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고금제일의 문지기 (2) (280/481)

<36화> 고금제일의 문지기 (2)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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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화와 설영, 정확히는 흑겸살광 호랑의 등장과 함께 유가장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다. 철천지원수가 제압되어 찾아왔으니 당장 사지를 육시하고 목을 깃대에 꽂아 장원 정문에 걸어두고 싶지만, 유가장주는 참을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이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막내아들을 그토록 처참히 죽인 인물을 단숨에 쳐죽이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니던가? 때문에 천천히 괴롭히다 숨통을 끊어놓을 것을 다짐하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16586674253356.jpg“대협들께서 이 흉악한 놈을 잡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1658667425336.jpg“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천화와 설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유가장주. 무림에서는 추일검이라는 별호로 대신 불리는 일류 끝자락에 위치한 무인이기도 했다.

16586674253364.jpg‘검에 태양을 담으려 한다는, 다소 광오한 목표를 가진 추일검법을 성명절기로 삼고 있고. 후반부의 비기들이 실전되어 일류 수준에 그쳤지만 원래는 절정급의 검법이지.’

천화는 상대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슬쩍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면 설영이 그저 인사치레 몇 마디로 돌아설 것 같았기 때문이다.

16586674253364.jpg“그리고 사람이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죠. 저희가 어.렵.게. 이놈을 끌고 여기까지 온 것은 현상금을 받기 위해서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16586674253356.jpg“현상금? 아, 물론입니다. 드려야지요. 여봐라! 어서 이 분들에게 드릴 금자를 내오거라!”

16586674253356.jpg“예! 장주님!”

다행히 유가장주 유몽헌은 돈 앞에서 말을 바꾸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곡현의 최대 문파이기도 한 유가장은 이깟 금자 몇 냥쯤이야 충분히 지급을 하고도 남을 만한 자금력을 지닌 것이다.

16586674253364.jpg“오!”

그것을 증명하듯, 곧 총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얼른 안으로 들고 나온 전낭에는 무려 금자가 10덩이나 들어있었다. 약속한 것은 5냥이지만, 복수를 할 수 있게 생포하여 데려온 데다 그들에게 호감을 느낀 탓에 두 배나 되는 금액을 지불한 것이다.

1658667425336.jpg“2할이니까, 금자 2냥. 맞지?”

16586674253364.jpg“쳇.”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설영이 홱하고 전낭을 채가버렸다. 내용물은 확인한 뒤, 약속대로 금자 2냥을 천화에게 건넸다. 원래대로라면 슬쩍 금자 4냥만 건네주고 나머지 6냥을 소지품 창에 얼른 던져 넣으려던 천화였지만,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는 탓인지 수작을 부리기도 전에 설영이 먼저 손을 쓴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쩝하고 다셨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호랑의 비상금을 몽땅 혼자 털어먹었기에 큰 미련은 없었다. 설영이 가져간 금자 8냥 역시도 빚과 이자라는 명목으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테고.

16586674253356.jpg“이제 이놈을 끌고 가라! 내가 친히 고문할 것이다.”

16586674253356.jpg“흥! 나를 함부로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셈을 마친 유몽헌이 무사들에게 지시하자 호랑도 지지 않고 받아쳤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호랑을 죽이면 의형제의 복수라는 명분이 서면서 흑월문의 형제 문파인 흑천문에서 전쟁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유몽헌과 이하 식솔들의 눈에는 전쟁을 불사할 각오가, 독기가 서려있는 것이다. 그 착하고 인사성 바르던 막내 도련님을 잔인하게 죽인 자였으니까. 마치 자신의 아이가 일을 당한 것처럼 분노하고 이를 갈던 유가장의 식솔들이기에, 만약 흑천문이 침범한다면 무공을 모르는 자들이라도 검을 들고 맞설 기세였다.

16586674253356.jpg“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이제 너에게 남은 것은 비명과 고통 속에 속죄하며 죽어가는 것뿐이다.”

16586674253364.jpg‘대사만 들어서는 누가 나쁜 놈인지 모르겠네.’

살기 가득한 그 음성에, 천화가 속으로 엉뚱한 생각까지 품을 정도였다.

16586674253356.jpg“날이 어두운데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심이 어떠신지요. 은인께 제대로 된 대접도 하지 못하고 보내면 강호의 친구들이 저희 유가장을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그렇게 소란했던 장원의 일들이 정리되자 유몽헌은 천화와 화영에게 정중히 쉬어가기를 청했다. 그의 말처럼 날도 어두워진 데다, 기존에 제시했던 현상금보다 두 배나 되는 돈을 지급했다 한들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보상일 뿐이지, 제대로 감사를 표했다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미 호랑을 제압해 이곳에 데려온 순간부터 두 사람 역시 흑월문과 흑천문에 척을 진 것과 다름없기에 혹여 암습을 당하기라도 할까 두려웠다. 유가장이 제 앞마당에서 손님이자 은인인 그 둘을 죽게 두기라도 한다면 명성에 큰 누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16586674253364.jpg“정말 그 이유뿐인가요?”

하지만 진정한 속내는 따로 있을 터였다. 그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천화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유몽헌을 바라보았다. 유가장주 유몽헌은 정파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올곧은 인물이지만, 나름대로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니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듣고도 남겠지.

16586674253356.jpg“크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이미 눈치를 채신 것 같으니 이참에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듯하군요. 본래는 최대한 성의를 다한 뒤 말씀 드릴 예정이었으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예상이 적중한 듯, 유몽헌이 멋쩍은 미소를 짓다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정중하게 천화와 설영에게 부탁했다.

16586674253356.jpg“혹, 두 분께서 시간에 여유가 있으시다면 한동안 저희 장원에 머물러주시기를 청합니다. 좀 전에 호랑이 끌려가며 이야기한 것처럼,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흑천문과 그의 의형이 이끄는 흑천문이 무력으로 이곳을 어찌하려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이 저희 장원을 노리고 있기에 이에 대비하여 여러 고수들을 초빙하고 있었습니다만, 아직 확실히 물리칠 수 있다고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호랑 정도 되는 고수를 가볍게 제압하신 두 분께서 이곳에 머물러주신다면 저들도 함부로 수작을 걸기 어려울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름값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흑광살겸 호랑을 제압한 소식이 멀리 퍼지지 않은 까닭에 그와 관련된 별호가 붙지는 않았지만, 그거야 유가장에서 만들어 퍼트리면 그만인 일이다. 그리하여 그만한 고수가 유가장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 그만큼 유가장은 안전해질 수 있겠지. 그런 이유로 흑월문과 흑천문의 압박을 벗겨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유몽헌이 일류급의 무인들을 객으로 초빙해 전각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고.

16586674253364.jpg“얼마 주실 건데요?”

16586674253356.jpg“계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예?”

16586674253364.jpg“에이,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그럼 고급 인력을 무임금으로 부려먹을 생각이셨어요? 아니면, 그냥 머물기만 하는 거니까 일터지면 우린 그냥 가도 되죠?”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은 나오지 않았기에, 천화가 먼저 끼어들었다. 적당히 띄워주는 말들로 그들을 치켜세우고는 있지만 그래서, 그 대가로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는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16586674253356.jpg“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나름 정파의 무인이라는 이들이 대놓고 돈을 요구할 줄은 몰랐는지 유몽헌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상황 파악을 마쳤다. 아직 별호가 널리 퍼지지 않은 이들. 어쩌면 기존의 별호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 특정 문파에 적을 두지 않았으며 현상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찾아온 이들이라면, 낭인이거나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소문파에서 키워낸 기재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돈을 밝힐 수도 있겠지.

16586674253356.jpg“얼마를 원하십니까?”

어차피 객으로 머물고 있는 다른 고수들도 얼마씩의 지원금을 받고 있으니 돈을 주는 것은 문제없는 일이다. 최근 이름난 고수들을 초빙하느라 제법 돈을 쓰긴 했지만 유가장은 그럴 만한 여력이 충분한 곳이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너무 젊어 보이는 데다 유가장의 돈도 썩어 넘치는 수준까지는 아니기에 슬쩍 묻자, 천화가 마주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이럴 때는 역시 이거지.

16586674253364.jpg“제시요.”

천화의 한마디에 평온을 되찾아가던 유몽헌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렇게 되면 적은 금액을 주기에도 애매하다. 자칫하면 은인이라 감언이설을 내뱉고서, 뒤로는 지원금도 후려치는 치졸한 집단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최소 다른 일류급 무인들의 수준에는 맞춰주어야 할 텐데, 문제는 천화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의 수위가 고작해야 삼류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종자쯤으로나 여겼는데, 꼬박꼬박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것이나 설영을 대하는 태도로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대등한 관계쯤은 되어 보이는 데다 셈이 밝아 보이니, 푼돈을 쥐고 흔들었다가는 낭패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16586674253356.jpg“그러면…….”

결국 어쩔 수 없다 여긴 유몽헌은 천화와 설영 모두에게 일류 고수급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1개월에 금자 2냥. 금자 1냥이 은자 20냥이고, 은자 1~2냥이면 서민 가족의 한 달 생활비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무림인들에게도 적지만은 않은 금액이었다. 게다가 숙식 제공이지 않은가? 삼시세끼 푸짐한 밥상이 제공되고, 무공을 수련할 만한 시간과 장소가 제공되며 따로 맡는 의무도 없었으니, 이런 식으로 도움이 필요한 장원에 식객으로 머물며 생활하는 무인들이 제법 많은 것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1658667425336.jpg“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 거야?”

다만, 천화와 설영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임무가 부여됐다.

16586674253364.jpg“왜? 좋잖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1658667425336.jpg“그러니까, 우리가 왜 사람 구경 같은 걸 해야 하냐고. 그것도 여기에서. 굳이 사람 구경이 하고 싶으면 다루 같은 곳에 가도 되잖아?”

바로 유가장의 입구를 지키는 일이었다. 천화의 요청에 의해 문지기라 불리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덕분에 약간의 추가 수당을 받게 되긴 했지만 그래봤자 은자 세 냥 정도가 추가된 정도에 불과했기에 크게 의미가 있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천화가 제안하고 받아들인 것을 왜 자신까지 같이 해야 하는 것일까. 호위 무사의 역할을 수행해주기로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나서기는 했지만, 불만이 가득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16586674253364.jpg“뭐? 기루? 그런 취향이었어?”

1658667425336.jpg“너 죽을래?”

때문에 천화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설영은 가늘게 눈을 흘겼다. 그들이 지키는 곳은 위곡현에서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가장의 입구였으니, 문지기의 역할은 사실상 돌아다니는 사람 구경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16586674253364.jpg“흐흐 기다려봐. 곧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테니까.”

1658667425336.jpg“뭐? 너……. 대체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하지만 천화는 여전히 농담 따먹기나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이제 곧 유가장에는 한바탕 사건이 몰아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제대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딱 지금의 자리가 좋았다.

1658667425336.jpg“하, 지루하다. 지루해. 내가 대체 왜…….”

16586674253364.jpg“쉿.”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유가장에서도 24시간 경비 체제를 선언했기에, 거리에 돌아다니는 이들이 사라지고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도 두 사람은 여전히 유가장의 정문에 머물렀다. 이제 교대시간까지는 대략 1시진(2시간)여.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천화의 말과 달리 유가장의 식솔임을 의미하는 통일된 복장을 입지 않은 그들을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는 이들 정도만 있을 뿐, 누구 하나 그들에게 말을 거는 일조차 없는 상태였다. 이번만은 천화가 잘못 판단을 한 것일까? 뾰로통하게 튀어나와 투덜거리던 설영의 입을 천화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눈짓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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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벅 저벅 저 멀리,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영들이 포착된 것이다.

16586674253356.jpg[주인님. 스무 놈입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놈들이 담을 넘고 있고요.]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실력들이었다. 정문으로 몰려온 스무 놈들 중 대다수가 이류 무인에 일류 수준인 놈들도 셋이나 있었다. 천화와 설영이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정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동안 담장을 넘은 놈들이 호랑을 빼돌리기 위함인지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방심할 수 없는 수준과 숫자란 것이다.

1658667425336.jpg“천화.”

그들의 위험성을 파악했는지 설영이 천화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아무리 혈마검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뭔가를 해주지 않는다면 현재 천화의 무위로는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6586674253364.jpg“여기가 왜 꿀자리인 줄 알아?”

1658667425336.jpg“응?”

그러나, 천화는 그런 설영을 밀어내며 같은 선상에 섰다. 사악한 눈빛으로 놈들의 전신을 훑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16586674253364.jpg“여기서 털어먹는 건 다 내 주머니에 넣어도 되거든.”

1658667425336.jpg“……뭐?”

스물. 아니 설영까지 스물 하나의 무인들이 일제히 그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천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6586674253364.jpg“뭐해? 눈싸움만 할 거야?”

16586674253356.jpg“쳐라!!”

오히려 상대를 도발하며 앞으로 나섰다.

16586674253364.jpg“자기가 쓰러뜨린 놈 건 자기가 먹는 거다?”

담담히 반띵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키며, 가장 먼저 덤벼드는 놈을 향해 공격을 떨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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