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 그대로 얼어 죽어라 (2) (239/481)


<240화> 그대로 얼어 죽어라 (2)
2022.05.17.


16549501007942.jpg

 

16549501007949.jpg

“오우, 장난 아닌데? 클라스 보소.”

16549501007954.jpg

“클……. 뭐?”

북해빙궁주 단철우와 십마 중 이인의 싸움.

그것을 불타오르는 건물의 지붕에서 관전 중인 천화가 진심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무려 십마이다. 화경에 이른 고수들.

물론 색몽요녀처럼 약간의 편법으로 화경에 준하는 힘을 얻은 이들도 있지만,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헌데 단철우는 단 일격에 놈을 얼음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양강의 무공을 극성으로 익혀 화기까지 조종할 수 있다 알려진 지옥염제를.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같은 화경급의 고수라고 해도 그들 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16549501007954.jpg

“저게 가능한 거야? 아니, 그보다 돕지 않아도 괜찮겠어?”

16549501007949.jpg

“도와야겠지. 저 아저씨도 약간의 편법을 쓴 거니까.”

16549501007954.jpg

“편법?”

16549501007949.jpg

“잘 느껴봐. 지금 건 북해빙궁주 개인의 힘이 아니었어.”

16549501007954.jpg

“음?”

하지만 의아하게도 소수마녀와는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리 둘 다 음기공을 익히고 있다지만, 단철우는 상극인 지옥염제를 일격에 끝장낼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지 않았나?

서로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더 강한 음기를 지닌 쪽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천화는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냈다.

북해빙궁주 단철우가 조금 전 발휘한 힘은 개인의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격체전공 따위로 궁도들의 힘을 전이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강력한 신물의 힘을 빌려 행한 것일 뿐.

16549501007949.jpg

“뭐지, 저 힘은?”

지금 단철우에게서는 두 개의 강력한 음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나는 본인의 것이요, 다른 하나는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히려 그 힘을 통제하기 위해 단철우가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싸웠다면 어느 정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을 테지만, 자신이 품고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무언가를 통제하느라 호각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16549501007949.jpg

“저걸 어떻게 들고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도와야겠군. 저놈도 곧 깨어날 것 같으니까 말이야.”

16549501007954.jpg

“저놈?”

치이이이이이익-!!

그때, 얼음덩이가 되었던 지옥염제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대로 폐부까지 얼어붙어 죽어버린 것으로만 여겼지만,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몸 안에 지독한 염기를 채워넣으며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단철우의 힘을 녹여냈다.

다른 이들이라면 숨이 막혀서라도 죽어버렸겠지만 그는 화경의 고수이니까. 숨을 몇 분쯤 참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16549501007949.jpg

“시도는 좋았는데, 늦었어.”

16549501035496.jpg

“!!”

콰앙!!

그대로 지옥염제의 곁에 날아든 천화가 무명검을 휘둘렀다.

단 일격에 얼음덩이째로 놈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그것으로 끝.

지옥염제는 억울한 것인지, 얼어붙은 것인지 모를 부릅뜬 눈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16549501035501.jpg

“웬 놈이냐!!”

16549501007949.jpg

“누군지 알면, 그냥 보내주게?”

한 발 늦게 지옥염제의 수하들이 반응했지만 천화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까다롭기 그지없는 흑염지옥공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그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빙궁의 무인들이 이미 그들을 덮쳐가고 있었으니까.

16549501035501.jpg

“불장난이나 치는 애송이들을 모두 얼려버려라!!”

북해빙궁의 고수들이 일제히 놈들을 향해 짓쳐들었다.

나름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단철우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같은 음기공을 사용하는 이에게 자신들의 궁주가 질 리가 없으니까.

소수마공은 마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력한 마공 중 하나였지만 단철우의 빙백신장은 북해 제일이다.

고작 손에 꼽는 정도에 당할 리가 없었다.

궁주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기에 빙궁의 고수들은 전력으로 마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16549501007954.jpg

“물러서. 이래 봬도 내가 이 녀석의 호위라서 말이야.”

16549501035501.jpg

“큭?!”

그 사이, 천화의 곁으로 설영이 내려섰다.

색몽요녀에게서 얻은 힘을 이용해 혈마기를 뿜어내면서.

혈마기의 광폭한 기운에 마인들조차 숨이 막혀 가슴을 틀어쥐고 비틀거릴 지경이었다.

절정이든 최절정이든, 심지어 초절정의 고수들마저 심한 압박감에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이미 반쯤은 화경의 경지에 올라선 그녀였으니까.

무공이 약한 자들은 그 기세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심장마비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그때, 천화가 이죽거리며 눈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16549501007949.jpg

“위에도 봐야 할 것 같은데?”

1654950103553.jpg

“?!”

퍼버버벅!!!

그런 그들의 사이로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처음보다 훨씬 강력한 기세로, 호신강기조차 뚫어버리는 초원 전사들의 시강(矢剛)이 불꽃을 뚫고 떨어져내렸다.

어떻게 둘이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해빙궁의 고수들을 태우고 온 것은 바야르가 이끄는 초원의 전사들이었다.

초원을 일통한 그가 북해에서 내려온 빙궁의 전사들과 죽이 맞아 함께 달려온 모양이었다.

천화라는 매개가 그들의 친밀도를 급격히 높여준 것이다.

그 결과, 전황은 압도적이라 할 만큼 기울어졌다.

16549501007949.jpg

‘가만, 이들이 여기 왔다는 건?’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젊은 여인이었다.

설빙화 나예린.

설산파를 떠나 북해빙궁에 몸을 의탁한 그녀가 그들과 함께 다시 중원에 나선 것이다.

동생은 떼어두고 온 것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검은 이전보다 날카로워졌고, 한기는 더 강해졌다.

16549501007949.jpg

‘역시 왔군.’

이 정도면 최소 최절정에서 초절정의 경계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터였다.

빙궁의 고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공 역시 음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북해에서 빠르게 늘어난 모양이고.

16549501007949.jpg

“이건 뭐, 우리가 나설 것도 없겠는데?”

그 활약에 힘입어 빙궁의 고수들이 빠르게 마인들을 제압해가고 있었다.

아니 처리해가고 있었다.

빙궁 무인들의 손속에는 사정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무엇이든 태울 수 있을 것 같던 검은 불꽃은 한기에 얼어붙어 아무 힘을 쓰지 못했고, 지독한 한기에 몸이 얼어붙어 제대로 도주조차 하지 못했다.

1654950106414.jpg

“무우우우웃!!!”

콰앙 쾅 쾅 쾅!!

그 속에서 흑우가 마구 날뛰었다.

빙한지대를 펼쳐 빙궁의 고수들을 돕는 한편, 마인들을 들이받고 뿔로 찔러 직접 끝장을 내기도 했다.

일부 마인들이 흑우에게 흑염을 날리기도 했으나 얼음의 몸을 사용한 흑우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경험치들의 일부가 천화에게도 돌아오고 있었다.

16549501007949.jpg

“그래도 빨리 정리하는 편이 낫겠군. 빙궁주와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제법 흡족하게 들어오는 경험치 때문에라도 천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에게도 흑염 따위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기 못했기에, 수많은 강기검을 뽑아내 일거에 놈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상황이 정리되었다.

나름 분전을 펼치던 소수마녀는 예상대로 단철우에 의해 머리가 으깨져 죽임을 당했고, 마인들은 단 한 놈도 빠짐없이 얼거나 베어지거나 화살에 몸이 꿰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북해빙궁의 고수들 중 일부가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초원과 북해 연합군의 완승이었다.

16549501007949.jpg

“오랜만이네요!”

16549501064155.jpg

“그렇군. 자네는 못 본 사이에 많이 성장했구만. 이제 후기지수라고 부르지도 못하겠어. 아니, 십대고수로 불러야 하는 건가?”

16549501064158.jpg

“오랜만이군, 천화.”

수하들이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 천화와 단철우, 바야르는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전쟁통에 가까운 상황이었기에 회포를 풀기에는 무리였지만 반가운 표정으로 그간의 사정을 풀어놓았다.

그들은 천화의 급격한 성장에 놀라 비결을 물었고, 웃으며 자신이 천재라서 그렇다는 신소리를 늘어놓은 천화는 어떻게 둘이 함께 이곳에 왔는지는 물었다.

16549501064155.jpg

“오는 길에 이 친구를 만났지. 자네와도 인연이 깊더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하여 함께하게 되었네.”

16549501064158.jpg

“이렇게 자네를 만나게 되다니 우린 참 인연인 것 같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야. 아무래도 초원의 전사들이 우르르 움직인다면 황궁에서도 경계를 할 테니까.”

예상대로 오는 길에 만나 인연을 맺은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바야르는 전사들을 대거 움직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들 초원의 부족들이 한데 뭉친 것만 하더라도 황궁에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테니까.

만약 그들이 모여 중원으로 향한다면 황궁에서는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역모를 꾀한다는 트집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침 무림과의 상황도 영 좋지 않았기에 바야르도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고, 대신 일부 전사들을 남겨 기동력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천화에게는 흑우가 있으니 필요 없는 일이지만, 전령으로라도 써먹을 수 있을 테니 마다할 이유는 없다.

16549501064155.jpg

“중원이 위태롭다는 말은 들었으나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군. 무림맹은 대체 무엇을 하는 겐지.”

그리고 북해빙궁이 이곳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림맹의 요청이었다. 중원 무림이 마교로 인해 큰 곤욕을 겪고 있음을 알리며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아마 북해빙궁뿐 아니라 남만야수궁에도 같은 요청이 갔을 터였다.

알려진 힘만 놓고 보더라도 각 궁주의 무력이 화경에 육박하고, 보유한 고수의 숫자는 여느 대문파 이상의 것이니까.

그들이 돕는다면 부족해진 고수의 숫자를 크게 만회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16549501007949.jpg

“잔뜩 몸을 사리고 있겠죠. 만만한 놈들만 적당히 족치면서.”

16549501064155.jpg

“그래. 그렇겠지. 어째 그들은 한 치도 변하지 않는군.”

그래놓고 정작 본인들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만 보자면 북해빙궁으로서도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기가 꺼려지겠지만, 이번 빙궁의 행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16549501064155.jpg

“이렇게 만났으니 먼저 자네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

16549501007949.jpg

“예? 무슨…….”

16549501064155.jpg

“자네도 들었을 걸세. 얼마 전 빙궁을 공격한 이들이 있었지. 붉은 머리를 한 무인이 이끄는 어떤 집단이 빙궁을 공격했다네.”

16549501007949.jpg

“붉은 머리……. 예. 알고 있습니다.”

다시 붉은 머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천화는 고민했다.

그가 민왕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말해줘야 할까? 만약 그 사실을 안다면 단철우가 빙궁의 고수들을 데리고 곧장 황궁으로 향해버릴지도 몰랐기에 조금은 신중해졌다.

빙궁의 이탈로 인한 전력의 공백도 문제였지만, 정말 빙궁이 황궁을 공격해버린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16549501064155.jpg

“그가, 혈마검을 탈취했네.”

16549501007949.jpg

“그렇군요. ……예?”

하지만 뭔가를 털어놓기도 전에, 단철우가 내뱉은 충격적인 소식에 천화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혈마검이 탈취당했다고?

16549501007949.jpg

“하지만 혈마검은……!”

16549501064155.jpg

“그래. 만년빙정에 봉인당했지. 그런데 놈이 만년빙정의 일부를 부수었네. 그리고 검을 빼내갔어. 자네들이 맡긴 것을 잃어버렸으니 사과하는 걸세.”

만년빙정을 부숴? 그것은 화경의 고수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년빙정이 품은 극음의 기운은 대자연의 기운을 다룰 수 있다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그런 것을 누군가 부수고, 봉인된 혈마검을 가져갔다?

그만한 힘을 가진 자가 도대체 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덕분에 단철우가 지옥염제를 상대하며 뿜어냈던 힘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부서진 만년빙정의 파편을 지니고 있는 것이겠지.

그 힘을 빌려 자신의 빙백신장을 순간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16549501064155.jpg

“그래서 말인데, 소저.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없나?”

16549501007954.jpg

“예? 저요?”

그렇게 천화가 머릿속으로 상황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을 때, 돌연 단철우가 설영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붉은 머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느냐는 것이다.

혈마검은 설영의 것이었으니까.

설영은 혈마의 후예이니까.

혈마검을 노리고 빙궁까지 쳐들어올 정도라면 혈마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혈마검만을 가지고 도주했다는 것은 애초부터 그것을 노렸다는 뜻이다.

16549501007954.jpg

“저는…….”

그 말에 설영이 크게 당황했다.

의심을 당해서가 아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형제들.

설영 자신과 달리 무림에 피의 복수를 하고자 했던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1654950112050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