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난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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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난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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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난입 (1)
2022.05.29.
다소 과격하고 천박한 말이었지만 이것도 기회를 준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다 패죽이고 선언을 할 것이었지만, 신승의 유언이 마음에 걸려 해본 제안이니까.
“지금 마교를 감싸겠다는 건가!”
“끝까지 본좌를 능멸하려 들다니……!”
그리고 당연하게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면 천하패권의 주인이 될 테니까.
천화가 강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 말에 겁을 먹고 돌아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강함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덤비는 건 상관없는데, 두 번 기회는 안 줄 거니까 잘 생각해보고 덤벼요.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봐주는 거니까!”
아량을 베푸는 것인지, 도발을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 천화의 입가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정말 기쁜 일이 있다는 듯 말이다.
“기고만장하군. 내 검이 대신 말을 해줄 것이다.”
스릉!
일단 천마는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했다.
천마검이 비명 같은 울음을 지르도록 기운을 끌어올리며 언제든 천화에게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무림맹주와 협공 따위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여차하면 둘이 동시에 자신에게 덤빌 테니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이제 무허자가 결정을 할 차례였다.
싸울 것인가, 멈출 것인가.
“미리 말하는데, 정파니 무림맹이니 이딴 건 저한테 하등 상관없어요. 아예 지금 선포하죠. 정사지간에 서겠습니다. 꼬우면 덤비시고, 쫄리면 뒈지시면 됩니다. 참 쉽죠?”
슬그머니 눈알을 굴리는 것이, 천마에게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은 무허자가 자신과 합공 따위를 기대하는 눈치이자 천화는 아예 선수를 쳐버렸다.
정사지간의 선포.
그 누구의 진영도 아닌 독보강호하겠다는 선언이었기에 무허자도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무림에서 정사지간의 길에 선 이들은 많았지만, 타의가 아닌 자의로 그것을 선포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절대자였다는 것.
홀로 강호를 발아래에 두었다는 것.
그 절대자의 길을 천화가 걷겠다는 의미였기에,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마가 지배하는 무림이나, 천화가 지배하는 무림이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네도 우리의 적이 될 수밖에 없네.”
[별호 : 강호공적을 획득하셨습니다.]
씨익
무허자의 선언에 천화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이대로 꼬리를 만다면 아쉽지 않은가? 그래도 마지막인데 한바탕 신나게 놀아봐야지!
“자, 그럼 누구 먼저? 저는 전부 동시에 덤벼도 상관없습니다만.”
“오만하군. 현경의 경지에라도 오른 것이 아닌 이상…….”
“햐! 눈치 빠르시네.”
“……뭣?”
한껏 여유를 부리는 천화를 죽일 듯 노려보는 무허자의 말을 천화가 가볍게 받았다.
천화가, 스스로를 현경의 경지에 올랐다 자처하고 있었다.
[업보 수치가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별호 : 인의지도를 깨달은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별호 : 자연의 도를 깨달은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오문을 통해, 구휼을 통해 쌓아올린 작지만 수많은 업보들이 실시간으로 천화에게 쌓이고 있었고, 그것으로 조금 모자라다 싶었던 부분들을 이번 전투가 메워주었다.
직간접적으로 천화가 전투에 개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업보를 쌓기 위해서.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죽게 만든 업보가 천화에게 뭉텅이로 쌓여갔고, 그 결과 원하던 바를 이루어 낸 것이다.
[별호 : 현경을 획득하셨습니다.]
“허풍이 심하군!”
자신감 넘치는 천화의 말에 모두가 당황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현경이라니? 설마 그것을 진짜로 이루었단 말인가?
화경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할 수 있는 경지였지만, 현경이란 경지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설상으로만 전해지는 경지이자, 완전히 인간의 탈을 벗고 자연의 도를 깨우쳐 신선과 다름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소리이니까.
“허풍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마교와 무림맹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도 천하태평한 모습에 설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
무허자를 비롯한 무림맹의 인사들이 주춤거리면서도 검을 꽉 움켜쥐었고, 강맹한 강기들이 천화를 덮쳐갔다.
“거참, 말하는데 칼질해대는 건 마교 놈들 특징인가?”
콰과과광!!!!
무림맹이 아니다. 천화의 등장과 함께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십마 중 넷이 동시에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전설적인 마공들의 폭격.
그러나 천화는 그저 고개만 돌린 채 그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미친……!”
호신강기.
천화를 감싸고 일어난 반투명한 강기의 막이 공격들을 모두 무위로 돌렸다.
자연지기까지 담은, 화경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공격들이었음에도 제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버텨낸 것이다.
“받았으니 돌려주마.”
쩌저적?
파바바바바방!!!
천화가 손을 휘젓자 강기막이 깨어지며 파편이 쏘아졌다.
탄환 같은 그 강기의 파편이 놈들의 몸을 파고들며 피분수를 뿜어내게 만들었다.
다급히 내기를 끌어올려 방어해보지만, 강기 파편들은 그들의 방어를 뚫고 몸속을 파고들었다.
목숨을 완전히 빼앗지는 못했지만, 당장 무기를 들어올리기 어려울 만큼의 치명상을 일으켰다.
“…….”
단 일수에 화경의 고수 넷을 침묵시킨 천화의 무위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자신들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떠올려보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자연지기를 움직이는 능력이 아무리 탁월하다한들, 화경의 고수를 저리 농락하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경이라는 경지를 믿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것을 믿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어부지리를 노린다.
방심하는 단 한순간에 결판을 짓는다.
모두의 얼굴에 뻔한 생각이 읽혔다.
‘현경의 경지라는 건 방심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지란 말이지.’
그러나 천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현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도를 넘어 자연의 도까지 깨우친 상태. 즉, 자연 그 자체가 되는 경지였으니까.
보지 않아도 감정이 읽혔고, 힘을 쓰지 않아도 기운이 절로 일어났다.
억지로 자연지기를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숨을 쉬듯 자연스레 힘이 일어나는, 나 자신과 자연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단계였다.
“아둔한 것들. 누가 끼어들라고 했단 말이냐!!”
“크으윽. 천마이시어. 용서를…….”
그때, 기습을 시도했다 박살이 난 십마를 향해 천마가 힐난을 퍼부었다.
“상대도, 끼어야 할 곳과 끼지 말아야 할 곳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이니 앞으로도 필요 없겠구나.”
“크흡!”
푸확!
가장 전면에 나섰던 자의 한쪽 눈을 베어버리기까지 했다.
눈꺼풀 따위를 벤 것이 아니라 정말 눈알까지 베어버렸다.
평생을 애꾸로 살아야 하도록 만들었다.
자연지기를 분간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화경의 고수이니 조금만 연습하면 두 눈이 없어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게 되겠지만 무인으로서는, 지금처럼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는 무척이나 치명적인 일을 서슴없이 행한 것이다.
“거참 야박하시네. 상대를 몰라보고 있는 건 본인도 마찬가지면서.”
“하하. 그도 그렇구나. 하지만 본좌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너도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천화의 빈정거림을 가볍게 받아친 천마가 본격적으로 힘을 끌어내었다.
탈마의 경지에 오르며 딱히 두드러지지 않던 마기가 발끝에서부터 피어오른다.
천화는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놈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천마현신.
혈마화와 비슷해 보이는 능력이지만 그 결은 분명히 달랐다.
혈마화는 그 옛날의 혈마를 닮고자 하는 것이었다.
내기를 증폭시키고 성질을 조작하여 힘을 증폭시키거나 강제로 경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는 것이었다.
허나 천마현신은 누구를 닮고자 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천마인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마의 기운으로 치환하는 일종의 ‘속성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마(魔)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굳이 따져 보자면 화경과 현경의 사이라고나 할까? 꼼수로 현경의 경지를 맛보는 것이긴 해도 어지간한 화경급 고수를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 자신할 만하지.’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에 저렇게 분위기를 잡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기다려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가 더 강력한 힘을 사용해 보일수록, 자신이 더 돋보일 것이 아닌가?
그 강렬한 인상은, 공포는 모두의 뇌리에 박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존재감을 만들어줄 터였다.
압도적이지 못하다면 물고 늘어지거나 반항하려는 이들이 생길 테니,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편이 나았다.
“멈추어라!”
“……?”
“얼레? 저것들은 또 뭐야?”
일촉즉발의 순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무허자와 무림맹의 고수들조차 천마를 공격해야 할지, 둘이 양패구상하기를 기다려야 할지, 천화부터 죽여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그 순간 제3의 세력이 나타났다.
“관군?”
관군의 모습을 한 약 오백여 명의 무리가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위치라면 무리는 아니었다.
전장의 한복판은 아니니까.
천마와 십마가 매복을 한 탓에 무림맹 후미에 해당하는 위치이니 다른 이들의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어떤 의도로 이곳에 왔는가 하는 것이다.
“황제 폐하의 칙서이다! 모두 가까이 와서 무릎을 꿇어라!”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자가 모두를 향해 호통을 쳤다.
정말 칙서를 가져온 것인지, 금빛 비단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를 펼치며 황제의 명을 전할 준비를 하였다.
‘흐음……. 황제라고?’
그러나 다른 이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병중에 있는 황제가 갑자기 그들에게 칙서를 내린다는 것도 이상했고, 무엇보다 지금은 무림탄압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설마 여기서 역모니 어쩌니 하며 무기를 내려놓고 투옥되라는 개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어쩌면 그 사이, 민왕이 황제의 숨을 끊고 스스로 황제의 위에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는군.”
심드렁한 표정으로 관인을 바라보는 천화와 마찬가지로, 천마 역시 탐탁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황제?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어차피 중원 일통을 끝낸 후에 황제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황궁 권력을 탐할 생각은 없지만, 관이 무림에 개입하려든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다가가서 무릎을 꿇기는커녕, 오만한 자세로 계속해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소년만화의 로봇 변신을 기다려주는 것처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우습고 힘들었지만, 천화는 그보다 무허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는 정파 무인이었으니까.
무림맹의 맹주이자 구파의 장문인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다른 도가 문파들에 비해 세속의 때가 많이 묻었다 여겨지는 청성파가 아니던가?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슬쩍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황제를 대하듯 예를 올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사대전 이후를 생각한다면, 황제와의 관계를 나쁘지 않게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설령 나중에 황제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조율을 해볼 여지가 생긴다.
황궁에 쳐들어가 황제의 목에 칼을 겨눌 것이 아니라면.
“너희 두 놈은 오지 않을 셈인가?”
“들리니까 이야기해 봐. 일단 들어보자고.”
“…….”
관인은 마저 천화와 천마를 돌아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칙서를 펼쳐들었다.
황제의 말을 대신 전하였다.
“그럼 지금부터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황명을 전하도록 하겠다.”
“세이 경청하겠나이다.”
오직 무허자와 무림맹의 간부들만이 눈치를 보며 황명을 받드는 그때, 천화의 뇌리에 직접 전해지는 어떤 목소리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주인님.]
“?!”
분노와 희열이 가득 담긴 괴이한 울림.
천화는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바로 떠올렸다.
“거기서 떨어져!!”
“황제폐하께서 내게 명을 내리시되, ‘무림은 오늘 이곳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시었다.”
푸욱!!
그 순간, 천화의 고함보다 빨리 붉은 검신이 칙서를 꿰뚫었다.
그 뒤에 부복하고 있던 무허자의 심장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