 생각을 이야기하자 진왕이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왕야를 의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천화는 진왕이 그런 것에 성질을 부리며 부정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 진왕이든 민왕이든 현왕이든 누구도 두렵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16549492236315.jpg‘중요 분기 임무로 황제가 되는 게 있었다면 어렵지 않게 해냈었을 테니까.’

무신지로에서 이미 황제조차 두려워하는 힘을 가졌던 천화가 아닌가? 아직은 부족함이 있지만 본래의 힘만 되찾더라도 무림이든, 마교든, 황실이든 두렵지 않았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좀 더 대답을 요구하는 진왕의 눈빛에 응할 수 있었다.

16549492236315.jpg“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마 현왕 저하일 확률이 높습니다.”

16549492236299.jpg“그 아이가 말인가? 형님이 아니라?”

천화의 말에 진왕도 이번에는 짐짓 놀라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는 민왕의 소행이라고 생각 했으니까. 황태자이자 자신의 형님인 민왕. 아우인 현왕의 경우 이미 강력한 외척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을 견제하고 혹시 모를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자신을 제거하려 하는 것은 민왕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현왕이라니?

16549492236315.jpg“민왕 저하는 황실 정통의 후계자이십니다. 외척 따위의 세력을 크게 거느리신 것은 아니나 황실을 따르는 제후들이 그 분을 지지하고 있고, 굳이 마교 따위가 아니더라도 일이 터지면 금의위의 호위를 받으실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황제가 되실 분이니 굳이 무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화를 다시 보자, 천화는 표정의 변화 없이 추측의 근거들을 이야기했다.

16549492236315.jpg“하지만 현왕 저하께서는 다르죠. 강대한 외척 세력이 그분을 황제로 추대하려 하지만, 그들이 전력을 모으더라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후들이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수비대와 금의위를 상대해야하고, 동창 또한 그들에게 협조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분께서 황위에 오르신다면 외척들이 다 해먹으려고 할 텐데, 그러면 내시 집단인 동창의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들이 그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해먹는 것보다는 독재에 가깝더라도 민왕 저하의 곁에서 제 몫을 챙기는 것이 낫지요.”

황실과 황자들을 두고 하는 말치고는 굉장히 무례한 말들이었다.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처벌 받아 마땅할 만큼. 그러나 천화는 거침없이 그 말들을 내뱉었고, 진왕은 화를 내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그 말 중 하나도 틀린 말이 없기 때문이다.

16549492236315.jpg“그러니 금의위와 동창을 상대할 만한 힘을 어디선가 데려와야 하는데 사병을 키웠다가는 첩보에 걸릴 테고, 가장 만만한 것이 무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정파들은 잃을 것이 많아 황실의 일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아쉬운 이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교처럼 말입니다.”

16549492236299.jpg“그렇군.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형님을 오해할 뻔했다.”

천화의 말이 끝나자 진왕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더구나 형님인 민왕은 무인들에 대해 썩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마교를 이용해 무림을 쓸어버리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지만, 사실 마교 또한 황실과 어울리기 어려운 성향을 지닌 이들이었다. 무고한 백성들을 가리지 않고 죽이는 자들이었고, 무엇보다 성화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집단이었으니까. 백성들이 경배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황제뿐이라 생각하는 민왕의 사고와는 맞지 않는 이들이다.

16549492236299.jpg“그럼 어찌 나를 해하려 하는 것이냐? 나는 힘도 없고, 세력도 없다. 백성들을 편히 살도록 만들 수 있다면 황제가 되지 못해도 좋다. 그것은 형님과 아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어찌…….”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욕심을 버렸으니 그냥 놔둘 거라고? 아마 진왕이 모든 것을 버리고 백의종군을 하더라도, 죽이기 쉬워졌다고 좋아하겠지.

16549492236315.jpg“모르셨습니까? 저하께서 계신 그 자리는 원래 그런 것입니다. 황위 계승권을 가졌다는 자체가 위협이 된다고 느끼고 있겠죠. 차라리 힘을 가지고 세력을 가지셨다면 나았을 겁니다. 자칫 진왕 저하를 노리다가 힘이 빠져버린다면, 다른 한쪽에게 짓눌릴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16549492236299.jpg“그렇군. 그렇지…….”

진왕도 사실 모르던 바는 아닐 것이다. 그저 외면하고 싶었을 뿐. 형제끼리 피를 튀겨야 하는 암투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모르는 척을 한 것뿐이다. 그는 제법 영민한 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선을 넘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 그런 것쯤이야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겪었다. 마교가 아니라 그 어떤 것을 끌어들이든 상관없었고, 설혹 자신이 죽어 세상이 평안해진다면 기꺼이 목을 바칠 의향도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이번 일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천화와 설영, 또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없었다면? 해적들은 복주를 짓밟았을 터였고,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 터였다. 황손이 죽었으니 황실에서도 나서기는 하겠지만, 만약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전해준 이도 황실과 연관이 있다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롯이 백성들의 몫이다.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백성들을 위해 만인지상에 오르는 황제, 혹은 황제가 될 이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백성들을 고난에 빠뜨리다니. 그런 그의 눈빛에 어떤 기운이 감돌았다. 무언가를 작심한 듯, 표정을 굳히고 포부를 밝혔다.

16549492236299.jpg“은령.”

16549492236323.jpg“예. 저하.”

16549492236299.jpg“힘을 가져야겠다.”

16549492236323.jpg“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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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결심에 은령이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고 따랐다. 자신의 주인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뿐, 오래 전부터 준비해오던 것이었으니까. 무신지로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던, 황위 계승의 삼파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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