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정사대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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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정사대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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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정사대전 (1)
2022.05.19.
“……죄송합니다.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군. 이해해주게. 그들의 무공이 조금 특이하여 물어본 것이니.”
“특이했다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단철우는 진정으로 설영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들에게 정신이 팔렸다고는 하지만, 보고를 털린 것은 자신들의 문제였으니까.
그 과정에서 약간의 피해가 있었지만, 그 또한 자신들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래.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이 묘하게 혈마검법과 닮아있더란 말이지. 사용하는 기운 역시 혈마기 같기도, 마공 같기도 했네. 아무래도 흡혈을 통한 축기 방식의 문제인 듯한데, 여하튼 이상하더군.”
“그럼 혈마와 관계된 자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까?”
“확신할 순 없네. 더구나 어린아이들이 많았어. 약관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최소 일류에서 절정 수준의 내공을 갖춘 것으로 보아 마공 쪽을 의심해볼 만한데, 그렇다고 피에 미친 광인들은 또 아니었단 말이지.”
단철우는 진심으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혈마의 후예라거나 마인이었다면 그의 식견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어지간히도 헷갈리는 무공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흡혈이라…….’
사실 혈마의 후예이자 설영의 사형제들이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던 천화였지만, 이렇게 되면 또 아리송해진다.
혈마신공은 얼마 전까지 거의 마공과 엇비슷하게 여겨졌지만, 막상 까놓고 보면 기운이 생각보다 정순한 편이니까.
물론 난폭하고, 천화의 표현에 따르면 더럽기 짝이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들끓는 생명력의 영향일 뿐, 마공과 같다고 보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을 단철우가 몰라보았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데, 천화가 기억하는 혈마의 후예들 역시 붉은 머리를 했거나 크게 집단을 이루지는 않았기에 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잠시 고민하던 천화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하오문에서도 특급 기밀로 취급하는 정보이기에 아무에게나 말해서는 안 되지만, 나중에 저들에 대해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북해빙궁과의 사이가 크게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단철우가 당장 황궁으로 움직이려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막을 참이었다.
“그렇군.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했네. 그럼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나? 자네라면 다 계획이 있을 것 같은데.”
허나 다행히도 단철우는 생각 외로 침착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민왕의 조치가 수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자신은 물론 북해빙궁의 통솔권을 천화에게 넘기겠다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사실 붉은 머리로 인해 빙궁이 입은 피해를 생각보다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도들 몇이 좀 상하기야 했지만, 북해에서 얼어죽고 굶어죽는 이들을 생각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북해에 풍요까지는 아니라도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준 천화를 생각하면 양보하지 못할 일도 아닌 것이다.
어차피 자신들이 중원까지 나온 이유는 붉은 머리를 찾기 위함도 있지만, 천화를 돕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 컸으니까.
“예? 제 말을 따라주시는 겁니까?”
“물론이네. 중원을 돕기로 한 것은 맞으나 그것이 꼭 무림맹의 곁일 필요는 없지. 외려 속이 시꺼먼 자들이 많은 그곳보다 자네와 함께 움직이는 편이 궁도들을 아낄 수 있을 테고.”
“감사합니다. 그럼…….”
그 말은 천화조차 생각지 못했던 것이라 순간 음흉한 빛이 얼굴에 감돌았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현재의 전황과 세력 분포를 떠올렸다.
그들이 해주어야 할 일들을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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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천화가 단철우에게 부탁한 것은 대기였다.
이곳 산서성에 머무르며 존재감만을 드러내달라는 것이다.
산서성은 동으로 황궁이 있는 북경을 두고 있고, 서로는 마교와 분쟁 지역인 섬서성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패퇴하여 물러나기를 거듭한 무림맹의 본대가 호북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좀 더 가까우면서도 황궁을 가로막을 수 있는 하남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남은 평범한 곳이 아니다. 멸문, 아니 봉문했다고는 해도 그곳은 소림이 지배력을 행사하던 곳이다.
다른 중원의 문파도 아닌 북해빙궁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분명 반발 여론이 생길 터였다.
그렇기에 천화는 그들에게 산서성에 머무르며 상황을 주시하다가 어떤 징후가 나타나면 바로 달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지.’
물론 그들 정도의 전력이라면 즉시 분쟁 지역에 투입하는 것이 좋겠지만, 누구 좋으라고?
무림맹조차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마당에 천화가 왜 굳이 그들의 일을 대신 해준단 말인가?
결과가 잘 나올 경우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려 들 것이 뻔한데.
사실 십마 중 셋이나 되는 인원을, 탑골마왕까지 합친다면 넷이나 되는 인원을 처리해준 것만 해도 무림맹에서 넙죽 절을 해도 모자랄 만한 활약이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면 그만이지.’
거기에 마의를 호위하다 죽은 구주염라까지 더한다면 십마 중 절반인 다섯이 죽어나간 상태임에도, 무림맹이 잔뜩 몸을 사리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혼란한 중원을 떠받들고 있는 것은 각 지역의 토박이라 할 수 있는 무림문파들과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남만야수궁과 해남파, 그리고 강서 지방에서 맹위를 떨치는 도왕과 검귀라 할 수 있다.
힘을 비축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교의 목을 물어뜯기 위함일 테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과한 감이 있다.
주변에서 너무 잘 버텨주고 있다 하여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만 다니는 꼴이라니.
이렇게 되면 설사 천화가 마교를, 천마를 제압한다 해도 정사대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림맹이 역으로 십만대산까지 쫓아가 마교를 완전히 집어삼키려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천화의 말조차 들어먹지 않을 수 있었기에, 적당히 균형을 맞춘 상태에서 한 번에 그들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희생은 좀 생기겠지만, 어쩔 수 없지. 오히려 이게 지름길이니까.’
신승이 남겼던 말들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되레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이 피해를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일지 몰랐다.
그렇기에 천화는 그들을 섬서에 남겨둔 채, 즉시 이동을 시작했다.
싸우고 싶지 않다면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줘야지.
설영과 함께 무림맹이 새롭게 거처를 마련한 호북성으로 이동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군.”
“본단으로 들어가지 않고?”
무림맹이 새로운 터전으로 삼은 곳은 다름 아닌 제갈세가의 장원이었다.
정확히는 제갈세가의 분타인데, 이곳에는 제갈세가에서 심혈을 기울며 설치해둔 기관진식들이 가득했기에 설령 다시 한 번 마교에서 쳐들어오더라도 이전의 본단보다는 훨씬 수월에게 그들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아직 마교는 감숙과 사천 장악을 완전히 마치지 못해 당장 이곳까지 오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말이다.
그곳을 멀리 두고서 천화가 흑우를 멈춰세웠다.
무림맹을 찾는다면 표면적으로나마 그들이 반겨주겠지만 동시에 경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림의 중심이어야 할 자신들보다 천화와 그 친구들의 명성이 훨씬 앞서고 있었으니까.
패권을,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실제 오는 동안 보고 받기로, 이미 하오문에서 천화의 이름을 내걸고 대규모 구휼 활동에 들어갔다고 했다. 하오문 특유의 장기를 살려 그를 높이 칭송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업보(선) 수치가 89만큼 상승했습니다.]
[업보(선) 수치가 103만큼 상승했습니다.]
[업보(선) 수치가 97만큼 상승…….]
그것을 천화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업보 수치.
처음에는 시스템적으로도 드러나지 않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수치였지만, 화경에 이르는 순간 표기되어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표시이다.
업과 보를 합친 것이니 만큼 악행과 선행을 할 때마다 상승하는 수치로, 악과 선의 수치가 서로 상쇄되지 않고 따로 쌓이고 합쳐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누구도 알지 못하던 ‘현경’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단초이자 필수 조건이었다.
선이든 악이든 이 업보 수치를 일정 수치까지 쌓아내는 것.
그리하여 특수 호칭인 ‘인의지도’를 획득하는 것이 현경으로 이르는 필수 조건이다.
인간의 도를 깨우치고 자연의 도를 깨우치면 비로소 신선의 경지에 오르게 되어 대자연의 기운을 제 몸처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대 이상인데? 이 정도 속도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어.’
그렇기에 하오문에 특별히 부탁까지 한 것인데, 그들이 생각이상으로 활약을 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을 퍼트리는 주체가 모두 하오문 소속이니까.
그들이 한번 입을 털기 시작하면 최소 수십, 수백에 이르는 이들이 천화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것에 만족하며 천화가 소지품창에서 작은 피리를 꺼냈다.
언젠가 해남에서 빼앗은, 고독을 조종하는 피리였다.
마교인들이 사용하는 흑사심령고(黑死心靈蠱)를 조종하기 위한 악기였고, 그것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악보는 천화의 머릿속에 있었다.
“삐이일릿리~!”
악마칠음의 묘리가 담긴 피리소리가 수백 장의 거리를 격하고 퍼져나갔다.
단순히 소리가 멀리, 넓게 퍼진 것만이 아니다.
육합전성이라 불리는, 여섯 방향에서 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듯 들리게 만드는 고절한 수법까지 더해진 연주였다.
“됐어. 이제 가자.”
“응? 벌써?”
“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자각. 그거면 되거든.”
“……?”
약 일각 동안 이어진 연주를 끝내고, 천화는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섰다.
지금쯤 아마 저 안은 난리가 났겠지.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이 사람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소리를 막을 수는 없으니까.
바깥의 소리를 듣는 것은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도 중요하기에 차단시키지 않은 것이 큰 화를 불러온 셈이다.
천화가 심어놓은 고독만 셋.
그리고 마교가 심어놓은 고독은 몇이나 될까?
설령 셋뿐이라 할지라도 하나같이 요직에 있는 인물들이고, 그들의 시신을 부검해본다면 마교에서 사용하는 흑사심령고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 한바탕 뒤집어질 터였다.
그들이 언제 고독을 심어두었는지 알지 못할 테니까.
혹여나 내부의 간자를 통해 복용시켰을 수도 있었기에, 자신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 고독을 삼킬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게 될 터였다.
당장 고독을 품고 있지 않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간자들이 오해를 해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고.’
더불어 무림맹 내부에 숨어있던 마교의 간자들 역시 이것을 어떤 신호로 받아들일지 몰랐다.
고독을 움직이는 음파 신호는 오직 마인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자들만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곡해하고 나름대로의 활동을 개시한다면, 마냥 웅크리고 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무림맹도 깨닫게 될 터였다.
지금까지야 처음의 격돌을 제외하고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직접 적을 배달할 수도 있지만…….’
천화가 유도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아예 ‘몰이’를 해서 일부러 마인들이 무림맹을 공격하도록 만들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스스로가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원래는 좀 더 일찍 고독을 깨워 전쟁을 격화시킬 계획이었지만 민왕의 수작질로 인해 좀 늦어졌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주변을 정리하고 있어야지. 저들이 우리를 찾아오도록. 마인들의 움직임도 달라졌다고 하니, 이제 곧 큰 전투가 벌어질 거야. 거기서 우리는…… 응원을 해야지.”
“뭐? 응원?”
“응. 이겨라, 이겨라. 이기는 편 우리 편! 뭐 이런 거?”
그 말과 함께 천화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맹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준다면, 다음은 그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약간의 수작을 부려줄 차례였다.
단 한 번의 결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마침 자신에게는 딱 좋은 방법이 있었기에 흑막처럼 웃으며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