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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전사묘 (2) (303/481)

<59화> 전사묘 (2)202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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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화의 요리는 어마어마하게 비쌌지만,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다른 것이 나왔고, 맛도 어지간한 객잔에서 먹는 것보다 뛰어났다. 사실 그나마도 재료와 향신료가 충분치 못해서 이 정도일 뿐이지, 제대로 작정하고 갖춰서 요리를 하면 중원에서 손에 꼽히는 숙수만큼이나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화였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리 비싼 금액도 아니었다.

16586676546627.jpg‘모름지기 인건비가 가장 비싼 법이니까.’

그 신선한 재료들이 모두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제대로 몸보신을 한 설영과 고불은 천천히 몸을 회복시켰고, 내공도 몸 안 가득 충만하게 채워두었다. 하지만 천화는 좀처럼 절벽에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 천화의 내상이 낫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역혈기공을 사용한 탓에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상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가벼운 것이었기에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한참 전의 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혈마신공을 익힌 설영과는 다른 이유로 이곳에서 운기를 하고도 멀쩡할 수 있는 천화였기에, 오히려 운기 시간마다 꼬박꼬박 설영에게 혈마검을 받아가며 단전에 내공을 채우다 못해 더욱 불리고 있는 그였다. 그럼에도 하루, 이틀, 사흘이 되도록 천화는 처음 지목했던 절벽을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참다 못한 설영이 먼저 나서 천화에게 따져 물었다.

16586676546632.jpg“저기를 올라야 한다면서 왜 가지 않는 거야? 너 혹시…….”

음식 값을 더 받아먹기 위해 엉덩이를 뭉개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설영은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진짜일 것 같았으니까. 왜 창피함은 자기 몫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설영이 고불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끝을 흐리자, 천화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16586676546627.jpg“이제 대충 기운들을 차린 것 같은데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뭐라 대꾸하는 대신, 활동을 개시했다. 물론 그 탓에 설영이 천화를 조금 노려보기는 했지만, 뭐 어떤가?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16586676546641.jpg“저길 오르면 되는 건가?”

16586676546627.jpg“맞아. 딱히 안전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무척 위험한 일이지. 짚을 만한 모서리가 어디에 튀어나와있는지도 미리 봐 둬야 하고, 너무 힘을 주면 바스라지는 것도 있을 테니까 신중하게 짚고 올라야 할걸?”

삼 일이나 함께 있으면서 어차피 비슷한 연배인지라 친구를 하기로 한 고불이 편하게 묻자 천화가 다시 잔뜩 겁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삐끗하면 그야말로 황천행이니까.

16586676546641.jpg“그건 네가 제일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16586676546627.jpg‘아, 얘도 또라이였지.’

그러나 고불은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절벽 타기를 수행 삼아 종종 하던 인물이니까. 강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기행은 무신지로에서도 유명했었다.

16586676546627.jpg“글쎄? 내가 왜?”

16586676546641.jpg“어……?”

하지만 천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16586676546641.jpg“저걸 어떻게 오르는 거야?”

허나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고불 역시 눈여겨 보아둔 곳들이 많을 만큼 간단했지만, 조금만 위로 오르자 난이도가 확 오른 것이다. 그런 곳을 천화는 태연하게 짚어올랐다. 귀찮다는 듯,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손바닥을 붙이고 마치 거미가 기어가듯 스르륵 절벽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16586676546632.jpg“천잠사!”

그때, 설영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쳤다. 내공을 실으면 접착력을 발휘하는 천잠사. 그것으로 만든 비영투라는 이름의 장갑이 천화에게 있는 것이다. 게다가 몸 하나를 지탱할 정도의 접착력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그리 많은 내공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 천화는 벌써 저만치 높은 곳까지 올라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16586676546632.jpg“우리도 가자.”

16586676546641.jpg“어……. 그래.”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설영과 고불도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공이나 무위로 따지자면 설영이 조금 위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절벽을 오르는 것은 상당한 근력과 체력을 요하는 데다 고불에게는 상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가 앞장서서 올랐다. 그 뒤로 설영이 특유의 유연함을 이용해 재빠르게 그가 짚었던 곳들을 따라 짚었다. 수월하게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야 만약 위에서 누가 손이나 발을 헛디뎌 떨어져내리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설영이 받아낼 수 있을 테니까. 시작이 좋았다. 쉽지 않은 길임에도 두 사람은 마치 합을 미리 맞춰본 것처럼 빠르게, 또 안정적으로 절벽을 타고 올랐다.

16586676546627.jpg“굼벵이들을 삶아 드셨나, 빨리 좀 갑시다. 빨리 좀!”

16586676546632.jpg“아오. 저걸 진짜.”

위에서 닦달하는 천화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16586676546641.jpg“이래서 사람들이 기물을 찾아다니는가 보군.”

위뿐 아니라 옆으로까지 사사삭 이동하며 절벽 중간 중간 꽂힌 무구들을 확인하고, 일부를 뽑아내는 천화를 보며 고불 역시 혀를 내둘렀다. 천화의 혀는 얄밉지만, 그 능력만은 확실히 알아줘야 했다. 그것이 기물 혹은 보물이라 불리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지만, 그것을 취한 것 역시 실력이니까.

16586676546627.jpg“빨리 좀 오라니까? 거기서 날 샐래? 이래서 오늘 내에 오를 수 있겠어? 엉?”

16586676546632.jpg“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 너 때문에 더 힘 빠지잖아!!”

그러는 사이에도 천화는 잔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설영의 속을 긁어놓았다.

16586676546627.jpg“…….”

덕분에 있던 힘도 빠질 판이었기에 설영이 고함을 치자, 천화도 느낀 것이 있었는지 조용해졌다.

16586676546632.jpg“어……. 천화? 거기 있어?”

막상 천화가 조용해지자 불안해진 것은 그들이었다. 설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떨어진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절벽에 박힌 무기들을 뽑다가 다치기라도 한 건? 쿠궁 쿠구구궁! 잠시 후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16586676546632.jpg“천화! 대답해! 천화!!!”

나쁜 생각이 든 설영이 목청껏 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16586676546632.jpg“고불, 조금만 서두를 수 있겠어?”

설영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천화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앞서 오르고 있는 고불을 재촉했다. 여차하면 추월이라고 할 기세였기에 고불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서둘러 길을 찾았다. 힘을 주어 더 빠르게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16586676546627.jpg“거봐, 할 수 있네. 힘이 넘치는 것 같은데, 이건 괜히 준비했나?”

16586676546632.jpg“너어……!”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들려온 천화의 목소리에 설영이 안도했다. 그리고 버럭 화를 냈다. 일단 무사한 것은 확인했으니까.

16586676546627.jpg“어때, 더 갈 수 있겠어? 아니면 쉬었다가 갈래?”

16586676546641.jpg“쉬다니?”

힘에 부쳤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잔뜩 흥분한 설영을 달래기 위함일까. 천화의 말을 고불이 급히 받았다. 그리고 천화의 눈짓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 있지 않았던,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6586676546641.jpg“동굴?”

천화의 뒤쪽으로 거뭇하게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동굴이었다. 혹시 지상에 있던 동굴과 연결되는 곳인가? 아니다. 천화가 ‘준비’했다고 한 말을 생각하면, 그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공간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어떻게?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을 끌 이유도 없었다.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는 일은 기본적으로 근육을 쥐어짜내는 일이었기에 아까부터 전신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다. 정신력 싸움이기도 하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지, 저것처럼 쉴 수 있는 공간이 중간에 확보되어 있다면 최대한 몸을 회복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16586676546627.jpg“은자 10냥.”

16586676546641.jpg“……?”

하지만, 고불이 그 휴식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천화가 그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16586676546632.jpg“좋아. 50냥 더 낼게.”

16586676546627.jpg“오?”

고불은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 눈을 껌벅거렸지만 설영은 달랐다. 오히려 50냥을 추가로 더 주겠다고 이야기하며 천화에게 바짝 다가갔다.

16586676546627.jpg“가만, 50냥이라고?”

그 모습에 천화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왜 하필 50냥일까. 그건 설마 저번에……?

16586676546632.jpg“그래. 네 목숨값이다! 너 이리 와!! 이리 안 와?!”

16586676546627.jpg“히익!”

때 아닌 추격전이 펼쳐졌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돈 돈 거리는 천화에게 화가 난 것인지, 걱정을 시킨 것에 화가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영은 입에 칼을 물고라도 천화를 죽일 듯 바짝 열이 올라 절벽을 기었고, 천화는 식겁하며 설영과 거리를 벌렸다.

16586676546627.jpg“에이, 농담이지. 농담! 그럼 쉬고 있어! 난 잠시 아래에 다녀올게!”

그리고 두 사람이 자신이 만들어놓은 휴식 지점에 거의 도달했을 때쯤, 다시 절벽을 기어 아래로 내려갔다.

16586676546632.jpg“야! 왜 그걸 다시 내려가!”

16586676546641.jpg“혹시 뭔가 놓고 온 거라도 있는 건가?”

그 모습에 고불과 설영이 황당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천잠사로 만든 장갑을 낀 덕분에 자신들보다도 수월하게 절벽을 오르내릴 수 있다지만, 뭐하러 이미 오른 절벽을 다시 내려간단 말인가? 비영투를 사용하는 것에도 조금씩이지만 내공이 소모될 테니, 지금 내려가면 내공을 충분히 회복하기 전에는 다시 올라오기 어려울 텐데. 삼재심법을 익힌 천화에게는 이곳의 사기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지만, 삼재심법인 만큼 내공의 회복 속도도 느리고, 자칫 그사이에 누군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내공이 다한 천화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16586676546632.jpg‘뭔가 생각이 있어서이긴 하겠지만…….’

점이 되어 사라지는 천화의 모습을 보며 설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전의 놀란 감정이 남아있어서인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16586676546632.jpg‘내가 왜 저 녀석 걱정을 하는 거야?’

그러다 문득,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홱 고개를 돌렸다.

16586676546641.jpg“일단 여기서 충분히 휴식을 하고 움직이자. 천화도 기다려야 하니까.”

그때 고불이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자리를 잡으며 등을 기댔다. 내공을 사용하고 보충하는 것이 가능한 설영과 달리, 고불은 소모한 내공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기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설영도 고개를 끄덕였고, 운기까지는 아니지만 혈마검을 만지작거리며 휴식을 취했다. 천화가 다시 나타난다면 혈마검이 진동하며 알려줄 테니까. 그사이, 천화는 절벽 아래의 지상으로 가뿐하게 내려왔다.

16586676546627.jpg“요령은 대충 알려줬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하지만 내공을 보충하고 다시 절벽을 오를 생각은 없었다. 비영투 덕분에 절벽을 타고 내리는 것이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그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16586676546627.jpg“어디 보자, 오늘은 이걸 만들어볼까?”

운기조식을 취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대신, 모닥불을 피워놓은 쪽으로 이동하여 한 무더기의 장작을 더 집어넣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미리 구해둔 철판을 살짝 경사지게 얹은 후, 잘라놓은 삼겹살을 올려 노릇하게 구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16586676546627.jpg“크으! 냄새 죽인다. 역시 삼겹살이 최고지.”

지글 지글 살점이 노릇하게 구워지고, 살짝 붙은 비계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타닥거리며 터져나간다.

16586676546627.jpg“아, 여기에 김치랑 소주만 있으면 딱인데.”

한정된 재료로도 꽤 많은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역시 한국인에게는 삼겹살이 최고다. 아니, 굳이 이 맛을 아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냄새만으로 사람을 홀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16586676546627.jpg‘이 냄새! 배고픈 사람이 맡으면 아주 환장을 하지.’

장담컨대 중이 절간 담을 넘게 만든다는 불도장조차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포옹! 여기에 좋은 술까지 갖춰진다면 어떨까? 마저 소지품 창에서 몰래 구해둔 소흥주까지 한 병을 까자 주변으로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하며 퍼져나갔다.

16586676546632.jpg“야! 치사하게……!”

그 냄새와 연기가 절벽 위로까지 올라갔는지, 고불과 설영의 희미한 고함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그러나 천화는 그것을 서둘러 먹어치우지 않았다. 그 대신, 소지품 창에서 부채를 꺼내 슬슬 부치기 시작했다. 바로 동굴 안쪽을 향해서. 정확히는 그 안에서 이끼나 뜯어먹고 살고 있는 누군가를 꼬여내기 위해서 말이다.

16586676565907.jpg“킁, 킁킁.”

그리고 곧 반응이 왔다. 원래는 동굴의 안쪽에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누군가가 스스로 바깥을 향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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