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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1) (273/481)

<29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1)2021.01.10.

16586673810273.jpg“정말…… 이걸로 하겠나?”

그렇게 다시 객잔의 방으로 돌아온 천화가 선택한 것은 칠성신단이 아닌 운철 덩어리였다. 꽤나 크고 묵직해서 고불조차 봇짐 안에 겨우 감추어 가지고 다니는 그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당장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16586673810273.jpg“이걸 가진다 해도 다룰 수 있는 이가 없다면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하네.”

16586673810285.jpg‘모르긴 왜 몰라? 그 영감이면 볶아먹고, 튀겨먹고, 지져먹고도 남지. 여차하면…… 귀찮지만 내가 해도 되고.’

사문의 보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쓸모가 없는 계륵 같은 물건이기 때문인지 고불이 재고해볼 것을 권했지만 천화의뜻은 바뀌지 않았다. 무신지로를 플레이하는 10년 동안 할 거 안 할 거 다 해본 천화였기에, 충분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유사시 직접 그것을 녹여낼 수도 있는 그였으니까.

16586673810285.jpg‘20년 내공이 아깝긴 하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니까. 숙련도 작업도 해야 하고, 밑밥 뿌려둬야 하는 것도 아직 많은데 천천히 가자. 천천히.’

칠성신단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당장은 내공이 급한 것도 아니고, 소소단도 있는 데다 내공을 상승시킬 수단이라면 앞으로 얻을 것이 꽤 많이 남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기로 했다. 자칫 천화가 그것을 얻었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완전히 흡수하기 전에 천화의 피를 뽑아 영약의 잔재라도 섭취하길 원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생길 터이기도 하고.

16586673810273.jpg“자네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조심히 보관해두게. 언젠가, 내가 다시 찾으러 올 테니.”

16586673810285.jpg“이야, 이 아조씨 사파네, 사파야. 사람이 줫다 뺏는 게 제일 나쁜 거라고 사문에서 안 배웠어요?”

16586673810273.jpg“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천화의 말에 고불이 당황했지만 천화 역시 그의 말이 정말 힘으로 강탈하겠다는 뜻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합당한 값을 지불하고 되찾아가겠다는 것이겠지. 애물단지 같은 물건이긴 했어도 사문의 보물이니까.

16586673810285.jpg‘줬으면 땡이지.’

문제는, 그가 무엇을 제시하든 천화가 그것을 수락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16586673810285.jpg“아조씨, 계속 비무행은 할 거예요?”

16586673810273.jpg“으흠, 본래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이번 비……무를 통해 확인한 개선할 점들부터 보완하려 한다네. 무공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약간의 농담 같은 실랑이가 있은 후, 고불은 폐관 아닌 폐관을 선언했다. 원래대로라면 꽤 오랫동안 비무행을 이어가며 수련을 쌓았어야 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했어야 할 매운 맛들을 농축해서 캡사이신으로 퍼먹은 탓이다. 어디 동굴 같은 곳에 쳐박히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비무행을 멈추고 자신과 무공을 돌아보겠지.

16586673810285.jpg‘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아직은 맹탕 같은 그에게 조금 과할 정도로 매운 맛을 보여준 건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천화는 곧 걱정을 접었다. 과정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결국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매운 맛 중의 매운 맛으로 변하는 것이 눈앞의 사내, 낭인왕 고불이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천마나 무림맹주를 상대하는 것보다도 까다로울 정도로 말이다. 그만한 독종이 이 정도에 좌절할 일은 없겠지. 지금은 아니지만 후에 중요 분기 임무에서 역할을 해줘야 할 인물씩이나 되어서 말이다.

16586673810285.jpg“그럼 멀리 안 나갑니다. 혹시 칠성신단 걸고 한 판 더 하실 생각 있으면 언제든 찾아주시구요!”

그렇게 정산을 마치자,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서는 고불을 천화가 방 안에서 배웅했다. 그는 떠나지만, 아직 자신과 설영은 이곳에 볼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볼일이.

16586673818908.jpg“응? 나가자고? 흐음. 오늘은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천화가 나서자마자 거대한 운철 덩어리를 소지품창에 쏙 집어넣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불이 남긴 것 중에는 소소단이라는 이름의 영약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당장 그것을 취하는 대신, 설영을 꼬드겨 밖으로 나선 것이다.

16586673810285.jpg“그래? 아쉽네. 네 검 사러 가려고 했는데.”

16586673818908.jpg“검?”

반짝. 나름 많은 상대들과 비무를 치르며 힘을 소진한 설영이었기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검이라는 소리에 눈이 반짝 거렸다. 혈마검을 천화에게 빼앗기고, 여분으로 차고 있던 검마저 물살에 쓸려 사라져버린 까닭에 지금껏 설영이 사용하던 검은 그 질이 형편없는 싸구려 철검이었던 것이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그거야 연장이 안 좋아도 어느 정도 실력을 낼 수 있다는 뜻이지, 좋은 연장을 들고 나온 비등한 수준의 상대와 차이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 모든 힘을 담기에도 어려웠고. 때문에 검이 부러질까 내심 마음 졸이며 겨루었는데, 제대로 된 검을 사러 가자니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

16586673818908.jpg“뭐해? 빨리 나와!”

들뜬 마음에 오히려 앞장서서 대장간으로 향할 정도였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천화가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16586673818908.jpg“나 좀 둘러보고 올게!”

잰 걸음으로 찾아간 대장간에 도착하자마자, 설영은 자신이 쓸 만한 검을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돌아다녔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구경하던 천화에게 설영이 세 자루의 검을 들고 온 것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일류 고수이자 뛰어난 검사인 그녀이기에 이곳에서 가장 좋은 검과 적당히 좋은 검들을 단번에 구분 할 수 있는 것이다.

16586673810285.jpg“골랐어?”

제법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곳인지 천화가 보기에도 각 검들의 능력치는 제법 준수한 편이었다. 그중 설영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검은, 일류무인이 쓰기에도 꽤 상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벼려진 놈이었다.

16586673818908.jpg“어……. 근데 이건 너무 비싸서…….”

16586673810285.jpg“오?”

희귀도 등급으로 따지자면 명품을 넘어 희귀쯤은 될 만한 놈을 발견한 셈이지만 설영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그 검에 붙은 가격표는 무려 금자 10냥. 은자로 따지면 200냥에 해당하는 거금이었기에 슬쩍 천화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검의 품질만 보자면 금자 10냥이 아니라 15냥, 20냥 이상을 붙여놓아도 될 만큼 훌륭했지만, 그나마 대도시가 아니라서인지 아직 그 가치를 알아보거나 나름 거금인 그 돈을 지불할 만한 이가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16586673810285.jpg‘그러네. 각 상점에 복불복으로 걸려있는 가성비 템들이나 명검들도 나 말고 가져갈 사람이 없잖아?’

무신지로에서도 이런 식으로 작은 마을, 심지어 궁벽한 산골 화전민촌의 상점에서도 명품 이상 등급의 물건들을 판매하곤 했다. 운좋게 때에 맞춰 상점에 방문하거나 돈이 있는 자들이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 세계에 유저라고는 자신 혼자이니 운 때만 잘 맞으면 그것들을 독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어떤 장비가, 어떤 등급으로 나타날지는 그조차 예측 할 수 없는 랜덤한 것이어서 노려서 획득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말이다.

16586673810285.jpg“금방 쓰고 버릴 것도 아닌데 비싸면 어때. 사면 되지.”

16586673818908.jpg“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천화가 대꾸하자, 설영의 안색이 밝아졌다. 은근히 감동까지 받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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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6673810285.jpg“돈 있으면 사는 거지.”

16586673818908.jpg“……뭐?”

다음 순간, 천화가 그 감동을 와장창 깨버렸지만 말이다.

16586673818908.jpg“그……. 사주는 거 아니었어?”

비무행을 벌이는 일류고수들과 겨루면서 나름대로 따로 돈을 벌어들인 설영이었지만, 금자 10냥은커녕 기껏해야 금자 1냥(은자 20냥)을 모은 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마저도 천화에게 갚아야 할 목숨값 은자 50냥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으니 금자 10냥이나 되는 희귀 등급의 명검을 구매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넣는다 해도 명품 등급의 검 한 자루를 구입하기도 어렵다. 검의 경우, 약간의 품질 차이만으로도 가격이 껑충껑충 뛰는 까닭에 어쩌면 고급 중에서도 하급이나 운이 좋아야 중하급 정도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16586673810285.jpg“내가? 왜?”

덕분에 설영의 표정이 실망감으로 시무룩해졌지만, 그 틈을 노려 천화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았다.

16586673810285.jpg“하지만 빌려줄 수는 있지.”

16586673818908.jpg“응?”

원한다면, 금자 10냥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16586673810285.jpg“양심적으로, 이자는 1할만 받을 게.”

16586673818908.jpg“1할이면…… 한 해에 20냥?”

16586673810285.jpg“무슨 소리야? 당연히 한 달이지. 누군 땅 파서 돈 버는 줄 알아?”

16586673818908.jpg“……하? 그 정도면 전장이나 고리대금업자한테 빌리는 게 낫겠다!”

16586673810285.jpg“그래? 그럼 빌려보시든가. 강호 초출한테 잘도 금자 10냥이나 빌려주겠네.”

16586673818908.jpg“윽.”

한 달에 1할이면 1년에는 12할이다. 120%. 원금을 뛰어넘는 무지막지한 이자라고 할 수 있었으니 고리대금업자보다도 더 지독한 금리가 아닐 수 없었지만, 천화의 말대로 설영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혈마의 후예라는 것을 밝히면 어딘가 설영을 이용해먹기 위해 지원해줄 암중 세력 따위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일류 수준의 무위를 갖춘 고수라 해도 강호초출인 설영에게 그만큼 큰 돈을 빌려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은자 20냥을 털어 검을 구한다 한들,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터였기에 설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사든가, 말든가.

16586673818908.jpg“으으으으, 알겠어. 빌려줘. 후우, 그럼 매달 이자가 은자 20냥…….”

16586673810285.jpg“25냥이지. 무이자 혜택은 어제까지로 끝이었거든.”

16586673818908.jpg“……그래. 25냥. 준다, 줘.”

거기에 목숨값 50냥까지 덧붙이자 매달 은자 25냥이라는 미친 이자가 만들어졌지만, 설영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였다.

16586673810285.jpg“자, 여기. 그럼 다시 가볼까?”

16586673818908.jpg“응? 어딜?”

결국 천화에게 금자 10냥을 받아든 설영이 점찍었던 희귀 등급의 검을 구매했고, 그들은 사이좋게 대장간을 나섰다. 그리고 문턱을 넘자마자, 천화가 다시 제안했다.

16586673810285.jpg“놀면 뭐해? 돈 벌어야지!”

16586673818908.jpg“또?”

천화가 설영을 이끈 것은 비무행이 한창인 공터였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이제 더 이상 승부를 벌일 상대조차 없는데? 아니, 있긴 하지만 좀 더 나은 검을 손에 쥐었다 한들 혈마검법을 펼치지 않는 이상 버겁게 느껴지는 상대들뿐이었으니 굳이 무리해서 겨루어볼 필요가 없는 이들이었다.

16586673818908.jpg“대체 무슨 생각이야? 여긴 왜 다시…….”

16586673810285.jpg“에이, 무인이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지. 내가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말고 붙어봐. 내 특별히 이번 도전 비용은 대신 내준다.”

16586673818908.jpg“아니, 어떻게…….”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천화의 호언장담에 설영이 머뭇거렸지만, 도전 비용까지 내준다니 굳이 붙어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비무 한 번 한 번이 자신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로 비무를 치른다면 성장의 여지는 더 커질 테고. 크게 부상을 입지만 않는다면 어쨌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 마다하지는 않았지만, 천화가 어떻게 도움을 준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설마하니 남의 비무에 훈수 두듯 큰 소리로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지는 않을 테고, 난입을 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 데다, 그렇다고 천화가 전음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점혈 정도야 어설프더라도 삼류무인부터 사용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대상에게만 소리를 전달하는 전음은 적어도 이류 수준은 되어야만 시도해 볼 수 있는 은근히 난이도 있는 기술인 것이다.

16586673810285.jpg“에헤이,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낙승이야. 낙승.”

16586673818908.jpg“으흠……. 알겠어. 일단 해보지 뭐.”

때문에 조금 주저하던 설영은 천화에게 도전 비용을 받아 남은 일류 급의 무인들 중 하나에게 비무를 청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천화는 뒤쪽에서 팔짱을 낀 채, 씨익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뭔가를 알려준다더니 어쩌려는 것일까. 혹시 무림의 법도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남의 비무에 큰 소리로 훈수를 두다가는 자칫 칼부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16586673828961.jpg“그대의 무위는 잘 보았소. 훌륭하더군. 그런 의미에서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잘 어울려봅시다.”

그사이, 상대가 정중히 포권을 취해 예를 표하며 비무를 치를 준비를 했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자세를 낮추며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16586673828961.jpg“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가지.”

스르릉-! 결국, 상대가 먼저 달려들며 쾌속히 출수했다.

16586673818908.jpg“큭!”

까강!! 방랑도객이라는 별호처럼 긴 장도를 무기로 삼는 상대의 발도술은 예사롭지 않았다. 잠깐 방심한다면 그대로 일수에 목이 달아날 수 있을 만큼 빨랐고, 간신히 막아낸 설영의 원류검법의 맥을 번번이 끊어낼 만큼 예리했다. 회전력을 더해갈수록 위력이 증폭되는 원류검법의 특징을 이미 간파했다는 듯, 힘을 받을 만할 때마다 위협적으로 공간을 베어오는 그의 수법에 설영의 공격은 거듭 막혔고, 검법 또한 위력이 죽기 시작했다.

16586673810285.jpg[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어때, 들려?]

16586673818908.jpg‘?!’

바로 그때, 설영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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