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개파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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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개파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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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개파식 (1)
2022.04.14.
“그대가 일신룡이로군.”
십마 중 다섯의 과분한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는 이미 옥좌에 앉은 천마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다 높은 곳에서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천마 정도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자였다.
물론 일반적인 상대일 때의 이야기였지만.
“썩 마음에 드는 별호는 아니긴 한데, 말보다는 용이 낫겠죠. 뭐.”
“갈!!!”
설마했지만 천마의 앞에서도 당돌하게 대꾸하는 천화의 모습에, 머리를 조아리며 시립하던 십마가 기운을 발산했다.
천화와 설영을 당장이라도 꿇어앉힐 듯 압박했다.
저것은 당돌을 넘어 조롱에 가까웠으니까.
아무리 천화라 할지라도, 최소 화경의 고수만 여섯이다.
무림에 초절정이라 부르고, 마인들 사이에서는 극마라 일컬어지는 경지의 무인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적진 한복판이기에, 자칫하면 그조차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천화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당대 천마가 어떤 인물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미 무신지로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바 있었고.
‘그때는 아예 단신으로 십만대산에 쳐들어가 천마랑 비무를 펼치기도 했지. 그 탓에 마교의 중원 진출이 늦어진 것 같긴 하지만, 재미있었으니까 됐지 뭐.’
“두어라. 재미난 녀석이지 않느냐? 중원 무림에 이만한 강단을 지닌 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데, 정말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녀석이로구나.”
예상대로 천화는 그런 천화의 반응을 대인배처럼 받아넘겼다.
어차피 서로 예의 차릴 만큼 좋은 사이도 아닌데, 말장난에 불과한 도발에 넘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 무림맹을 대표해서 왔다고? 전해 보거라.”
[중요 분기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제2차 정사대전의 개막][중요 분기 임무]
당신은 제2차 정사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무림맹의 사자로 파견되었습니다.
무림맹주의 서찰을 전하고 제2차 정사대전의 개막을 알리십시오.
- 성공 조건 : 무림맹주의 서찰 전달
- 성공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대량의 명성
- 실패시 불이익 : 명성 대폭 하락, 마교와의 내통 의심
천마의 재미없는 반응에 천화도 소지품창에서 서찰을 꺼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중요 분기 임무가 나타났다.
이 서찰을 전달함으로써 제2차 정사대전이 공식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시기의 문제일 뿐, 이것을 전하지 않는다고 정사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은 아니겠지만, 천화가 그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다.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서찰을 전달하지 않거나 전달은 하되, 마교에 투신하는 방법도 있을 터였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그것으로 인해 이후의 전황이 크게 바뀔 수도 있지만 천화는 굳이 모험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의외로 마교가 그리 잔혹하고 사악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이들이 득세할 경우 일어날 피해와 참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정한 천화는 품에서 서찰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고,굳이 천마에게 직접 갈 것도 없이, 곁으로 다가온 자에게 서찰을 전했다.
그가 머리를 조아리고 다가가 천마에게 그것을 바쳤다.
“그래, 뭐라고 적었는지 한번 볼까?”
서찰에 독을 발랐을 수도 있다. 서찰의 속지나 봉인에 독을 묻혀 중독시키는 방법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일반적인 방식이었지만, 천마의 행동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설령 무슨 짓을 했든 상관없다는 듯이, 천하를 오시하는 눈빛으로 서찰의 봉인을 뜯었다.
아마 독 따위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몸을 만들어두었겠지.
아니면 내공에 자신이 있거나.
“흐음.”
가만히 서찰을 읽어내려갔다.
적힌 이야기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지 몇 줄이나 읽어내려가는 눈동자가 보였고, 천화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만약 자신이 적었다면 그냥 한두 줄로 끝냈을 텐데 말이다.
이미 마교가 발호한 순간부터, 무림맹이 결성된 순간부터 둘은 양립할 수 없는 집단이다.
어차피 치고받고 싸울 것을, 뭐 그리 어렵게 빙빙 돌려 말싸움까지 한단 말인가?
‘응?’
슬슬 지루함을 느껴할 때쯤, 천마가 서찰에서 시선을 떼었다.
묘한 눈길로 천화를 바라보았다.
‘징그럽게 왜 저래?’
이놈에게 남색의 취향이 있었던가? 에이, 설마!
“여기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마치 천화를 시험하듯 말을 건넸다.
“뭐, 꼭 알아야 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것이 영 꺼림칙하다.
대체 무엇을 읽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가만, 이 새끼들이?’
그때 문득 천화의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렸다.
무림맹에게 뒤통수를 맞음으로써 고인물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이 있었다.
물론 당시의 인물과 자신 간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또 별다른 징후를 느끼지 못했었지만 상대는 무림맹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놈들이었다.
“관심 없습니다. 어쨌든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만…… 그래도 먼 길 온 게 아깝기도 하니, 비무 한판 어떠십니까?”
고인물에게는 눈치가 곧 생명이다.
천화는 아예 먼저 선수를 쳤다.
“비무라?”
감히 천마에게 비무를 신청한 것이다.
마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말이다.
“재미있군. 너무 자신이 넘치는 것 아닌가?”
“에이, 그 정도 자신감도 없이 어떻게 칼밥을 먹습니까? 아, 그래도 여긴 너무 개방되어 있나요? 원하신다면 장소를 옮겨도 좋습니다.”
만약 수하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것 같다면 장소를 옮겨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장소와 시기가 특수한 만큼 매우 큰 도발이었지만 천마는 사납게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천하의 천마가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를 무엇으로 보겠나?
물론 천마를 거의 종교처럼 믿는 마교인들의 믿음이야 크게 흔들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은 모르지.
천마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은 셈이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천화의 예상이 맞다면, 비무를 벌이지 않을 경우 더 큰 문제가 생길 테니까.
차라리 비무를 통해 천마를 꺾고 인질로 잡거나, 도저히 자신에게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좋아. 그렇지 않아도 탑골마왕을 가볍게 제압했다던 그 실력이 궁금하던 차였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하나만 묻지.”
“두 개 물으셔도 됩니다.”
“지금 이 비무 제안은 애초부터 계획된 것이었나, 무림맹에서 지시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이 서찰에 적힌 내용을 알고 있던 건가?”
“강자를 보면 한판 붙고 싶은 게 무인들의 습성 아니겠습니까?”
팔락팔락 서찰을 흔드는 천마의 모습에 천화는 확신했다.
저 안에 담긴 내용은 아마도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일 터였다.
무림맹의 사자로서 이곳에 온 것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천화는 무림맹 소속이 아니었으니까.
사자로 보낸 이를 죽이는 것은 전쟁 중에도 통용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무림맹은 별다른 연고도 없는 천화의 죽음에 격노하여 소위 ‘발끈 러시’ 따위를 벌이지는 않을 테고, 그것을 빌미로 오히려 세외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얻어내려 할 터였다.
천마 역시 그것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천화와 같은 고수를 독 안에 가두어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까.
어차피 세외의 세력들이야 언제고 저들에게 합류하여 저항할 이들이니 조금 앞당겨지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고, 오히려 화경의 고수이자 탑골마왕까지 가볍게 처리할 만큼 숙련도와 성장 잠재력이 높아 보이는 천화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반대로 무림맹은 통제되지 않는 고수이자 명문 정파들의 명성과 권위를 빼앗아가는 앓던 이 같은 천화를 제거할 수 있으니 좋을 테고.
그렇기에 천화는 일대일 비무를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천마를 비슷한 실력으로 꺾는다면 제거하려 들겠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어떨까?
아예 천마를 인질로 잡는다면?
마교로서도 자신을 어찌하기 어려울 터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천마를 죽여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놈들도 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을 죽이려 들 테니까.
제 아무리 천화라 할지라도 화경급의 고수가 이만큼이나 몰려서 덤벼든다면 당장은 생존을 장담키 어려웠다.
현경에 오른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당장은 무리다.
“나름대로 수를 생각해낸 모양이지만 후회할 걸세. 자네의 목을 걸어 개파식의 흥을 돋우는 것도 괜찮겠지.”
“저는 특별히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모두 물러나라!!”
짧은 눈빛 교환 이후, 천마가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화경급의 두 고수가 싸운다면 이곳이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말겠지만, 애써 지은 전각들까지 모조리 무너질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 자리에서 천화의 목을 따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이렇게 가파른, 실로 말도 되지 않는 성장을 이룬 천화라면 그대로 두었다간 큰 골치가 되고 말 테니까.
“천화……!”
“괜찮아. 일단 지켜보라구?”
설영이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물러서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천화가 빙긋 웃으며 안심시켰다.
십마에 속해있는 마인들이 일시에 덤벼든다면 모를까, 천마 하나뿐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이미 해본 일이기도 했고.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리며 천마와 자웅을 겨룰 준비를 했다.
“끼약-!!”
“……?”
그리고 그때, 허공에서 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이들은 누구도 둘의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그 거대한 새만은 개의치 않고 강하를 시도했다.
“미안하지만 잠시만 기다리지.”
그것이 천마 직통의 전서응이라는 사실은 천화도 알고 있었다. 천마에게 즉시, 직접 전해야만 하는 소식을 전할 때만 사용되는 전서응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기에, 가만히 그를 내버려두었다.
전서응에 매달린 급보를 살피는 천마의 표정을 관찰했다.
‘뭐지?’
자신과의 비무를 앞두고도 여유롭던 천마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지, 길지 않은 종이의 내용을 유심히 살피던 천마가 움직인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너, 운이 좋군.”
“……?”
“이 비무는 추후로 이루어야 할 것 같군. 잠시 더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어.”
이게 무슨 말일까. 비무를 미루자고?
그렇게 해서 과연 누가 다행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천화라는 위험요소의 제거까지 미루어야 할 만큼 큰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기에 천화도 마냥 달갑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아니, 그것을 떠나 당장 이 상황부터가 애매해졌다.
저렇게 말을 했지만 그의 수하들, 이를테면 십마가 나서서 대신 제거를 하려 든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천마이시여.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명만 내려주십시오.”
“너는 나를 저런 말을 듣고도 비무를 회피하는 소인배로 만들 참이냐? 나는 이미 명을 내렸다. 저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도록. 저자와는 추후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읽기라도 했다는 듯, 천마가 십마 중 일인의 청을 거절했다.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명을 내려 천화와 설영을 무사히 돌려보낼 것을 지시했다.
‘……살았네.’
그제야 천화도 내심 안도했다.
천마가 비무를 하는 대신, 천화를 처리하는 쪽으로만 마음을 먹는다면 꽤나 힘든 싸움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천마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십만대산이 공격 받기라도 하는 게 아니고서야…….’
혹시 자신을 이리로 보낸 사이, 무림맹에서 별동대를 조직해 십만대산을 공략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마교의 고수들이 이곳과 중원 곳곳으로 옮겨갔다지만, 그곳에 머무는 인원들도 보통은 아닐 텐데?
게다가 무림맹이 움직이기에는 거리상으로도 영 좋지 못하다. 그들이 십만대산을 공격한다면 마교는 구원군을 보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중원으로 진격해 무림맹의 본진을 털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곤륜파가? 그것도 무리다.
마교가 청해성에 자리를 잡으면서 아직까지 놓아둘 만큼 곤륜파의 저력이 상당하다지만, 십만대산을 단독으로 공격할 만큼은 아니니까.
“무슨 일인지 궁금한 모양이군. 아마 곧 알게 될 것이다. 중원 전체가 크게 술렁거릴 만한 일이니까. 그리고 내게 도전한 용기가 가상하니 한 가지 알려주도록 하지. 무림맹을 조심하거라.”
휘릭-
그 말과 함께 천마가 자신이 들고 있던 서찰을 천화에게 던졌다. 내공이 응축된 것이기에 펄럭거림도 없이 직전으로 날아온 그것은 잘못 받으면 그대로 몸이 잘려나갈 만한 것이었지만, 천화는 자연스럽게 기운을 해소시키며 받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