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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화> 독인지로 (4) (208/481)

<208화> 독인지로 (4)2022.03.03.

거센 물살은 천화를 밀어내다 못해 처음 들어왔던 입구까지 밀어냈다. 아예 허공까지 솟구쳐 오르게 만들었다. 물이 온통 들어찬 까닭인지 지나왔던 길에 설치된 함정들은 먹통이 된 모양이었고, 부유물들이 함께 쓸려가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천화에겐 큰 위협이 아니었다.

16549495979903.jpg“푸하!!”

허공으로 튀어오른 천화가, 함께 쓸려온 암기였던 부유물들을 피해 얼른 날아올랐다. 사뿐하게 땅 위로 내려앉았다.

16549495979909.jpg“모두 물러가거라!”

덕분에 가주가 머무는 전각 전체가 물바다가 되며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천화가 튀어오른 것을 확인한 독왕은 간부라 할 수 있는 이들과 원로들만 남기고 얼른 가솔들을 물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직감적으로 천화가 성공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16549495979909.jpg“끝까지 도달한 겐가?”

당문의 시험이라고 거짓말을 한 주제에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와 묻는 독왕을 보자 어이가 없었지만, 독왕도 원로들도 두근거림을 감출 수 없었다. 벌써 수백 년간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천화가 해낸 것이 아닌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승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천화의 귀에 들릴 지경이었다.

16549495979903.jpg“예. 별거 없던데요?”

이렇게 되면 당연하게도 칼자루를 쥔 것은 천화 쪽이다. 이미 소지품창에 무언가를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독룡편을 꺼내두었기에 대충 알고 있겠지만, 천화가 제 입으로 확실하게 답변을 하자 눈알이 빠질 듯 두 눈을 부라리기 시작했다.

16549495979909.jpg“그럼, 물건은 가지고 나왔나?”

16549495979903.jpg“예. 별것 없긴 하던데요. 뭘 가지고 나와야 할지 몰라서 일단 다 가지고 나와 봤죠. 일단 이거.”

천화는 일단 손에 쥐고 있던 독룡편을 던져주었다. 길고 굵어서 몸에 감고 다녀야 할 지경이었기에, 쓸 만하긴 해도 휴대하기는 영 불편한 놈이었다. 천화야 소지품창이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이들이 쓰기에는 썩 편리한 놈은 아닐 터였다.

16549495979909.jpg“이건……!”

독룡편을 받아든 독왕이 침을 꼴깍 삼키다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를 했다. 아직까지 천화가 독인지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16549495979903.jpg“그리고 이것도.”

다음으로 던져준 것은 만독총론이었다. 물에 흠뻑 젖었음에도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젖거나 글씨가 번진 흔적 따위는 전혀 없었다.

16549495979903.jpg“이런 것도 있더군요.”

마지막으로 독룡의 여의주도 던져주었다. 사천당문에서 가장 원했던 것이자, 이제는 쓸모없게 된 그것을 받아든 독왕의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16549495979909.jpg“다른 건? 다른 건 없었나?”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던가? 이미 전승을 통해 중요한 한 가지 기물이 더 있음을 알고 있는 독왕이 추궁하듯 캐물었지만 천화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16549495979903.jpg“아, 이거요?”

그리고 슬쩍 자신의 옷자락을 들춰보였다. 독룡갑은 이미 천화가 착용한 상태인 것이다.

16549495979909.jpg“이리, 이리 주게.”

16549495979903.jpg“싫은데요?”

16549495979909.jpg“뭣?!”

16549495979903.jpg“이거 통과하면 뭐든 들어준다고 하셨죠? 소소하긴 하지만 이걸로 하죠. 착용감도 괜찮은 게 쓸 만한 것 같네요.”

그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독룡갑은 천하기물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만큼 대단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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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는 했지만, 설마하니 가지고 나온 것 중 하나를 갖겠다는 이야기를 할 줄 몰랐던지 독왕뿐 아니라 원로원의 고수들도 슬그머니 기세를 피워올렸다. 천화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걸음을 옮겨 언제든 진법을 펼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그 개수작을 알아차렸지만, 천화는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독인지로에 들어서지 이전이었다면 제법 위험하겠지만, 지금이라면 그저 귀여운 재롱처럼 보일 지경이니까.

16549495979909.jpg“그건 안 될 말이네. 그것은 당문의 물건이니 다른 것을 요구하게.”

16549495979903.jpg‘내 이럴 줄 알았지.’

천화가 아니었다면 되찾지 못했을 독룡의 여의주와 독룡편, 만독총론까지 얻어놓고서 독룡갑까지 탐을 내는 당문의 욕심에 천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갈무리하고 있던 기운을 발산했다.

16549496003076.jpg“헉?!”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기세 따위는 씻은 듯 날려버리고, 오히려 심장이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막강한 기운을 피워올리는 천화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의 빛을 띠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독왕은 무형의 기운에 공격이라도 받은 듯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16549495979903.jpg“그래. 좋게 말을 하면 통하지 않는 놈들이었지.”

천화가 자연스럽게 그들을 하대했지만 누구도 그것에 반발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설영이 천화를 기다리고 있는 숙소 주변에 당문의 고수들을 쫙 깔아두고 언제든 발동시킬 수 있도록 진법도 준비해두었지만, 감히 그것을 협박의 도구로 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화가 내뿜는 기운이 너무나 압도적이었으니까. 초절정의 고수인 독왕이기에, 자신에게도 가늠이 되지 않는 천화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16549495979909.jpg“화경이라니……!”

그 말에 나머지 인물들도 화들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기운을 내뿜는다 생각하긴 했지만, 화경이라고? 저 젊은 나이에?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모두가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잊고 천화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16549495979909.jpg“……뜻대로 하게. 독룡갑은 포기하겠네.”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낸 것은 독왕이었다. 천화가 내뿜는 기파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였기에 그나마라도 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천화는 웃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16549495979903.jpg“진작 그랬어야지. 헌데 말이야……. 생각이 바뀌었어.”

16549495979909.jpg“그게 무슨…….”

휘익-! 천화가 가볍게 손을 뻗자 독왕의 손에 들렸던 세 가지 물품들이 다시 천화의 손으로 들어왔다. 허공섭물이라 불리는, 기를 이용해 사물을 손안으로 끌어당기는 기술이었다. 독왕이 황급히 힘을 주어보지만 놓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간 물품들이 다시 천화의 손에 쥐어졌다.

16549495979903.jpg“이건 압수다. 뭐, 하는 거 봐서 하나씩 줄 수도 있고?”

완전히 빼앗을까도 생각했지만, 쥐도 도망칠 구석이 없으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약간의 여지를 남겨둔 채 천화는 당문에게 목줄을 채웠다.

16549496017921.jpg“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은 우리 당문의 것……!”

그 말에 이번엔 뒤쪽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천화가 빼앗은 물건들이 어떤 것들인가? 다시 당문을 중원 제일의 가문으로 발돋움시켜 줄 보물이자 가문의 숙원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것을 힘으로 강탈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아야 했다.

16549495979909.jpg“그만!”

그때 그들을 막아세운 것은 다름 아닌 독왕이었다. 사천당문의 가주로서, 누구보다 그것들을 되찾고 싶은 것은 그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천화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아는 것이다. 힘으로 뺏는다? 과연 당문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 한들 그에게서 저것들을 빼앗을 수 있을까? 도저히 그런 미래가 상상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과정에서 만독총론이 훼손된다면? 독룡의 여의주를 천화가 삼켜버리기라도 한다면? 칼자루를 쥔 것은 천화였고, 힘으로 보든 뭘로 보든 자신들은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16549495979909.jpg“자네 뜻대로 하겠네. 무엇을 하면 되겠나?”

사천당문을 이끄는 가주로서, 천화에게 머리를 숙였다.

16549495979903.jpg“글쎄?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지. 하는 거 봐서 생각한다고 했잖아?”

나이로 보나 배분으로 보나 한참 차이가 나는 둘이었지만 천화는 자연스럽게 그를 하대했다.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놈들까지 존중해줄 만큼 자신의 아량은 넓지 못했으니까.

16549495979909.jpg“……알겠네.”

16549496017921.jpg“가주!!”

그리고 독왕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뒤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천하가 당문을 비웃을 테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가문을 위한 일이었다. 그 경지가 화경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으로 이름을 올릴 만큼 독와 암기에 자신이 있는 그였지만, 천화를 죽일 자신은 없었으니까. 천하십대고수라는 이름은 허울일 뿐, 천화뿐 아니라 다른 화경의 고수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천화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16549495979903.jpg“그럼 앞으로 잘해보라구?”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천화가 다시 그것들을 챙겼다. 모두 천화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이것들이 자신의 손에 있기 때문에라도 당문은 당분간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할 터였다.

16549496017921.jpg“가주!”

16549495979909.jpg“……뭔가? 분명 모두 물러나 있으라고 했을 텐데?”

그때, 물려두었던 가솔 중 하나가 명을 어기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천화와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주춤거렸지만, 곧 들려온 독왕의 말에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용건을 이야기했다.

16549496017921.jpg“정파 연합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16549495979909.jpg“기다리라 해라.”

16549496017921.jpg“예. 헌데…….”

16549495979909.jpg“또 뭐지?”

독왕이 불쾌한 듯 이야기하자 사내는 슬쩍 고개를 들어 천화의 눈치를 보았다.

16549496017921.jpg“진룡무쌍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16549495979909.jpg“……내가 아니라?”

16549496017921.jpg“예. 가주께는 서찰을 하나 전하면 된다 하고, 진룡무쌍에게는 꼭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16549495979903.jpg“?”

그 말은 천화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천당문도 정파 연합의 일원, 아니 중추라 할 수 있으니 사람을 보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굳이 사천당문에 찾아와 자신을 찾는다고? 분명 못해먹는다고 사표까지 냈을 텐데? 의아했지만, 동시에 찜찜했다. 백연대사가 자신의 뜻을 못 알아먹을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6549495979903.jpg“뭐, 가보죠. 가주께서는 여기 정리 좀 하시고?”

16549495979909.jpg“그러지.”

그럼에도 뭔가를 시키려 한다면, 뭔가 족쇄가 될 만한 것들을 준비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또한 이제 문제는 아니었다. 화경에 오른 이상, 이제 굳이 정파의 탈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6549495979903.jpg‘그땐 내가 정사지간이 되는 거야.’

수틀리면 정파도 패고, 사파도 패고, 마교도 패고. 어? 이제 아쉬울 것 하나 없어진 천화는 당문의 무인들을 시켜 설영을 데려오게 하고, 정파 연합의 전령이 기다린다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비밀 전갈이라며 독대를 요구한 전령과 만남을 가졌다.

16549495979903.jpg“이 녀석은 들어도 상관없어요. 싫으면 그냥 가시든가.”

부여 받은 임무가 있기에 전령이 불편해했지만, 천화가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자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설영이 동석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주위를 살피고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16549496017921.jpg“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극비사항이니 외부 유출에 주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6549495979903.jpg“일단 듣고 결정하죠.”

극비라는데 듣고 결정하겠다는 천화의 태도가 마뜩찮았기에 전령은 살짝 이맛살을 꿈틀거렸지만,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자신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비밀리에 천화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으니까.

16549496017921.jpg“얼마 전, 대막으로 향했던 사절단이 모두 죽거나 실종을 당했습니다.”

16549495979903.jpg“그쪽이 소란스럽다더니, 휘말린 모양이네요. 그래서요?”

또 세외인가? 이놈의 백연 대사는 왜 자신에게 세외의 일을 맡기지 못해 안달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번만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지난번에는 자신이 먼저 북해 대신 대막 쪽으로 가면 안 되냐고 묻기도 했지만, 그거야 공청석유와 함께 복용할 태양화초를 찾기 위함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공청석유를 썩히는 것이 좀 아깝기는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것을 들이켠다 한들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으니까. 다른 화경의 고수들에 비해서는 내력이 약한 편이라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화경의 진면목은 본신의 내공에 있지 않고, 주변의 자연지기를 이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화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전령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고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16549496017921.jpg“사절단에는 화령검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6549495979903.jpg“화령검왕이라면…… 십대고수?”

이번에는 천화도 깜짝 놀랐다. 화령검왕이 누구인가? 천하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중원 최강의 무인 중 하나가 아닌가? 화경에 완전히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지만 그 실마리는 찾아내 발은 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내공을 이용해 피워올린 불꽃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무공의 특수성 때문에 독왕보다도 윗줄에 놓이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고? 대막에 누가 있어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태양궁? 아니면 포달랍궁? 그도 아니면 최근 악명을 떨친다는 흑풍사?

16549495979903.jpg‘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보다 혼란스러운 것은, 무신지로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자신 때문에 바뀐 미래인 것일까?

16549495979903.jpg“더 자세히 들어봅시다.”

천화의 얼굴이 문득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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