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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돈 놓고 돈 먹기 (3) (269/481)

<25화> 돈 놓고 돈 먹기 (3)20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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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7352848.jpg“후우, 후우. 좋은 승부였습니다.”

16586673528484.jpg“와아아아아아!!!!”

16586673528489.jpg“젠장! 힘 빠진 상대도 못이기다니!!”

천화를 대신해 공터의 주인이 된 설영은 삼 일에 걸쳐 비무행을 벌이는 일류 고수들을 제압해갔다. 일류 고수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한 번의 비무에도 상당한 내력과 심력이 소모되기에 연달아 상대 할 수 있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내기가 걸렸고, 천화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승리했다. 설영에게만 걸었으니까. 굳이 승부 조작 따위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박판에 낀 이들의 자금력에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시점부터는 가진 돈을 전부 올인하지 못했다는 것쯤일까. 그래도 어쨌든 덕분에 여비를 충당하고도 설영에게 꽤 잘 벼려진 검을 사줄 수 있을 만큼 돈을 왕창 벌었고, 자신의 능력 역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일류 무인들의 비무를 관전했습니다.] [오성이 3만큼 상승했습니다.] [모든 무공 숙련도가 0.3만큼 상승했습니다.] 흔히 개안을 했다고 말하는, 고수들의 싸움을 지켜본 결과였다. 너무나 격차가 심할 경우에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무신지로의 모든 능력과 시스템이 현실화 되면서 수치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지 충분히 비무 내용을 파악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천화에게 상당한 능력의 상승을 부여한 것이다.

16586673528493.jpg“어? 거긴 안 돼.”

그렇게 비무를 이어가던 설영이 또 다른 상대를 찾아 비무를 신청하려는 순간, 천화가 얼른 나서 앞을 막아섰다. 상대가 너무 강해서? 설영이 질 게 뻔하기 때문에?

1658667352848.jpg‘흠, 그럴 수도 있긴 하겠네.’

아니다. 상대가 혈마검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패배할 확률이 제법 되는 강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1658667352848.jpg“왜 그래?”

16586673528493.jpg“저 녀석은 내 거거든.”

1658667352848.jpg“……뭐?”

딱 한 명만 상대할 거라던 천화의 상대. 그것이 바로 설영이 비무를 신청하려던 이였으니까. [비무행. 고불. 도전 비용 및 보상은 협의.] 스스로 별호를 적어놓지도, 도전 비용을 적어놓지도 않은 그가 바로 천화가 눈독을 들이던 사내였다. 어제까지는 공터에 없었지만, 오늘 처음 비무행 깃발을 꽂은 자이기도 했다.

16586673528493.jpg‘보물 고블린을 뺏길 순 없지.’

평범한 외모, 평범한 행색. 몇 번 마주쳤다 해도 만나기는 했었는지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밋밋한 모습의 그였지만, 천화는 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신지로의 유저들 사이에서는 일명 보물 고블린이라고 불리던 유명인물이니까! 무신지로는 무협 게임이지만, 특수한 조건을 만족했을 때 아주 만족스러운 보상을 주기에 판타지 세계관의 게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몬스터이자 걸어다니는 보너스라고 불리는 녀석의 이름이 애칭처럼 붙은 것이다.

16586673528493.jpg‘경쟁자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으니까.’

비무행을 위해 여러 마을과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그였지만 초반에만 이곳 귀주성에서 만날 수 있을 뿐이지, 나중에는 랜덤한 장소에서 랜덤한 확률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아주 먼 거리에 위치한 장소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를 찾아가는 동안 또 다른 어딘가로 이동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한 장소에서 최대한 많은 연승을 거두는 것이었다. 상대의 수준은 관계없다. 그저 많은 연승을 거두고, 이름이 높아진다면 그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고인물들의 분석이었다. 만약 이름을 높이고 있는 이가 둘이라면? 확률은 더 높아지겠지! 그것이 설영을 비무판에 밀어넣은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16586673528493.jpg‘기회도 한 번뿐이고.’

또한 확정적으로 어떤 물건을 보상하는 것은 단 한 번뿐이다. 이후부터는 돈으로 보상을 하거나 확정되지 않은 물건들을 보상하는데, 역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처음에 얻을 수 있는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천화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도전하지 않은 것은 잠시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그가 자신이 찾던 인물이 맞는지, 또 같은 방식으로 비무행을 벌이고 있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확신이 들었다. 설영이 비무를 벌이는 동안 그가 상대의 수준에 관계없이 비무를 벌이는 모습을 본 것이다.

1658667352848.jpg“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천화가 자신을 가로 막고 대신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 설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보기에는 평범한 일류급의 무인인 것 같은데 굳이 천화가 콕 집어 그를 상대하려 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이 공터 안에 몇 명이나 있었으니까. 수준을 나누어볼 때 그는 딱 이곳에서 중간 정도의 내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내공과 기세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16586673528493.jpg“도전하고 싶은데요.”

쩔렁 그사이 고불의 앞으로 다가간 천화가, 펼쳐놓은 전낭에 은자 한 냥을 넣었다. 분명 도전 비용은 협의라고 되어 있건만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16586673532983.jpg“그대는…….”

16586673528493.jpg“삼류 무인이죠. 혹시 그게 문제가 되나요?”

16586673532983.jpg“아니오. 문제는 없소. 흐음……. 다만 본인은 수행을 위해 상대의 수준에 맞춰 상대해드리고 있소. 괜찮으시겠소?”

천화를 나지막이 내려다보며 훑은 그가 조심스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제대로 겨루자면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 수준에 맞춰주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사용하는 내공과 무공의 수준을 낮추어 겨루겠다는 것이다. 일류 무인이라면 은자 몇 냥쯤을 도전 비용으로 받아도 되지만, 굳이 협의라고 적어 더 많은 이들과 겨루려 하는 것도 그가 진정으로 수행을 위해 비무행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니까. 천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 자신이 없어서? 그럴 리가. 이것이 수순이기 때문이다. 보물 고블린 낚시를 위한 수순.

16586673528493.jpg“그러시죠. 보상은, 뭐 두 배 정도면 적당하죠?”

승리 보상은 대충 두 배로 정했다. 고불 역시 자신이 패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지 흔쾌히 수락했고.

16586673532983.jpg“먼저 들어오시죠. 삼초를 양보해드리겠습니다.”

서로에게 검을 겨눈 상태였지만 고불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압도적인 강자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16586673528493.jpg‘어디 한번 시작해볼까?’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16586673528493.jpg“네. 갑니다~.”

마치 서빙을 나가듯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그 순간 천화의 눈빛이 돌변했다. 이미 미끼를 물어버린 이상, 지금까지처럼 애써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6586673528493.jpg‘시작은 일성보였지?’

이미 그가 사용하는 무공의 종류와 초식, 보법까지 완전히 꿰고 있는 이상 철저하게 부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미끼를 더 단단히 물 테니까!

16586673528493.jpg“무형보.”

순간 무형보의 효과가 발휘되며 천화의 몸놀림이 더 빨라졌다. 쫓기 어려운 속도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의 움직임에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16586673532983.jpg“?!”

보통의 보법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생각한다. 때문에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대신, 나아감과 물러남이 동시에 발현되고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속도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약간의 멈칫거림마저 생길 수 있는데, 천화의 무형보는 그 궤를 달리했다. 그 어떤 경로로도 이동할 수 있는 보법의 원리 그 자체와 같았기에 전력질주를 하듯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16586673532983.jpg“큭!”

천화는 그것을 이용했다. 고불은 현묘한 변화를 내포한 일성보로서 천화를 무력화시키려 들었지만, 그 변화보다 빠르게 품으로 파고 든 천화가 일장을 내지른 것이다.

16586673528493.jpg‘검을 들었다고 검만 쓰는 건 바보지!’

검을 뻗어내기도 부담스러울 만큼의 거리까지 단숨에 좁힌 탓에 육탄전으로 돌입한 것이다. 내공이 실렸다고는 하나,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고 고작 삼류 수준의 힘이었기에 내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근육이 욱신거리는 정도는 감수를 해야만 했다.

16586673532983.jpg“천권……. 칫!”

가슴을 묵직하게 때리는 타격에 화들짝 놀라며 반격하려던 고불의 몸이 멈칫거렸다. 상대의 수준에 맞추기로 한 약속, 그리고 수행을 위해 스스로에게 걸었던 제약을 떠올린 것이다. 그 머뭇거림이 화를 불러왔다.

16586673528493.jpg“제가 이긴 것 같은데요?”

고불의 가슴을 때리는 순간, 따라붙는 듯하면서 거리를 만든 천화가 혈마검을 들어 그의 단전 부근을 툭 건드린 것이다. 실전이었다면 그대로 단전이 꿰뚫려 폐인이 되었을 터였다.

16586673532983.jpg“……졌다.”

이게 어딜 봐서 삼류 무인의 움직임이고 판단인가?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기에, 고불은 패배를 인정하고서도 한동안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16586673528489.jpg“허어……! 저 정도였어?”

16586673528489.jpg“방심했네, 방심했어.”

16586673528489.jpg“아무리 수준을 맞춰주었다지만 일류 고수마저 꺾을 줄이야?”

16586673528489.jpg“강호에 신성이 나타났군!”

16586673528489.jpg“아깝다. 아까워. 좋은 무공이나 문파만 만나도 꽤나 이름을 떨칠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모습을 지켜본 도박꾼들과 주변 무림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의 감탄이나 아쉬움, 빈정거림을 토했지만 천화도 고불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주변인들의 말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16586673528493.jpg“묻고 한 판 더?”

16586673532983.jpg“……이번엔 내 권(拳)을 보여주지.”

그런 가운데 먼저 재대결을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천화였다. 너무 간단히 끝나서 몸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듯, 발목과 손목을 돌리며 도발하는 그의 말에 고불도 망설임 없이 자세를 취했다. 마무리는 검이었지만 주먹에 당한 것이 크게 다가왔는지 주먹을 말아쥐며 승부에 임한 것이다.

16586673528493.jpg‘이성권. 꽤 괜찮은 권법이지.’

하지만 그 또한 이미 천화의 손바닥 안이었다. 고불의 사문은 칠성문이라 불리는 나름의 신비문파였지만 그것도 무신지로 초반에나 그런 것이지, 중반부터 메인 분기 시나리오에서도 고불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이미 그 무공들은 고인물들에게 파헤쳐진 것이다. 일성부터 칠성까지. 총 7단계로 나누어진 무공이었지만 그것들을 동시에 펼쳐낼수록 위력은 덧셈이 아닌 곱셈 수준으로 강해지는 절정급의 무공이 칠성검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16586673528493.jpg‘가만, 그러고 보니 그건 어떻게 되는 거지?’

두 번째 비무가 시작되기 직전, 거기까지 떠올린 천화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다. 무신지로야 게임이니 일종의 게임적 허용들이 있었다. 이쪽과 저쪽에 동일한 NPC가 동시에 존재한다든지, 어디론가 이동한 NPC가 다른 유저가 들어오면 제 자리에 돌아와 있는 식으로 말이다. 여러 유저들에게 동시에 임무를 진행시켜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어떨까?

16586673528493.jpg‘조심할 필요는 있겠군.’

주요 임무들이 더 중요할 테니 알아서 이동해서 그 자리에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잘못하면 동선이 꼬일 수 있을 것 같았다.

16586673528493.jpg“아까 삼 초 양보하신다고 했으니, 이제 한 번 남은 거죠?”

다시 눈앞에 집중한 천화가 천연덕스럽게 고불을 도발했다. 고수가 하수에게 세 번의 초식을 펼칠 기회를 양보하는 것은 사실 매 대결마다 초기화된다고 보아야 하지만, 어차피 연거푸 붙는 것이니 두 번을 차감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어차피 그런 배려 따위가 없어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고불의 표정이 굳어졌다.

16586673528493.jpg‘배우는 자세는 됐네. 누구보다 나은데?’

그러나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집중. 천화를 더 이상 얕잡아보거나 간보려는 생각 따위를 버리고 순수한 무인으로서 그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천화를 믿지 못하고 노려보는 설영보다 차라리 낫다.

16586673528493.jpg“무형보.”

힐끗 설영을 핀잔의 눈으로 돌아본 천화가 고불을 향해 짓쳐나갔다. 타닷-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하지는 않겠다는 것일까? 고불은 천화의 돌진과 함께 자신도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무인으로서의 기개와 자존심이 없다 평할지 모르지만, 어디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아니면 자존심이 칼침을 막아줘? 천화는 그의 행동을 속으로 칭찬하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16586673528493.jpg“나려타곤.”

16586673532983.jpg“!!”

빙글 가볍게 견제용 주먹을 날리는 고불의 공격을 피해 구르기 동작으로 놈의 발치까지 굴러갔다.

16586673532983.jpg“무슨……!”

첫 번째 비무로 학습이 된 것일까? 고불은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회수했다. 철판교까지는 아니지만 권투의 위빙 기술처럼 상체를 뒤로 젖히며 한 발 더 뒤로 물러났다.

16586673528493.jpg“나려타곤.”

빙글 그러나 천화는 이번에도 나려타곤으로 그를 따라붙었다. [별호 : 인간수레]의 효과로 연속 구르기가 더 부드럽게 이어졌고, 천화는 여기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공격까지 이어갔다.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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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73528489.jpg“윽!!!”

천화나 고불이 낸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비무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사이에서 탄성과도 같은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16586673528489.jpg“아이고, 저런…….”

16586673528489.jpg“저걸 어째…….”

16586673528489.jpg“아, 아프겠다…….”

특히 남성들은 마치 자기가 당한 것처럼 파리해진 안색으로 어딘가에 가지런히 손을 모았다. 앞구르기를 하며 따라오던 천화의 뒷발이 고불의 영 좋지 않은 곳을 가격한 것이다. 낭심.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그곳을 가격 당한 고불이, 더 이상 비무를 이어가지 못하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16586673532983.jpg“끄그그극…….”

아무래도 세 번째 비무는 내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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