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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황궁 암투 (2) (228/481)


<229화> 황궁 암투 (2)
2022.04.21.


무림맹주와의 협의가 끝나고, 고작 호위 따위로 받을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의 보수를 선금으로 지급 받은 천화가 설영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 이외에도 무림맹의 성의표시 차원에서 일부 고수가 함께 민왕의 호위를 맡기로 했지만, 천화는 잠시 들를 곳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따로 움직이기로 한 탓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지만, 확인을 할 필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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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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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 저하를 뵙습니다.”

천화가 떠난 이후, 진왕은 여전히 복건성 일대에 머물며 해적들을 소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차례 암살 시도가 실패한 이후 재미있게도 몇 번의 시도가 더 있었지만 운철검, 아니 복마검 때문인지 더 이상의 시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세력도 약하고 딱히 황위 계승권에 욕심을 보이지 않는 그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인 듯싶었다.

그 덕에 진왕은 은밀히 세력을 기르며 웅크리고 있었고, 천화의 연락을 받고서 모처럼 복건성이나 절강성이 아닌 안휘성까지 마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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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형님들께 연락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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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현왕 저하께서는 신의를 찾아 보내줄 것을 요청하셨고, 민왕 저하께서는 호위를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이 건들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 것이 있으실까 하여 여쭙고자 뵙기를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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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왕 저하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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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령. 진정하거라.”

무림맹에서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전하자 진왕보다 곁에 있던 호위, 은령이 먼저 발끈했다.

마치 천화가 진왕을 흉수로 의심하는 듯하여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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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듯하니 말해주도록 하지. 나 역시 형님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적어도 내가 벌인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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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러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진왕 저하께서 형님 저하들을 해하려 하기에는 힘도 세력도 부족하시니 말입니다. 제가 의논코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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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아니다?”

다소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진왕으로서는 그 둘을 어찌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진왕은 발끈하는 대신, 순순히 그것을 인정하며 다른 것에 관심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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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당금의 돌아가는 상황은 저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의 편에 서있고,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지요. 때문에 저는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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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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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저는 이제 민왕 저하의 호위를 맡으며 상황을 정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진왕 저하의 뜻을 먼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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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을 말하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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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하께서는…… 황제가 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쿠웅

진왕은 무언가 내려앉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철렁 내려앉는 소리였다.

만약 이 말을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역모를 꾸민다며 난리가 날 수도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천화가 하는 말이었기에, 여기서 고개만 끄덕거린다면 마치 그것을 이루어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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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왕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직까지 천화가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진왕이었지만, 일전에 보여주었던 무위를 떠올려보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간단히 생각을 하더라도 현왕이 사경을 헤매고 있고, 민왕의 호위를 천화가 맡는다면 그를 암살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나?

두 형님이 죽는다면 자연스레 자신에게 황위 계승권이 넘어오게 될 터였다.

이런저런 방해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지방세력이 강하다 한들 유일한 황위 계승권자를 어찌하기는 힘들 테고, 일단 황제의 위에 오르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겠지.

진왕의 떨리는 동공이 점차 가라앉았다.

결심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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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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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의 한 평원.

거대한 막사를 중심으로 마을처럼 펼쳐진 진지의 울타리마다 누군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거렸다.

暋.

민왕을 상징하는 글자가 크게 적힌 그곳에는 황제의 첫째 아들인 민왕이 머무르는 중이었다.

최근의 소란 때문인지 다른 성주의 거처에서 머무르는 대신 독자적인 진지를 구축하고 경계를 철통같이 유지하고 있었기에 관계자 이외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침범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으로 한 명의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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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웬 놈이냐!!”

그를 발견한 경비병들이 정석적인 대응을 했다.

무기를 겨누고, 상대를 위협하며 동시에 언제든 안에 변고를 알릴 수 있도록 종을 흔들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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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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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허나, 사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계속해서 걸었고, 그 순간 경비병들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끼이이익-

마치 주인을 보듯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스스로 진지의 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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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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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오기로 했던가?”

갑작스런 문의 개방에 안에서 경계를 서던 병졸들이 크게 당황했다. 상인들의 수레를 제외하고는 열릴 일이 거의 없는 문이 개방되는 것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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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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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더구나 딱히 방문자의 신원 확인을 위한 신호도 없었기에 긴장감이 쫙 퍼졌다.

그들 역시 현왕이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설마하니 암살자가 정문으로 쳐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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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신경 쓰지 말고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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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나, 침입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 역시 눈이 풀렸다.

마치 그를 본 적 없는 것처럼 외면하며 다시 제 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환요사안.

사내가 펼친 것은 시선을 통해 환술을 펼치는 상승의 수법이었다. 시전하는 것조차도 상단전이 상당히 발달을 해야만 가능했고, 정신력이 강하거나 내공이 웅후하다면 저항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마주한 이들 중 그 누구도 명령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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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놈이냐!!”

저벅저벅

그렇게, 사내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생겨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구축된 진지의 약 3분의 1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지배에 걸리지 않고 맞서는 이가 나온 것이다.

땡땡땡땡-!

그와 동시에 진지 전역에 소란스러운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대기하고 있던 고수들이 튀어나왔다.

일부는 민왕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뒤로 물러났지만, 고수라 부를 만한 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며 사내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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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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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그것을 마치 기다려주듯 제 자리에 멈춰서있던 사내가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딱히 진각을 밟은 것도 아니건만, 대지가 요동을 치고 기의 파도가 주변을 덮쳤다. 휩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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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털썩 털썩 털썩…….

그와 동시에 사내를 둘러싼 인원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기의 폭풍과 접촉한 것만으로 정신을 잃거나 기혈이 뒤틀려 피를 왈칵 토해내기 시작했다.

운기를 한다면 금방 다스릴 수 있겠지만 당장은 제대로 힘을쓰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일류는 물론이고 무려 절정급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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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라,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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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 저하께 가지 못하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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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민왕의 곁에는 자신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고수들이 있긴 하지만 단 일수에, 단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 모두를 제압한 사내의 무공 역시 측정할 수가 없었으니까.

최대한 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서 민왕이 몸을 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모두가 억지로 기운을 쥐어짜내 덤벼 들었다.

동귀어진을 각오하며 짓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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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그들 중 누구도 사내를 잠시나마 막아설 수 없었다.

분명 정면을 향해 짓쳐들었건만, 정확히 등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건만 검 끝에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유령처럼 홀연히 사라져 그들을 통과해버리고 말았다.

은잠무영보.

보통은 잠입을 위해 사용하는 무음무흔의 보법을 정면에서 펼쳐보이며 허깨비처럼 그들을 지나쳐들어갔다.

이미 제쳐진 이들이 전력을 다해 따라붙어보이지만 어째서인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한 번 발을 구르면, 검을 집어 던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닿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기파를 이용해 놈들의 기운과 정신을 흔들어놓은 뒤, 다시 한 번 환요사안을 사용한 까닭이었다.

보통이라면 통하지 않았을 힘이지만, 이미 정신이 크게 흔들린 뒤인 터라 먹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사내는 좀 더 안쪽으로, 민왕과 그 핵심 호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런 그를 아주 잠시라도 멈춰 세울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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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행패를 부리는가!”

소란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무수한 고수와 병졸들이 나섰으나 금세 잠잠해졌다.

허나 상대를 제압한 것이 아니었다.

민왕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심각한 얼굴을 한 주위의 고수들이 거대한 기를 가진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했다.

자신들과 함께 몸을 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왕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이라면 어차피 자신이 도주를 한다 한들 붙잡힐 것이 뻔했으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놈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확인하고 당당히 맞서는 편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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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강단이 있군.’

당당하다 못해 위엄까지 느껴지는 그 모습에 천화도 입꼬리를 올렸다.

이것은 시험이자 경고이며 시위였으니까.

다른 성주의 호위까지 거부하며 따로 터를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호위와 병력들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천호는 그것이 잠입도 아닌 정면 돌파로 가볍게 뚫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믿음이 얼마나 의미 없고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줄 참이었다.

그러한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의 대응을 보는 것으로 그의 자질을 파악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더불어 그만한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드러내고 경고하려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민왕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무신지로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민왕이 감히 무림에 관여하려 들지 못하도록 경고를 한 적이 있으니까.

모든 것은 천화의 의도대로.

제법 강단 있게 침입자에 맞서는 것은 칭찬해줄 만하지만, 천화는 민왕을 좀 더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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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저자를 제압해올 자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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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서겠습니다.”

뭐라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 주변에 시립하고 있던 무림맹의 무인들이 나섰다.

무림맹주가 천화, 설영과 별개로 그에게 먼저 보낸 호위 인원이었다.

하나같이 초절정의 경지를 이룬, 능히 백대고수라 부를 수 있는 다섯 명의 무인들 중 하나.

상대의 경지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을 보기 위함인지 그들 중 하나만 나선 것이다.

물론 그들이라면 충분히 천화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천화는 일부러 복면을 쓰고 흑우와 설영을 잠시 밖에 대기시킨 상태였기에 알아보는 기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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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는 되어있겠지? 손속에 정이 없다 원망하지 말거라!”

득달같이 달려드는 화산파의 무인.

사실 그는 이미 천화와 만난 적이 있는 자였다.

대막을 조사하러 함께 다녀왔던 명호 도장.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며 달려드는 그를 향해, 천화가 가만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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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검을 들지도 않은 채 내지른 주먹질 한 방에 명호 도장이 돌 맞은 개구리처럼 쭉 뻗어버렸다.

직접 주먹질을 가한 것도 아니다. 허공을 격하고 날아간 권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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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부터는 상상력의 영역이니까. 설령 같은 경지라 한들 플레이어들에게 유리한 것이 당연하지. 그 밑으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파동권.

그것은 자연지기를 이용해 강력한 파동의 기운을 만들어내는 수법이었으니까.

일반적인 내공의 발출이었다면 어떻게든 막거나 흘려냈을지 몰랐다.

허나 허공에서 만들어진 파동의 힘은 순간적인 대처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것을 예측하고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지기를 다루는 화경 이상의 고수들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도 자연지기를 다루고 빚어내 어떤 힘의 작용을 만드는 것은 사용자의 상상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었기에, 같은 화경의 경지라 한들 천화의 공격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 힘은 마치 판타지 세상의 마법처럼 상식의 궤를 벗어나는 것이었고, 이것저것 만화와 게임 등을 통해 보고 배운 것이 많은 플레이어들의 상상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 파동권 또한 고인물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흔들흔들 열매라며 장난을 치다가 만들어진 기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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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히려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서 싸웠지.’

아예 과학 법칙까지 가져다가 접목시키는 이들이 나오면서 문과 대 이과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다 추억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있는 이가 천화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천화가 잠시 옛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주변의 공기는 싸늘하게 냉각되었다.

초절정 고수를 한 방에 쓰러뜨리는 자객의 등장에, 긴장과 불안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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