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고인물, 무림에 가다 (2) (246/481)

<2화> 고인물, 무림에 가다 (2)2020.11.08.

16586671573459.jpg

16586671573465.jpg“상태창!”

익숙한 마을의 풍경.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천화는 상태창부터 소환했다. [천화][Lv 1][별호 : 없음] [근력] 20 [민첩] 20 [체력] 20 [지능] 20 [오성] 20 [감각] 20 [심법] 없음 [무공] 없음 [경지] 없음 [여유 능력치] 20

16586671573465.jpg“하……!”

그리고 실망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레벨이 초기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능력치도 바닥을 쳤다.

16586671573465.jpg‘역시 환생 콘텐츠 같은 건가?’

본래 모든 기본 능력치가 10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20으로 시작했다는 것과, 0이어야 할 여유 능력치가 20으로 시작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어차피 레벨 업당 5의 여유 능력치가 주어지니, 그래봤자 16레벨 정도 이득 보았을 뿐이다. 물론 일정 레벨 업 구간마다 추가 능력치가 주어질 수도 있지만 큰 메리트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무신지로는 무공을 메인 콘텐츠로 삼는 터라, 능력치의 차이는 내공으로 얼마든지 메울 수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당장 상승 무공을 배운 저레벨 유저에게 하급 무공을 배운 고레벨 유저가 탈탈 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구나 육체 능력치는 외공 계열의 무공을 익히면 레벨 업이 아니더라도 꽤 빠르게 올릴 수 있었기에, 혜택이 엄청나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16586671573465.jpg“소지품 창!”

다음은 소지품 창이다. 2회차 기념 선물 같은 것이라도 넣어주지 않았을까?

16586671573465.jpg“……이거 다 어디 갔어?”

소지품 창을 열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지품 창에 들어있었어야 할 아이템들이 몽땅 사라져 있는 것이다. 의복 아이템은 물론 장신구나 여분으로 챙겨두었던 무기, 회복약까지 몽땅.

16586671573465.jpg“맙소사…….”

가진 것이라고는 은자 1냥이 전부였다. 설마 초기화된 것은 아니겠지? 어딘가에, 창고 역할을 하는 전장에는 보관되어 있는 거겠지? 잠시 말을 잊고 멍하니 서있는 천화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알림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경고. 이것은 게임이 아닙니다.]

16586671573465.jpg“뭐?”

이게 게임이 아니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당장 그 말을 전달하고 있는 알림부터가 시스템에 의한 것일 텐데.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알림창은 대꾸하듯 메시지를 표시할 뿐이었다. [장비의 착용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행동 제한이 사라집니다.] [주의하십시오.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대상 또는 집단의 행동, 세상의 흐름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권능이 사라집니다. 더 이상 죽어도 부활할 수 없습니다.] 연이어 들려온 알림은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장비의 착용제한이 사라진다는 것은 저레벨부터 고레벨 장비를 착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 긍정적이 될 수 있지만, 나머지 내용은 게임 난이도를 급상승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들뿐이다. 행동 제한이 사라진다는 것은 얼핏 보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행동 제한이 걸리는 대부분이, 초고수 NPC에게 시비를 건다거나 하는 일을 막는 것이기에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더 높았다. 물론 게임에 빠삭하다면 알아서 조절하고, 오히려 이용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세상의 흐름마저 변화한다는 것은 고인물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고인물의 힘인 정보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시 마지막 문구였다.

16586671573465.jpg“부활 불가? 설마 하드코어 모드인 건가?”

부활 불가. 한 번의 죽음이 진짜 죽음이 된다는 것. 천화는 그것을 일종의 하드코어 모드로 받아들였다. 사망 시 캐릭터 삭제 페널티를 가진 초고난이도의 게임 모드. 시스템은 분명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는 경고를 보냈지만 그것을 선뜻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에 의해 진짜 무림 세계에 소환됐습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면 모든 중요 분기 임무를 완료하세요.]

16586671573465.jpg“진짜 무림 세계?”

그러나 시스템은 그에게 확인 사살을 하듯 다시 한 번 현실을 주지시켰다. 이곳은 새로운 지역 따위가 아니고, 천화의 캐릭터는 환생 따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무림 세계로의 소환. 천화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능력에 의해 1레벨의 상태로 무림에 나타난 것이다.

16586671573465.jpg“말도 안 돼…….”

초현실적 상황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천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이것을 믿을 수 있겠나? 혹시 게임사에서 준비한 몰래 카메라 같은 걸까? 최종 콘텐츠를 클리어한 기념으로?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다음 순간 울려퍼진 비명 소리에 강제로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16586671591361.jpg“꺄아아악!!!!”

16586671591361.jpg“변태야!!!”

그를 발견한 여인들이 얼굴을 가리며 소리를 친 것이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이 여인들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16586671591584.jpg“이 색마가 어디 길거리에서 여인들을 희롱하느냐!!”

16586671573465.jpg“아니, 난 그게 아니라……!”

천화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통할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 속옷 차림에 검 한 자루만 들고 길거리에 서 있는 상태였으니까.

16586671573465.jpg“젠장. 난 변태가 아니라고!!!”

게임에서야 어떤 NPC들도 유저의 차림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NPC가 아닌 일반 사람이라면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변태, 색마로 몰린 천화는 붙잡혀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도망쳐야 했다. 뭔가를 걸치고 싶어도 그의 소지품 창에는 캐릭터 생성시 주어지는 기본 의복조차 없었으니까.

16586671573465.jpg‘일단 마을을 벗어나야하나?’

16586671591584.jpg“저쪽이다!!”

  [돌발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도주][돌발 임무] 당신은 외설적인 차림새로 마을을 돌아다니다 색마로 낙인 찍혔습니다. 추격을 피해 달아나십시오. - 성공 조건 : 도주 후 안전 확보 - 성공 보상 : 약간의 경험치 - 실패시 불이익 : 멍석말이

16586671573465.jpg“응?”

그때, 천화의 앞으로 임무창이 나타났다. 이런 임무도 있었나 싶지만 나쁠 것은 없다. 붙잡혀 멍석말이를 당한다면 골병이 들거나 심할 경우 죽을 수도 있지만, 다행히 귀주성의 시작 지점은 그의 손바닥 안이었다. 게다가 시작 지점이 되는 마을에는 기껏해야 3류 무사밖에 있지 않았으니, 시작부터 우수한 능력치를 지닌 천화를 쫓는 것은 무리였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쫓아오는 사내들을 따돌린 천화는, 적당한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숨을 골랐다. [돌발임무 ‘도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16586671573465.jpg“이건 안 변하네.”

소란이 잦아들고 그를 쫓던 이들이 포기했는지 돌발 임무가 완료되며 레벨이 올랐다. 퀘스트를 임무로, 페널티를 불이익으로. [무신지로]에서는 나름 무협 배경이라는 것인지 최대한 영어를 배제했지만, 레벨만은 마땅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다는 변명하에 표현을 유지하더니 그게 여기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그것에 천화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상이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었다.

16586671573465.jpg“이걸로 레벨 2인가? 음……. 어쨌든 옷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여유 능력치도 투자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급할 것은 없다. 그것을 쓰지 않더라도 당장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16586671573465.jpg“돌겠네.”

그러나 옷이 없는 것은 생각보다 꽤 큰 문제였다. 소지품 창에 있는 은자 1냥이면 당장 의복을 구입할 돈은 되는데, 포목점에서 옷을 구입하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포목점은 저잣거리 한복판에 있으니 거기까지 가기 전에 또 변태, 색마로 몰려 쫓겨다니지나 않으면 다행이랄까.

16586671573465.jpg“응?”

고민하던 천화의 눈에 펄럭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16586671573465.jpg“아……!”

그것은 빨래였다. 누군가 옷을 세탁한 뒤 줄에 걸어 널어놓은 것이다. 대충 가늠해보니 살짝 커 보였지만, 그래도 얼추 맞을 것 같았다.

16586671573465.jpg“행동제약이 없으면 이런 것도 가능하잖아?”

무신지로였다면 행동 제약에 걸려 아이템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소지품 창에 들어가지도 않고, 가지고 도망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겠지.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이게 진짜 현실이라면, 저 옷을 취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16586671573465.jpg“으랏차!”

휘익- 천화가 뛰어올라 옷을 낚아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약간 높은 위치였지만, 근력이 20이나 되는 까닭에 무리 없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6586671573465.jpg“이번엔 바지를…….”

타앗! 끼이익-

16586671573465.jpg“……!!”

그렇게 다시 한 번 뛰어오른 천화가 속옷을 펄럭이며 떨어지는 순간, 천화와 창문을 열던 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16586671573465.jpg“미안합니다. 이걸로 봐주세요!”

그녀가 또 소리를 지를까, 천화가 민첩하게 움직였다. 소지품 창에서 은자 1냥을 꺼내 던져준 것이다. 옷 한 벌의 값으로는 과한 금액이었지만 당장 천화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돈이야 어떻게든 벌 수 있었기에 얼른 옷을 입으며 골목을 달려 사라졌다.

16586671591584.jpg“어맛……?”

영문을 모른 채 은자를 받아든 여인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얼굴을 붉히고 서 있을 따름이었다.

16586671573465.jpg“어후, 또 쫓길 뻔했네.”

간신히 옷을 챙겨입고 대로에 나온 천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어차피 거쳐 갈 뿐인 시작 지점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서 수행할 임무와 획득할 수 있는 보상도 적지 않았으니까. 초반부터 평판이 바닥을 치고, 관아나 무림인들에게 쫓기기라도 한다면 꽤나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옷과 가진 돈 전부를 교환한 천화는 일단 눈치를 보며 대로를 걸었다. 아까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누군가가 쫓아오거나 반응하지 않을지 확인해보려는 의도였다. 물론 CCTV 같은 게 있는 세상이 아니니 잡아떼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수가 입을 모아 주장하면 거짓도 현실이 되는 경우가 있었기에 조심하려는 것이다.

16586671573465.jpg“다행이군.”

그러나 한참을 서성거려도 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워낙 짧은 순간 마주친 까닭에 다시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천화가 입은 옷이 워낙 평범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16586671573465.jpg“이제 어쩐다…….”

안전을 확인한 천화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시스템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면 중요 분기 임무를 모두 끝마치라고 했었지.

16586671573465.jpg“그럼 정사대전을 끝내면 되는 건가?”

천마와 무림맹주를 동시에 상대하는 고금제일인 임무는 중요 분기 임무라기보다 개인의 업적 달성을 위한 일이었으니 제외. 그렇다면 정사대전을 종결시키는 것이 마지막 중요 분기 임무였을 터였다. 이곳에서도 완전히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때야 10년차 게이머의 내공으로 모든 패턴을 암기하고 쉽게 해낼 수 있었지만 이 진짜 무림에서도 그 지식이, 경험이 먹힐까?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586671573465.jpg“어디까지 같을지 모르겠군…….”

더구나 기존에는 경험해본 적 없는 일까지 좀 전에 겪었으니 불안함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신지로의 게임 속과 이곳이 어느 정도 다른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16586671591584.jpg“어이, 거기.”

16586671573465.jpg“……?”

그렇게 다시 움직이기 위해 힘을 내보는 그때, 누군가 천화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16586671573465.jpg“누구?”

16586671591584.jpg“누구? 누우구? 감히 이 귀주삼랑 님들의 말씀에 토를 다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웅성 웅성. 순식간에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천화에게 뜬금없는 호통을 치는 세 명의 사내의 주변에서, 그들을 알아본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16586671591584.jpg“어우, 저놈들은 또 저러네.”

16586671591584.jpg“이번에는 왜 시비를 거는 거야?”

16586671591584.jpg“또 뭘 벗겨먹으려고…….”

16586671573465.jpg‘오호라.’

그 말소리를 포착한 천화의 표정이 묘해졌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은 것이다.

16586671573465.jpg‘삼류 건달이로군.’

천화가 이곳 귀주성을 시작 지점으로 선택한 이유는 구파일방, 오대세가로 대표되는 소위 명문정파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랑 중인 이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거점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에 이렇다 할 강자가 버티고 있는 대신 고만고만한 중소방파들이 저마다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적당히 힘만 믿고 나대는 이런 건달 같은 놈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놈들은 초반에 좋은 경험치 공급원이 되어주고는 했다.

16586671573465.jpg“대협들께서 소인에게 어인 일이십니까?”

상황 파악을 마친 천화가 얼굴을 바꾸며 그들을 대우했다. 사실 놈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이 귀주성에서 귀주삼랑이라는 별호를 쓰는 이들만 족히 수십은 될 테니까. 물론 그들 중 삼류 이상의 실력을 지닌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은 그저 칼 한 자루 찼다는 자신감에 애먼 사람들을 벗겨먹고 다니는 양아치겠지. 실제 별호는 귀주삼랑이 아니라 귀주삼견쯤 될 테고.

16586671591584.jpg“흥. 그래도 보는 눈이 아주 없지는 않구나. 좋아, 창피를 면할 기회를 주지. 따라 와라!”

대협이라는 표현에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놈은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더니 휙 몸을 돌려 어딘가로 앞장 서 갔다. 나머지 둘은 슬쩍 포위하듯 천화의 뒤편으로 자리를 잡으며 도주 경로를 막았다.

16586671573465.jpg‘그래주면 나야 좋지.’

언뜻 보면 큰길 한복판에서 망신당하는 것은 피하게 해주겠다는 나름의 배려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은 안다. 그들 역시도 대로에서 소란을 피우다가는 협객을 자처하는 이들이나, 다른 무림인들의 간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리를 옮기는 것뿐인 것이다. 으슥하고 은밀한 곳으로. 그것은 천화 역시 환영하는 바였다. [귀주삼견 장일][Lv 13] 가장 앞장서서 나아가는 자칭 귀주삼랑의 첫째를 바라본 천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예상대로 삼류조차 되지 못하는 허접한 수준. 예전, 아니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짓을 할 필요도 없이 살기만 날려도 흐물흐물해질 놈들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딱 좋았다. 현재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얼떨결에 써버린 초기 자금을 회수할 상대로서.

16586671616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