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고인물의 육성법 (4) (251/481)

<7화> 고인물의 육성법 (4)2020.11.19.

16586671940365.jpg“룰룰루~.”

기절한 부두목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놈의 검마저 빼앗은 천화는 소지품 창을 열어 창고에 쌓인 물건들을 모조리 챙겼다. 덕분에 소지품 창의 공간이 가득 차버리긴 했지만 다행히 무게 제한은 없었기에 잡동사니는 물론 곡식들까지 챙기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봐야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까지 하던 놈들이라 곡식보다 나무뿌리와 열매 따위가 많기는 했지만, 개중에는 판매가 가능한 약초들까지 있어서 수입이 꽤 쏠쏠했다.

16586671940371.jpg

  덜컹 그것들을 모두 챙긴 천화는 창고를 나와 문을 단단히 걸어잠갔다. 다른 산적들이 제압당한 부두목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적당히 산채를 돌며 상황을 살피다가, 다시 모두를 불러 모았다.

16586671940375.jpg“이번엔 무슨 일이야?”

16586671940375.jpg“혹시 아까 할 말을 까먹으셨나?”

16586671940375.jpg“모두 조용히 해! 그러다 두목님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산적들은 웅성거리면서도 빠릿하게 모여들었고, 스무 명이 모두 모였을 때 천화가 그들을 향해 선언했다.

16586671940365.jpg“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하겠다!”

16586671940375.jpg“훈련?”

16586671940375.jpg“갑자기 웬 훈련이야?”

16586671940375.jpg“가만, 혹시 우리한테도 무공을 가르쳐주시려는 거 아니야?”

뜬금없는 선언에 웅성거림이 커졌지만 곧 천화가 꺼내 든 전낭에 모두의 눈빛이 돌변했다.

16586671940365.jpg“최우수자에게는 부상으로 이 전낭을 통째로 주지!”

16586671944826.jpg“오오오오!!!!”

쩔그렁 전낭이 탁자에 부딪히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얼마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자 반냥만 되어도 푸지게 놀고먹을 수 있다. 천화의 통 큰 결정에 모두가 환호하며 의심 따윈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시작된 난데없는 훈련. 주로 체력 훈련에 가까웠지만 돈이 걸린 일이기에 다들 최우수자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버티며 체력을 소진했다.

16586671940375.jpg“헉헉.”

16586671940375.jpg“언제까지 계속하는 거야?”

16586671940375.jpg“나도 모르지. 어우씨. 힘들어 죽겠네.”

16586671940365.jpg“자, 이번에는 포박술이다. 산적질을 하다보면 인질을 잡아야 할 때도 있는 법. 잘 보고 따라하도록!”

그렇게 놈들을 한참이나 굴린 천화는 마지막으로 포박술 시범을 보였다. 인원이 제법 되었지만 새끼줄을 구해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훈련은 금방 진행되었다.

16586671940365.jpg“그만! 단단히 묶었나?”

16586671944826.jpg“옙!”

16586671940365.jpg“자, 그러면…….”

열 명이 다른 열 명을 묶었다.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포박 상태를 확인한 천화는 숙련이 필요하다며 남은 열 중 다섯에게 다른 다섯을 묶도록 지시했다. 당연히 한 번에 풀면 된다며 이전의 열 명은 그대로 묶어둔 상태였다. 그렇게 모두가 묶이고 다섯이 남았을 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6586671940365.jpg“모두 기상!”

16586671940375.jpg“윽! 두목, 팔이 너무 세게 묶여서 일어날 수가…….”

16586671940365.jpg“자, 남은 다섯은 줄을 연결해서 나머지 열다섯의 포박을 연결해라. 그대로 우리는 관아를 향해 전진한다.”

16586671940375.jpg“……옛?”

16586671940375.jpg“관아라니?”

16586671940375.jpg“이게 무슨 소리야?”

산적들은 관아라는 말에 발작적인 경기를 일으켰다. 한창 훈련을 하다 말고 대체 관아는 왜 간단 말인가?

16586671940375.jpg“설마…….”

16586671940375.jpg“두목이 되려던 게 아니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해 보지만 아무런 행동도,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천화가 검을 빼들고 그들 앞에 섰으니까. 허튼 행동을 했다가는 가장 먼저 본보기로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해보였다.

16586671940365.jpg“너, 가서 우칠이랑 그 누구냐. 아무튼 창고 안에 있는 부두목 놈 데려와. 아, 걷지 못할 테니까 둘이 가야겠군. 몰래 도망치면…… 알지?”

혼자라도 도망칠까?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던 다섯은 천화의 그 말에 전의를 상실했다. 우칠은 물론 부두목까지 당했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전투를 직접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그들에게 있어 천화는 수준을 측정할 수 없는 고수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을 따르는 척하다가 도주를 한다 해도 경공을 펼치면 금방 붙잡히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한 가닥 희망도 놓아버렸다. 죽는 것보다는 관아에 끌려가 죗값을 치르는 게 낫다. 그래도 자신들이야 졸개에 불과하니 두목과 부두목보다는 처벌이 약하겠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어쨌든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천화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죽은 상을 하고서, 서로를 굴비처럼 엮은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총 다섯 중 둘이 각각 움직일 수 없는 두목과 부두목을 업었으니 세 명이서 열다섯을 포박해 내려가는 꼴이지만 감히 누구도 반항을 하거나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가장 뒤에서 천화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16586671940375.jpg“아니, 이게 무슨……!”

그렇게 마을까지 내려가자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산적들이 저들끼리 묶은 채 자수하러 내려온 것도 놀라운데, 그 맨 뒤에서 그들을 통솔하는 이가 바로 어제까지 바닥을 굴러대던 인간수레 천화라니? 너무 황당해 산적들에게 당했던 일들도 잠시 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16586671940375.jpg“저놈들이 내 물건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에게 당했던 일들이 떠올랐는지 여기저기에서 분통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려움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닌지, 직접 몽둥이를 들고 행렬에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집히는 대로 돌멩이 따위를 던지며 분풀이를 해댔다.

16586671940375.jpg“어허! 물러들 나라!”

그때, 소란을 눈치챈 관아에서 병졸들을 보내 그들을 인도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줄줄이 엮어 데려온 것이 천화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에 따로 안내해 현령에게 이끌었다.

16586671940375.jpg“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무림인이신지요?”

16586671940365.jpg“예. 그렇습니다.”

16586671940375.jpg“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 별호가……?”

현령은 천화를 만나자마자 오랜 벗을 대하듯 친근하게 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의 가장 큰 근심거리인 놈들을 몽땅 잡아들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나? 또한 잘만 하면 상부에 보고할 때 자신의 공도 슬쩍 끼워넣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16586671940365.jpg“무림에 출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별호는 없습니다.”

16586671940375.jpg“아, 그러셨군요. 제가 귀가 어두워 이런 협객을 몰라뵈었나 했습니다. 하하! 그럼 혹 사문은……?”

16586671940365.jpg“1인 전승을 하는 터라 들어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사실 익힌 무공이 딱히 없었기에 사문이 없다고 답을 해야 옳을 테지만, 천화는 이 현령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짐짓 신비문파인 척을 했다. 사실 고작해야 삼류에 불과한 산적 둘과 무림인도 아닌 산적 조무래기들을 잡아들여놓고 으스대는 것이 조금 우스운 일이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얕잡아 보는 타입이기에 어쩔 수 없다.

16586671940375.jpg“그러셨군요. 훌륭합니다. 협객께서 그렇게 은밀한 곳에 계시니 세간에 알려지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제가 잘 처리를…….”

천화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 현령은 본격적으로 말을 꼬아놓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언제 봤다고 협객이라 칭송을 해대는 건가 싶었는데, 한껏 치켜세워 주고 공은 제가 날름 주워먹으려는 의도인 게 빤히 보였다. 그래서 천화는 그의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었다.

16586671940365.jpg“하지만 이왕 출두를 했으니 이름을 날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 말에 현령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무림인, 그것도 강호초출들의 경우 추켜세워 주면 헤벌쭉해져서 칭찬만으로 보상을 퉁칠 수 있는데, 그게 먹혀들지 않은 것이다. 만약 으쓱해져서 그냥 돌아간다면 서류를 고쳐 자신이 잡아들인 것으로 상부에 보고하고 현상금도 뒷주머니로 찼을 텐데.

16586671940365.jpg“사실, 딱히 명성을 노리고 한 일도 아닙니다. 노잣돈이나 좀 하려고 밖에 붙은 방을 봤습니다만…….”

그때, 밀당을 하듯 천화가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은근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말의 뜻은 간단했다. 돈만 주면 공을 탐하지는 않겠다.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현령이 씨익 마주보고 웃었다.

16586671940375.jpg“민초를 위해 힘쓰시는 협객께서 노잣돈이 필요하시다면 제 사비를 털어서라도 지원해드려야지요. 어디 보자, 우칠이 놈이 3냥이고 막달이 놈이 1냥이…… 아니라 생포를 해오셨으니 각각 5냥, 2냥이군요.”

사비를 털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슬쩍 눈치를 보며 값을 후려치려던 현령은, 천화가 웃는 것을 보고 급히 말을 수정했다. 제 값을 다 주면 남는 것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공은 채울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인 것이다. 한 편에 두었던 전낭을 끌러 8냥의 은자를 내밀었다. 현상금보다 무려 1냥이나 더 많았지만 사비를 털어 산적들에 대한 모든 권한을 구매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16586671940365.jpg“그리고 산적들을 모조리 생포했죠.”

하지만 천화는 8냥을 받으려고 번거롭게 그들 모두를 끌고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딱히 현상금이 걸린 이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냥 뒀으면 계속 산적질을 했을지도 모르는 자들이 아닌가? 그 말과 함께 지그시 쳐다보자 현령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결심했다는 듯 전낭을 다시 열었다.

16586671940375.jpg“끄응. 제가 졌습니다. 두 냥을 더 드리죠.”

현령으로서는 꽤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은자 세 냥이라면 그에게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출세에 대한 욕심이 조금 더 컸을 뿐이었다.

16586671940365.jpg“이렇게 훌륭한 판단을 할 줄 아시는 분이니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뵐지도 모르겠군요.”

천화는 만족한 듯 덕담을 남기고 은자를 챙겨 돌아나왔다. 이후의 처분은 그가 알 바가 아니다. 넉넉해진 주머니를 매만지며 약속했던 물건을 찾기 위해 대장간으로 향했다.

16586671940375.jpg“준비는 됐습니다만, 이걸 어찌 옮기시려고…….”

16586671940365.jpg“여기 두시면 알아서 옮기겠습니다.”

물건을 확인하고 값을 치르자 대장간의 주인이 살짝 걱정스런 말을 늘어놓았지만 천화는 빙긋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그가 돌아간 뒤 소지품 창에 넣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이걸 위해 오는 길에 저잣거리에 들러 산적 소굴에서 쓸어온 물건들을 헐값에 처분한 참이었다. 덕분에 현상금으로 벌어들인 돈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값을 치르고도 주머니가 더 두둑해졌다.

16586671940365.jpg“이제 나머지 무공들도 익힐 수 있겠군.”

대장간에 의뢰해 만들어낸 물품들을 보며 천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신지로를 플레이할 때는 초반에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것들이니까. 구르고 굴러서 겨우 모은 돈으로 이것을 구입하려니 손이 벌벌 떨렸었지.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모두 챙긴 천화는 다시 텅 빈 산채로 돌아갔다. 느긋하게 걸었더니 그새 병졸들이 다녀간 모양이지만, 값나가는 물건이야 몽땅 천화가 챙긴 까닭에 건진 것 없이 터덜터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아무도 남지 않은 산채를 거점으로 삼은 천화는 소지품 창에서 물건들을 하나둘 꺼냈다. 두둑하게 콩을 담아 매달아놓은 샌드백과 추가로 무게를 높일 수 있는 모래주머니,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사람 크기만 한 허수아비들까지. 대장 기술이 필요한 것들 이외에도 손재주가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꺼내놓았다.

16586671940365.jpg“어디 보자, ‘그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가만히 시간을 셈해보던 천화가 눈을 빛냈다. 시간이 없어 무리를 좀 하긴 했지만 아직 그는 부족했다. 이대로는 당장 이 근방을 벗어나자마자 객사를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최소한의 몸은 만들어야 지식이든 뭐든 써먹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며칠은 이곳에 머물며 수련을 할 참이었다. 나머지 기본공들을 몸으로 체득해내고, 숙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 기연’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 5일. 천화가 나머지 기본공들을 제 것으로 만들고 익힌 무공을 수련하여 사용한 시간이었다. 익히는 것만이라면 하루 만에 끝이 났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좀 더 숙달하며 성취를 높여놓을 필요가 있었기에 내친 김에 습득한 대부분의 무공들을 5성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무림인에게 누군가 무공을 익히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성취를 3성 이상 끌어올렸다면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할 테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아무리 기본공에 불과하고 우칠과 막달을 쓰러뜨리며 올린 레벨에 따른 여유 능력치까지 모조리 오성에 투자했다지만, 이미 한없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본 천화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6586671940365.jpg“이만하면 그럭저럭이네.”

정작 천화 본인은 그럭저럭 만족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확실히 빠른 성취이기는 하지만 워낙 높은 경지에 올랐던 그이기에 이 역시 더디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계획한 일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은 된 것 같았다.

16586671940365.jpg“이제 일주일 정도 남은 건가?”

앞으로 7일 후, 귀주성의 모처에서 귀물을 쟁취하기 위한 혈겁이 일어난다. 최초로 마교가 모습을 드러내는 이벤트이기도 한 그것은 수많은 유저들을 강제 로그아웃 시킨 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귀주성에서만 그런 이벤트가 진행되느냐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던 유저들이, 드러난 결과를 보고 모두 입을 꾹 다물기도 했었지. 그때를 떠올린 천화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주혈겁, 또는 수건돌리기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그 사건이 일어날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은 단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미리 들러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연까지는 아니지만 부족한 내공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필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16586671969098.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