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이게 다 마교 때문이다 (5)2021.02.28.
10대 2의 싸움. 처음 오두막이 무너질 때 두 놈이 끝장났고, 다시 비영사에 두 놈이 끝장났기에 정확히는 3대 1과 7대 1의 싸움이었지만, 그 대치 구도가 유지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역혈기공까지 운용하며 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천화가 순식간에 셋을 쓰러뜨리고 설영이 있는 쪽으로 합류한 것이다.
‘멍청한 놈들이라 다행이야!’
아무리 민첩이 올랐고 역혈기공을 운용했다고는 하지만, 높게 쳐줘도 고작해야 이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천화가 일류 고수 셋을 동시에 쓰러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들이 합격술을 펼치자 오히려 천화에게는 득이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들의 무공에 자신했다는 것 또한 놈들의 패인 중 하나였다. 무인에게 있어 자신이 지닌 무공에 대한 확신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들처럼 과도한 믿음은 때로는 독이 되는 법이니까. 약속된 초식, 약속된 합격. 이미 상대가 어떤 식으로 검을 뻗어올지 빤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당해주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천화는 한발 먼저 타격 지점을 회피하는 동시에 양손으로 검을 뻗어내는 것으로 셋 중 둘을 처치했다. 한 손에는 혈마검, 다른 한 손에는 무명검. 호화롭기 짝이 없는 무장 상태였기에 일격이면 충분했다. 이어 당황하며 검을 휘두르는 적의 검격을 엑스자로 검을 교차해 막아내는 동시에 발을 차올리자 마지막 한 놈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던 것이다. 낭심. 남자라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인 놈의 힘빠진 검을 밀어내고 마무리를 하는 것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 쉬운 일이었으니까.
“아니?!”
“고수였나!”
그렇게 천화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설영이 한 놈을 처치한 상태였다. 설영 역시 자잘한 상처를 입긴 했지만 7대 1의 불리한 싸움이었음에도 한 놈을 격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혈마의 후예가 어째서 우리를 막아서는 것이냐! 중원을 차지한 저자들은 너희에게도 적이 아니던가!”
덕분에 이제는 6대 2의 싸움이 된 터였다. 여섯이서 한 명을 상대하지 못했는데 무려 셋이나 되는 일류급의 마인들을 처치한 천화까지 가세했으니 녀석들의 상황은 더욱 암울해졌다. 더구나 천화의 무공 수위는 아직도 이류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천화가 자신들이 감지해낼 수 없는 고수라는 증거로 받아들였는지, 놈들은 검을 겨루는 대신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혈마의 후예들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너희가 교에 투신을 한다면, 천마께서도 지난 과오를 잊고 받아주실 터. 우리와 함께 저들에게 피의 복수를 함께하자!”
정확히는 회유를 시도했다. 혈마검을 쥐지 않아 설영에게서도 특징적인 혈마기의 붉은 기운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검법의 형을 보고서 그녀가 혈마의 후예임을 파악한 것이다.
‘늙은 생강 같은 놈이네.’
그것만 보아도 꽤나 견문이 넓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수틀리면 정파 세력에게 그들을 밀고하여 쫓기게 만들 만큼 수완이 좋은 자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천화와 설영이 혈마의 후예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들의 말은 신뢰도를 잃고 말겠지. 물론 그렇다고 마교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수로서는 최선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여기서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면 마교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는 것은 분명할 테니까.
“그래? 따라가면 뭘 줄 건데?”
“천화!”
그때, 천화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흥미롭게 그를 바라보았다. 혹여나 마음이 동한 것일까? 설영이 소리를 질렀지만, 상대는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다급히 소리를 내었다.
“무엇이든. 그분께 인정만 받는다면 그대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천화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만이 자신들이 살아서 이곳을 나갈 뿐 아니라, 교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뭐든? 진짜 뭐든? 흐음. 그럼 땡기는 게 있긴 한데.”
“너 정말…….”
“그렇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천화가 솔깃한 모습을 보이자 녀석은 더욱 흥분하며 소리를 높였다.
“그럼 천마검은 어때? 전에 보니까 꽤 쓸 만은 하던데.”
그렇게 달아오른 녀석에게 천화가 찬물을 끼얹었다. 천마검. 그것은 마교, 다른 말로 천마신교라 불리는 그들 집단의 교주에게만 이어지는 신물이었으니까. 천화가 지금 한 말은, 교주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네놈, 우리를 농락하려는 것이냐!”
교주에게 충성하는 마교의 특성상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남은 여섯 마인들은 일제히 내공을 끌어올리며 당장이라도 사생결단을 낼 기세를 내뿜었지만, 천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주 살기를 내뿜었다.
“아조씨, 내가 말이야.”
“……!!”
움찔 일류 고수마저 겁을 먹게 만드는 집중된 살기를 드러내며 천천히 놈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신지로를 20살 때부터 플레이했다. 그때 뉴비로 시작했던 놈들이 수억 명이라 치면, 지금 나만큼 하는 놈은 나 혼자뿐이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구파일방 제끼고, 천마 보내고, 하오문 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조졌다. 알아? 엉?”
그 말을 끝으로 천화가 먼저 놈들에게 무형보를 밟으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인들은 크게 당황했다. 너무 느렸으니까. 물론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쾌속한 일격이었지만 일류 고수인 그들의 기준에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느린 공격인 것이다. 뭔가 의도가 있는 건가? 부딪히는 순간 뭔가를 하려고? 순간 혼란스러워진 마인들은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마지못해 대응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불안해했다.
“그런데 어디서 수작질이야?”
“피해라!”
결국, 마인들은 천화와 부딪히는 것을 포기했다. 천화의 느린 공격에 뭔가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회피를 택한 것이다.
“어딜!”
천화의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아무리 여유 능력치 투자와 역혈기공으로 움직임을 끌어올렸다지만, 작정하고 회피하는 일류 고수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파앙. 하지만 그때, 혈마검을 뻗어낸 천화의 손바닥이 검 자루 부분을 밀 듯이 때렸다. 혈마검을 아예 날려보낸 것이다.
“무기를 던지다니?!”
콰앙!!! 목표가 된 상대가 크게 당황하며 검을 휘둘러보지만, 놀랍게도 혈마검에는 거력이 담겨있었다. 손을 떠나고도 무기에 내공을 담는 것은, 그것도 검기 이상의 힘을 담는 것은 고작 일류급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혈마검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휘릭-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상대와 부딪히며 힘을 잃었어야 할 혈마검이 허공을 날아 다른 놈에게 또다시 부딪혀간 것이다.
“컥!”
설마하니 허공에서 방향 전환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방심하던 또 다른 상대의 가슴팍이 길게 베어졌다.
“이기어검?!”
그것을 보고 마인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기어검. 내공을 이용해 검을 허공에 띄울 뿐 아니라 마음대로 조종하여 상대를 격살하는 그 무공의 경지를 펼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내공의 소모가 필요하기에, 절정급의 무공 수위라 할지라도 감히 흉내를 내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응. 아니야.’
[흐히히힛! 주인님. 간지럽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방법은 간단했다. 혈마검의 자루 부분에 천화가 슬쩍 비영사를 접붙인 것이다. 기존에 묻은 핏방울 따위는 가볍게 손을 터는 것만으로도 없앨 수 있었기에 다시 투명한 상태가 된 비영사는 안법을 단련한 고수조차도 간단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은밀해졌고,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하늘도 천화를 도와주었다.
“차핫!!”
그렇게 기겁할 만한 무위를 선보인 천화였지만 마인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정말 천화가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을 만한 존재라면 무기가 없다고 어찌하기 어렵겠지만, 동귀어진을 각오하며 누군가 파고든 것이다. 검을 손에서 떠나보낸 지금이야말로 천화를 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없었는데요.”
그러나 천화는 고개를 돌려 똑바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빈손을 휘젓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무명검을 손에 쥐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있었습니다!”
까앙! 두 검이 부딪히자마자 즉시 결판이 났다. 둘 중 한 자루가 뎅강 부러져버린 것이다.
상대 역시 최대치까지 내공을 끌어올려 검기를 뽑았다지만 무명검의 공격력, 소위 깡데미지라 불리는 그것은 이미 검기를 초월한 수준이었으니까. 내구도 역시 말할 것이 없었다. 검기로 감싸진 상대의 검을 부러뜨려버리고도 무명검은 이 빠진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고, 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검과 함께 잘려나갔다.
‘마! 이게 템빨이다!’
무신지로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던 전설 등급의 아이템,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무명검의 위용이었다. 보통이라면 이 정도까지 위력을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충검의 묘리까지 펼쳐진 상태였다. 역혈기공을 통해 이류 수준까지 내공이 상승한 상태였기에, 무명검에 내공을 불어넣자 천화에게만 들리는 기이한 공명음이 청량하게 울려퍼지며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산개하라!!”
그 모습에, 마인들도 결단을 내렸다. 천화가 보여준 그 일수만으로도 이미 자신들은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전멸을 하느니,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이 상황에 대해 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
무인이, 그것도 강자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인다는 것은 굴욕을 떠나 죽여달라는 이야기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맞붙으면 어차피 결과는 하나였기에 저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급하긴 급했나 보네.”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마인들을 보며 천화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미처 진법을 해제할 시간을 벌지 못하고 움직였기에, 그들의 행동이 그리 빠르지 못한 까닭이었다.
“어딜!!”
심지어 그중 한 놈은 설영에게 가로막혀 도주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약간의 시간은 걸리겠지만 설영이 놈을 쓰러뜨릴 테니, 남은 것은 세 놈뿐. 각기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천화는 여유롭게 혈마검과 무명검을 집어던졌다.
“등짝 좀 보자!”
푸욱! 푸욱! 도망치는 놈들의 등에 각각 검이 꽂혔다. 그것으로 끝. 몸을 비틀어 급소를 피해내려 들었지만 천화의 투척이 너무 정확했고, 두 검의 날이 너무 잘 들었다. 즉사는 면했지만 그대로 두어도 진법의 영역을 통과하기도 전에 죽어 자빠질 것이 뻔해 보였다.
“얼씨구?”
천화는 얼른 튕기듯 팔을 당겨 제 역할을 마친 검들을 회수하려 들었지만, 그때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자신은 틀렸음을 직감한 놈들이 몸을 꿰뚫은 검을 붙잡고 버티기를 시전한 것이다. 다른 한 놈이라도 살려보내고자 하는 모양. 천화가 일류급만 되었더라도 어떻게든 해 보았겠지만, 비영사에 매달린 검들을 완력만으로 회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포기하지 뭐.”
그래서 천화는 비영사에 불어넣었던 내공을 회수했다. 접착력이 사라진 비영사가 풀려나오며 두 자루의 검은 놈들이 시체가 될 때까지 박혀있었다. 쐐애애액- 그리고 마지막으로 홀로 도망치던 놈의 뒤통수에 검은 낫이 꽂혔다.
“스트라이크!”
흑겸. 유몽헌을 상대시키기 위해 호랑에게 잠깐 빌려주었던 흑겸은 당연히 회수한 상태였으니까. 아니, 꼭 흑겸이 아니더라도 던질 만한 여분의 무기는 꽤나 많았다. 당장 팔아치우면 눈에 띌까 싶어 소지품 창에만 담아둔 무기가 제법 되는 것이다. 그중에는 흑겸도 있었고, 유몽헌이 사용하던 추일검도 있었으며, 마교의 고수들이 사용하던 것도 있었다. 물론 양패구상을 위장했기에 흑천문의 장원을 조사하는 개방의 거지들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다른 검을 쥐여주었으니 당장은 괜찮을 터였다. 흑겸이나 추일검처럼 특징적인 무기를 세상에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때문에 반대로 언젠가 들킬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이미 천화도 어느 정도 무공을 되찾은 후일 테지.
“끄응. 이제 힘을 좀 써야겠군.”
슬슬 마무리 일격을 가하는 설영 쪽을 힐끔 쳐다본 천화가 다시 비영사를 뻗어냈다. 쓰러진 마인들의 시체를 낚시하듯 끌어당겼다. 진법의 경우, 들어오기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갈 때 역시 제대로 된 길을 걷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되기 때문에, 굳이 몸을 움직이는 대신 비영사를 통해 그들의 시신을 건져 올린 것이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군.’
그렇게 마인들의 시체와 혈마검, 무명검을 모두 회수한 천화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흑천문에 온 마인의 숫자가 넷, 이곳에 있던 놈들의 숫자가 열다섯. 도합 열아홉이니까……. 둘이 부족한 건가?’
아마도 돌아오지 않는 대주급 마인들을 찾으러 나섰거나 주변의 동태를 살피러 나갔을 나머지 마인들을 기다린 것이다. 오두막은 무너져버렸지만 천화의 소지품 창 안에는 그럭저럭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물건들이 들어있었기에, 대충 움막을 짓고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놈 옵니다. 방향은 북동쪽.]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생명 반응의 접근을 확인한 혈마검이 알람을 해주자마자 천화는 점찍어둔 장소로 이동해 놈을 기다렸다.
“뚝배기!!”
퍼억!!! 진법의 영향으로 천화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던 마인이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