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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색몽요녀 초란 (1) (235/481)

<236화> 색몽요녀 초란 (1)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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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화의 당황스러운 조건에 백광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명성에 집착하는 이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저 자기 이름을 걸고 나누어주면 된다고?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16549500362656.jpg “어허, 세상 속고만 사셨나!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하오문에 피해도 안 갈 거고요. 이후 만금상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자금 또한 지원해줄 테니까 하오문도 좀 보태요. 받아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16549500362662.jpg “물론입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천화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백광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16549500362662.jpg “황궁의 화를 사게 되실 수 있습니다. 마교야 그렇다 치고 무림맹 역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겠지요. 저희야 잠시 암중으로 모습을 감추면 된다지만, 대협께서는…….”

16549500362656.jpg ‘그렇게도 생각될 수 있나? 뭐, 상관없지. 현경에만 오르면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으니까.’

천화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다면 자칫 구휼을 막은 황궁의 분노를 사게 될 수 있었다. 세간에서는 그의 이름을 연호할 테고,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황궁에 대한 불신이 커질 테니까. 더불어 무림맹 또한 그만한 자금을 자신들에게 지원하지 않은 천화의 결정에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하더라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칠 것이 분명했기에, 아무리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개인이 감당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16549500362656.jpg “괜찮으니까 아주 사람들이 눈물 쏙 빼고 내 이름을 외치게나 만들어주시죠.”

하지만 천화는 담대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들의 눈물콧물 쏙 빼놓을 기획을 해보라며 백광을 부추겼다.

16549500362662.jpg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백광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약조하자, 천화가 소지품창을 열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표 꾸러미들을 그의 앞에 꺼내놓았다.

16549500362662.jpg “헉.”

그것들을 살핀 백광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천화의 금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만한 돈을 개인이 가졌다고? 전표만 따져보아도 금자 수천만 냥은 너끈할 것 같았다. 게다가 최근 세외무역과 염상의 노릇을 하며 급격히 성장 중인 만금상단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까지 더한다면 가히 황궁의 한 해 예산과도 맞먹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자금이 될 것 같았다.

16549500362656.jpg “당장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필요한 물품들은 만금상단을 통해 구하시면 될 겁니다. 제 이름을 대면 이문을 거의 남기지 않고 구해줄 거예요. 어차피 수량이 막대해서 박리다매를 해도 엄청나게 벌 테니까.”

16549500362662.jpg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중원 전역에 깔린 하오문도들을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매년 엄청난 돈을 만지고 운용하는 백광이지만,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하오문주답게 정신을 차리자마자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다른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추가연을 지목하여 만금상단으로 보냈다. 이 많은 돈을 그저 식량을 구입하는 것에만 쓴다면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천화는 하오문의 지부를 떠났다. 백광이 계획에 대해 듣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지만, 그저 알아서 잘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지부를 떠나온 것이다.

16549500362656.jpg ‘업보 수치를 달성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겠군. 어디보자, 그럼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그 역시 할 일이 많았으니까. 돈이 물건으로 바뀌어 중원 전역에 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사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두려는 것이다.

16549500362656.jpg “사천과 감숙은 이미 먹혔다 이거지?”

사천과 감숙을 차지한 마교의 전진이 잠시 주춤하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은 아니었다. 마교는 사천과 감숙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한편, 중원 전역으로 십마를 쪼개 보내며 국지 도발을 시전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으로서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겠지. 십마를 각개격파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함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경의 고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무림맹인 데다, 설령 천하십대고수라 불리는 이들이라도 일대일로는 십마를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최소 둘 이상은 움직여야 안전할 텐데, 당장 화경의 고수라고 해봤자 백연 대사가 죽는 바람에 새롭게 경지 상승을 이룬 도왕을 더한다 해도 다섯에 불과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각 지역의 문파들이었고, 이미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정예들 역시도 대부분의 전력을 무림맹에 합류하여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중이었기에 어느 곳 하나 안전한 곳이 없었다.

16549500362656.jpg “레벨이나 좀 올려둬야겠군.”

머릿속으로 무림전도를 떠올린 자신의 위치와 마교의 위치, 그리고 주요 문파들의 위치를 가늠했다. 더불어 하오문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마인들이 나타난 위치, 십마에 해당하는 마인들이 나타난 위치와 경로를 짚어내고 자신의 행로를 결정했다. 십마의 이동 동선에 대해서는 하오문을 통해 계속해서 정보를 받기로 했으니 추적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터였다. 경험치 노가다를 통해 제법 레벨을 올려두긴 했지만, 아직 무위에 비해 레벨이 높은 편은 아니니 이참에 놈들을 각개격파하고 레벨을 좀 올려두면 최단 시간으로 현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현경에 오르기 위한 필수 조건에는 최소한의 근력, 민첩, 체력 수치가 있었으니까. 수련을 통해 이것들을 올리기는 어려우니 레벨을 통해 메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16549500362656.jpg ‘더불어 결전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을 테고.’

더불어 마교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겠지. 십마에 해당하는 고수들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장기전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교 쪽이 될 터였다. 천화가 십마 중 두엇만 잡아내더라도 최대한 고수의 숫자를 보전하고 중원일통을 이룩하기 위해 단기결전을 벌이려 들 확률이 높았다. 정파 무림의 힘을 약화시키고 허술한 면을 드러내며 정사대전을 유도한 것도 천화였지만, 마교를 압박하여 무리를 하게 만드는 것도 천화가 되는 것이다. 가히 제2차 정사대전의 흑막이라 할 수 있겠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예정된 일을 앞당길 뿐이고, 결국 무림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일인데. 죄책감 따위를 가질 리가 없는 편안한 표정으로 천화가 십마의 뒤를 쫓았다. 빠르게 북상하여 산동성으로 접어들었다.

16549500390432.jpg “색몽요녀라고 했지?”

16549500362656.jpg “응. 채양보음으로 화경에 오른 특이한 경우지. 색공과 환술에 특화되어 있고 정확히는 화경이라고 하기 애매하긴 해. 환술에 한해서만 자연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거라서. 흠, 순결한 처녀라면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갖긴 하는데…….”

그곳에 나타났다는 십마 중 일인에 대한 정보를 읊으며 천화가 물끄러미 설영을 바라보았다. 설영의 나이는 이십 대 초반. 현대로 보더라도 알 거 다 알 만한 성인이기도 하고, 조혼이 성행하는 이 시대라면 처녀가 아니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였다.

16549500390432.jpg “뭐야? 왜 그렇게 보는데? 너 진짜, 날 뭘로 보고……!”

16549500362656.jpg “왜, 마음에 둔 정인도 있으시다며.”

16549500390432.jpg “그건……! 아무튼 아니니까 걱정 마시지?”

슬쩍 떠보는 듯한 천화의 말에 설영이 얼굴을 붉혔다.

16549500362656.jpg “아니, 누가 뭐랬나. 아무튼 잘생긴 남자를 그렇게 밝힌다니까 나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겠군!”

16549500390432.jpg “그럼 낙승이겠네. 흥.”

16549500362656.jpg “야, 나 정도면 그래도 나쁘지 않…….”

천화의 너스레에 설영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응수했다.

16549500390432.jpg “아무튼, 그 색녀는 내가 상대할 테니까 넌 두고 보기나 해.”

16549500362656.jpg “왜, 역시 내가 위험할 것 같은가 보지?”

16549500390432.jpg “어휴. 말을 말자.”

시답잖은 농담들이었지만 긴장을 풀기에는 적당했다. 곧 쉽지 않은 전투가 이루어질 테니까. 십마 중에서 무력 자체만 놓고 보자면 가장 약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 색몽요녀초란이었다. 색기와 환술로 사람을 홀리는 요녀인 만큼, 자칫하면 아군을 적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16549500362656.jpg “준비해. 곧 도착한다.”

16549500390432.jpg “응.”

그렇게, 천화와 설영이 색몽요녀를 찾아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제갈세가였다. 오대세가의 일원이자 기관진식에 능한 이들이다. 다른 오대세가에 비해 무력이 떨어지는 편임에도 오대세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큼 기관진식에 뛰어난 집단이기도 하다. 세간에는 제갈세가가 호북성에 위치해 있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져 분타에 가까웠다. 보다 중원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제갈세가의 욕심이 그들을 옮겨가도록 만들었다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 힘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제갈세가의 본가는 이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쌓인 제갈세가의 힘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닐 터였다. 색몽요녀가 산동성으로 향했다는 소문은 벌써 며칠 전의 이야기였지만, 그들이 빗장을 걸어잠그고 농성을 한다면 색몽요녀라 할지라도 쉽게 담을 넘기는 어렵겠지. 환술로서는 극에 달한 그녀이지만,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은 아예 사람을 대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16549500362656.jpg ‘제갈세가가 아니었다면 금방 넘어갔겠군. 황보세가와 산동악가 모두 환술에 강한 편은 못 되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색몽요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산동 지역의 유력 세가원들이 모두 제갈세가로 피신한 것 또한 다행인 일이었다. 산동지방에는 제갈세가처럼 오대세가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무력으로 꽤 유명한 세가들이 제법 있었지만, 모두 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패도적인 힘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보니 환술에 대한 저항이 썩 강한 편은 못되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지만, 환술은 단순히 의지력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심후한 내력과 상당전을 통한 영통에 의해 저항력을 갖는 것이기에, 자칫 그들이 색몽요녀의 꼭두각시가 되어 제갈세가를 공격하는 일을 막은 것이다.

16549500362656.jpg “나참, 짜고 치는 거야 뭐야? 흑우야, 더 빨리!”

그렇게 제갈세가가 농성중인 장원 인근으로 접근하며 기감을 넓힌 천화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속도를 높였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기를 지닌 이들이 제갈세가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그녀와 수하들이 도착한지 며칠이 지났을 테니 이제야 담장을 넘는 것도 빠르다 할 수는 없었지만, 왜 하필이면 자신이 딱 나타난 시점인지 모르겠다.

16549500362656.jpg ‘어쩔 수 없지.’

천화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제갈세가가 문을 걸어 잠근 상태에서 마인들과 마주하거나 아예 제갈세가가 멸문한 다음에 마주치는 것이 더 나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었다. 흑우를 재촉해 속도를 높이며 색몽요녀의 위치를 파악했다.

16549500362656.jpg “……몸으로 밀어버린 건가?”

그들의 뒤를 따라 빠르게 장원을 넘는 천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을 무력화시킨 것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고기방패. 소위 고기방패라고 불리는, 몸으로 때우는 이들을 사용한 것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스스로 몸을 던져 기관에 장전된 암기 따위를 모조리 소모시키고 짓눌러 망가뜨려버린 것이다.

16549500390432.jpg “천화, 이 사람들?”

기운에 민감한 설영 역시 그것을 알아차렸다. 색몽요녀가 고기방패로 내세운 이들은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근의 마을에 있는 남정네들을 환술로 홀려, 몸을 던지게 만든 것이다. 한 줌 내공조차 없는 이들이기에 암기를 쳐낼 수도, 아니 볼 수도 없었을 터였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제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숨이 끊어졌겠지. 그런 자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인해전술. 시신의 산을 쌓고 넘어 기관을 망가뜨리고 시신에서 뿜어진 사기를 이용해 진법을 흐트러뜨리는 무지막지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정도 인원이라면 최소 수백이다. 마을에 보이는 남정네란 남정네는 모조리 홀려서 달려들게 만든 모양이었다. 색몽요녀 초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꺼이 뛰어들었겠지. 다분히 마교스러운,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이었다. 희생이 얼마가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무자비한 방식에, 천화와 설영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16549500362656.jpg ‘애초에 저 힘을 쌓는 데만도 수천, 수만의 정기를 갈취했을 테지.’

16549500390432.jpg “잔혼비검.”

푸화아악!! 덤벼드는 마인들에 대한 자비가 사라진 것은 당연했다. 무공을 모르는 촌부까지 희생시킨 놈들에게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으니까. 천화가 나서기도 전에 서슬 퍼런 설영의 검기가 놈들을 갈라냈다.

16549500444455.jpg “웬 놈들이냐!”

그들의 사나운 기세에, 내부를 휘젓던 매혹적인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귀찮음을 감수하고서 제갈세가를 다 잡아내었다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이 나타난 것이 마뜩잖았기 때문이다.

16549500444455.jpg “검은 소? 오호라, 네가 일신룡이라는 아이로구나.”

그렇게 표정을 구기던 색몽요녀 초란이 천화를 뱀처럼 훑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고혹적인 그 모습에는 이미 강렬한 색기와 환술이 담겨 있었다. 어지간한 인물이라면 눈에 초점이 흐려지고 헤벌쭉 웃으며 침을 줄줄 흘리고 있으리라.

16549500362656.jpg “거봐, 나 정도면 먹힌다고 했지?”

허나 천화는 어딘지 으쓱해진 모습으로 설영을 돌아볼 뿐이었다.

16549500362656.jpg “근데 아줌마. 그 나이에 나 같은 영계를 노리는 건 좀 양심 없지 않아요?”

16549500444455.jpg “뭣?”

초란이 생전 들어보지 못한 막말에 잔뜩 인상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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