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황궁 암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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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황궁 암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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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황궁 암투 (5)
2022.04.28.
광혈흑마가 아니라 구파의 고수라고?
설마 자신이 알지 못하던 마교의 간자가 저 중에 있었나?
천마가 자신을 미끼로 사용했단 말인가?
콰앙!!
그때, 그 미묘한 틈을 읽어낸 천마가 힘을 폭사시켰다.
천화의 검을 밀어낼 수는 없지만, 검과 검 사이에 내기를 폭발시켜 그 충격파로 자신의 몸을 밀어낸 것이다.
내상은 피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일검무한의 범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자존심을 세워 다시 덤비는 대신, 급히 뒤로 물러나며 악당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만한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놀랍구나. 하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빠드드득!
제법 거리가 떨어진 천화에게 들릴 만큼 바득바득 이를 갈아대더니 그대로 쭉 뒤로 물러났다.
“모두 퇴각하라!”
천마의 명령에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미리 합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한 모습에, 그들과 겨루던 무관들마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이 도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정도였다.
“젠장.”
바로 따라붙었다면 모를까, 잠시 멈칫거린 탓에 천화도 애매해졌다. 약간의 내상을 입었다 한들 천마가 전력으로 달아난다면 자신도 쫓기 어려웠으니까.
게다가 한편에서는 일이 벌어진 모양이기에 마냥 천마에게만 집중 할 수도 없었다.
천마를 쫓는 대신, 아직까지 소란이 가시지 않은 설영과 민왕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살폈다.
“……어?”
천화가 도착을 했을 때, 민왕의 호위들을 때려눕히고 구파의 고수들과 싸우던 광혈흑마는 이미 도주해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천마의 명이 내려지자마자 몸을 날렸는지 이미 제법 거리가 벌어져있었고, 난장판이 된 막사 인근에는 칼에 찔렸는지 상처입고 피를 흘리는 민왕과 그를 둘러싸고 다른 암습이 없는지 경계하는 고수들, 그리고 설영에게 제압당해 꿇어앉혀진 남궁소천이 보였다.
‘……웃어?’
그렇다면 남궁소천이 흉수라는 말인데, 정작 제압당한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천화는 찰나의 순간 지나간 민왕의 표정을 읽었다.
금세 표정을 회복하긴 했지만 민왕의 입가에 걸린 것은 분명 웃음이었다.
칼을 맞고도 웃음을 짓는다?
아무리 마인들이 물러났다고는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척 보기에도 상처를 제법 깊어보였고, 피를 많이 흘렸는지 안색도 창백해지지 않았나?
또한 그 웃음은 안도의 미소와는 조금 다른 성격처럼 보였기에 천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일단은 그 역시 모르는 척, 표정을 바꾸고 장내에 내려섰다.
“어떻게 된 겁니까?”
“너는 괜찮아? 천마는?”
분위기가 싸늘하다. 아무래도 무림맹에서 파견된 남궁소천이 민왕을 찔렀으니 천화까지 의심을 하는 것이겠지.
천마를 패퇴시켰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짜고 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민왕의 주변에는 그의 호위무사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띈 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고, 다른 무림맹의 고수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천화와 그들의 눈치만 살폈다.
“난 괜찮아. 놈은 도망쳤고.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결국 대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설영뿐이었기에 다시 묻자 설영이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광혈흑마를 막고 있던 중에 이 자가 민왕 저하를 찔렀어.”
예상대로의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세가의 무인이 아니던가? 그 중에서도 초절정의 경지에 든, 남궁세가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런 이가 민왕을 암살하려 했다? 대체 뭣 때문에?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아니, 이유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상한 점 투성이였다.
일단 그 정도 되는 고수가 마음먹고 검을 내질렀다면, 다른 방해가 있더라도 민왕 하나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니까.
더구나 그를 경계하는 이도 없었을 테니 실패할 리가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패를 했다? 무공도 알지 못하는 민왕 따위를 죽이지 못했다?
일단 찌르는 데 성공했다면 내공을 폭사시키기만 했어도 육편이 되어 비산했을 텐데, 그저 출혈에 그쳤다?
천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무신지로에서 그를 비롯한 남궁세가의 일원 중 누구도 마교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랬지만, 전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흐리멍텅하고 멀뚱멀뚱한 눈동자도 수상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려서 저지른 듯, 자신이 한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놈을 바라본 천화가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놈의 상태를 살폈다.
‘미혼향과 환술인가?’
이지를 흐트러뜨리는 미혼향의 냄새와 아직 몸 안에 남아있는 환술의 찌꺼기 같은 기운을 읽어냈다. 누군가 남궁소천의 정신을 조종하여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범인은 아마도…….
‘애초부터 이걸 노린 건가? 제 목숨을 담보로?’
황당하지만 민왕이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황자씩이나 되는 인물이 무엇을 노리고 제 목숨까지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이 그가 꾸민 일인 것이다.
‘어쩌면 본인이 아닐 수도 있겠군.’
어쩌면 본인이 아닐 수도 있겠지.
황자쯤 된다면 암습을 대비하여 자신과 똑같은 체격을 지닌 아이를 어릴 때부터 여럿 길러내고, 습관까지 똑같이 하도록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그들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야 정교한 인피면구를 사용하면 되겠지. 감히 황자의 얼굴에 손을 댈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 정체가 무엇이 되었든 천화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민왕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다 죽이든가, 의도대로 움직여주든가.’
다 죽여서 살인멸구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민왕이 무슨 생각으로 이 따위 수작을 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목격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도륙한 뒤 천마와 마교의 소행으로 덮어씌우면 그만이다.
물론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사실을 고한다면 황실 전체가 천화를 노리게 되겠지만, 그런다고 두려워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눈 딱 감고 저질러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익-
퍼억!!
“컥!”
하지만 천화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일격에 남궁소천을 기절시켰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름대로 민왕의 호위들도 초절정의 고수가 많았고, 병졸들 중 죽은 채를 하고 살아남는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확인사살을 할 수도 있지만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상처 입은 민왕 자체가 본인이 아닐 수도 있기에 민왕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대충 무엇을 할지 예상되긴 하니까.’
민왕의 의중이 무엇인지 조금은 예상이 된다는 것도, 그것에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도 천화가 마음을 돌린 이유가 되었다.
“일단 민왕 저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십시다. 무림맹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알겠으나, 마교의 무리들이 멀지 않은 곳에 도사리고 있을 수 있으니 제가 뒤를 따르는 것만은 이해해주십시오.”
“……알겠소. 가자! 서둘러라!”
기절한 남궁소천을 짐짝처럼 그들에게 던져주며 천화가 제안하자, 그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으나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막말로 천화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에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을 테니까.
호위들은 황급히 민왕을 옮겼고, 일단 석가장으로 향해 치료를 한 뒤 황궁이 있는 북경으로 향할 것을 결정했다.
당장 황궁까지 달려가기에는 민왕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독이라도 발라져 있을 수 있었기에, 일단 상세를 살피고 황궁으로 사람을 보내 어의를 이리 오게 하든 직접 치료를 받으러 움직이든 하는 것이 옳았기에 즉시 실행에 옮겼다.
천화와 설영이 그 곁을 따르며 마교의 잔당들이 습격해오지 않도록 호위를 했고, 남은 무림맹의 인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하필…….”
“남궁 대협이 어째서 저런 선택을 했는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맹에 소식을 전합시다.”
흉수가 하필이면 다른 어디도 아닌 남궁세가라는 것이 문제였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축을 담당하는 남궁세가를 내친다는 것은 무림맹으로서도 심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정파 무림을 떠받친 기둥 중 하나이자 오대세가의 수장이라 불리는 것이 남궁세가였으니까.
무림맹에 전서구를 날려 상황을 전하겠지만 맹주도, 군사도 다른 수뇌부의 어떤 누구도 함부로 답을 입에 올리기는 어려울 터였다.
설사 개인의 일탈을 주장하더라도, 그것을 민왕과 그의 수하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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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석가장으로 이송된 후에도 민왕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괜찮을 거야. 무슨 속셈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지만.”
꾀병이었다.
천화는 기운을 일으켜 민왕의 몸을 점검해보았고, 피를 제법 흘리기는 했지만 그의 상처가 깊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장기가 손상되지도 않았고, 요혈을 찔리지도 않았다.
흉터가 남을지는 모르겠으나 적당한 처치를 마친 뒤 푹 쉬면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상처였음에도 민왕은 하루를 꼬박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정신을 차린 이후에도 고통을 호소하며 북경으로의 이송을 주장했다.
당연히 채비는 즉시 이루어졌고, 이번에는 하북성의 성주가 붙인 정예 병력이 추가로 따라붙었다.
혹여라도 다시금 마교가 습격을 해올 것을 대비한 것이다.
그래봤자 십마나 천마가 나선다면 속수무책이겠지만, 제 도리를 충분히 다했음을 보이기 위함인지 성주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인원을 동원하여 민왕을 보좌토록 했다.
당연히 천화와 설영, 그리고 무림맹의 인원들도 함께였지만, 제압을 당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죄인처럼 끌려갔다.
그렇게 북경에 도착하자 부상당한 황자를 맞이하기 위해 금의위가 즉시 마중을 나왔고,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무림맹에서 온 호위인원들은 감금을 당했다.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보이더라도 금의위와 동창의 고수들이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겠지.
이럴 때 괜한 빌미를 주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기에 천화와 설영은 잠자코 배정된 숙소에 머물렀고, 흉수로 현장 체포된 남궁소천은 황궁의 뇌옥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역시 이건가.”
그렇게 황궁에 감금되어 있기를 닷새.
남궁소천과 마찬가지로 무림맹에서 파견된 인사이기는 했지만 천마를 물리치고 민왕을 구한 공이 인정되어 별궁에 배정을 받은 천화에게 쪽지가 전달되었다.
시비가 식사를 가져오면서 바닥에 숨겨 들어온 쪽지는 하오문이, 추가연이 보내온 것이었다.
그들이 황궁에 갇힌 것을 알고, 외부의 정보를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황궁에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하오문으로서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기꺼이 천화를 위해 그것을 감수했다.
아주 간략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했다.
[현왕 사망. 사인 불명.]
첫 번째 내용은 현왕의 사망이었다.
제1 황위계승자는 아니라지만 황자가 암살을 당했다는 것을 밝힐 수 없었는지 공식적으로 사인을 밝히지는 않은 모양이다.
‘마의를 보내지 않은 건가?’
목숨이 위중하다더니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한 모양인데, 천마와 손을 잡은 것이 현왕이라면 마의가 어째서 움직이지 않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현왕의 죽음은 분명 중대한 사안이지만, 바로 아랫줄에 더 큰 사건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민왕, 무림 탄압 시작. 무기 패용 금지.]
꾀병을 부리며 황궁으로 돌아온 민왕이 무림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무기 패용 금지.
기존에는 무림인들을 인정하며 황궁에 들어설 때만 무기의 패용을 금지하고 잠시 보관하는 식으로 대처했지만, 정파 무림의 고수가 황자를 살해하려 한 이번 사건을 빌미로 무림인들을 싸잡아 위험인자로 구분한 것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수들이라면 모를까, 고수들은 이미 전신이 흉기라 할 수 있을 터인데 무기를 패용하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구나 지금은 정사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언제 마인들이 습격을 해올지 모르는데 무기를 소지하지 말라? 그냥 목을 빼놓고 있다가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될까?
이번 황궁의 결정은 마교인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이라지만, 그들이 어디 말을 들어먹을 인간들이냔 말이다.
이건 대놓고 무림을 탄압하겠다는 신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황제가 현재 병중에 있으니 그의 뜻도 아니고, 민왕의 뜻이라고 보아야겠지.
황제가 오늘내일 하는 와중에 그와 더불어 가장 유력한 황위계승권자였던 현왕까지 죽음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민왕이 그처럼 위험한 연기를 한 이유는, 바로 무림을 탄압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마교와 손을 잡은 건 아니었나.’
천마가 그 따위 계획에 찬성을 했을 리는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을 삼을 만한 일이었다.
좀 더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현왕 측에 붙었다가 일이 틀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민왕을 만나야겠어.”
마교는 물론 무림맹이라고 이 결정에 곧이곧대로 따를 리가 없었다. 그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순순히 목숨 같이 여기는 검을 내어줄 리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저항이 일어나거나 무시를 하고 있겠지.
거기에 관이 어떤 식으로 더 압력을 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천화는 즉시 시비를 통해 민왕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의 허락이 없이는 별궁을 떠나지 못하니 답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다시 삼 일이 지났지만, 민왕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하오문의 쪽지가 전달되었다.
[마교 침공. 소림 멸문.]
천화가 황궁에 붙잡혀 있는 사이, 천마가 마인들을 이끌고 소림의 담을 넘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