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마교의 습격 (3)2022.03.29.
무상천검의 일초식, 일검무한은 두 가지 형태를 지닌 초식이었다.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거대한 압력으로 적을 찍어누르는 형태와, 무한히 확장되어 수십 수백 수천 개의 검격이 쏟아지는 형태. 동시에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검로와 검식이 담긴 어쩌면 가장 완벽한 형태의 공격이었다. 게다가 각 공격 간의 틈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반격의 여지 따위도 없었다. 피해를 감수하고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공격을 상쇄하며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죽을 때까지 방어만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그렇기에 화경의 경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초짜들을 상대하기에는 이만한 초식이 또 없었다.
“저게 인간의 힘이라고?”
다른 마인들이 감히 끼어들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저 무수한 강기 세례 중 일부만 자신에게 향하더라도 감히 막아낼 수 있다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탑골마왕이 공격을 이겨내고 힘을 써주기를 기대하는 것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세요. 우리가 당하면 끝입니다.”
그렇게, 같은 경지의 무인 간의 겨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일방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가운데 설영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단속했다. 천화가 탑골마왕을 압도하더라도 그 사이 자신들이 당하면 끝장이다. 천화의 주의가 분산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랐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설영이 구파의 네 고수들과 함께 방진을 이루었으며, 모산파의 고수들이 각기 술법을 일으켰다. 독인이자 독공의 고수인 당문악이 당가비전의 독들을 만지작거리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마인들에 대항할 준비를 마쳤다.
“뭣들 하느냐! 움직여라! 놈들을 공격하라!!”
그때 상대 역시 정신을 차렸다. 좀 더 정확히는 정신을 차렸다기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들은 것이다. 패배 혹은 전멸. 무려 화경의 고수와 함께하고도 패배하고, 어쩌면 전멸까지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일깨운 것이다. 방어하기에 급급해 보이는 탑골마왕을 대신해, 무슨 수를 내서든 상황을 뒤집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그들을 엄습했다.
“진혼멸패! 마교천세!”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악다구니를 쓰며 놈들이 움직였다. 그저 천화 일행을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두려던 것에서 진형을 바꾸어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마기까지 잔뜩 끌어올리니 하나하나가 절정 이하의 무위인 자들이 없다. 이쪽 역시 초절정의 고수가 다섯, 절정 수준의 무력을 갖춘 술법가 셋과 최절정에 육박하는 독인이 한 명이었다. 게다가 부상을 입은 이들이 많긴 했지만, 일류부터 절정까지 제법 다양한 무위를 갖춘 흑풍사들 역시 합류했다. 아무리 비적 떼라고는 하지만, 여기서 마교의 편을 든다 한들 자신들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부가적인 방식으로 다수를 상대하고 방어하는 데는 특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제법 단단하게 수비를 할 수 있었다.
“뭐야? 이것들은.”
그리고, 놈들이 뛰어든 것은 설영 쪽만이 아니었다. 무차별적인 강기 폭격을 퍼붓는 천화의 공세를 조금이라도 저지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 이들이 몇이나 있었다.
“비령! 우곽! 이 미련한 놈들아!”
어중간한 잔챙이도 아니다. 웅크리고 있던 탑골마왕이 서글픈 고함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는 것만 보아도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복수는, 반드시 해주마!!”
나름대로 초절정의 초입쯤이나 되었을까? 자연지기와 내공이 뒤섞인 천화의 강기 세례를 상당 부분 감당할 만큼 강력한 무인들이었지만, 곧 버티지 못하고 몸이 꿰뚫려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독기를 발휘하며 역혈마공과 목숨을 담보로 목숨을 연명하는 기괴한 마공들을 연달아 발동시키며 저항했고, 자연스레 탑골마왕에게 가해지던 공격이 줄어든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이 공세로 전환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거대한 기둥을 휘두르듯 골봉을 휘두르며 천화의 쪼개진 강기 조각들을 부수며 달려들었다. 천화가 쏘아낸 강기 다발의 일부가 놈의 피륙을 찢어내며 순식간에 피칠갑을 하게 되었지만 전신 요혈만은 보호하며 전력을 다해 일격을 가했다.
“잠깐 실례!”
“이형환위?!”
그 순간 다시 천화의 몸이 흐릿해졌다. 탑골마왕이 부숴낸 것은 천화의 두개골이 아니라 잔상뿐이었다. 위험할 걸 아는데 굳이 부딪혀 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정면으로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천화였지만, 무의미한 소모전을 하는 것은 그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철저하게 실리는 취하는 고인물의 전투! 그 정수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천화의 전투법이었으니, 거칠게 내리찍는 탑골마왕의 일격 일격은 애꿎은 땅과 전각을 부수며 지형을 바꿔낼 뿐이었고, 그 힘의 한 자락조차 천화에게는 닿지 못했다. 운철의 기운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붙어보았을지 모르겠지만, 화경의 경지는 마인들에게 탈마라 불리는 경지이기도 했다. 화경과 같은 경지에 오르면, 더 이상 마기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류귀종이라 했던가? 결국 정이든 사든 마이든 극에 이르면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무리하지 않았다.
“제길!”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그 사이, 그를 도와 천화의 움직임을 제약하려던 폭주한 두 마인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힘을 증폭시켰다 한들 경지의 차이가 명확했으니까. 천화가 싸워주었다면 그들도 어떻게든 역할을 할 수 있었겠지만, 싸워주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은 수명을 깎아먹는 것뿐이었다.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 쿨럭!”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운 두 고수가 허무하게 스러졌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자신이 일으킨 마기가 역류하여 기괴하게 몸이 비틀려 죽음을 맞이했다.
“노옴!!!!”
그 모습에 탑골마왕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아끼던 두 수하의 죽음과,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천탑붕회!”
싸우지 않는다면 싸우게 만들어주마! 자신의 괴력과 봉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내려찍기 형태의 초식들을 펼쳐내던 그의 공격이 방향을 바꾸었다. 종에서 횡으로. 봉을 내리찍는 대신, 몸을 회전시키며 함께 휘돌리는 것이다. 자연지기와 합일을 이룬 봉은 더 이상 병기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았고, 마치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크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체가 강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어지간한 이들은 그저 닿는 것만으로 몸이 뜯겨나갈 만한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그것이, 천화가 아닌 다른 일행들이 있는 방향을 노렸다. 막아보든가,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든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모습에 천화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날렸다.
“일검무한.”
다시 한 번 무명검이 거대해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탑골마왕 또한 한숨에 힘을 뽑아내는 대신, 몸을 연거푸 회전시키며 점점 힘을 증폭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읍.”
천화가 다시 숨을 고르자 하늘을 찢어낼 듯 커져가던 검이 다시 줄어들었다. 커져가는 놈의 봉의 크기에 맞춘 듯 전각의 대들보만 한 크기까지 줄어드는가 싶더니 그 위에 한 가지 힘이 추가로 덧입혀졌다.
“천검폭쇄.”
무상천검 제이초 천검폭쇄 일검무한이 하나의 검이자 무한히 증식하는 검이었던 것과 같이, 천 개의 검으로 분화하여 폭발해 당문의 독진을 파괴했던 그 초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천 개가 하나 되는 검. 거대한 천화의 강기검은 하나가 아닌, 천 개의 강기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이, 오직 탑골마왕 한 명만을 노리고 쏟아져내렸다.
“호신강기! 모두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펼쳐요!!!”
콰과과과과과과광!!!!! 대폭발. 인간이 뿜어내는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 개의 거대한 기운이 부딪히며 믿을 수 없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비사문의 것이었던 장원은 그저 큰 구덩이가 되어 사라졌고, 그 안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쿨럭!”
“사, 살아남은 건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설영의 외침에 모든 기운을 호신강기에 쏟아부은 일부뿐이었다. 그들이 앞에서 막아준 덕분에 뒤편에 있던 이들도 살아남긴 했지만, 제대로 달라붙지 못한 몇몇은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어째서 화경이 전설적인 경지인지를, 무인들이 그들을 일컬어 신의 영역에 발을 딛은 사람들이라 칭하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천화!!”
말을 잊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거의 없었기에 나타난 정적 속에서 가장 먼저 큰 소리를 낸 것은 설영이었다. 누가 승자인지, 누가 살아남았고 남은 자는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도다. 아쉬워.”
그때, 탑골마왕의 탄식이 모두를 경직시켰다. 설마 그가 승리한 것일까? 황급히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고, 폭연을 걷어내자 곧 탑골마왕의 거체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전신에 검은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 그것은 천화의 일격이 상쇄에 그치지 않고 그의 몸을 난도질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죽였어야 했는데,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네놈을 데려갔어야 했는데. 그분을 믿지만, 대업에 누가 될까 천추의 한이 되는구나!”
회광반조. 목소리만으로도 살아남은 자들을 전율케 하는 탑골마왕의 위용에 모두가 놀랐지만, 그것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황급히 천화의 모습을 찾았다. 무릎을 꿇은 채 전신이 꿰뚫린 탑골마왕의 몰골을 생각한다면 그 역시 몸이 성치는 않을 터.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를 살리고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가 조급히 그를 찾았다.
“크으으윽!”
잠시 후, 폭연 속에서 인상을 잔뜩 찡그린 천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외상은 없어 보이지만 얼굴이 엉망으로 찌푸려진 것이, 그 역시 심한 내상을 입은 듯 보였다.
“천화, 괜찮아?”
“쀼쀼!”
그 모습에 설영이 얼른 달려가 그의 곁에 섰다. 살아남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기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면 한참 경지가 낮은 이들에게도 쉽게 기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화를 호위하기 위해, 자신 역시 폭발의 여파를 막아내느라 기운을 대부분 소진했음에도 이를 악물고 주변을 경계했다.
“쀼우?”
그때, 은룡이 갸웃거리며 천화를 살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천화를 회복시켜주려고 한 것인데, 뭔가 이상한 것이다.
“아이고, 삭신이야! 끄응. 막판에 근력을 올리지 않았으면 근육통으로 고생할 뻔했네.”
“…….”
그제야 조금씩 안색을 회복한 천화가 호들갑을 떨며 팔을 주물렀다. 무명검까지 땅에 꽂아두고서 정말 온몸이 쑤신다는 듯 제 몸을 주무르고 두들겼다.
“응? 왜 그래?”
“천화 너…… 괜찮아?”
“응. 그냥 오랜만에 힘을 좀 썼더니 근육이 조금 놀란 정도? 그러고 있지 말고 좀 주물러주라. 요새 너무 놀았나 봐. 간만에 힘 좀 썼다고 온몸이 뻐근하네!”
“네놈……?”
몸이 좀 뻐근한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천화의 말에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같은 화경의 고수인 탑골마왕은 저 꼴이 됐는데? 그것은 마지막 숨을 이어가던 탑골마왕도 마찬가지였는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표정을 굳혔다.
“명심해라. 나는 십마 중 열 번째일 뿐이니!”
마교가 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약한 것일 뿐이다! 뻔한 악당스러운 대사를 외치는 탑골마왕을 향해 천화는 황당하게도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알아요, 알아. 그리고 전체에서는 십 위도 안 될걸요? 거 자의식 과잉이 심하시네!”
아닌데? 십마 이외에는 나보다 강한 놈이 없을 건데? 억울해서 눈도 감지 못하게 만들 작정인지 아예 한술 더 떠서, 그가 십마 중 최약체이지도 하지만 전체로 따져보아도 십 위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탑골마왕은 뭐라 따지고 반박하고 싶은 말이 턱 끝까지 한 가득 차올랐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았다. 어쩔 수 없이 탑골마왕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수하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마지막 명령이다. 모두 살아라! 무슨 수를 써서든 살아남아라!!”
“야! 그러면 내가 악당 같잖아!!”
억울한 듯 울려퍼지는 천화의 목소리와 함께, 간신히 충격의 여파에서 살아남은 마인들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