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수련동 (3) (196/481)

<196화> 수련동 (3)2022.02.03.

16549493904256.jpg“비켜봐.”

설영을 잠시 뒤로 물린 천화가 벽에 손을 짚었다. 먼저 손바닥으로 기를 퍼트려 벽의 두께를 가늠했다. 쩌저저적- 그리고 적당한 기를 주입하자 벽이 무너져내렸다. 아무래도 동굴이다 보니 너무 강한 힘을 주어 파괴할 경우, 동굴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1654949390426.jpg“어?”

16549493904265.jpg“쀼우우우~.”

그렇게 나타난 비밀 공간. 그 안에는 똬리를 튼 채 기분 좋게 소리를 흥얼거리는 은룡이 기다리고 있었다.

1654949390426.jpg“천화, 저거?”

그런 은룡의 아래에는 어딘지 익숙해보이는 구슬이 깔려 있었다.

16549493904256.jpg“여의주?”

바로 여의주다. 남만에서 금강토룡을 낚기 위해 사용했던 것보다 커다란 여의주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16549493904256.jpg“이런 게 있었던가?”

이것은 천화도 알지 못하는 요소였다. 다른 고인물이 챙기고서 입을 닦았던가? 아니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건가? 가만히 기감을 퍼트려보지만 놀랍게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감지되지 않으니 발견하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수련 중 힘의 여파로 벽이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굳이 답답하게 여기까지 와서 수련을 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16549493904256.jpg“그렇단 말이지.”

여의주의 기운을 흡수하는 은룡을 보며 천화가 슬그머니 눈빛을 빛냈다. 은룡이 여의주를 완전히 흡수해낸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는데 이 큰 여의주를 몽땅 흡수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살짝 기대하는 것이다. 여의주는 용의 내단이라고도 불리니까. 천화 역시 용을 직접 사냥해본 적은 없었지만,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여의주는 용의 내단이며 용이 얻으면 온갖 초자연적인 힘을 부릴 수 있게 되지만, 사람이 얻는다면 천하제일의 내공을 얻는다고 했다. 그러니 만약 은룡이 조금 남기는 것이 있다면, 먹어치워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단숨에 화경까지, 어쩌면 그것을 넘어 현경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탐욕스러운 눈길로 녀석을 기다렸다. 운기조식처럼 저 상태에서 잘못 건드리면 탈이 날 수도 있었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은룡의 포식을 기다렸다.

16549493904284.jpg

16549493904265.jpg“쀼욱!”

잠시 후, 트름을 하듯 꺼억거린 은룡이 여의주에서 뛰어내렸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으로 방긋 웃으며 설영의 품으로 돌아왔다.

16549493904256.jpg“흐흐흐흐흐!”

남은 것은 고작해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여의주. 처음의 크기는 거의 성인 머리통 하나만 했던 것을 생각할 때 엄청나게 작아진 상태였지만, 오히려 입안에 넣고 삼키기엔 딱 좋았다. 천화가 음흉한 미소와 함께 그 작아진 여의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16549493904256.jpg“윽?!”

  [해룡의 여의주가 당신을 거부합니다!] 그것에 손이 닿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해룡의 여의주가 천화를 거부하며 밀어낸 것이다. 마치 경고를 하듯 약하게 힘을 발산해, 정전기 같은 찌릿한 충격까지 받았다.

16549493904256.jpg“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그게 오히려 천화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길들여주마! 비영투까지 벗고 오른손에 내공을 가득 끌어올렸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공으로 감싸 강제로 취하겠다는 듯, 억지로 용왕의 여의주를 손에 쥐었다. [해룡의 여의주가 당신을 거부합니다!] [해룡의 여의주가 당신을 거부합니다!] [해룡의 여의주가 당신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의주는 천화를 거부했다. 조금 전과 같은 알림이 연속적으로 떠올랐고, 천화가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올렸음에도지지 않고 힘을 발산했다. 저항했다. 치이이이이익-!! 심지어 내공으로 손을 보호했음에도 그것을 뚫고 강력한 열기로 손을 공격했다. 천화가 손바닥에 화상을 입을 만큼.

16549493904256.jpg“젠장.”

불괴기공이 저절로 일어나 화상을 치유했지만, 열기는 점점 강해졌고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당신은 해룡의 여의주에게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주의! 10초 후 해룡의 저주가 당신에게 내립니다.] [9, 8, 7, 6, 5…….] 토옹 열기까지라면 어떻게든 참아보겠지만, 곧 해룡의 저주가 내릴 수 있다는 경고에 천화가 인상을 쓰며 여의주를 떨어뜨렸다.

1654949390426.jpg“천화! 괜찮아?”

손바닥이 뭉개지다시피 한 천화의 모습에 깜짝 놀란 설영이 달려왔다.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 발라주려 했다. 파아아앗-! 그 순간, 바닥을 구르던 해룡의 여의주가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1654949390426.jpg“어……?”

놀라는 설영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몸에서도 붉은 혈마기가 치솟았다. 대립하듯, 어쩌면 서로 호응하듯 두 빛이 대치했고 곧 얽혀들었다. [해룡의 여의주가 설영을 선택했습니다.]

16549493904256.jpg“뭐?”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알림창. 황당하게도 해룡의 여의주가 자신이 아닌 설영을 선택했다.

16549493904256.jpg“젠장, 이것도 외모지상주의냐?”

여의주에도 영성이 있다더니, 영물들처럼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딘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천화였다.

1654949390426.jpg“앗!”

그사이, 해룡의 여의주가 스스로 날아 설영의 손에 붙잡혔다. 누가 보면 설영이 허공섭물이라도 사용한 줄 알겠지만, 천화는 그것이 해룡의 여의주 스스로의 힘이자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1654949390426.jpg“소, 손이……!”

그렇게 손에 달라붙은 해룡의 여의주는 그대로 설영의 입가로 움직였다. 설영이 직접 입에 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의주가 억지로 설영의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꿀꺽. 그리고 입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제법 단단해 보이는, 실제로도 천화의 손에 쥐어지고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던 여의주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물질이 아닌 기운 덩어리였다. 그 표면이 저절로 부서지는가 싶더니 액체처럼, 혹은 솜사탕처럼 자연스럽게 목 안으로 넘어가 사라져버렸다.

16549493904256.jpg“운기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설영을 향해 천화가 소리를 질렀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꽤나 많은 내공이 유실되고 말 테니까. 그 말을 알아들은 설영이 즉시 가부좌를 틀었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혈마심법을 이용해 몸 안에 가득 차오르는 미지의 기운들을 흡수하고 동화되기 시작했다.

16549493904265.jpg“쀼쀼!!”

그런 설영의 머리 위로 기어올라간 은룡이 마찬가지로 똬리를 틀었다. 그녀에게서 새어나가는 기운들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그 기운들을 다시 정제하여 설영에게 보내주기 시작했다.

16549493904256.jpg“쩝. 역시 될놈될인가? 운빨좆망겜 같으니.”

아무리 설영이 취했다지만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설영이 곁에 있기에, 그녀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에 자신을 거부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애초에 자신은 가질 수 없던 것인지도 몰랐다.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은 법이다. 어차피 둘뿐이라 호법은 필요 없었기에, 손을 치료하고 기감을 넓혀 설영의 상태를 파악하며 묵묵히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약 두 시진이 흘렀을 때, 설영이 정광 넘치는 눈을 가만히 떠올렸다.

16549493904256.jpg‘세상 참 불공평하네. 그냥 혈마신공을 익힐걸 그랬나.’

설영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천화는 정확히 파악했다. 그저 단순한 내공의 상승이 아니었다. 내공이 충만하게 차오른 것은 물론이요, 해룡의 여의주에 깃들어있던 영성의 일부가 그녀에게 옮겨간 것이 느껴졌다. 영통. 상단전이 열렸다. 열리다 못해 강화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남다르다. 초절정. 인간의 한계라 할 수 있는 만큼 내공을 쌓아올린 최절정의 경지를 넘어, 초인의 경지에 올라 자연지기를 받아들이는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리였으니까. 본인이 어디까지 인지하고 있고 활용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얼떨결에 벽을 넘어섰다 하더라도 몸이 저절로 자연지기를 받아들일 테니 상관없었다.

16549493904256.jpg“축하해.”

1654949390426.jpg“고마워.”

때문에 살짝 배가 아파진 천화였지만, 설영의 환한 미소를 보니 또 마음이 사르르 풀어진다.

16549493904256.jpg‘크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것뿐이니까.’

괜히 혼자 뜨끔해진 천화는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설영이 운기를 하는 동안 찾아놓은 기관 장치가 있는 곳으로 먼저 이동했다.

16549493904256.jpg“자, 그럼 나가볼까?”

드르륵 쿠구구궁- 구석에 숨겨진 작은 손잡이를 당기자 굉음이 울리며 동굴이 진동했다. 정확히는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돌덩이가 움직여,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름 간의 폐관수련을 마치고 천화와 설영이 수련동을 빠져나왔다.

1654949390426.jpg“어? 여기는?”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설영이 눈앞에 들어온 풍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용왕바위의 내부였으니까. 용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지닌 바위, 그중 용의 입에 해당하는 부분이 수련동과 연결이 된 출구였던 것이다. 무신지로에서는 이것을 이용해 거꾸로 수련동에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짓을 해도 출구가 열리지 않았다. 외부의 물리력으로는 파괴되지 않게 파괴불가 효과가 적용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16549493904256.jpg“그럼 올라가볼까?”

주의를 주지 않아도 해룡의 여의주에 대한 것은 해남파나 주자엽에게 이야기하지 않겠지. 천화는 설영에게 자신이 발견한 여의주 값을 달라고 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입맛만 쩝 다시고 생각을 접었다. 용왕바위에서 벗어나 절벽 위로 표횰히 날아올랐다.

16549493904256.jpg“어? 뭔가 이상한데?”

간만에 맞는 상쾌한 바깥바람. 그러나 그것을 만끽할 새도 없이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16549493904256.jpg“너무 조용하지 않아?”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아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용왕바위가 아무리 남해도의 끝자락에 위치했다지만, 남해도는 그 특성상 어디에나 사람이 있는 곳일 텐데 말이다. 땅이 아니라 바다에라도 항상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인데, 지금은 어떤 이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16549493904256.jpg“어디.”

안력을 돋워보아도, 기감을 퍼트려 봐도 마찬가지다. 기이하리만치 사람들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천화가 즉시 근처의 나무 꼭대기로 올라섰다. 경지에 오른 무형신보를 이용해 마치 발바닥이 붙은 듯 수직으로 나무를 뛰어올랐지만, 놀랍게도 나무는 일체의 흔들림이 없었다.

16549493904256.jpg“엥? 저기는 또 왜 저래?”

그렇게 나무의 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북적거려야 할 마을이 어딘지 침체되어 보이는 것이다.

16549493904256.jpg“일단 마을로 가보자!”

설마 그 사이에 마교가 다녀가기라도 한 것일까? 이상함을 느낀 천화가 그대로 날아올랐다. 나무사이를 건너뛰며 빠르게 마을을 향해 달렸고, 설영 역시 뒤지지 않고 그 뒤를 따라붙었다.

16549493904256.jpg“혹시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16549493955268.jpg“엇, 천화 님?”

16549493955268.jpg“폐관은 끝나신 겁니까?”

16549493955268.jpg“어서 피하십시오. 지금 마을에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마을에 도착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묻자, 알 수 없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어서 몸을 피하라는 것이다. 사실 천화는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이지만, 그들은 천화를 기억하고 있을 테니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16549493904256.jpg“무슨 일입니까? 마을 분위기는 왜 이렇고요?”

하지만 이유도 알지 못하고 도망을 갈 이유는 없지. 천화는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반쯤 울먹거리는 얼굴로 답했다.

16549493955268.jpg“성주가 문주님과 해남파 무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16549493904256.jpg“엥?”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누가 누구를 잡아? 수상한 일이다. 사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이곳 남해도에도 황제가 내린 관리가 있으니, 그가 주자엽과 해남파 무인들을 조사하고 잡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통상 남해도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해남파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꽤 오랜 세월 동안 암묵적으로 인정받아오던 일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성주가 나섰다? 그렇다면 두 가지를 의심해볼 수 있었다. 새로운 해남파의 주인이 된 주자엽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이거나, 누군가와 결탁했거나. 천화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었다. 마교가, 혹은 마교와 결탁한 어떤 세력이 성주를 움직여 그들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16549493904256.jpg‘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도 찾고 있을 테고.’

천화는 즉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되면 해남파에 들러볼 필요도 없겠지.

16549493904256.jpg“성주를 만나봐야겠군.”

천화는 즉시 마음을 정했다. 자신을 찾고 있을 남해도의 성주를 자신이 먼저 찾기로 결정했다.

16549493969007.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